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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사도행전 2장 17절)
지금 때는 신령과 진리로 나가야 될 때야. 원리강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야. 영계를 주관할 수 있어야 돼.(중략) 그러기 때문에 내가 천심원을 세계적으로 분원까지 세운거야. 신령과 진리야.(중략) 식구들이 영적인 많은 문제점이 있어. 중심영 해원으로 인해서 새롭게 부활되고 희망을 갖게 되는 2세들 1세들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영계를 주관해야 돼. 그래야만 악령이 다 물러나서 교육받아서 선한영이 되면 그게 지상천국 천상천국이 되는 것이잖아. (참말23.3.29)
가. “신령과 진리로”라는 말씀을 잘받기
평화대사 한 분이 교회에도 안 다니면서 천보효정 특별 수련회에 ‘참석한다는 절대선령의 120만~210만 명의 점심 도시락’을
어떻게 준비해주실 수 있었을까? 그런데 세상적으로 보면 황당하거나, 미친 것이지만
만약에 그것이 실체라면 살아 생전에 돌아가신 분들을, 조상님들을 한 분도 아니고 120만~ 210만 명이 넘는 분을
대접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최고의 영광 중의 영광입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가정연합의 요체는 신령과 진리가 본질이다. 가정연합의 공동체가 튼실해지고 그 뛰어난 인적 자원이 전도가 될 때는
신령과 진리가 충만했을 때다. 그러니 축복가정 공동체가 성장*성숙하고 발전하는 결실의 원동력은, 그 진액은 신령과 진리다.
왜냐하면 신령과 진리의 근본 뿌리는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축복가정 공동체의 중심이 확실하게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으로
온전히 생활과 삶으로 정렬된 상태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손기술만 늘어도 찾을 수 있는 진리를 아는 것으로,
나는 우리는 신앙을 한다고, 믿음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만성이 되어서 그런지 지적 동의가 곧 믿음의 실체로 착각하게 된 것이 허다하게 되었다.
믿음은 하늘부모님을 아는 영역의 기억이 아닌 아는 것을 넘어서 “행함”을 통해 하늘부모님을 참부모님을 경험하는 능력이자
간절한 소망이다. 그러니 믿음은 과거에서 현재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서 하늘부모님을 아는 바가 “행함”을 통해서
순종이라는 결실로 나타날 때 입증되고 증명되는 것이다.
순종을 통해서 확증된 지적 영역을 갖게 되면 절대복종은 자동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입증되고 증명된 믿음은 자기 생각이 아닌 하늘부모님이 바라심의 뜻이 나를 통해서 과감없이 관철되고 실체화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믿음의 기대는 실체기대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영역에는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받는 것이 당연히 포함된 것이다.
그러니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받는 구약시대의 신앙차원보다고 신약시대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됨이 보다 성숙된 것이다. 그렇다면 모심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성약의 차원은 훨씬 더 그 차원이
원숙해져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성약시대를 지나 천일국 하늘부모님의 성회시대라면 어떠해야 되겠는가?
요즘 하늘부모님에 대한 일부 “지”를 갖고 순종으로 가는 믿음의 영역이 없이 “그 일부를 아는 것”이 마치 믿음인 것으로
착각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추억 속의 믿음’, ‘기억 속의 믿음’, ‘암기된 믿음’이다. 이런 믿음은 그 뿌리가 심약하다.
조금만 논리를 갖고 소리치면 흔들리고, 주변에 뭐라고 하면 쉽게 휘말리며,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을 만나면
굉장히 부러워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하나님을 만나며 사는 사람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다.
절대진리를 알고 메시아 참부모을 모신다는 내가 우리가 심히 부끄럽게도 이러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믿음이 증명되지 않으면, 믿음이 실체 기대의 기반이 못 되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령을 감득하여 진리라는 말씀이 나의 우리의 실체 빛으로 나타나면, 신령과 진리가 내 삶의 현장에서
오늘 이 순간에 펼쳐지면 신이 나는 것이다. 나를 통해 우리를 통해서 하늘부모님의 신이 참부모님의 신이
신나게 나타나는 것이다.
나. “신령과 진리로”라는 말씀의 믿음화
오늘 본문 성경말씀은 사도행전 2장 17절의 말씀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의 성령 강림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며
예언*환상*꿈 같은 것들은 구약에서는 일부 사람들에게 극히 제한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고서는 그것들이 주를 믿는자 모두에게 나타날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것이 말세 때에는 특히나 더 강력하게 나타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메시아 참부모님의 현현과 더불어 통일가는 초장기에는 그야말로 신령과 진리가 아주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축복공동체는 세상적인 것과는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자신의 가족보다도 뜻적인 식구 공동체가 훨씬 더 가족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약시대를 넘고 하늘부모님 성회 아래 천일국 안착 시대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교회 현장은 굉장히 삭막한 이성적인 논리가 진리의 옷을 입고 그것이 믿음의 본질인 것처럼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즉 삶의 자리에서 생활의 영역에서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의 영이 중심에서 빠진
말씀의 지식으로 NGO화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님께서는 지난 3월 29일 천일국 지도자(기관장)특별 집회에서 천원궁 천일성전 봉헌을 앞두고 “지금 때는 신령과 진리로 나가야 될 때야. 원리강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야. 영계를 주관할 수 있어야 돼.”라고 말씀하시면서
사실상 신령적 측면이 생동감 있게 살아나야 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신령이 뭐길래? 그토록 강조하시며 중요시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진리)으로 예배할 지니라"(요4:24)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우물가에서 물을 길르러 온 여인과 나눈 대화 중에 참된 예배 관해 말씀해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난해한 것이 ‘신령’이다. 왜냐하면 “령”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루아흐', 헬라어로는 '프뉴마'라는 말로서, 문자적으로는 '바람' 또는 '숨(호흡)'으로 해석된다.
그러니 그 뜻은 생명, 또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창세기 1장 27절의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고 하셨기에 “영”은 거룩한 생기, 생명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단순히 ‘신령’은 거룩한 마음의 자세나 경건한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온) 생명을 받은 사람으로서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원리적으로 보면 명확하게 하늘부모님을 중심하고
마음과 몸이 잘주고 잘받아 합성 일체화 되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신령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하늘부모님으로부터”가 없이는 “하늘부모님을 중심하고”가 없이는 신령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부모님의 찾아오심이 양심으로, 영감으로, 심정으로, 지혜로 나타날 때 즉각적으로 그에 따라 “행함”이 진행될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령은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하늘부모님을 중심한 “행함”으로 나타나게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임하심이 ‘생기가 되고 생명력’이 되게 하는 매개 역할을 누가 하느냐?
물론 온전한 심령의 수준이라면 하늘부모님께서 직접하시는 것이 원칙일 것입니다. 하지만 통일원리 전반을 살펴볼 때
심령의 정도에 따라서 천사나 선령들이 그 매개 역할을 한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님께선 시대적 혜택은
온 천하가 누릴 수 있게 하셨으면서도 하늘부모님과의 심정관계만큼은 축복가정들이
섭리에 동참하면서 세운 조건들을 가지고 상속받게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그 승리권으로 주신 것이 조상들의 해원축복이며, 선령당에서 효정원으로,
소원성취서에서 효정봉헌서로, 정심원에서 천심원으로 그것을 교회까지 상속해주신 것이다.
즉 신령을 보다 빠르게 보다 정확히 보다 깊숙이 보다 원숙하게 감득할 수 있는 것을 섭리적인 동참의 조건으로
그 승리권을 축복해주신 것입니다.
현재 천보가정이 세운 430대 조상해원축복을 하면 6,880명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이 조상해원 축복된 절대선령 조상님들 가정은 완성된 영인체가 아닙니다. 재림협조를 통해서 완성해야될 영인체다.
지상인이 신령을 감득하는데 매개 역할을 통해서 지상인의 영인체에서 성장성숙의 협조하여 완성 영인체로 나가는 것이다.
만약에 이분들의 협조권을 주관할 수 있고 동원할 수 있다면 천보가정이 20가정이 넘으면 단순하게 12만명,
200가정이면 120만명, 300가정이면 200만 명에 달하는 절대선영을 주관하고 동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교구라면 축복가정이 조상해원축복을 한 것을 합하면
적어도 120만에서 210만명의 절대선영 주관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축복가정님들은 신종메님들은 심지어는 천보가정님들은 이것을 주관하거나 활용하거나 협조권으로
생활의 영역에서 삶의 자리에서 입체적으로 신령의 계발과 신령의 감득으로 결과로
이 엄청난 축복을 결실하지 못하고
섭리에 동참하는 조건을 세우는 책임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그러니 심령은 계발되지 못한 채 책임이라는 일에만 매달린 것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이런 축복가정의 현실을 보고
“식구들이 영적인 많은 문제점이 있어. 중심영 해원으로 인해서 새롭게 부활되고,
희망을 갖게 되는 2세들 1세들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영계를 주관해야 돼.”라고
재차 강조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령과 진리로라는 이 말씀에는 특히 신령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로 영계 주관권이
축복가정, 신종메, 천보가정의 특권으로 구현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 “신령과 진리로”라는 말씀의 실체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이 참부모님께서 지금 주신 복음 중의 복음이요 축복 중의 축복의 말씀이라면
평화대사 한 분이 절대선령 조상님들 120만명~210만명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영광중의 영광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체로 만들어내는 것은 오직 믿음의 영역입니다.
그분이 자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령과 진로로 예배를 드리고자 21일간 매일 경배 21배 정성을 축복공동체가 모두가 드리면서
21수를 실체로 찾고자 효정천보특별수련 예배를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선령들이 함께 하는 예배, 참부모님의 영이 실체로 임하는 예배, 4대성인 함께 오셔서 드리는
예배가 되는 특별수련 예배가 되게 하는 것은 준비 단계부터 절대선령 조상님들이 오신다는 것을 입증하는
믿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특별수련 예배가 신령과 진리로 충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선령 한 분이 현금 1원 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절대믿음을 갖고 현실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이 사실을 그대로 평화대사 한 분에게 믿음으로 전한 것입니다.
“120만명~210만명에 조상들을 모시고
400명의 축복가정들이 특별수련 예배를 드리는데 이날 점심 도시락을 기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점심도시락은 최소한 200만원이 들어가는데 협찬을 해주시겠습니까?”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황당하게 바라보더니, 축복가정 400명의 점심 도시락이라는 그 말씀에
그럼 그래야죠”라고 즉석에 확답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이날 120만명~210명만명의 절대선영이 임하는 것을 보시기라도 한 듯이 그자리에서
그 바쁜 점심 시간일터인데 ‘계룡시장님, 공주대학교총장님, 전국회의님’을 직접 전화해서 그 점심 도시락을
협찬을 요청한 목사님을 그분들에게 일일이 자랑스럽게 소개하며 직접 통화까지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다음날 200만원을 입금해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다 방계 해원을 하라고
협찬한 한 분이 있어서 협찬 총액이 212만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효정천보특별수련 예배 때 절대전선령 한 분이 현금 1원을 만들었다고 믿는다면
이날 210만 명의 절대선령이 함께 했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날 효정천보특별수련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봉헌 된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특별수련 예배를 봉헌하고서 참아버님,이요한목사님이 오셨다고,관절통,요통,두통이 치유되는
신앙을 떠나는 자녀가 돌아온다는 음성을 들었다고
보고하는 은혜의 간증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라. “신령과 진리로”라는 말씀의 촉구화
이제 축복가정이, 신종메가, 천보가정이 참부모님의 주신 축복에 따라
절대선령들을 주관하고 활용하며 협조케 하는 그래서 영계를 주관하는 생활로
신령을 감득하고 말씀이 실체되는 빛나는 삶이 되었으면 참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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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