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關)
사십구칙어(四十九則語)
본칙(本則) 역(譯)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그만두어라. 말할 필요 없다. 나의 법은 오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우니라. 하셨는데, 내(安晚)가 "법은 어디서 왔으며, 오묘함은 무엇을 좇아 있던가? 라고 어찌 풍간(豐干)의 요설(饒舌)뿐이리오? 원래 이것은 수다쟁이 석가(釋迦多口)라는 이 늙은이가 요괴(妖怪)한 말을 지어내서 천백 대(代) 자손들로, 하여금 갈등(葛藤)에 휘감겨,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거니와, 이렇듯 기괴하고 특이한 얘깃거리(話靶)는 숟가락으로 떠도 떠지지 않고, 시루에 쪄도 익지 않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였던가? 옆 사람이 필경 어떻게 해야 결단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나(安晚)는 열 손톱을 모으고서 그만, 둡시다. 말할 필요가 없겠소. 나의 법은 묘하여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말하고, 다시 급히 난사(難思)라는 두 자 위로 가서 작은 원 모양(一圓相)을 그리고서 사람들에게 대장경(大藏) 5천 권과 유마거사의 불이문(不二門)이 다 이 속에 있소."라고 말하리라. 본칙(本則) 經云。止止不須說 我法妙難思。安晚曰。法從何來。妙從何有。說時又作麼生。豈但豐干饒舌 元是釋迦多口。這老子造作妖怪。令千百代兒孫被葛藤纏倒。未得頭出。似這般奇特話靶。匙挑不上。甑蒸不熟。有多少錯認底。傍人問云。畢竟作如何結斷。安晚合十指爪曰。止止不須說我法妙難思。却急去難思兩字上。打箇小圓相子。指示眾人。大藏五千卷。維摩不二門。總在裏許。
송(頌) 역(譯)
불(火)이 등(燈)이다고 말하면 고개를 저으며 응하지 않으려니와, 도적만이 도적을 알아볼 것이니 한 번 물음에 곧 승낙하리라. 頌曰 語火是燈 掉頭弗譍 惟賊識賊 一問即承
역(譯)
순우(淳祐) 병오년 늦은 여름(유월) 초하루에 안만(安晚)거사가 서호어장(西湖漁莊)에서 씀. 구판(舊板)이 마멸(磨滅)했기 때문에 거듭 공인(工人)에게 명하여 침재(鋟梓)를 마쳤다. 이 목판은 무장주(武藏州) 도솔산 광원선사(廣園禪寺)에 둔다. 응영(應永) 을유년 10월 13일 간연(幹緣主管) 비구상목. 淳祐丙午季夏初吉 安晚居士書于西湖漁莊 舊板磨滅故。重命工鋟梓畢。這板置于武藏州兜率山廣園禪寺也。應永乙酉十月十三日 幹緣比丘 常牧.
사족(蛇足)
무문혜개노사(無門慧開老師)가 고승(高僧)들의 공안(公案) 사십팔칙(四十八則)을 엮어서 그들의 행리(行履)를 평창(評唱)과 송(頌)으로 날카롭게 판단(判斷)하였다. 이것은 마치 밀가루 떡을 팔아, 먹게 하여 삼키지도 뱉으지도 못하게 하였다고 했다. 사십팔칙(四十八則)이 보통 사람들이 보면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게 하였다고 했다. 혹평(酷評)같지만 선어(禪語)는 반어(反語)가 많다. 안만(安晚) 거사(居士)가 무문관(無門關) 사십팔칙(四十八則)을 지은 선사(禪師)의 노고(勞苦)에 감사하고 칭찬(稱讚)하기 위해서 사십구칙어(四十九則語)를 써놓고 그에 대한 머리말을 이렇게 붙였던 것이다. 팔팔 끓은 큰 솥에 볶아 다시 한번 끓여서 사십팔칙(四十八則)에 연(衍)케 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게 하도록 했기에 안만(安晚) 거사(居士)도 괜한 헛수고가 아닌가? 자평(自評)이다. 오늘로써 전해 내려오는 무문관사십구칙(無門關四十九則)은 모두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댓글로 격려해주신 얼벗님들! 고맙습니다. 여여법당 화옹 합장.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