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클 대화에서 공명의 의미와 그 지평
- 아브라함 매슬로의 자기 초월, 관계 속 자아의 확장의 빛에서-
"딸기는 내 입보다 아이의 입에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존재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매슬로는 인간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 인본주의 심리학의 선구자이다. 그는 인간이 단순히 결핍을 채우는 존재를 넘어서, 자아실현을 향해 성장하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초월(self-transcendence)에 이르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의 통찰 중 특히 잘 알려진 위의 인용된 '딸기' 문장은, 단순한 개인적 경험을 넘어 인간 의식의 깊은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넘어 타인의 기쁨에 깊이 공명하고, 이를 통해 자아의 확장과 초월을 경험하는 상징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서클대화 실천가로서 그의 이 딸기 일화를 필자는 서클 대화의 작동이 지닌 심리학적, 관계적, 그리고 영적인 의미를 깊이 조명해주는 통찰로 탐색하고자 한다. 즉, 이 통찰이 서클 대화(circle dialogue), 특히 퀘이커의 신뢰 서클(trust circle)이나 경청 동반자(listening companion) 소그룹에서 경험하는 '관계 속 자아의 확장'과 '본질적 정체성과의 만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봄으로써, 서클 대화가 줄 수 있는 인간 존재의 확장 가능성과 관계를 통한 치유의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연결점들은 서클 대화가 단순한 소통 방식을 넘어, 깊은 치유와 성장을 가져오는 진정한 원리를 담고 있다는 것도 아울러 알려주고 싶다.
1. 공명: 타인의 기쁨에 울리는 나의 자아
매슬로의 '딸기' 이야기는 자아의 중심을 '나'에서 '타자'로 확장시키는 깊은 인식의 전환을 담고 있다. 딸기의 맛이라는 감각적인 경험조차 나의 만족이 아닌 타인의 순수한 기쁨을 통해 더 충만하게 느껴졌다는 진술은, 관계를 통해 자신을 경험하고 확장하는 방식의 핵심을 보여준다.
풀어본다면, ‘딸기’는 저기 있는 그것(it)이나 사물성(thing-ness)로서 저기 있지 않다. 그것은 나의 현존재 의식에 참여하며, 내 존재 감각을 일깨운다. 거기있음이 아니라 내 심장 속에 들어와 ‘맛있게 느껴짐’이라는 내 존재의 감각을 확인시킨다. 맛있게 느껴짐은 바로 나의 존재성에 영향을 미친다. 맛있음을 경험하는 ‘나’의 현존이 그것을 향해 느끼는 ‘나됨’과 ‘나의 지금 있음’을 창발시킨다.
뿐만 아니라 딸기라는 사물성/주제는 단순히 나의 현존만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다. 나의 현존이 일깨워지면서 ‘아이’라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연결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파커 파머가 이야기한 사물/주제의 제3의 은총이 주는 결과이다. 사물의 내면성, 내 존재 감각의 중심성 그리고 상대방의 타자성이 동시에 서로를 불러낸다. 즉 노출시키고 각각을 실현시킨다.
이것이 바로 공명(resonance)의 상태이다. 타인의 경험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그들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반응하는 것은, 자아의 경계를 잠시 허물고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하는 과정과 같다.
서클 대화에서는 이런 공명이 매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진실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반응하게 된다. 경청하는 사람은 잠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고유한 세계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 순간, 우리의 자아는 평소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이는 단순히 감정 이입(empathy)을 넘어선 것이다. 타자의 진실이 마치 내 존재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존재론적 공명(ontological resonance)‘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은 자신의 역할과 입장의 옷을 벗으며 그 본질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서클 대화가 가져다주는 이 공명은 우리에게 깊은 유대감과 함께, 우리 자신을 관계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2. 비판단적 순수 시선: 어린아이처럼 듣기
매슬로가 아이의 기쁨을 통해 딸기의 더 큰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의 경험이 순수하고 아무런 판단 없이 온전히 몰입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경험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고, 순간의 감각에 전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마치 복음서의 예수가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말한 그러한 비판단의 시선과 유사하다.
이런 비판단적인 수용의 태도는 서클 대화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도 하다. 서클 안의 '경청 동반자'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대해 판단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As Is) 들어준다. 마치 어린아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듯, 상대방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마음챙김(mindfulness)의 핵심과도 매우 유사하다. 현재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떤 판단도 없이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내면의 자동적인 반응들을 멈추고, 존재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서클에서 이루어지는 비판단적인 경청은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깊은 안전감을 선물하고, 비어있는 공간에서 듣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판단과 통제 욕구를 알아차리고 내려놓을 기회를 준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되고,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감(awe)을 회복하게 된다. 이 비판단적인 부드러운 시선은 서클 대화가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존재를 존중하고 축하하는 신성한 공간이 되게 해주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3. 관계 속 자기 초월: 사회적 자아의 확장
매슬로는 자아실현을 넘어서는 개념으로 자기 초월(self-transcendence)을 제시한다. 이는 자아가 홀로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 및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확장되고 더 큰 의미를 찾아 나아간다는 사유이다. 타인의 기쁨에 진심으로 공명하는 경험은, 자아가 타자와의 깊은 연결 속에서 더욱 풍요로워지는 자기 초월의 과정이다.
그의 문장을 풀어보자면,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딸기의 맛의 질감은 내가 스스로 먹을 때가 아니다. 내가 건네준 딸기를 아이가 먹는 것을 볼 때 나는 딸기의 맛의 질감(the sense of quality)을 그 아이가 먹음을 통해 내가 딸기가 더 맛나는 것을 정서적으로 향유한다. 이것은 나의 자아정체성이 내 피부 캡슐 안에서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행위속에서 나의 정체성의 본질이 더 확장되어 드러난다는 뜻이다. 아이의 딸기 먹음은 그 아이인 타자의 행위가 더 이상 아니다. 내가 건네준 딸기의 자기-증여(self-giving)은 아이의 딸기 먹음의 행위 속에서 의미와 에너지의 공유로 인해 내 정체성과 가치가 그 아이를 통해 실현된다. 이것이 자기-줌을 통해 홀론으로서 더 큰 자아의 출현을 보는 경험이 된다.
서클 대화 안에서는 이러한 자기 초월이 아주 생생하게 구현된다. 참여자들은 사회적 자아(social self)로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본질적 자아(essential self)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관계 속에서 자아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특히, 경청 동반자로서의 경험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가 새롭게 조명되고 확장되는, 관계적 자기 초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내적인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영적으로는 자아의 확장을 통해 모든 것이 '하나됨(onenness)'이라는 감각을 일깨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개별적인 자아의 한계를 넘어 전체의 일부로서 자신을 인식하게 만드는 내면의 확장이며, 동시에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클 대화는 우리의 자아가 관계 속에서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치유의 장(field)이다.
4. 절정 경험과 존재의 충만함: 관계적 황홀
매슬로가 이야기한 절정 경험(peak experience)은 인간 존재의 통합적인 감각이 극대화된 상태를 말한다. 시간과 공간을 잊고 모든 것과 하나된 듯한 전일감, 황홀감, 그리고 깊은 충만함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매슬로는 이런 절정의 순간이 꼭 개인의 내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인 맥락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서클 대화에서의 비판단적인 경청과 존중을 통한 깊은 몰입과 서로를 온전히 수용하는 순간들은 집단적 절정 경험(collective peak experience)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는 공유된 의미의 흐름이 존재하게 된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모든 사람이 함께 울고 웃으며, 그 공간 전체가 충만함으로 가득 차는 경험은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와 경이로움을 동반하게 된다. 이러한 순간들은 심리적으로는 깊은 치유와 회복을 가능하게 하고, 영적으로는 더 큰 실재와의 접촉을 가능하게 한다. 공명을 통해 지적 이해를 넘어 뇌배선의 재활성화가 일어난다.
결국, 존재의 충만함은 이런 절정의 순간 속에서 타자와의 깊은 연결을 통해 비로소 온전히 구현되는 것이다. 서클은 이 절정적 몰입과 충만함이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서로의 존재를 통해 얻는 이 관계적 일치(We-ness)의 황홀감은 서클 대화의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이다.
5. 사랑과 이타주의의 공동체적 실천
딸기를 아이에게 양보하는 매슬로의 경험은 이타주의(altruism)와 사랑(love)의 순수한 실천으로 읽을 수 있다. 이는 통제나 소유를 기반으로 한 사랑이 아니라,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기뻐하는 아가페적 사랑이다. 그것은 느낌을 넘어선 무제약적인 비판단의 수용과 존중의 실존적 태도이다.
서클 대화에서 우리는 판단 없이 경청하고, 서로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공간을 비워주고 자리를 내어준다. 이는 에고의 작동을 멈추고,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을 실천하는 공동체적인 사랑이다. 실상 에고는 두려움과 결핍의 에너지를 먹고 생존하기에 서클대화에서 그러한 무조건적인 긍정적인 존중, 공감의 태도, 진실성(칼 로저스의 용어)은 에고의 작동을 내려놓게 하고 내면의 참자아의 에너지를 작동시키게 한다(리처드 슈워츠의 내면가족체계의 경험). 슈워츠의 참자아와 부분들의 공감과 소통은 서클 대화의 내면 영역에서의 예시라 볼 수 있다.
심리적으로 이런 사랑의 실천은 우울과 불안을 줄여주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영적으로는 모든 존재와의 깊은 연결감을 느끼게 하는 성숙으로 이어진다. 서클 대화는 사랑과 이타주의가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우리가 함께 실천하며 경험할 수 있는 공동체적인 가치임을 보여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결론: 서클대화에서 딸기 한 알과 무한한 자아의 가능성
아브라함 매슬로의 '딸기' 이야기는 단순한 미각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 가능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은유이다. 타인의 기쁨 속에서 자신의 기쁨이 증폭되는 이 경험은 자아가 관계를 통해 확장되고, 자기중심성을 벗어난 존재의 깊이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서클 대화는 이러한 자기 초월의 일상적 구현이 가능한 장이다. 사용자의 경험처럼, 서클 안에서는 사회적 자아가 본질적 자아와 만나고,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나 자신의 진실이 드러난다. 이렇게 관계 속에서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은 매슬로가 말한 '존재의 충만함'으로 이어지며, 진정한 치유와 영적 성숙을 가능하게 한다.
오늘날처럼 단절되기 쉬운 사회 속에서 우리는 다시 '딸기 한 알'의 감각을 관계속에서 회복할 필요가 있다. 타인의 기쁨에 공명하고, 판단 없이 듣고, 존재의 신비에 경외심을 갖는 태도는 우리를 더 깊은 공동체성과 진정한 인간성으로 이끈다. 서클 안에서의 한 문장, 한 사람의 눈빛, 한 순간의 침묵이 우리 모두에게 자기 초월의 문을 열어줄 수 있다. 국민주권의 시대에 서클 대화의 이 가능성이 더욱 중요함을 서클 진행자들은 일상의 비전으로 새길 필요가 있다.
2025.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