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셀라).
[시편 32:5]
누가 용서를 구하는가?
자기의 잘못을 깨달은 사람만이 용서를 구할 수 있다.
누가 죄사함을 받는가?
자기의 죄를 인식하고, 그 죄를 회개한 사람이 죄사함을 받는다.
회개란, 입술을 열어 미주알고주알 자기가 지은 죄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
자신의 삶이 '과녘에서 벗어난 삶, 구부러지고 뒤틀린 삶, 관계가 뒤틀린 삶(죄인의 삶)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로잡아가는 것이 회개다.
문제는 자신의 삶이 죄인의 길에 서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다른 문제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 두루뭉수리한 죄의식만 가지고 사는 것이다. 깨닫지 못하니 회개할 수 없고, 두루뭉수리한 죄의식은 구체적인 회개를 가로막는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화를 자초하는 삶으로 내달린다. 그리하여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리고(3),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린 삶(4)'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이런 삶을 사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죄의식에 빠져 사는 사람은 그런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눈을 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선하게 창조되었다.
하지만, 선하게 창조된 인간 안에는 악이 도사리고 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dasein(da- 거기, sein-있음)'이라는 단어로 다른 존재들과 구분한다. 거기에 서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거기는 어디인가?
선과 악의 갈림길이 아닐까?
누구나 선한 길(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알지만 걸어가는 이들이 적어 불안하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을 걸어가면 안전할 것이라 믿고 그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그 길이 진리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은 삶을 흔든다. 심리학적으로 불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흔들림을 방치하면 삶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넓은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삶은 누구나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희망, 가능성은 오로지 자신이 서있는 길이 죄인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에게만 열려있다.
다윗은 자기의 죄성을 보았고, 입술을 열어 회개를 한 후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한다.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도다!"
(시편 32:1,2)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에서는 바울의 칭의개념을 떠올릴수도 있다.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 없는 자로 인정해 주신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믿습니다!"로 칭의의 선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입술로 시인하고, 그 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칭의의 선물은 주어진다. 회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이 죄인일수밖에 없음을 안다. 이것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죄의식에 빠져 살아가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조언자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신다.
하나님께서 조언해주시는 사람이니 어찌 분별력이 없을 수 있겠으며, 그 길이 기쁘고 즐겁지 않겠는가?
이런 기쁨과 즐거움은 주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이 선물을 받기는 원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맘몬을 의지하니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잊고 사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오늘날 대다수 신앙인들의 비극이다.
좁은 길은 외면하고 넓은 길에 서서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려는 자의 삶은 결국 뼈가 녹아내리고, 여름 가뭄에 풀이 말라버리듯 혀가 말라버릴 것이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비루한 삶인지를 알지 못하는 풍요로운 부자들이 넘쳐나고 그를 동경하는 세상이다.
그 비루한 삶으로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사람들, 진심으로 하나님께 자기를 죽일 풍요를 달라고 간구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 세상이 살맛나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루터기와 남은 자들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또한 좁은 길을 걸어가도 기쁘고 즐겁게 담대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당신이 서 있는 길은 어떤 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