13. 「견우와 직녀」
나는 군(軍) 시절을 우리나라 최동북단 휴전선을 지키는 부대에서 보냈다. 여름이면 6개월 동안 철책선을 지키며 근무를 서고, 겨울이면 인근 부대로 내려와 동계훈련을 받아야 했다.
밤새도록 철책선을 지키며 순찰로를 따라 걷다보면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온갖 벌레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려올 뿐 조용하였다. 그럴 때 어두운 참호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별들이 가득하였고, 이따금 유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군에서 보낸 세 번의 여름동안 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체험하였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원시의 자연 속에서 피어나던 온갖 꽃들과 새소리,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 가끔 순찰로에 나타나던 노루들, 그리고 밤하늘의 은하수와 유성, 텐트에 떨어지던 빗소리.
나는 그녀의 편지를 받고는 달빛어린 언덕에서 답장을 썼고, 책을 읽고, 가곡을 부르고, 노트에 일기를 쓰며 그녀를 그리워하고 서툴게 시를 썼다. 그 시절처럼 순수하고 맑은 지성으로 내일을 꿈꾸기도 하고, 때로는 고뇌하고 아파하며 사랑을 갈구하던 시절이 또 있었던가. 육체적으로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나는 음력 칠월칠석 무렵 노트에 이런 글을 써 둔 것을 나중에 자서전을 쓸 무렵에야 발견했다.
오늘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
그러나 하늘은 별빛만이 찬란하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지금 아름다운 저 은하수 어디쯤에서 그들은 만나고 있을까.
기쁨과 환희로 젖은 눈망울을 서로 바라보며
떨리는 음성으론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잔잔한 그 입술이 사뭇 설레며
가슴에는 뜨거운 감동의 물결이 일고
너무 기쁜 나머지 마주서서 울고 있지나 않을는지
사랑의 뜨거운 확인 가슴에 새기며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다정히 품에 안고서 밤을 새우고 있지나 않을는지.
Ⅰ
견우가 떠난 저 길은
일 년 내내 그립고 아쉬운 길 이었다.
직녀는 저녁마다
그 길을 바라보며 생각했었다.
견우가 달려오는 모습을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서
견우가 서두르며 달려오는 모습을
직녀가 기다리던 시간동안
은하의 푸른 별들은
늘 아름답고 찬란했다
손꼽아 헤아리던 나날을
직녀는 물레에서 긴 실을 뽑으며
견우가 좋아하던 빛깔들을 생각했다.
나의 사랑 견우여,
그대 억만년 광활한 이 별밭에서
아름다운 어깨로 밭을 갈고
슬픔의 씨앗을 뿌리며 살지라도
나는 강 건너 그대 숨결이 뛰노는 곁에
늘 행복의 날개를 접나니
내 비록 기다림의 운명을 딛고
그리움에 날마다 눈물 고여도
언제까지나 그대를 기다리리라.
잊지 말고 내 곁으로 오소서.
그대 항상 내 맘에 살아있으리니
Ⅱ
직녀의 맑고 고운 모습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리움만 타올라서
견우는 은하에 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낚았다.
매끈한 운석을 갈고 다듬어서
견우는 어여쁜 목걸이를 만들었다.
날마다 뚝딱거려 물레를 만들고
직녀가 그것으로 실을 뽑는 모습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나의 사랑 직녀여,
나는 슬픔을 거두어들이는
물레를 만들어 네게 주고 싶다.
너는 기다림에 지친 날에도
그 물레에서 실을 뽑으리니
어느 외로운 성좌에
푸른 이끼가 피어나고
수만 년 형벌의 운명이
너와 나를 갈라놓는다 할지라도
내가 준 물레는
너의 영혼을 지키리라.
구름에 가리운 너와 나의
사랑이여, 슬픔이여,
설령 은하수가 사라져 없어진다 해도
내 너를 잊을 수는 없으리라.
나는 이 시를 가지고 가곡을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시는 Ⅰ부분이 직녀의 입장에서 견우를 생각하는 내용이고, Ⅱ부분은 견우의 입장에서 직녀를 그리워하며 독백하는 것이므로 만일 가곡으로 만든다면 1절은 화자(話者)가 직녀이고, 2절은 견우여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이렇게 만든다면 나중에 남녀 성악가가 이중창을 하거나 1절은 소프라노가 부르고, 2절은 테너가 부르는 식으로 연주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번 가사를 다듬은 끝에 이렇게 가사를 완성하였다.
견우와 직녀
(1절)
들리시나요? 나의 견우여,
꿈결마다 내 목소리 들리시나요.
그대 외로운 별밭에서
아름다운 어깨로 밭을 갈고
슬픔의 씨앗 뿌릴지라도
강 건너 그대 숨결 뛰노는 곁에
행복의 날개를 접나니
내 비록 기다림의 운명을 딛고
그리움에 날마다 눈물 고여도
나 오직 그대만을 기다리리라.
잊지 말고 내 곁으로 오소서.
(2절)
어찌 잊을까. 나의 직녀여,
꿈결마다 그대 모습 아른거리네.
어느 외로운 성좌에
푸른 이끼 꽃처럼 피어나고
수만 년 형벌 가혹한 운명
은하수가 우리를 갈라놓아도
우리의 사랑은 영원해
내 비록 기다림의 운명을 딛고
그리움에 날마다 눈물 고여도
나 오직 그대만을 기다리리라.
잊지 말고 내 곁으로 오소서.
(듀엣)
우리의 사랑은 영원해
내 비록 기다림의 운명을 딛고
그리움에 날마다 눈물 고여도
나 오직 그대만을 기다리리라.
잊지 말고 내 곁으로 오소서.
잊지 말고 내 곁으로
내 곁으로 오소서.
그리하여 나의 열세 번째 가곡 「견우와 직녀」는 2024년 2월 16일 구광일 작곡가를 만나 남녀 성악가가 함께 부르는 이중창으로 편곡에 달라고 부탁하였고, 2025년 1월 15일 악보가 완성되었으나, 아직 녹음을 하지 못하였다.
https://youtu.be/UhVYvnexlEM?si=vjKVimxtO-kIBFH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