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8장 예술과 스포츠로 인류를 하나로 만들다
5. 인류가 하나 되는 축구
서울 올림픽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1988년 11월 문선명은 "프로스포츠를 통해 체육 진흥에 기여코자 프로축구팀을 창단한다"고 발표했다. 일화 프로축구단의 창단은 제6구단 탄생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국내 프로축구계에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다. 또한 1989년 3월 18일 창단식에서 '월드컵 유치'의 의지도 내비쳤다. 축구단의 모체는 일화제약이 맡았고 이를 위해 1988년 10월에 (주)통일스포츠를 세웠으며 초대 감독으로는 박종환 감독을 초빙했다. 팀의 이름은 '하늘을 나는 말'이라는 의미의 천마(天馬)를 선택했다. 5개월여의 준비 끝에 1989년 3월 18일, 서울 강북을 연고지로 드디어 역사적인 일화천마축구단이 창단되었다. 이후 몇 차례의 연고지를 변경한 끝에 성남으로 안착했다.
창단 즉시 일화축구단은 돌풍을 일으키면서 숱하게 많은 기록을 세웠고 이변을 연출했다. 연전연승의 눈부신 성적을 거두면서 한국 축구는 물론 아시아 축구를 이끌었고, 특히 K리그 7연패라는 불멸의 금자탑을 세웠다. 문선명은 이 기쁨과 감동을 모든 선수, 코치진과 함께 누리면서 승리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축구를 통해 보여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했다.
"K리그 우승을 할 때마다 가슴에 하나의 별을 추가하게 됩니다. 따라서 7번의 우승을 이뤄낸 일화천마축구단은 가슴에 7성을 달고 있습니다. 이는 북두칠성에 비교할 수 있어요. 북두칠성은 행운과 소망의 상징이며 예로부터 항해할 때 길잡이가 되어 길 잃은 자의 희망으로 빛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화축구단이 K리그 최초 7연패를 이룬 것은 한국 프로축구사에 희망과 소망을 담아낸 경이적인 이정표와 똑같습니다."
K리그 7연패 뿐만 아니라 일화축구단은 많은 경기에서 우승을 하여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국내대회에서만 총 17번을 우승했으며 국제대회에서는 6번의 우승을 했다. 이는 그 어느 축구단도 이룩하지 못한 영광의 기록이다. 천마는 이처럼 국내 축구에서 놀라운 실력을 발휘해 축구팬을 열광케 하고 한국 축구를 혁신적으로 발전시켰다.
축구단 운영은 한국에서만 한 것은 아니었다. 축구 강국으로 유명한 브라질에서도 프로 구단을 운영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축구를 통한 세계평화에도 기여했다. 브라질에는 6천 개의 프로팀이 있고 그 중 강팀이 상파울로에 있는 60개 팀이다. A1리그 20개, A2리그 20개, A3리그에 20개 팀이 있다. 그중에서 우여곡절 끝에 A3리그의 소르까바팀을 2000년 4월에 인수했다. 즉 상파울로 팀들 중에서 소르까바는 가장 약한 팀이었다. 문선명은 축구단을 인수한 후에는 축구기술의 평준화를 위해 스포츠대학을 만든다는 계획도 세웠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소르까바를 A3에서 A2로, A2에서 A1으로 격상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그 다음에는 A1리그 20개 팀에서 챔피언이 되고, 다음에 남미 챔피언이 되고, 마지막으로 유럽 클럽 대표를 이겨야 완전한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 문선명의 목표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A3에서 A2로 올라가는 데만 보통 7~12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선명은 '불가능하다'거나,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목표대로 2002년에 소르까바는 A2로 승격했고, 2003년에 A1으로 올라갔다. 두 단계 격상을 단 2년 만에 해치운 것이다. 남들은 20년이 걸릴 일을 2년 만에 해냈으니 브라질 축구 역사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라며 다들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문선명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하시므로 당연한 성과라 여기면서도 그라운드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과 코치들을 크게 칭찬했다. 2005년까지 A1에서 버티다가 2006년에 다시 A2로 내려갔고 그 후에는 승격과 하락을 되풀이하면서도 명문구단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월드컵이 끝난 후 4년 뒤인 2006년에 문선명은 일화천마팀이 북한에 가서 남북평화와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해 친선경기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지만 여러 가지 장애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7년과 2008년에도 북한으로 가려 했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래서 2009년에 소르까바팀을 불러 북한에 가서 친선경기를 하라고 지시했다. 사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못할 일도 없었다. 그해 10월에 드디어 북한으로 들어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시합을 했고, 북한과의 경기는 2010년, 2011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때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워 대성황을 이루었다.
천마축구단 창단에 이어 또 하나의 축구로 세계 평화에 기여한 것은 피스컵(Peace Cup)의 창설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렸을 때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부터 통일교가 운영하는 소르까바팀에 관심이 있었고 통일원리도 교육을 받았다. 그때 펠레는 "전 세계 프로축구팀 대륙 간 챔피언전을 그동안 독일 기업이 후원했는데 더 이상 지원할 수 없어 챔피언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걱정했다. 문선명은 그 말을 전해 듣고 지원을 약속했다. 예술과 스포츠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중단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펠레는 한국을 방문해 한남동에 있는 문선명의 집을 찾았다. 1시간 2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선명은 축구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리하여 문선명의 결단과 펠레의 지원에 힘입어 2003년 1월 2일 경기도 성남에서 선문평화축구재단을 창설했다. 6월 12일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열린 창설대회에서 문선명은 이렇게 말했다.
"궁극적으로 스포츠 세계가 가야 할 길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대회가 세계인을 화합과 평화로 안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문 피스컵은 하나님을 빼놓고 단순히 흥행성 경기만을 부추기고 스타만을 탄생시키는 기존의 컵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피스컵은 하나님께서 이상했던 창조본연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종교와 과학・정치와 경제・여성・청년・체육 등 각계 각 분야의 노력을 한 자리에 모아 인류가 하나의 대가족팀을 염원하는 축제의 한마당이 될 것입니다."
축구계에 샛별처럼 등장한 선문축구재단이 첫 번째로 추진한 것은 '피스컵 국제축구대회'였다. 피스컵은 과도한 상업화를 막고, 순수한 스퍼츠맨십을 추구하며, 대회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가난한 나라의 유소년을 돕는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축구계의 이단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 동안 피스컵 다섯 차례, 여자축구대회인 피스퀸컵을 세 차례 열었다. 두 대회 모두 세계적인 축구클럽이 참여하고 전 세계 축구팬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 지원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축구계에서도 제대로 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명성 있는 대회로 자리 잡았다.
2003년 제1회 대회 때는 유럽의 TSV뮌헨(독일)과 PSV에인트호번(네덜란드), 올림피크리옹(프랑스), 베식타스JK(터키), 일화천마 등 8개 팀이 참가했다. 7월 15~22일까지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전국의 6개 경기장에서 축구팬들의 열띤 응원을 받으며 열렸다. 2005년 7월에 열린 2회 대회에는 선다운스(남아공), PSV에인트호번, 레알소시에다드(스페인), 일화천마 등 8개 팀이 참가했다. 2007년 3회 대회에는 레딩FC(영국), 리싱산탄데르(스페인), 일화천마, 시미즈S-펄스(일본), 치바스과달라하라(멕시코) 등 8개 팀이 참가했다.
3회 대회가 뜻 깊었던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는 전 세계 축구인들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개막식에서 이라크 난민 유소년축구팀이 평화의 의미를 담은 데이지 꽃씨를 풍선에 담아 날려 보내 순수한 축구제전임을 온 세계에 보여주었다. 2009년 4회 대회는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7월24일 열렸다. 일화천마, 애스턴빌라(영국), 리가데키토(에콰도르)등 가장 많은 12팀이 참가해 열전을 펼쳤다. 2012년 5회 대회는 수원에서 7월19일 열렸으며, 일화천마, 함부르크SV(독일), 선덜랜드AFC(영국), FC흐로닝언(네덜란드)등 4팀이 참가했다. 이들 팀은 유럽 프로축구리그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선수들이 속해 있는 팀이었다.
피스컵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축구대전은 피스퀸컵(Peace Queen Cup)이다. 피스퀸컵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륙간 여자 국가대표 축구대회다. 평화와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여성을 그라운드의 중심에 세운 대회로 축구를 통한 평화세계를 이루는 것이 목표였다. 2년마다 열린 피스퀸컵은 대륙별 FIFA 랭킹 최상위 팀들이 펼치는 파워 넘치는 A매치로 대회 수준과 규모 면에서 여자 월드컵에 버금가는 최고 대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피스컵보다 늦은 2006년에 첫 대회가 열렸으나 그 재미와 관객의 참여, 응원, 수준 높은 경기는 항상 압도적이었다.
문선명이 종교 지도자로서 외도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축구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문선명의 축구섭리는 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한 헌신의 하나였다. 그의 말처럼, 축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내가 아무리 공을 잘 몰아가도 나보다 재빠르고 솜씨 좋은 상대팀 선수가 순간적으로 내 공을 채가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공을 몰아가는 것은 내가 할 일이지만 공을 넣는 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는 세계도 이와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문선명은 오랫동안 축구를 후원했고, 한국을 넘어 세계 축구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