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大法炬陁羅尼經 法師弘護品 第五十二
52. 법사홍호품(法師弘護品)
「阿難,爾時,放光如來應供正遍覺告天帝釋言:
憍尸迦,我說如是方便譬喩,汝能知耶?
憍尸迦,是故應先知此語言,爲是十四菩薩摩訶薩,
何以故?是等先生此諸天中.以何義故,發如是願?顯示此等無懈怠故.
以是因緣,捨身卽生阿修羅宮.爲斯義故,於少分中,尚不能知,況復於此三教業藏,
能聽受也?
아난아, 그 때에 방광 여래․응공․정변각은 하늘 제석에게 말씀하셨느니라.
‘교시가야, 내가 해설하는 이와 같은 방편과 비유를 너는 능히 알 수 있겠느냐?
교시가야, 이는 마땅히 먼저 이 열네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들은 먼저 이 여러 하늘 가운데 태어나서
무슨 연유인지 이와 같은 서원을 세워서
게으름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였기 때문이니라.
이런 인연으로 몸을 버리고 곧 아수라 궁전에 태어나서 이 이치를 위했지만
조금도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다시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을 청취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復次,憍尸迦,今此無量無邊大衆在是山頂忉利天宮,汝爲久居.
頗能得知住此衆生,其數幾何?
復能得知住是衆生依人閒數年歲幾 何?
復知是天衣服、飮食諸事幾何?
天帝釋言:
世尊,我已盡知.
또한 교시가야, 지금의 이 한량없고 가없는 대중은
이 산꼭대기의 도리천궁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었으니,
혹시 여기에 머무른 중생들의 수효가 얼마인지 알 수 있느냐?
또한 이 중생들이 인간의 연수(年數)에 의지한다면
얼마 동안 머무르는지 알 수 있느냐?
이 하늘의 의복과 음식의 갖가지 것들은 어느 정도인지 아느냐?’
하늘 제석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모두 아나이다.’
佛言:
憍尸迦,若人來問:今此大衆食調衆具,須功幾何?
彼問如是,汝云何答?
天帝釋言:
世尊,我無所報.何以故?
世尊,今我此處三十三天,凡是所須衣食衆具,隨念現前,非造作故.
佛言:
憍尸迦,一切諸法,亦復如是,皆住心中,隨所念時,卽得成就.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만일 어떤 사람이 묻길 ‘지금의 이 대중들이 조리하는
갖가지 음식은 얼마의 공을 들여야 하느냐?’라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하늘 제석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대답할 것이 없나이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지금 저의 이곳 삼십삼천에서
무릇 필요한 옷이나 음식 등 갖가지 것들은 생각하는 대로 현전하지만
조작(造作)이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모든 법 역시 그러해서 모두 마음속에 머무르며
염(念)하는 바에 따라 곧 성취되느니라.
憍尸迦,猶如卵生諸衆生等,但以心念,卽便受生一切諸法,亦復如是,皆由心念,
法卽現前.
憍尸迦,又如一切濕生之類,所謂魚鼈、黿虯、坻彌、宜羅,此等皆是卵生所攝,
此等或惟行一由旬,或二由旬,或至三四,或復過七,達彼地已,安處己卵,
不令疲乏,故能成熟.
교시가야, 마치 알에서 난[卵生] 모든 중생들은
다만 마음으로 생각하기만 하여도 곧 생을 받는 것[受生]처럼,
모든 법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아
법을 생각하면 곧 현전하느니라.
또 마치 온갖 습기에서 나는[濕生] 무리,
이른바 고기․자라․규룡[虬坻]․미의라(彌宜羅) 등은
모두 알을 까고 나는 것에 속하는데,
이것들은 혹은 일 유순(由旬)만을 가기도 하고 혹은 이 유순 혹은 삼․사 유순까지
이르기도 하며 혹은 다시 칠 유순까지 더 가기도 하는데,
그 땅에 도달한 뒤에는 제 알을 그곳에다 안전하게 두면서
잘못되지 않게 하기 때문에 잘 성숙시키는 것과 같으니라.
憍尸迦,此三教藏,亦復如是,隨憶念時,彼業現前,次第不亂,相續不斷,與彼句義,
和合相應.
교시가야, 이 세 가지 언교 업장도 그러해서 억념(憶念)에 따를 때
그 업이 현전하여 차례로 어지럽지 않고 상속하여 끊이지 않으면서
그 구의 뜻[句義]과 화합하며 상응하느니라.
復應當知我以何故,爲汝等說?
阿字門者,以板喩說故;迦字門者,以文字說故;
那字門者,以平等文字章句說故.如是說時,應共持此,更無有法,而可缺減,
然須知此四十二句,在於板上.
如是知已,彼諸法師處於大衆在法座上,將欲說時,法師於此三法門中,初念阿字,
現前相續,當應和合.旣和合已,卽應宣說四十二句,如是分別,得二百句,
還得十句,
또한 내가 무엇 때문에 너희들을 위하여 해설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아자문(阿字門)은 판자라는 비유로 설명하기 때문이요,
가자문(迦字門)은 문자(文字)로써 설명하기 때문이며,
나자군(那字門)은 평등한 문자 장구(文字章句)로써 설명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설명할 때에 마땅히 이것을 더불어 지니면서
다시는 어떤 법으로도 이지러지거나 줄어짐[缺減]이 없어야 하느니라.
그리고 모름지기 이 마흔두 구(句)는 판자 위에 있는 것임을 알이야 하며,
이와 같이 안 뒤에 저 모든 법사는 대중에 처하여
법좌(法座)에서 설법하려 할 적에 이 세 가지 법문 가운데서
처음에 아(阿) 자를 염(念)하여 현전해 상속시키면서 화합하게 하여야 하며,
이미 화합한 뒤에는 곧 마흔두 구를 널리 연설해야 하나니,
이와 같이 분별하면서 이백 구(句)를 얻고 다시 열 구를 얻느니라.
如初五分眷屬和合,得出五音而彼法師,以此五音,和合五句,諸眷屬已,
足一百句音聲圓滿,卽能分別,如是知故.
마치 처음의 오분(五分)의 권속이 화합하여 오음(五音)이 나오게 되는 것처럼,
저 법사는 이 오음으로 다섯 구(句)의 권속과 화합한 뒤에
족히 백 구의 음성이 원만하게 되나니,
즉각 능히 분별하면서 이와 같이 알기 때문이니라.
所有文字念欲現前,卽得現前,相續持已,如彼卽得具足音聲出生文句,
如是能說是中更無異聲可作,而彼法師依法,出生五音文句.
온갖 문자를 염(念)해서 현전하고자 하면 곧 현전하게 되고,
상속하여 지닌 뒤에는 저 음성을 두루 갖추어 문구(文句)를 나오게 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능히 해설하되 이 가운데서는 다시 다른 소리로 지을 만한 것이 없나니,
법사는 이 법에 의지하여 오음의 문구를 나오게 하느니라.
法師分別阿字文時,以大辯說空業成就,爲千數衆生,斷除疑惑.
若人問時,亦無悤迫,安詳來問譬喩解釋,而其先說大宮殿中百數義門,如是解釋,
令一切衆,皆生歡喜.
如佛世尊所集大衆,彼亦復爾,令得諸根,具巧便智,爲諸衆生,如是而說.
법사가 아 자의 글을 분별할 적에는 큰 변설(辯說)로 공의 업[空業]을 성취함으로써
천 수(數) 중생을 위하여 의혹을 끊어 없애며,
만일 어떤 사람이 물어도 서두르지 않고 찬찬하면서 정중하게 와서 묻는 이에게는
비유로 해석하면서 먼저 대궁전(大宮殿) 중의 백수의 이치 문[百數義門]으로
해설하나니라.
이와 같이 해석하여 온갖 대중으로 하여금 모두 기쁨을 내게 하는 것이
마치 부처님․세존께 모인 대중처럼 또한 모든(根)과 교묘한 방편의 지혜[方便智]를
갖추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해설하느니라.
復次,憍尸迦,汝當一心信受是法,如來應供正遍覺音聲言說方便譬喩解釋之處,
云何當念應須六年?作如是念:如所說法,當入禪定,思惟修行,旣修行已,
不復放逸,一心正念分別思惟,與此意合,六年方得具足圓滿,如那字門,亦以六年,
修種種念,眞正滿足.如是念已,卽得證知一切言音差別之事.
또한 교시가야, 너는 일심으로 이 법을 믿고 지녀야 하느니라.
여래․응공․정변각의 음성과 언설과 방편과 비유로 해석한 이치가
어찌하여 육 년이 지나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느니라;
‘말씀하신 법대로 선정(禪定)에 들어가 사유(思惟)하고 수행해야 하며,
이미 수행한 뒤에는 방일(放逸)하지 않고 일심의 정념9正念)으로 분별하여 사유하되,
이 뜻과 계합하는 데는 육 년이 되어야 비로소 구족하고 원만하게 되는 것이니,
마치 나자문(那字門)도 역시 육 년 동안 갖가지 생각을 닦음으로써
참되고 바르고 원만하여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나면 곧 온갖 언어와 음성[言音]의 차별된 일을
증득하여 알게 되느니라.
憍尸迦,此三句門,若善持已,無有人能知其邊際.
憍尸迦,諸佛如來所有言說方便譬喩解釋義門,若虛妄者,無有是處.
憍尸迦,譬如農人善營田作,先於異時,聚集農衆,而告之曰:
汝等諸人應作是言,我等從今,旣下種已,願莫生牙,勿成子實.
時,彼農衆咸相謂言:
嗚呼!我今願汝種子莫生莫成,亦無懶惰.
憍尸迦,於意云何?
彼諸種子善營事已,得不生耶?
不也,世尊.
得不?成耶?
不也,世尊.
교시가야, 이 세 가지 구의 문[三句門]을 만일 잘 지니고 나면,
어떠한 사람도 그의 경계를 알 수 없느니라.
교시가야, 모든 부처님․여래의 언설과 방편과 비유로 해석하는
이치의 문[義門]에 만일 허망한 것이 있다 하면 옳지 못하느니라.
교시가야, 비유하면 농사를 잘 짓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느 때 이들이 농사를 짓기 전에 모두 불러 놓고 말하기를
‘여러분은 [우리들은 지금부터 씨를 뿌린 뒤에는
싹이 나지도 열매 맺지도 않기를 원한다고 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그때 저 농사꾼들은 더불어 서로 말하기를[‘오호(嗚呼)라.
우리는 이제 당신의 종자가 싹도 나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으면서도
게으름도 없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교시가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모든 종자를 제대로 잘 뿌렸는데도 싹이 나지 않을 수 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열매가 맺지 않을 수도 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憍尸迦,是三法門,亦復如是,虛空所生無量義門,諸法次第名字具足.
假使或於無量時節,隱蔽不現,遂滅沒者,無有是處.
‘교시가야, 이 세 가지 법문도 역시 그러하여
허공에서 생긴 한량없는 이치의 문이라서
모든 법이 차례로 이름을 갖추고 있는 것이니,
가령 한량없는 시절 동안 숨겨지고 가려져서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도
사라져 없어지는 일은 있을 수조차 없느니라.
復次,憍尸迦,一切衆生若於善男子所,若如來所,聞此修多羅法門,或誦或說,
次第修行,轉相教授者,是諸衆生於此智門,他問難時,不可降伏,亦不默然.
何以故?此諸智業無量無邊,彼教授者,能爲無量無邊衆生,未曾聞者,咸令分別,
成就辯才,亦自成就故.
또한 교시가야, 온갖 중생이 선남자에게나 여래께 이 수다라 법문을 듣고
혹 외우기도 하고 해설하기도 하면서 차례로 수행하여 점차 서로 가르친다면,
이 중생들에게 이 지혜의 문[智門]에 대하여 다른 어려운 질문을 하더라도
항복시킬 수도 없고 침묵시킬 수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지혜의 업이 한량없고 가없기 때문이니,
저 가르쳐 준 이는 일찍이 듣지 못한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을 위하여
다 함께 분별하여 변재(辯才)를 성취하게 하며 또한 스스로도 성취하니라.
若人來問是法義時,我能於彼所問義處,闡揚分別,如是解說,如是辯答.
而彼復作如是思念:若有人來問我是義,我當相續,爲其解說,若有依如來教,
而發問者,我便於彼諸所疑處,分別解釋,亦爲當來一切衆生,得安樂故.
만일 사람이 와서 이 법의 이치를 묻는다면,
나는 그 물은 바의 이치를 널리 드러내고 분별해서 이와 같이 해설하고
이와 같이 대답하고, 그것에 대해 또한 생각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이런 이치를 물으면 당연히 상속하면서
그를 위하여 해설할 것이며, 만일 여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질문을 하는 이면
나는 곧 그의 모든 의심에 대하여 분별하면서 해석하리라’고 하나니,
또한 장차 오는 세상의 온갖 중생들이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若有人能念此法門,或時學習,或復修行,當知彼人不久成就.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법문을 능히 염(念)하면서 혹은 때로 배우고 익히며
혹은 다시 수행하거나 하면, 그 사람은 오래지 않아서 성취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憍尸迦,於是法中,非但彼諸非器衆生,於佛法中,不生信心,或有衆生,雖亦信心,
而復不能依教行者.
憍尸迦,非但世閒無說法師法卽消滅,若無聽法請問之人,當知是時,法亦不久.
何以故?世無問者,以無習學,無習學故, 則不能知,旣不能知,云何奉行?
不能行故,世皆盲冥,無導知者,如是無知,誰當作法?
若無法則世閒無有孝養父母,敬大愛小,長幼尊卑,使命慰勞,襃譽美言,世事咸盡,
誰能作者?
교시가야, 이 법에서는 비단 저 법의 그릇이 아닌[非器] 중생뿐만 아니라
부처님 법 가운데서 믿는 마음을 내지 않거나 비록 믿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가르침에 의지하여 행하지 못하는 이라면,
교시가야, 비단 세간에 설법하는 법사가 없어서 법이 즉각 소멸할 뿐만 아니라,
만약 법을 듣고 묻는 사람이 없으면 이때 법은
또한 오래가지 않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세간에 묻는 이가 없으면 익히고 배우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익히고 배우는 것이 없기 때문에 능히 알지 못하며,
이미 알지 못하거늘 어떻게 받들어 행하겠느냐?
능히 행하지 않기 때문에 세간은 모두 눈이 멀고 어두워서
인도할 줄 아는 이가 없으리니,
이와 같이 아는 이가 없거늘 누가 법을 짓게 되겠느냐?
만일 법이 없다면, 세간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봉양하는 일,
큰 사람을 공경하고 작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 어른과 어린이,
높은 이와 낮은 이, 명을 받들어 행하는 이를 위로하고 좋은 말로 칭찬하는 등의
일이 없으리니, 세간의 일이 모두 다해버렸거늘 그 누가 능히 짓겠느냐?
憍尸迦,若人不知世閒之法,云何當能分別論說世閒事義?
旣不言解,亦不能行,世善尚無,云何能學諸佛智慧?
是故一切世閒之事,不可休息.
교시가야, 만일 사람이 세간의 법을 모른다면
어떻게 능히 분별하면서 세간의 일과 이치를 논설하겠느냐?
이미 믿고 이해하지 않으며 또한 능히 행하지도 못하기에
세간의 선[世善]조차도 오히려 없거늘,
어떻게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배울 수 있겠느냐?
이 때문에 온갖 세간의 일은 잠시도 그치지 않느니라.
復次,憍尸迦,若諸法師欲講說時,當須四種莊嚴說處,何等爲四?
憍尸迦,時,說法師當先選擇如是方所,
其處寬博地形平正無有高下瓦石沙礫荊棘、惡刺,亦無穢草、蚊蝱、蛇蝎、
諸惡毒蟲,其地和美,柔軟淨妙,多有園池、花果、樹林,其處淸淨,遠離諠雜,
夏無盛暑,冬不祁寒,四衆雜居,竝皆安隱,法師聽者,咸受悅樂.
憍尸迦,是爲第一爲彼法師莊嚴說處.
또한 교시가야, 만일 모든 법사가 강설(講說)하려 할 적에는
모름지기 네 가지로 강설하는 처소[說處]를 장엄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교시가야,
때로 설법할 법사는 반드시 먼저 이와 같은 방소(方所)를 선택해야 하나니,
그 처소는 넓디넓고 땅의 형상으로 평평하고 반듯하며
높낮이나 기와조각․돌․모래․자갈․가시나무와 독한 가시들이 없고,
또한 더러운 풀이나 모기․등에․뱀․전갈 등의 모든 독한 벌레도 없으며,
땅은 온화하여 아름답고 부드러우면서 깨끗하고 미묘하며,
동산과 연못과 꽃과 열매와 나무숲이 많이 있으면서 청정하고 시끄럽지 않으며,
여름에는 너무 덥지도 않고 겨울에는 심하게 춥지도 않으며,
사중(四衆)이 섞여 살기에 더불어 안온한 곳이면,
법사나 듣는 이들이 다 함께 즐거움을 누리느니라.
교시가야,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저 법사가 강설하는 처소를 장엄하는 것이니라.
復次,憍尸迦,若諸法師欲講說時,其地方所有護法者,若聽法人,爲重法故,
應爲法師,施設莊嚴高闊法座,多取種種上妙蓐席,柔軟敷具,講時所須,皆置座上,
衆人觀睹增重法心,法師處之,安隱說法.
憍尸迦,是爲第二爲彼法師莊嚴說處.
또한 교시가야, 만일 모든 법사가 강설하려 할 적에는
그 땅의 방소에서 법을 수호하는 이나 법을 듣는 사람은 법을 존중하기 때문에
마땅히 법사를 위하여 높고 넓은 법좌(法座)를 장엄하게 시설하되
갖가지 훌륭한 깔개와 부드러운 방석 등 강설할 때 필요한 갖가지 것을
모두 자리 위에 많이 가져다 두어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법을 존중하는 마음이 더하고
법사는 거기에 처하면서 안온하게 설법하느니라.
교시가야,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저 법사가 강설하는 곳을 장엄하는 것이니라
復次,憍尸迦,若諸法師將說法時,彼護法人及聽法者,爲重法故,
應當至心精勤勇猛,守護法師,不得令彼諸惡衆生,毀壞誹謗,障㝵正法,
乃至勿令男子婦人童男童女,往來諠雜,妨亂法師.
憍尸迦,是爲第三爲彼法師莊嚴說處.
또한 교시가야, 만일 모든 법사가 설법하려 할 적에
그 법을 보호하는 사람과 법을 듣는 이는 법을 존중하기 때문에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용맹정진하며 법사를 수호해서
나쁜 중생들이 바른 법을 무너뜨리고 비빙하거나 장애가 되지 않게 하며,
나아가 남자․부인․동남․동녀로 하여금 왔다 갔다 하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법사를 방해하고 어지럽게 하지 말지니라.
교시가야,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저 법사를 위하여
강설하는 처소를 장엄하는 것이니라.
復次,憍尸迦,若諸法師正宣說時,彼護法人及聽法衆,爲敬法故,應選五人,
若十若多,恭謹知法,住法師後,觀察大衆,勿令妨亂,一取法師意旨教令,
如法施行匡正其衆,或時有人,語言亂衆,卽須問彼語言所,因如法禁止,
若人戲笑動止乖違,卽應窮詰訶責令斷,恒令大衆寂靜諸根,淸禁身口,如教而住,
然彼諸人觀察衆時,擧措審詳,不可急卒,應行愛語,勿出麤言,凡所發言但令前人,
共相解領,卽須靜默不應大語高聲動衆使人覺知.
何以故?不欲令人因緣他事,與多衆生,爲法障故.
憍尸迦,是爲第四爲彼法師莊嚴說處.
또한 교시가야, 만일 모든 법사가 막 법을 연설할 적이면
그 법을 보호하는 사람과 법을 듣는 대중은 법을 공경하기 때문에
공손하게 법을 아는 다섯 사람이나 열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을 선발하여
법사의 뒤에 머무르게 해서 대중을 관찰해 방해나 어지러움이 없게 하고
한결같이 법사의 의지(意旨)와 가르침[敎令]을 취하여
법답게 시행함으로서 그 대중들을 바로잡아 고치느니라.
혹시 어떤 사람이 떠들면서 대중을 어지럽게 하면
즉시 그가 말한 이유를 따져서 법답게 금지시키고,
만약 사람이 놀고 웃으면서 행동거지가 어긋나면
즉시 추궁하고 질책해서 끊게 해야 하니,
항시 대중으로 하여금 모든 감관을 고요하게 하고 몸과 입을 맑게 통제하면서
가르친 대로 머무르게 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이 대중을 관찰할 때에는
행동거지가 공손하면서 급하지 말 것이며,
존중하는 말로써 하고 거친 말을 내지 말아야 하며,
무릇 하는 말마다 다만 앞 사람이 서로 알아들을 만큼만 고요하게 하여야 하고,
큰 말이나 소리를 질러서 대중이 동요하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일을 인연하여 많은 중생들에게
법의 장애가 되지 않게 하려 함에서이니라.
교시가야, 이것이 바로 네 번째 저 법사를 위하여
강설하는 처소를 장엄하는 것이니라.
若能以是四事,莊嚴說法,方所令彼法師所說經典,無有衆難,畢竟流行.
만일 이 네 가지 일로 설법하는 방소를 장엄하면,
그 법사가 해설하는 경전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없어져서
필경에는 널리 퍼지게 되느니라.
復次,憍尸迦,若諸法師於欲說時,先觀彼衆,云何樂欲須何法義?
如彼衆欲隨時充滿,令諸衆生,成就善根,亦令增長言辭才辯,遍一切處,無㝵淸淨,
令諸智者,易得解知,可觀可證,無有垢污,遠離蓋纏,身口諸根,
悉皆安靜三昧思惟,相續不絕.若人於法師所,聽知法已,長夜熏修,
未曾捨離三教業藏,文字言說,無不通達.
또한 교시가야, 만일 모든 법사가 연설하려 할 적에는
먼저 그 대중이 어느 법의 이치를 어떻게 좋아하는가를 관하여
그 대중이 바라는 대로 때에 따라 충족시킴으로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성취하게 하고,
또한 언사와 변재가 더욱 자라서 두루 온갖 곳에 걸림 없이 청정하게 하며,
모든 지혜 있는 이로 하여금 쉽게 이해하고 관할 수 있고 증(證)할 수 있게 하며,
때의 더러움[垢汚]이 없게 하고 개(蓋;번뇌)와 전(纏;속박)을 멀리 여의게 하고,
몸과 입의 모든 감관이 다 평안하고 고요하게 하며,
삼매의 사유[三昧思惟]가 서로 이어지면서 끊어지지 않게 하여야 하느니라.
만일 사람이 법사에게서 법을 듣고 알게 된 뒤에 온밤 내내 훈수(熏修)하여
세 가시 언교 업장을 버리거나 여의지 않으면
문자나 언설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復次,憍尸迦,若諸法師於說法時,應當誓願成是義門,爲諸衆生,而作依止.
法師旣覺如是義已,復應當作如是思惟:今我旣覺如是法門,云何令我得好口業,
所出語言淸辯無濁,不破壞聲,無哀哭響,常得微妙,不斷辯才,
但爲開發顯示此經法門義故?
若彼法師如是說時,無不知者,無不解者.
또한 교시가야, 만일 모든 법사가 설법할 때는
마땅히 이 이치의 문[義門]을 이루기를 서원하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의지(依止)를 지어야 하나니,
법사가 이미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달은 뒤에는
다시 ‘이제 나는 이와 같은 법문을 깨달았으니,
어떻게 하면 나로 하여금 좋은 구업(口業)을 얻어서
나오는 말마다 말씨가 맑고 흐림이 없고 파괴되지 않은 소리와
슬피 울 듯 하는 음향이 없으면서 항상 미묘하게 끊어지지 않는 변재를
얻게 할까?’라고 생각해야 하나니,
다만 이 경의 법문의 이치만을 개발(開發)해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이니라.
만일 그 법시가 이와 같이 연설할 때에는 알지 못하는 이가 없고
이해하지 못할 이가 없느니라.
復次,憍尸迦,若諸法師欲說法時,衆旣集已,法師先當以三種心,
觀彼大衆無量諸相,何等衆生聰明利智?以如是等三心觀故,或以神通,
知彼衆中具如是相,而彼法師應當先爲彼諸大衆,宣說布施功德等事.
如是說時,多有衆生,讀誦受持,歡喜奉行,而彼法師於此義門,相續顯發空無相願,
不得斷絕.如諸如來應供正遍覺說是法時,能於無量百千門中,
顯示如是淸淨義相.
또한 교시가야, 만일 모든 법사가 설법하려 할 적에
대중이 모이고 나면 법사는 먼저 세 가지 마음으로
그 대중 가운데 한량없는 갖가지 형상[相]과
어떠한 중생이 총명하고 예리한 지혜를 지녔는지를 관하니,
이와 같은 세 가지 마음으로 관하기 때문에 혹은 신통을 통해
그 대중 가운데 이와 같은 모습[相]을 갖춘 이를 찾아내는 것이니,
그 법사는 마땅히 먼저 그 대중을 위하여 보시 공덕 등의 일을
널리 연설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연설할 때에 중생으로서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며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는 이가 많이 있나니, 그 법사는 이 이치의 문에서 공(空)․무상(無相)․
무원(無願)을 상속(相續)하고 현발(顯發)해서 끊어지지 않게 하는데,
마치 모든 여래․응공․정변각께서 이 법을 해설할 때에
한량없는 백천의 문 가운데서 이와 같이 청정한 이치를 나타내 보이신 것과
같으니라.
法師爾時,還說此義,終不得捨如來法藏憶念住持阿字法門,最初言說相續不斷,
爲他施設,迦字法門次相續說,那字法門最後究竟.如是念已,如如來辯,當自現前,
於此言說,應更善巧方便牢固,旣牢固已,自然成就如是智聚.
猶須彌山不可破壞,諸外道等不能動搖,一切論師莫能傾拔.
법사는 그 때에 다시 이 이치를 해설하면서
끝내 여래의 법장(法藏)을 버리지 않나니,
아 자 법문(阿字法門)을 기억하고 지니어
최초의 언설(言說)이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면서 다른 이를 위하여 시설하고,
가 자 법문(迦字法門)이 그 다음 상속하여 해설하며,
나 자 법문(那字法門)은 맨 마지막이 되느니라.
이와 같이 염(念)한 뒤에는 마치 여래의 변재처럼 마땅히 스스로 현전해야 하고,
이 언설에서는 다시 교묘한 방편이 견고해져야 하며, 이미 견고해진 뒤에는
저절로 이와 같은 지혜[智聚]가 성취되는 것이
마치 수미산과 같아서 무너질 수 없으니,
모든 외도들이 동요시킬 수도 없고 온갖 논사(論師)들도 쓰러뜨릴 수 없느니라.
復次,憍尸迦,若諸法師於說法時,應當勇猛,發大精進,諸根明了,衆事具足,
然後爲彼世閒四輩,弘宣如是諸蔭等法,善方便知彼彼相故.
旣覺知已,常念現前,無量辯才分別解釋,
또한 교시가야, 만일 모든 법사가 설법할 적에는
마땅히 용맹스럽게 그 정진을 일으켜 모든 근(根)이 명료하여지고
뭇 일이 두루 갖추어진 뒤에 저 세간의 네 무리[四輩]를 위하여
이와 같은 모든 음(陰) 등의 법을 널리 펴야 하나니,
좋은 방편으로 그 여러 가지 모양들을 알기 때문이니라.
이미 깨달아 안 뒤에는 언제나 기억하여 앞에 나타내면서
한량없는 변재로 분별하여 해석하느니라.
네 무리[四輩] - 사중(四衆),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를 말한다.
五蔭等聚,云何得知彼諸蔭聚?
以何義故,名爲蔭也?復以何相善通蔭聚?
巧說如是諸蔭聚已,卽應次第宣說諸法無相義門,入於眞實.
憍尸迦,我已曾說此四大相摠攝義處.
오음(五陰) 등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모든 음의 더미는 무슨 이치로 음이라 하는가?
다시 어떠한 모양으로 음의 더미를 잘 통달하는가?
이와 같이 모든 음의 더미를 교묘히 해설한 뒤에는
곧 차례로 모든 법의 모양 없는 이치의 문[無相義門]을 널리 연설하면서
진실(眞實)에 들어야 하느니라.
교시가야, 나는 일찍이 이 사대(四大)의 모양이
이치의 처소[義處]를 총체적으로 섭수한다는 것을 해설하였느니라.
復次,憍尸迦,彼時,法師應如是說:
是中若有諸色聚者,於彼復有何忍可住,而言彼有如是忍住.
先時已有如是經典,當令現前,亦復有人,恒常相續,爲他解說如是義門.
云何相續說如斯法?
如彼衆生,心生歡喜,愛樂欲聞;
如彼衆生,一心在法,無復亂想;
如彼衆生,有受法器;如彼衆生,堪可成熟者;
如彼衆生,得聞法已,有慚愧處.
如彼衆生,旣能聽受如是經典,如其次第如修多羅,如其威力,如想分別,如是受持,
而彼衆中,無有一人生退轉心,不聽法者.
憍尸迦,彼諸法師當應如是成就法事,諸佛如來咸如是說.
또한 교시가야, 그 때에 법사는 응당 이렇게 말해야 하느니라.
‘이 가운데에 만일 모든 색의 더미[色聚]가 있다면,
거기에는 다시 어떠한 인(忍)이 있어서 머무를 수 있는가?
거기에 이와 같은 인이 있어 머무른다고 하면,
앞서 이미 이와 같은 경전이 있어서 마땅히 현전시켜야 하며,
또한 다시 어떤 사람은 항상 상속하면서 다른 이를 위하여
이런 이치의 문을 해설해야 하리라.
어떻게 상속하면서 이와 같은 법을 해설하는가?
저 중생들 같으면 기뻐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면서 듣고 싶어 하고,
저 중생들 같으면 한마음으로 법에 있으면서 다시는 산란한 생각이 없으며,
저 중생들 같으면 법을 받을 만한 그릇이 있고,
저 중생들 같으면 성숙할 수 있는 이이며,
저 중생들 같으면 법을 들은 뒤에는 참괴(慚愧)하는 곳이 있고,
저 중생들 같으면 이미 이와 같은 경전을 듣고 받으니,
그 차례와 같이, 수다라와 같이, 그 위력과 같이, 생각과 같이 분별하면서
이와 같이 받아 지니느니라.
그러나 그 대중 안에는 어느 한 사람도 물러서는 마음을 내면서
법을 듣지 않는 이가 없으리라.’
교시가야, 그 모든 법사는 이와 같이 법사(法事)를 성취해야 하나니,
모든 부처님․여래께서도 더불어 이와 같이 해설하시느니라.
復次,憍尸迦,彼諸法師於說法時,當須顯發奇特之事.
假使有人,從此聚落,或復餘村,或復城邑及他方至,至已便問如是法義,語法師言:
我今所問,云何能解?
然彼法師於是義中,先當思惟,須令純熟,隨問悉能方便解釋,旣無恐怖,亦無留遲,
如彼所問,皆令滿足.
또한 교시가야, 저 모든 법사가 설법할 적에는
모름지기 기특한 일을 드러내고 일으켜야 하느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이 마을로부터 혹은 또 다른 마을이나 성읍(城邑) 내지
다른 지방에 이르고, 이른 뒤에는 곧 이와 같은 법의 이치를 물으면서
법사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물은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라고
한다 해도, 그 법사는 이 이치에 대하여 먼저 늘 사유(思惟)하여
순숙(純熟)해진 후에야 비로소 질문에 따라 방편으로 모두 해석할 수 있나니,
이미 두려움도 없고 또한 망설임도 없는지라
그의 묻는 바대로 모두 만족되게 하느니라.
如是法師說法之時,莫爲他說散亂之事.
以是因緣,當得大利,其有衆生,於彼聽者,皆生歡喜,常來聽法.
憍尸迦,以是因緣,時彼法師當應普說,成就大利.
이와 같이 법사가 설법할 적에는
다른 이에게 산란한 일을 해설하지 말아야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큰 이익을 얻어서 그 어떤 중생이라도 그에게 듣는 이면
모두가 기쁨을 내며 언제나 와서 법을 듣게 되느니라.
교시가야, 이런 인연으로 때로 그 법사는 마땅히 널리 해설하면서
큰 이로움을 성취하느니라.
復次,憍尸迦,諸法師等有能通達如是法者,於說法時,雖不能說諸佛菩提,
但能令此法義分明,巧知方便通達寬大,亦時爲他聽受者說.
如是法師善通達已,若復有人,非時來聽,非言來問,卽應開示.
若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四部衆等,或餘衆生,非時非言不卽爲說.
彼等於是更不來聽,以不聽故,不能爲他弘宣法要,開示衆生.
憍尸迦,以是因緣,令是法門,不得具顯.
또한 교시가야, 모든 법사들로서 이와 같은 법을 능히 통달한 이면
설법할 때에 비록 모든 부처님의 보리[佛菩提]는 해설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만 이 법의 이치만은 분명히 할 수 있어서 교묘히 방편을 알아
관대하고 통달하게 되며, 또한 때로 다른 청취해 받아들이는 이를 위하여
해설할 수도 있느니라.
이와 같이 법사가 잘 통달한 뒤에 만일 어떤 사람이 때가 아닐 적에도 와서 듣고
말할 때가 아닌데도 와서 묻거나 하면 곧 열어 보여야 하느니라.
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사부(四部) 대중들이나
혹은 그 밖의 다른 중생이 때가 아닐 때나 어긋나게 물을 때에
그를 위하여 해설해주지 않으면 그들은 이로부터 다시는 와서 듣지 않을 것이며,
듣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를 위하여 법요(法要)를 널리 펴서
중생에게 열어 보일 수가 없느니라.
교시가야, 이런 인연으로 이 법문을 두루 드러낼 수 없게 되느니라.
復次,憍尸迦,若諸法師於此法中,心不正住,妄起思惟,妄思惟故,遂成邪見.
如是法師邪分別故,不能會彼修多羅義,卽住無知無明聚中,而彼法師住邪見故,
昔來所有諸天神等,一時棄捨,不復守護,以諸天神,不守護故,無有威德勢力光明.
無威力故,一切所行不依戒律,諸餘善根悉皆減損.
如是法師先常爲他,解說法義修多羅等,所有聽衆,尚皆誹謗,棄而不受,況於戒律,
不復依行,而能更來聽其說者,
憍尸迦,若世閒人無信行者,其家所有妻子眷屬,尚皆不順,況彼大衆復來聽也?
또한 교시가야, 만일 모든 법사가 이 법 가운데서
마음이 바르게 머무르지 못하고 망령되이 사유(思惟)를 일으키면,
망령된 사유 때문에 드디어 사견(邪見)을 이루게 되나니,
이와 같은 법사는 삿된 분별 때문에 저 수다라의 이치에 계합될 수 없어서
곧 무지(無知)와 무명(無明)의 한가운데에 머무느니라.
그리고 그 법사는 사견에 머무르기 때문에
예로부터 있었던 모든 하늘과 신(神)들이 일시에 버리면서 다시는 수호하지 않나니,
모든 하늘과 신이 수호하지 않기 때문에 위덕과 세력과 광명이 없으며,
위력이 없기 때문에 온갖 행한 바는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모든 그 밖의 선근도 다 줄어지고 손상되느니라.
이와 같은 법사는 먼저 항상 다른 이들을 위하여 법
의 이치와 수다라 등을 해설하지만,
그것을 듣는 대중조차도 오히려 모두가 비방하고 버리면서 받지 않거늘,
하물며 계율에 대하여 다시는 의지해 행하지 않는데도
다시 와서 그의 설법을 듣는 이가 있겠느냐?
교시가야, 만일 세간 사람으로서 믿음과 행[信行]이 없는 이면
그 집안의 모든 처자 권속조자도 오히려 모두가 순종하지 않거늘,
하물며 그에게 대중이 다시 와서 듣겠느냐?
復次,憍尸迦,如是法師無有信分,所謂如來常說不依戒律,如教行者.
憍尸迦,是諸法師無信分故,彼非善根,而可說者,惟惡增長,必受果報.
如是果報,若諸如來如實說者,彼人聞已,便從口中,多嘔熱血,因此患故,
卽當命終.
또한 교시가야, 이와 같은 법사는 신분(信分)이 없나니,
이른바 여래가 언제나 말한 계율에 의지하여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는 이이니라.
교시가야, 이 모든 법사는 신분이 없기 때문에
선근으로서 말할 수 있는 이가 아니며
오직 악만이 더욱 자라서 반드시 과보를 받을 뿐이니,
이와 같은 과보를 만일 모든 여래께서 사실대로 말하게 되면
그 사람은 듣자마자 곧 입 안에서 뜨거운 피를 마구 토할 것이요,
이런 질환으로 인하여 바로 목숨을 마칠 것이니라.
復次,憍尸迦,如來應供正遍覺爲欲令彼一切世閒諸衆生等,覺了諸法,
而彼癡人於是法中,起嫉妒心,然終能如是思念.
我若慳法,秘而不說,以慳惜故,法漸艱難,或能隱沒.
我若不說聽法之人,云何能得如說而聞,如聞而受?旣無聞受,云何奉行?
若如是者,卽便令他無量衆生,不知是法,云何於法生希有心?
以是因緣,我今不應於是法中,與諸衆生,作慳悋事.
憍尸迦,如是之人於佛法中,終必不可立爲證人.
또한 교시가야, 여래․응공․정변각은 저 온갖 세간의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법을 깨달아 알게 하지만,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이 법 가운데서 질투심을 일으키면서도
끝내 다음과 같은 생각은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만일 법에 인색해서 숨기며 해설하지 않으면,
인색하기 때문에 법은 점차로 어려워지고 혹은 사라질 수도 있다.
내가 만일 법을 듣는 사람에게 해설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설한 대로 듣고 들은 대로 받을 수 있겠느냐?
이미 듣고 받은 이가 없거늘 어떻게 받들어 행하겠으며,
만일 그렇게 된다면 곧 다른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이 법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거늘 어떻게 법에 대하여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게 하겠느냐?
이런 인연 때문에 나는 이제 이 법 가운데서
모든 중생들에게 인색한 일을 짓지 않아야 한다.’
교시가야, 이와 같은 사람은 끝내 증인(證人)으로는 세울 수 없느니라.
憍尸迦,汝應當觀如是癡人,欲於無價眞法寶中,自作價量.
憍尸迦,復應當知如是癡人欲於如來三種業藏無相法中,建立諸相.
憍尸迦,是亦法師無信分處,如來如是方便解釋.
復次,憍尸迦,若有法師,能於如是修多羅中,善巧取義,住於正念,以諸方便,
開揚法門,爲諸世閒,興大利益.
汝於彼時,應善觀察當於何處,有好園林.
於彼林閒,多種樹木及諸花果相狀名字,皆應令彼諸衆生等,修治莊嚴,
乃至以彼一揣牛糞塗樹林地,旣莊嚴已,然後應請法師演說.
교시가야, 너는 마땅히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값을 칠 수도 없는 참된 법보(法寶) 가운데서 스스로 값어치를 매기려고
하는 것임을 관해야 하느니라.
교시가야, 또한 알아야 하느니라.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여래의 세 가지 업장(業藏)의 모양 없는 법[無相法]
가운데서 모든 모양을 건립하려고 하는 이이니라.
교시가야, 이것이 또한 법사로서 신분(信分)이 없는 것이니,
여래는 이와 같은 방편으로 이해하느니라.
또한 교시가야, 만일 어떤 법사가 이와 같은 수다라 가운데서
교묘히 이치를 잘 취하여 정념(正念)에 머물며,
모든 방편으로 법문을 열어 드날리고 모든 세간을 위하여 큰 이로움을 일으키면,
너는 그 때에 잘 관찰하면서 ‘어느 곳에 좋은 동산 숲이 있으니
그 숲의 여러 가지 수목과 갖가지 꽃과 열매의 모양과 이름에 대해서는
모두 저 중생들로 하여금 다스리고 장엄하게 하여야겠다.
나아가 저 한 웅큼의 쇠똥[牛糞]을 나무숲이 있는 땅에 바르고,
그렇게 장엄하고 나서는 법사를 청하여 연설하게 해야겠구나’라고 해야 하느니라.
而彼法師當說法時,林閒卽有護林天神、地神、
樹神及以上界所有諸天一切乾闥婆、緊那羅、迦樓羅、摩睺羅伽、諸龍、
夜叉,如是衆類,迭相告知,歡喜嗟讚彼莊嚴人,能以牛糞,塗飾林下,
憶念守護未曾暫忘,敬繞彼林,如奉塔廟.
그리하여 법사가 설법할 적에 숲에는
곧 숲을 보호하는 천신(天神)․지신(地神)․수신(樹神)과
상계(上界)에 있는 모든 하늘, 온갖 건달바․긴나라․가루라․마후라가와
모든 용과 야차와 같은 무리들이 서로서로 알리고 기뻐하며 찬탄하길
‘저 장엄하는 사람은 숲 아래에다 쇠똥을 바르면서 기억하고 지니면서
잠시도 잊는 일이 없고, 저 숲을 공경하며 도는 것이
마치 탑묘(塔廟)를 받들 듯 하는구나’라고 하느니라.
憍尸迦,若彼法師普爲世閒不斷法故,去離是處,欲詣餘方,
爾時,此地護林諸天及諸神等,猶常供養,如是地林.
復次,憍尸迦,若有法師如是行者,斯人獲得無量福聚,凡所言說人皆傳受.
何以故?以彼法師奉行佛教,隨順法門,無有違異,終不斷絕法義門故.
憍尸迦,以是因緣,爲法師者,於是法中,當自精勤,然後教人,若不自勵,人誰信者?
교시가야, 그 법사는 널리 세간을 위하여 법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만약 이곳을 떠나 다른 지방으로 가려고 하면,
그 때에는 저 땅에서 숲을 수호하는 모든 하늘과 모든 신들은
오히려 언제나 이와 같은 땅의 숲에 공양하느니라.
또한 교시가야, 만일 법사로서 이와 같이 행한 이라면,
이 사람은 한량없는 복의 더미[福聚]를 얻으면서
무릇 말하는 바를 사람들이 다 전수하느니라.
왜냐하면 그 법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면서
법문에 수순함이 어기거나 틀림이 없어서
끝내 법의 이치 문[法義門]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야, 이런 인연 때문에 법사가 된 이는
이 법 가운데서 스스로 부지런히 힘쓰고 그런 뒤에야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느니라.
만일 자기 자신이 힘쓰지 않는다면 사람 중에 그 누가 믿겠느냐?
憍尸迦,以是義故,彼說法師應當善入如是法門,深智方便,開顯法藏故,
以不放逸,能得大力故,方便巧知,定不受報故,起慈悲攝,成心業果故,爲諸衆生,
知時節故,當至巧智,不動眞處故.
교시가야, 이런 이치 때문에 저 설법하는 법사는
반드시 이와 같은 법문에 잘 들어가야 하나니,
깊은 지혜의 방편으로 법장(法藏)을 열어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요,
방일하지 않고 큰 힘을 능히 얻어야 하기 때문이며,
방편의 교묘한 지혜로 반드시 과보를 받지 앉아야 하기 때문이요,
자비를 일으켜 거두어 주면서 마음의 업과(業果)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시절(時節)을 알게 해야 하기 때문이요,
장차 교묘한 지혜[巧智]로 동요하지않는 진실한 처소[不動眞處]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니라.
時,彼法師得如是已,須知衆生善根方便,智行差別,然後說法.
法師若得住是方便說法藏時,便得無量無等大功德聚,
復得如是無量無邊大智慧聚,當住大施正智聚中,而彼法師得到無量精進彼岸,
爲一切衆生,亦令住於慈悲普攝方便智中.」
그때에 법사는 이와 같은 것을 얻은 뒤에는
모름지기 중생 선근의 방편과 지행(智行)의 차별을 알고
그런 뒤에야 비로소 설법해야 하느니라.
법사가 만일 이런 방편에 머물러서 법장(法藏)을 해설할 적에는
곧 한량없고 비길 데 없는 큰 공덕을 얻으며
다시 이와 같이 한량없고 가없는 큰 지혜도 얻나니,
장차 바른 지혜[正智聚]를 크게 베푸는 가운데
그 법사는 한량없이 정진하는 저 언덕[彼岸]에 이르게 되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또한 자비로 두루 거두어 주는 방편지(方便智) 가운데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爾時,世尊說是經已.
時,須波多天及尊者阿難、諸天、世人、阿修羅等一切大衆,聞佛所說,
頂受奉行.
그 때에 세존께서 이 경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그때 수바다천(須波多天)과 존자 아난 및
모든 하늘․세간 사람․아수라 등의 온갖 대중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정수리에 받들며 봉행하였다.
大法炬陁羅尼經 卷第二十 己亥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