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팔 분전 열한시, 현관으로 다가갔다. 니콜이란 걸 알고 있었다. 눈을 비비자 악어하품이 쏟아졌다. 그녀가 문을 붙잡고 천천히 닫았다. 그리고 십대 소녀처럼 쑥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새끼손가락을 깨물던 그녀가 눈을 감고 다가와 입술을 포갰다. 나는 금방 단단해졌다. 촉촉한 혀가 내 입술을 파고드는 동안 나는 판단했다. 올 것이 왔구나. 피할 수 있는 공식을 머릿속에 굴렸다. 그녀가 점점 몸을 밀착시키며 작은 손으로 내 등을 쓰다듬었다. 노브라셔츠 안의 유방이 단추처럼 오뚝 서서 내 피부를 찌르고 들었다.
“생각해 봤어?”그녀가 물었다.
“힘들 것 같아.” 내가 대답했다.
“인권단체에 내 스타일 구겨버릴 작정이라면…… 알아서 해!” 그녀가 빡세게 말을 비틀었다.
“내 환자들은……”
“난민소년은 이미 죽었어. 소녀까지 죽게 내버려 둬야겠어? 입을 꿰맸다는 13살 난민소녀가 죽어간다잖아.”
그녀가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 수세미로 만들었다.
“사이클론 예고는 어쩌고......”
나는 눈가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입김으로 훅 불어 떼며 말했다.
“내일 중에 출발하면 사이클론은 피할 수 있을 것 같고.”
“...................”
“생각을 해봐.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내버려 두는 주권과 권력의 통치술…… 살게 할 권리가 아니라 살게 할 인간애에서 계산해보자고. 죽음의 진열대에 세팅 된 사람들 어떻게 하는 게 인간의 기본이냐고?”
그녀는 이미 내가 가야 한다고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사랑하는 여자의 신념을 바꿔 놓을 수 없는 한, 이길 수 있는 남자가 존재할 리 없었다. 싸움에 이기려면 때로는 져야 했다. 불문곡절하고 항복 했다. 그동안 지나치게 아부적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행위가 끝난 그녀는 등을 돌리고 깊이 잠들었다. 나는 통 잠이 오지 않았다. 사이클론 예고는 둘째 치고 위급한 환자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 환자들을 눈감고 난민수용소까지 가야할 처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한 13살 소녀의 존재가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순간 한 영상이 갈채를 받으며 수면위로 떠올랐다.
호주생활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따져보면 첫사랑이 싹 텄던 날이었고,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측은지심이 샘솟던 날이었다. 내 눈을 처음 붙든 것은 여자의 익사체였다. 익사자가 물을 토해 세계지도를 그려놓았고, 구조대가 엎어져 있는 몸을 뒤집자 아시아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이 모래로 도배 되어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친근함이 내 안에서 파도처럼 밀려왔고 그것은 낯설면서 친근했다. 세 명의 구조대가 겹친 두 손으로 익사자의 가슴을 규칙적으로 번갈아 박자를 맞추어 펌프질했지만 소녀의 숨결은 쉽사리 트이지 않았다.
“자, 자, 환자에게 위험해요. 뒤로 물러나요.”
땅땅한 구조대가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멀대같은 구조대가 목에 파란 동맥을 세우며 소녀의 원피스 수영복을 배꼽 아래까지 끌어내렸다. 소녀의 유방이 튀어나왔다. 뜨거운 태양과 파란 창공을 향해 치솟은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원추형 유방을 본 내 동공이 압정에 박힌 것처럼 거기에 고정되었다. 수백 개의 시선이 그녀의 유방에 꽂혀 있다고 믿었고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붉은색 패드 두개가 소녀의 젖꼭지 아래 빗장뼈 부위에 각각 붙었다. 자동심장충격기의 스위치를 누르자 상체가 활처럼 휘어졌다가 곤두박질쳤다. 순간 내 호흡도 헉 멎었다 뚫렸다. 가슴이 폭발할 것 같았다.
소녀의 숨이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불규칙적으로나마 호흡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누구도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고 설명할 상황이 못 되었다. 나는 군중 사이에 끼어서 연거푸 마른 침만 삼켰다. 일초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때 익사자의 부모가 뜨거운 모래밭을 캥거루처럼 뛰어왔다. 공중화장실에 갔던 그들의 손에는 딸에게 주려고 산 ‘쭈쭈바’가 들려있었다. 딸임을 확인한 중년여자가 불타는 모래밭에 돌처럼 넘어졌다. 내동댕이쳐진 쭈쭈바가 실신한 여인의 다리에 깔려 피처럼 녹아내렸다. 엄마가 급히 이빨로 그것을 물어뜯어 여인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광경들을 접하고 있는 내 마음은 새로 출시된 인터넷게임을 시작할 때처럼 복잡하고 미묘해졌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동그란 인간사설 사이가 찰나처럼 잠시 끊어지며 어떤 목소리가 튀었다.
“아이 엠 코리언”
사슬이 닫히고 단발머리가 소녀가 동그란 프레임 선 안으로 돌출했다. 익사자의 아버지와 구조대 사이를 다리 놓는 투명한 영어 발음, 똘똘한 태도, 자신감 넘치는 단발머리의 몸짓에 내 입과 턱이 쩍 열리고 심장이 뛰었다. 내 가슴의 감각기관들이 칼에 벤 것처럼 가늘게 피를 뿜었다.
통역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조금 전의 알 수 없었던 친근함을 진원지를 알 것 같았다. 익사자는 나와 같은 13살이고 또 중학교 2학년이었다. 순간 그 동질감이 세계지도를 보는 것처럼 크게 느껴졌다. 익사자의 숨이 완전히 멎어버린 것 같았다.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익사자를 살리려는 구조대들의 처절한 전쟁도 거부하며 전사자처럼 검푸르게 변해갔다. 허옇게 풀어져 있던 눈동자가 커튼을 내리듯 눈꺼풀을 감았다. 내 숨은 점 점 더 빨라졌다.
그 때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들것으로 소녀를 태운 코뿔소트럭이 폭풍처럼 달려갔다. 도로변에 정차해 있는 앰뷸런스를 향해 질주하는 코뿔소가 모래 회오리를 일으켰다. 그때 나는 모래 연기 사이로 왕골 비치백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그 안의 노란 운동화를 발견했다. 한 손에 한 짝씩 운동화를 움켜쥐고 초인의 다리로 뛰었다. 터질 것 같은 허파의 숨을 뱉으며 닫히고 있는 앰뷸런스에 운동화를 던져 넣었다. 간발의 차이로 운동화 한 짝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는 운동화 한 짝을 힘껏 차 날리며 소리쳤다.
“제발, 노란 운동화를 신고 꼭 다시 세상을 힘차게 달려야만 한다고!”
순간 찢어지는 비명이 들린 곳은 내 등 뒤였다. 뒤로 날아간 운동화에 머리를 얻어맞은 통역이 내 쪽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익사자 가족과 구급요원 사이를 통역하며 코뿔소 트럭에 얹혀 먼저 도착한 통역이 경계석에 앉아 숨을 돌리던 참이었다. 놀란 나는 네 발 짐승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한참을 달리다 털썩 주저앉아서 다리를 쭉 뻗었다. 그리고 맨발의 모래를 털면서야 내 회색 운동화를 손에 들고 비치에서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기억해냈다.
한 달 후 나는 다시 한 번 더 크게 놀랐다. 처음 등교하는 호주 중학교의 정문에서 통역을 만났다. 본다이 비치에서 사경을 헤매는 소녀를 목격했던 동공 두 쌍이 전기쇼크를 일으키며 최대한 크게 벌어졌다. 연애기술을 아직 제대로 연마하지 못한 채 그날 나는 위험구역에 입성을 한 셈이었다. 그 후 얼마나 많은 순간을 은밀한 기쁨과 슬픔을 그리고 스스로 미심쩍어하며 절망과 희망을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익사한 소녀를 목격하기 바로 전날 부모님과 함께 시드니에 도착한 한 것이다. 아빠가 시드니 지사에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는데 그 날은 새해 아침이었다. 시드니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더위는 아빠와 함께 다니던 건조한 찜질방에 들어갔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함에도 내 안에서 새로운 세계관의 질서가 재편성되느라 발길이 어지러웠다.
회사에서 본다이 동네에 아파트를 얻어 주었다. 아빠는 도착한 그 다음날부터 수출육가공 지사에 출근했다. 출근하는 아빠를 향해 불퉁거렸다.
“사내자식이, 너도 어른이 되어 봐!”
엄마가 눈을 부라리며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섭씨 45도라니, 더위는 끔찍했다. 에어컨이 없는 아파트에서 짐을 풀다 엄마가 손을 놓았다.
“이러다간 땀에 익사하고 말겠다, 해변에라도 나가자”
비치에는 다족다양한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인터넷의 사진과는 사뭇 다른 이질감이 느껴지는 바다를 접하자 진짜 호주에 왔다는 실감을 들었다. 하지만 비키니차림의 풍만한 젖가슴을 보고 너무 쉽게 감동받는 내가 싫었고 너무 깊이 감동받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얕은 물에서 수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물속에 발만 담근 채 서 있던 엄마가 놀라 위급해진 날치모양 펄쩍펄쩍 뛰며 손짓했다. 익사자나 마약사고라고 예감했다. 호주에 오기 전 본다이비치를 너무 많이 검색한 탓에 일어난 직감이었다. 이미 둥근 사슬로 엮이어 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본 모래 바닥에는 직감을 적중시키며 익사체가 엎어져 있었다. 구조대가 막 시체를 돌려 눕히려던 참이었다. 훗날 정리된, 익사자와 니콜 그리고 내 나이가 미리 계획된 우연처럼 똑 같았다.
진행형 서술처럼 그로부터 15년이 움직였다. 다음날은 13살 소녀를 치료하러 난민수용소로 가야 될 운명의 별이 머리위에 떠 있었다. 그리고 익사자 소녀의 사건을 목격했던 날로부터 삼 년 후 지사의 업무가 끝난 아빠는 귀국했지만 나는 호주에 남았다. 피부전문의가 된 나에게는 그때 통역했던 니콜이 여자 친구로 내 옆에 있었다. (계속)
테리사 리 소설가
- 15회 재외동포 문학상 소설대상,
- 11회 민초문학상 대상 수상
- 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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