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이귀자(무지개)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내 어머니 모시고 단둘이 시장 구경 , 꽃놀이, 외식 한번을 못 했다. 다음이라는 시간이 내 곁에 영원히 존재 할 거라 믿었기에, 돈 몇 푼 드리는 게 효도인 줄 알고 살았다.
어머니가 대장암 판정을 받던 날, 병원 복도 창가에서 한없이 울고 있는 나에게 수술하면 괜찮을 거라 의사는 얘기했다.
병원을 나오며 오랜만에 잡아본 어머니의 손은 타다가 버려진 장작 조각처럼 투박하고 가벼웠다. "엄마!" 먹고 싶은 거 있어?" 물냉면 한 그릇 먹고 싶구나!" 오월 초라 선선한 날씨에도 어머니는 물냉면 한 그릇을 국물하나 남기지 않고 다 잡수셨다. 나는 그때서야 어머니가 냉면을 좋아하셨다는 걸 알았다. 그게 세상에서 어머니와 나의 마지막 외식이었다.
일요일 아침 교회에 들어서니 코로나도 아랑곳 없이 어른 권사님 네 분이 창가에 작은 화분처럼 옹기종기 앉아 계셨다. 평소 대화할게 있는 성도들이 나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거나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날 말씀하셨다. "젊은 것들만 맛난 거 먹고 분위기 좋은 데서 차 마시지 말고 우리도 밥좀 사주고 커피도 사줘라! 소녀가 이성 친구에게 투정 부리듯 하신 말씀이지만 내 마음속에 작은 가시로 박혔다. 교회에서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어른들하고는 따로 한가하게 식사 한번, 차, 한잔, 대접하지 못했다. 그분들도 여인의 감성들이 살아있음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세월과 함께 낙엽처럼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식사 대접을 하고 싶으니 네 분이서 날자를 잡아보라 했다. 하지만 각자 나름 바쁘셔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분들은 밥도 밥이지만 익산에서 열리는 국화꽃 축제가 곧 폐막되니 거길 가서 꽃구경을 하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평소 관광지에 무리 지어 돌아다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색하고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혼자서 어른들을 모시고 북적대는 인파 속, 꽃 나들이를 한다는건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다음이라는 기회가 없을 수도, 내가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도로 위는 시월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듯 긴 차량 행렬이 물결친다. 자연은 평온하고 경이로웠다. 한 해를 열심히 살아내고 마무리하는 계절, 망설이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놓았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삶이 같은 색으로만 물든다면 얼마나 권태로운 일인가! 저 멀리 억새들은 흰머리를 풀어 헤치고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축제장은 마지막 날 오후여서 다행히 인파가 넘치지는 않았다. 주차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주차도 원활했고 이동식 화장실도 나름 깨끗했다. 입구에서 맛있어 보이는 도넛을 사서 간식으로 드렸다. 느린 걸음과 더딘 몸짓으로 도넛을 먹으며 꽃길을 걷기 시작했다.
꽃으로 만들어낸 하트, 강아지, 말, 사람, 꽃마차, 꽃대궐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하나의 송이들이 모여 거대하고 아름다운 꽃나라를 만들었다. 우리들은 향기에 취해 연신 실실거리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 찍는걸 싫어하는 나지만 순간만큼은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들은 연신 내일 천국 갈지도 모르니 오늘 행복하자고 말햇다. 이 꽃, 저 꽃 속에 숨어 포즈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살아오신, 꽃보다 아름다운 그녀들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식사를 무엇을 대접할까, 장소는 어느 곳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가끔 가는 분위기 좋은 갈빗집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며 비싸게 생겼다고 걱정부터 하신다. 고기를 숯불에 타지 않게 살짝 구워 잘게 자른 뒤 각자의 앞접시 위에 올려드렸다. "고기가 살살 녹네" 하시면서 맛나게 드신다. 후식으로 냉면 한 그릇을 비우고 차에 올랐다. 그 와중에 한 분은 계산대에 가서 밥값이 얼마 나왔는지 물어보셨다.
한 분 한 분 집 앞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 그 위에 진주처럼 빛나는 별이 나를 내려다본다.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엄마께는 못해드렸지만 많은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다 갈께요. 별에게 속삭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