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엄오도(香嚴悟道)
향엄선사의 오도.
향엄지한(香嚴智閑) 선사(禪師)는 백장선사(百丈禪師) 문하(門下)에서 여러 해 수학(修學)하였다. 선(禪)보다는 교학(敎學)쪽에 조예(造詣)가 깊어서 백장선사(百丈禪師)가 하나를 물으면 열을 답할 정도였다. 하루는 위산영우(潙山靈祐) 선사가 향엄지한(香嚴智閑) 선사(禪師)에게 물었다. 그대는 백장선사(百丈禪師)께서 하나를 물으면 열을 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답(答)했다고 들었는데, 그대가 총명하고 영리하여 이해력이 남달리 뛰어난 줄 안다. 그러나 이 영특함이 오히려 생사(生死)의 근본(根本)이다. 부모(父母)가 낳기 전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무엇인가? 향엄선사 말문이 꽉 막혀버렸다. 천하 대강백이(天下大講伯) 말이 아니다. 방으로 돌아와서 그동안 읽었던 책을 다 뒤지고 찾아봐도 본래면목(本來面目)에 대한 답(答)은 없었다. 그동안 문자(文字)에만 의존했던 수행(修行)이 한계(限界)에 직면(直面)했다. 경전이나 어록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향엄선사는 여러 차례 위산영우(潙山靈祐) 선사께 답을 가르쳐 달라고 청을 드렸으나 그럴 때마다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그대에게 말해준다면 그대는 후일에 나를 욕(辱)하게 될 것이다. 설사 내가 답을 설명한다고 해도 그것은 내 일일뿐이지! 결코 그대의 수행과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느니라. 하였다. 답은 찾지 못하고 울화증(鬱火症) 분심(憤心)이 난 향엄선사는 그동안 보았던 경전 책들을 모두 다 불태워버리고 다짐을 했다. 금생에는 더이상은 불법을 배우지 않고 저 멀리 운수행각을 하면서 이 몸뚱이나 편하게 지내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위선선사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남양(南陽) 지방(地方)을 지나다가 남양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의 탑(塔)을 참배(參拜)하고 그곳에서 머물게 되었다. 하루는 마당청소를 하다가 마당에 너부러져 있는 기왓장 조각을 집어 들어 획! 하고 던져 버렸는데 그것이 대나무에 탁! 하고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게 되었다. 깨닫고 나서 읊은 시(詩)는 오언율시(五言律詩)다.
한번 부딪치는데 아는바 모두 잊고(一擊忘所知) 다시 애써 닦을 것이없구나!(更不假修冶) 동용(動容)하는 일상에서 옛길이 드러나니(動容揚古路) 초췌한 처지에 떨어질 일은 없네!(不墮憔然機) 처처가 자취가 없으니(處處無從跡) 성색 밖의 위의로구나!(聲色外威儀) 제방의 도를 아는 자들이(諸方達道者) 모두가 최상의 근기라 하리! 스승인 위산선사(潙山禪師)께서 향엄선사가 깨쳤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사형(師兄)인 앙산혜적(仰山慧寂) 선사가 자기가 한번 정말 깨달았는가? 점검(點檢)을 해 보고 오겠다고 하고 사제(師弟)인 향엄 선사를 찾아와서 말했다. 스승님께서 사제의 오도송을 보고 칭찬하시던데, 그대가 다시 한번 읊어 보시게나? 내가 보기에는 사제는 여래선(如來禪)은 깨쳤으나 조사선(祖師禪)은 꿈에도 깨치지 못하였네! 하자. 말을 듣던 향엄선사가 다시 계송을 읊었다. 나에게 한 소식이 있으니(我有一機) 눈 깜박여 그대에게 보였다가(瞬目視伊) 만약 그 사람이 그걸 모른다고 하면(若人不會) 따로 사미를 부르리라!(別喚沙彌) 사형인 앙산혜적(仰山慧寂) 선사는 사제인 향엄지한(香嚴智閑) 선사(禪師)가 확실하게 오도(悟道)하였음을 위산선사에게 알리고 함께 기뻐했다는 오도선화(悟道禪話)다. 이 선화에서 사형인 앙산혜적(仰山慧寂) 선사가 사제인 향엄지한선사가 여래선은 깨쳤으나 조사선은 꿈에도 깨치지 못했다고 한 것은 거년빈(去年貧) 게송(偈頌)을 보고 한 말이다. 지난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去年貧未是貧)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이로다.(今年貧始是貧), 지난해 가난은 송곳 꽂을 땅은 있더니(去年貧猶有卓錐之地), 금년 가난은 송곳조차 없네!(今年貧錐也無) 향엄지한선사(香嚴智閑禪師)는 꽂을 땅도 송곳도 없다고 철저하게 가난함을 노래했지만, 조사선에서 보면 송곳이란 생각까지도 몽땅 흔적도 없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