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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00 어르신
화장실을 다녀 온 사람들은 짐을 부쳐야 했다.
비행기 내에 가지고 들어 걸 수 없는 물건들을 고지하고 각자의 짐들을 확인하였다.
다시 인원을 확인하고 장소를 이동하여야 했다.
이목마을 김00 어르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화장실에 간다고 함께 갔던 사람들은 모두가 돌아 왔는데 그 어르신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이목마을 이장이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다.
짐을 부치기 위하여 수하물 접수처로 이동하는 동안 일부는 그 자리에서 어르신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교대로 짐을 접수하고 돌아와서 자리를 지켜야 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기다려 보기로 하자.
넓지 않은 공간인데 다시 한 번 돌아보도록 하자.
짐을 부치고 빈손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기다리며 찾아보았다.
사무장과 가이드는 1층으로 이장과 주민들은 3층으로 나는 안내 데스크를 찾아 방송을 요청하였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로비와 안내 데스크 주변을 맴돌았다.
시간이 임박하자 다급하여 졌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찾을 만한 곳은 모두 살폈음에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면 필시 이 공간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목이장은 그분이 가끔 정신이 깜박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럴 수가 어찌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였단 말인가.
가이드를 통하여 공항 경비대에 수색하여 주기를 요청하였다.
순창군의 최주사는 나보다 더 당황스러워하였다.
순창군에 연락하고 이장을 통하여 가족에게 상황을 알렸다.
가이드에게 여행사에 이 사실을 알리고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부탁하였다.
여권과 여행안내책자 그리고 일본에서 드시고자 준비한 고추장이 들어 있는 어르신의 가방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8시 50분 비행기 이륙시간이 되었다.
누구든 남아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진행을 하여야 한다.
지금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어르신을 곧 찾을 수 는 없을 것이다.
좁은 공항 내부에서 찾지 못하였다면 필시 이곳을 떠났을 수도 있다.
이미 비행기 이륙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우리들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 분의 딸이 서울에 살고 있음을 알았고, 이 상황을 알렸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이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가족에게 알렸고 그 딸 내외가 오고 있다고 하였다.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하며 한편으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남아서 일을 보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그 가족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비행기를 탔다.
이미 비행기를 탄 주민들을 살피기 위하여 먼저 비행기에 오른 최주사는 얼굴이 초췌하게 굳어 있다.
“제가 비행기를 타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가족이 오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고, 누가 남아서 일을 본다 한들 가족에게 비하겠는가. 우리는 하여야 할 일이 있어 가는 것이니 가족에게 맡기고 우리 일을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이제는 ‘혹시 무슨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하는 새로운 걱정이 머리에 가득해졌다.
일행 모두가 그러하였는지 지그시 눈을 감고 말이 없다.
그렇게 비행기는 일본에 도착하였다.
11시 30분경 공항을 벗어난 버스 안에서 인원관리에 대한 조치를 각자 확인 하였다.
한국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강박사님과 최주사, 그리고 가이드의 전화번호를 사방에 알렸다.
가족, 딸, 순창군청, 여행사, 공항경비대 등
그리고 수시로 상호 전화를 하여 그 내용을 모두에게 전하였다.
버스 안은 가이드의 안내방송 소리가 계속되었지만 모두의 얼굴은 그저 한국의 상황을 기다리는 숙연함으로 가라앉아 있는 듯하였다.
이 무슨 어이없는 모습들이란 말인가.
즐겁게 공부하고 갈 것이란 여행이 침체된 착잡함으로 가득하니..
제발 아무 사고 없이 찾았다는 소식만을 고대하고 또 고대하고 있었다.
12시 10분경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가이드의 목소리는 모두를 환호하게 하였다.
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딸이 모시러 가고 있다고 한다.
이제 됐다.
모두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새로운 마음으로 현실에 임하여 줄 것을 당부하였다.
3. 아시가쿠보 과수농원
5월 6일(목) 사이타마현
아시가쿠보역은 일본 사이타마현 치치부군 요코제정에 있는 세이부철도 세이부치치부선의 철도역으로 과수원을 이용하여 관광 농업을 하는 과수공원촌을 형성
계절별, 연 중 각종 과일의 생산 및 수확, 각종 체험이 가능하도록 운영
아시가쿠보 과수농원을 향해 달렸다.
길가로 마당을 가진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조용한 마을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집이나 상점들은 거의가 단층이고 조그마하였다.
일원의 실종으로 침체되어 오후2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있었다.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멈춰 서더니 도무지 출발할 줄을 모른다.
2Km전방에 겹사꾸라 공원이 있어서란다.
약 30분정도의 지체 구간을 벗어나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시골길 옆으로 잘 가꾸어진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의 마을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3시가 다되어 있었다.
마을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마을 건너편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은 기차역과 맞닿은 넓은 주차장, 농산물 판매장과 체험장 그리고 식당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식당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일본에서의 첫 식사였다.
‘아 일본 음식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먹고 나니 의외로 배가 부르다.
식사를 마치고 소바를 만드는 체험을 하기로 계획 되었으나 여건이 좋지를 않아 식당 앞에 모여 앉아 과수농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하여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아시가쿠보 과수농원은 3년의 준비기간과 3년의 운영 총 6년의 역사를 가진 지역으로 년 매출이 3억5천만 엔이라 하였다. 월 최고 350만 엔이 되는 가구도 있단다.
본인의 노력 정도에 따라 성공이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수농원은 총 40명이 근무하며 99%가 지역민이란다. 정식 사원은 6명이고 기타인원은 일용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포도, 사과, 딸기가 주로 생산되는 10만㎡의 농지로 형성되어 있고, 시골의 휴게장소로서 주차장, 식당, 체험장 등으로 구성되어 공동사용으로 도자기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과 소바, 우동, 빵 등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4~5월이 가장 매출이 많아 년 매출액의 3분의1을 차지한단다.
주차장은 현으로부터 약 5억 엔을 지원받고 건물 4동 등 6억 엔 정도의 예산은 마을의 예산으로 시골정서에 맞춰 나무로 건축하였다고 한다.
시설과 설비는 촌장이 사장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이며 체험, 판매 등의 수수료를 받아 운영한다.
판매하는 농산물의 가격이나 아침 시간의 농산물 전시 그리고 저녁의 회수 등은 모두가 생산자가 직접 결정하고 시행한다.
회사는 지역 활성화가 목적이므로 이익은 추구하지 않으며 지역생산품 판매 및 가공의 업무를 담당하여 농가의 소득과 도시민의 유치에 최선을 다한다.
2,500가구 중 농가는 50가구이며 그 중 전업농가는 10여 가구에 불과하다.
뒤편에 기차역이 소재하여 차와 기차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서 년 간 85만 명의 방문객이 있다고 한다.
지역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민 자신이 프로의식을 갖고 생산 농산물 질의 향상과 양의 생산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수제품 등의 제작에도 지극한 정성으로 임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오는 길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늦은 시간 호텔에 도착하였다.
각자의 방에 짐을 놓고 일본의 밤거리를 구경하며 후련한 마음으로 술 한 잔을 하였다.
일본의 번화가 상점에서 순창 고추장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한 컷.
피곤하고 무거웠던 출발을 시원한 맥주한잔으로 날리고 내일의 새로움을 기대하며 일본의 첫날밤을 잠재웠다.
道の驛
果樹公園あしがくぼ
橫瀨町役場産業建設銃括
課長 石橋典夫
368-0072 埼玉縣 秩父郡 橫瀨町 大字橫瀨 4545番地
TEL 0494(25)0114 FAX0494(23)9349
E-mail 154@town.yokoze.saitama.jp
道の驛
(有)果樹公園あしがくぼ
支配人 加藤薰一
368-0071 埼玉縣 秩父郡 橫瀨町 大字芦ケ久保 1915-6番地
TEL 0494(21)0299 FAX0494(21)0300
4. 오미야 분재마을
5월 6일(목)사이타마현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 가운데 하나인 분재를 관광자원으로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축제를 운영
지역의 특화된 자원을 돋보이도록 해주는 거점시설이자 문화진흥의 핵이 되는 시설인 오미야 분재미술관 운영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 50분 토부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9시가 넘어 도심 주택가 도로변에 주차되었다.
60대 초반정도의 작은 몸집에 앞치마를 두른 차분해 보이는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다.
고즈녁한 주택가의 골목 도로를 따라 두어 블록 지나자 약 100평 정도의 마당 가득 분재가 차있는 가정집이 낮은 울타리를 넘어 보였다.
마당에 들어와 분재를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관람료를 받는 분재집도 있으나 자신의 집은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며 친절을 베풀었다.
일본의 기온은 최저 -2℃이며 공기 중의 수분이 많아 식물별로 물주기가 다르지만 1일 2회 정도 물주기를 하며 물을 많이 주어 죽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관동대지진 당시 분재 전문가 몇 명이 이 마을에 자리를 잡아 분재마을로 형성되게 되었는데, 1931년경 5가구의 분재집이 있었다 한다.
현재 자신의 마당에는 1,500여개의 분재가 전시되어있고 마을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한 분재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3,4,5월 달에 거리에 내놓아 진열한 것이 발전하여 분재축제가 되었다고 한다.
축제 기간에는 전국각지의 멋진 분재들이 와서 함께 전시되며, 방문객은 약 3~4만 명이 오는데 주로 관동사람들이라 한다.
축제기간 중에는 공간이 좁아 주차문제가 심각하여 방문객들은 인근마을에 주차하고 전철을 이용하여 방문하는 방법을 택한다고 한다.
방문객이 많아지자 지역 주민들이 야시장을 운영하고 각 가정에서 도시락 등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여 적은 소득을 올리기도 한단다.
분재의 판매는 소비자가 제시한 가격에 맞는 물건을 선택하여 판매하지만 흙은 가져가지 못한다.
축제 비용 일부로 약 250만 엔 정도를 행정기관에서 지원을 받는데 도로사용 등 일반적 관리비로 사용되어진다고 한다.
보리분제 등 들풀 분재도 있으며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을 화분에 예쁘게 기르며 관리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꾸미어 기쁨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5. 미토 후루사토 농장
5월 7일(금) 이바라키현
일본의 시민농장(주말농장)을 통한 도시농업정책의 이해
도시민을 대상으로 하여 농업의 즐거움 및 매력을 알리고 지역(도농)교류 및 농업 농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실천사례파악
도시민들 대상의 시설 및 체험 운영사례 및 실천정략 파악
한적한 시골길을 달렸다.
시골의 농로로 접어들자 자그마한 주차장이 나오고, 번호표가 붙은 말뚝을 박아놓은 밭들이 잘 정돈되어 있다.
작업복을 입은 50대의 아저씨를 따라 넓직한 목조건물의 준비된 교육장에 들어섰다.
미토 후루사토 농장은 미토시의 소유로서 농정과 공무원들이 운영하고 있다.
농장에는 나까무라 소장과 2인의 농업지도사가 있으며, 지도사의 2인 중 1인은 교대로 상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운영비는 시에서 지원하고 수익은 미토시의 수입으로 관리된다.
모든 자산이 시의 소유인만큼 이익추구시설이 아니라 농업의 즐거움을 알리고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농업정책의 일환 시설이라 한다.
각 농작물의 재배방법 수확 등의 농업교육 및 체험 등 도.농간의 거리를 좁히는 여러 가지 모임과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과 농업 그리고 수확의 기쁨과 휴식의 소중함 등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중 ‘수확제’라는 행사를 열어 낙엽을 모아 퇴비를 생산하고 내년의 농사에 사용하는 것은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하여 시청 홍보지, 지역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하여 다양하게 홍보하여 연차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농장을 둘러보며 도.농간의 보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손을 흔드는 안내인들을 뒤로하고 급히 승차하였다.
水戶市役所
産業經濟部 農政課
副參事 高野和男
310-8610 水戶市 中央1丁 目4番1号
TEL 029-224-1111 內線 525
FAX 029-233-5322
6. 타쿠미노사토 농산물직판소
5월 7일(금) 군마현
농산물 유통구조 현황파악
직판소의 판매실적 및 추진체계의 이해
시설의 운영 및 운영의 실제 지역공헌 파악
버스가 달리는 동안 내내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꼬불꼬불 시골길을 돌고 돌아 오후 5시가 넘어 도착한 곳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골마을이었다.
잘 정돈된 농촌마을이다.
비는 치덕치덕 내리고 있고 늦은 시간이라서 관리인과 종업원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쿠미노사토 농산물 직판소는 1996년도에 건립되었고 년 간 45만 명이 방문한다고 한다.
년 매출액은 8,000만 엔에 이르고 오이, 토마토, 사과, 버섯 등의 농산물과 떡, 매실 장아치, 요구르트 등의 농산품을 판매하고 있다.
회원으로 350가구가 등록되어 있고 년 간 300만 엔의 소득을 올리는 가구도 있으며, 50~100만 엔의 소득 가구가 가장 많다고 한다.
대부분이 소량판매이며 야채 61가구, 과일 31가구, 콩팥 등 19가구, 젓갈이나 곡류 11가구, 버섯 15가구, 가공품 12가구, 꽃 등 원예 15가구, 수제 공예품 9가구라며 소상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많은 견학 방문객이 있었던가 보다.
관리 방식은 아시가쿠보의 과수농원의 농산물판매장처럼 아침에 생산자가 가져와서 전시하고 직접 바코드를 붙인다고 한다.
판매 수익금은 매월 정산하여 분배하고, 판매 수수료는 15%를 적용하며, 등록회원은 1년에 1000엔의 등록비를 거출한다.
운영은 마을로부터 위탁받은 공사에서 운영하고, 수수료로 직원 임금으로 지불되어 이익은 거의 없으며, 이익금의 일부는 농산물의 시험재배에 지원한다.
평일과 주말의 방문객 격차가 커서 평일은 주말의 20%정도 판매되고 있다.
평일에는 학생들의 체험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체험관은 철저한 준비로 개인의 공간에서 각자 운영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적설량이 많아 판매 농산물의 생산이 적으며, 고령화 현상으로 갈수록 채소들의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단다.
이러한 시골에도 방문객이 많고 농산물이 판매되는 것은 시골에서 생산되는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것과 시골다움이 가장 큰 이유라 한다.
그리하여 보다 더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려 노력하고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죽 등의 시설에 총 10억 엔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70%의 정부융자를 받고 나머지는 마을에서 투자하였다.
마을공동자금 2억 엔을 출자하여 주민들로 구성된 공사를 조직하였으며, 소바 생산이나 농산물 판매는 공사에서 담당하고 있다.
1일 사용료 6,000원을 받는 자전거 100대를 보유하고 있어 한적하고 잘 정돈된 아름다운 시골마을을 여유롭게 즐길 수도 있다.
근무자의 퇴근시간이 되어 17시 50분에 마을 떠났다.
하이얀 눈이 덮인 산을 멀리 보며 다쿠미노사토 농산물 직판장으로부터 20여분 거리에 있다는 민박집을 향했다.
아름다운 호수를 돌고 돌아 좁은 길을 조심조심 힘겹게 들어가 주차를 하고 들어간 곳은 민박집이 아니라 일본 전통여관이었다.
한국인이 채류하게 된 것은 처음이라 한다.
여관에는 우리 일행 외에 다른 손님이 없어 마치 전세를 낸 상황이 되었다.
일본 전통의 방식으로 4명의 보살핌을 받으며 근사한 저녁식사를 하였다.
여관의 목욕탕과 노천탕에서 피로를 풀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모두 꺼내게 하여 나누어 먹으며 바쁜 일정의 마무리를 한껏 여유롭게 누렸다.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살펴보지 못한 다쿠미노사토의 체험장은 ‘명인마을 만들기’라는 우리 강천산 권역의 슬로건에 맞게 가장 보고 배울 것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어 가이드에게 재방문을 청하였다.
5월 8일 09시 재방문하여 판매장을 들르니 주민들이 나와 자신의 농산물을 차분하게 진열하며 판매를 준비하고 있었다.
판매장을 나와 마을 중앙의 곧게 뚫린 길을 따라 담이 없는 집들을 기웃거리며 들어갔다.
길가로는 좁다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길 좌우로는 온갖 색깔의 꽃들이 그 자태를 마음껏 자랑하고 있다.
작은 어느 공간에도 손이 닿아 꾸며져 놀라울 정도로 그림같이 정돈되어있다.
2평 정도의 철사공예 공방이 있다.
아주 작은 철사공예 작품이 벽과 진열장에 전시되어있다.
가격표를 보니 엄청 고가인 작품들이다. 기타, 드럼 등 연주자 샡, 자전거 등의 가는 철사로 만든 아주 작은 작품들을 고가에 판매하고, 제작하는 것을 보여주고, 체험도 할 수 있는 공방이라 한다.
그림그리기 체험장이 있다.
3평정도의 체험장과 3평 정도의 작품 전시와 차를 마시며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다.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체험은 성냥갑에 그림그리기 체험 색칠공부 등 언제든지 누구든지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있다.
체험장은 마을 곳곳의 자기 집에서 작은 공방으로 운영하며, 체험장에서 식사나 차도 판매하고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기도 하여 소득을 올리고 시골마을에서 자신의 주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잘 정돈되고 아름다운 꽃과 장식품들로 거리를 꾸며 걷는 동안 내내 상쾌한 기분으로 여유로웠다.
다시 오기를 참 잘 했다고 생각하였다.
7. 전원프라자 카와바
5월 8일(토) 군마현
일본에서 지역의 거점 공간이자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미치노에기의 운영
지역의 농산물 판매 및 경영전략 실천
도예체험장. 전문가를 통해 배우는 도예교실
작품수별 시간별 코스를 마련하여 체험비를 책정 예약제 운영
카와바는 고속도로 중간에 휴게소 공간이다.
농촌의 고령화 및 이주주민 증가로 마을사업 필요성을 자각한 마을 리더들의 계획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떨어진 도로변에 집중하여 시설을 한 대형 휴게 공간이었다.
마을로부터 임대받아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체험장, 숙박시설, 식당, 판매장 등의 수익사업장이다.
맥주, 빵, 요구루트 등의 가공품들은 처음에는 판매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인근 현과 자매결연을 맺어 전매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안전한 농산물, 안심되는 먹거리로 성공하였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건강한 농업이 건강한 농촌을 만든다는 슬로건으로 사업을 운영한다.
아름다운 고장이 많은 도시민 방문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모든 사업의 기본을 아름다운 농촌에 두고 있다고 한다.
골프장 사업의 제안이 있었으나 농촌의 오염 등 아름다운 농촌에 맞지 않아 거절하였다고 한다.
농산물 판매는 하루 판매량을 미리 예측하여 전시하고 여느 곳과 같이 가격결정 및 잔여 농산물의 수거 등은 농민이 직접 한다고 한다.
판매장은 수수료로 운영되고 체험장은 도자기, 색칠하기 등을 상설 운영한다.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각오로 농촌다움을 강조한 대형 식당 또한 경쟁력을 갖춘 사업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넓은 휴식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맞이하고 누릴 수 있도록 내.외적인 준비가 잘 되어있는 사업처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KAWABA
株式會社 田園プラザ川場
管理部長 松井淸一
マツイ セイイチ
378-0111 群馬縣利根郡川場村大字萩室385
TEL0278-52-3711 FAX0278-52-3713
Email info@denenplaza.co.jp
http://www.denenplaza.co.jp
http://www.store.shopping.yahoo.co.jp/denenplazakawaba/
8. 쌀 박물관(고항뮤지엄)
5월 8일 16:00 도교도
우리 농산물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 및 고객의 눈높이 에 맞춘 홍보전략
태마공간의 운영
농산물 소비확대 및 식생활개선을 위한 시설 및 프로그램 운영
쌀 박물관이라는 이름이어서 넓은 공간에 쌀과 관련된 무엇을 볼 수 있을 것인지 기대를 가지고 도착한 곳이다.
그러나 박물관은 도쿄 도심의 번화가 건물 중의 일부를 꾸며 쌀 가공품을 전시, 판매하는 곳이었다.
번화한 도심 속에서 흙과 농사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고 그 농산물을 가공하여 만든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농촌과 농업의 이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각종 농산물의 생육 및 생태, 농산물의 영양 및 효능, 각종 요리방법, 식생활 습관 교육교재를 비치하고 보급하고 있다.
작은 공방에서는 농촌에서 생산되는 여러 가지 재료 각 종 나무 조각들을 붙여 모양을 만드는 체험, 색종이 오려 붙이기 체험방이 운영되고 있다.
쌀 박물관은 도심 속의 시골, 농산물의 도시적인 변신 등을 시도하고, 도시인들의 농촌으로의 친근감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문을 나섰다.
9. 오오에도 온센 온천체험
도심 속에 위치한 온천 태마파크 오오에도 온센 온천체험
여러 태마(에도시대모습을 재연)를 이용하여 만든 온천 체험장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 열쇠와 유가타 입는 방법과 온천을 소개하는 리플랫을 받아들고 여러 가지 문양을 한 유카타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탈의실로 들어섰다.
탈의실은 우리나라와 다름없었다.
유카타로 갈아입고 안으로 들어서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넓은 홀이 나왔다.
홀은 약 300평 정도였고 온갖 공예품과 먹을거리를 시끌벅적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안쪽 깊숙이에는 대형 식당이 있고 더 들어가 기웃거리니 식사하며 즐길 수 있는 공연장이 마련되어있다.
참으로 돈쓰기 좋은 곳이라 보였다.
내부는 한국의 목욕탕과 다름없어 편안한 목욕을 즐겼다.
더위를 못 참고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뽀송하게 말려 준다.
아파호텔에 들었다. 일본의 마지막 밤이다.
저녁 식사 때 남긴 일본소주를 한잔 할 참이다.
내일 귀국할 것을 생각하니 다시 김경진 어르신의 모습이 슬그머니 떠오른다.
최주사의 방에 들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몹시 피곤한 얼굴이다.
사무장에게 남은 라면과 음식들을 각 방에 돌리고 맥주도 한 병씩 사주라 이르고 왔다.
장안마을 이장님은 나와 같은 방을 쓰는데 한국 소주도 다 먹고 없어 심심한가보다.
무료하게 다른 방을 기웃거리며 서성이는 위원들과 한잔 기울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술을 좋아하는 위원들을 우리 방으로 불렀다.
한국과 일본 이야기이며, 견학코스, 체험, 축제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12시를 넘겼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 은근이 오른 술에 잠이 들었다.
10. 귀국
아침에 일어나 인근의 일본 천황이 살고 있다는 황거에 들르기로 하였다.
버스 속에서 가이드는 일본이 우리역사에 남긴 상처를 되새기며 아픈 가슴을 토로하였다.
마이크를 받아들고 우리와 일본의 왜곡된 역사를 설명하였으나 고정된 응어리가 쉬이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황거에 도착하였다.
가이드는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나열하고 있다.
넓은 광장에 정돈된 나무와 잔디들은 실로 거대한 분재원 같았다.
어느 것 하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우리 민족의 후예이기를 거부하고 우위에 서고자 그토록 한 나라의 주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대륙과 인류를 향해 전쟁을 일으키고 온갖 자행을 일삼은 사람들이 바다에 둘러싸여 벗어나지 못하고 안으로만 가꾸고 만들어 온 나라. 일본.
그 정신적 지주가 기거하고 있는 곳
언제 쯤 역사를 인정하고 우리와 함께 평화를 찾을 수 있을 런지...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같이 오지 못한 위원들에게 줄 선물도 샀다.
12시 55분발 KE 702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기내식은 맛이 없다.
오후 3시 35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였다.
따라온 가이드를 보내고 대기하고 있는 순창행 버스를 탔다.
모두들 조용하다.
귀국하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 하여야 할 일들이 머리에 가득한가 보다.
출발할 때 들렀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모두 견학 중 기록하였던 자료들을 꺼내 들고 견학 소감발표를 하기로 하였다.
말재주가 없다며 어색해하던 위원들도 마이크를 쥐어 주자 방문하였던 곳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느꼈던 점들과 자신이 하여야 할 일들을 차분하게 발표하였다.
참으로 보람찬 견학일정이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강천산권역에 잘 적용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버스는 어느덧 탄천휴게소에 닿았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모두 함께 이목마을에 들러 같이 가지 못하였던 김00 어르신과 그의 가족들을 위로하기로 하였다.
이목마을의 김00 어르신의 집에 이르자 어르신은 아직 서울에서 오지 않았고 아주머니만 계셨다.
아주머니는 어르신이 예전에 사고로 머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화장실에 갔다가 병실을 찾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요즘 들어서 부쩍 그런 일들이 잦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마을의 원로 어르신의 상태를 출발하기 전에 책임자나 주변에 알리어 미리 대비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여러 사람들이 많은 어려움을 격고서야 알게 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별 탈이 없이 오게 되었음을 서로 위로하며 각 마을로 흩어져 돌아갔다.
우여 곡절과 함께한 뿌듯한 여행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알게 하였고, 내가 우리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공부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해외에서 공부하는 동안 마을을 지키고 우리의 안녕을 기원한 이경희 위원이 타준 차를 한잔하면서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이 여행을 마무리하기까지 마음 졸여 살피고 준비하여 준 순창군의 농촌관광과장, 하성길계장, 그 외 관계자들과 우리 권역 주민들과 위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010년 5월 14일
해외 선진지 견학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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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사히 즐겁고 유익한 견학이 되었군요...수고 많으셨습니다.고향발전에 밑거름이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