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수천년 바다가 빚은 명작 ‘무안갯벌’, 무수한 생명을 품다
농민신문 2021-07-09끝없이 펼쳐진 무안갯벌. 떠오르는 아침 해가 갯벌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물이 빠진 무채색의 갯벌은 조용한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숱한 생명들이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건강한 삶의 터전이다. [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⑪ 전남 무안 갯벌 다양한 해양·염생 생물 서식 해수부 지정 1호 습지보호지역 대표종 ‘흰발농게’ ‘대추귀고둥’ 자줏빛으로 물든 ‘칠면초’ 군락 갯벌 이국적 풍경으로 만들어 검은 펄, 자세히 보면 역동적 수많은 생명 분주히 움직이며 살아 숨쉬는 소리로 가득 친애하는 L에게
“얘들아 가자, 내가 나비 있는 곳을 알아!”
“나를 따르라”는 한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호기로운 이 말에 아파트 2층 복도에서 내려다보던 저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상황은 이랬습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화단에서 잡은 일고여덟마리의 나비를 채집통에 넣은 채 할 일 다했다는 듯 놀고 있었습니다. 아마 과제였던 것 같아요.
이때 한 무리의 아이 서너명이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기다리던 아이 중 하나가 ‘왜 이렇게 늦었냐. 우리는 벌써 몇마리나 잡았다. 너네는 언제 이만큼 잡겠냐’는 투로 타박하자 늦게 온 무리의 대장격인 한 아이가 잠자리채를 획 낚아채며 한 말이었습니다. 마음 상한 아이의 행동을 번역하면 ‘너희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잡을 수 있어’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습니다.
화나는 건 이해하겠지만 나비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니요. 나비는 꽃을 찾아 이곳저곳 날아다니는 존재지, 한곳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나비가 있는 곳을 알아!”가 아니라 “내가 더 많이 잡을 수 있어!”라고 해야 옳은 반박이었지요. 그 아이는 나비를 몇마리나 잡았을까요. 아니, 찾기는 했을까요.
전남 무안군 해제면 유월리에 있는 ‘무안갯벌’에 다녀왔습니다. 갯벌 바로 앞에 위치한 황토갯벌랜드에서는 갯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무안갯벌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명의 표본을 갖추고 있으며 무안의 명물 세발낙지의 모든 것, 갯벌의 유형과 생성과정 등을 세세하게 전시하고 있어요. 황토 움막과 황토 이글루 등 숙박시설과 카라반, 오토캠핑장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어 가족이나 연인·친구와 함께 쉬어가며 갯벌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건물을 나서면 광활한 무안갯벌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갯벌이 위치한 곳은 칠산바다와 맞닿은 함평만(함해만)으로, 길이는 17㎞, 폭은 약 1.8㎞며 면적은 344㎢(10만4000여평)에 달합니다. 그중 갯벌의 넓이는 35.6㎢(1만700여평)에 이르며 109.2㎞의 해안선이 원시형태 그대로 유지돼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무안갯벌은 2001년 12월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제1호 습지보호지역으로 2008년 6월에는 제1호 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같은 해 1월에는 람사르습지 1732호로 등록된 곳이기도 합니다. 무안갯벌에 서식하는 생명체는 조개와 고둥 등 연체동물이 83여종, 게 등 절지동물이 77여종, 갯지렁이 등 환형동물이 70여종으로 모두 230여종이 이곳 생명체의 9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흰발농게 그중 해수부가 지정한 해양보호생물로는 흰발농게와 대추귀고둥이 있습니다. 흰발농게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합니다. 서식조건이 까다롭고 움직이는 반경이 매우 협소한 친구지요. 해안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자 환경부는 2012년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2016년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했습니다. 그 덕에 개체수가 많이 늘어 ‘해양수산부 전국해양보호 구역별 생태계 무안갯벌 대표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또 무안갯벌에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염생식물 중 약 50%가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갯잔디·갈대 등의 볏과종, 갯벌을 자줏빛으로 물들이는 칠면초를 비롯한 명아줏과종, 갯완두를 비롯한 콩과종, 목본 순비기나무 등이 자라고 있어요. 펄이 드러나면 갯벌은 자줏빛으로 물드는데, 이것의 정체가 바로 칠면초입니다. 해마다 50여종의 철새도 이곳을 찾습니다. 도요물떼새과가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하네요.
이곳에서는 갯벌을 직접 밟아보는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물때표를 참고해 만조시각에서 앞뒤 2시간을 제외하고는 체험할 수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정해진 구역에서만 체험해야 하며 수집이나 채취는 절대 하면 안됩니다.
이곳엔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도록 몇개의 긴 덱(Deck)이 놓여 있습니다. 한쪽으로 칠면초 무리가 자줏빛으로 물들어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합니다. 갯벌에는 횐발농게가 먹이활동을 하고, 망둥이들은 익숙한 모양으로 갯벌을 뛰어다니는 등 숱한 생명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 물이 차오르려는지 갯벌 사이에 난 여러 갈래의 물길이 몸집을 불리고 있네요.
갯벌은 수천년의 세월과 파도가 빚어낸 작품입니다. 육지기도 하고 바다기도 한 신비로운 공간이지요.
덱을 따라 갯벌 위를 걸어봅니다. 숱하게 움직이는 조그만 생명들. 잔잔한 파도와 가끔씩 바위에 부딪히는 포말뿐이라 지루하던 바닷물이 빠지고 나니 펄밭은 그야말로 역동적입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검은색 갯벌에 불과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 한곳 조용한 곳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생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준비 없이 부딪히는 일은 줄기 마련이지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연락과 확인, 약속으로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가치라고 여깁니다. 확인 없이 무작정 떠나는 일은 무모한 일이라면서 말입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세상 물정 모른다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며 혀를 내두르지요. 자줏빛 칠면초가 자라는 무안갯벌에 물이 들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우리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나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떠나는 그 아이 같지 않았나요. 만나고 싶다면, 만나야 한다면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야 합니다. 생명 하나 없이 검은 펄뿐인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숱한 생명이 살고 있는 것처럼, 아이는 꽃밭이 있는 곳을 알았기에 거기를 들여다보면 반드시 나비가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겁니다. 설령 길을 잘못 들었다 해도 거기서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게 여행 아니던가요. 이제는 그 아이가 나비를 잡지 못했으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근심은 내려놓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그 호기로운 말이 흐뭇할 지경입니다. 무작정 찾은 이곳에서 숱한 생명을 마주한 것처럼 아이도 꽃밭에서 반드시 나비를 찾았을 겁니다.
L. 짐작도 못하셨겠지만 연락도 없이 당신을 뵈러 갔다가 발걸음을 옮긴 적이 여러번이었어요. 멀찍이서 바라만 보다 돌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낙심한 적은 없었어요. 제게 중요한 건 ‘만나는 것’이라기보다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요.
‘바다’면서 ‘육지’기도 한 신비로운 곳. 생각해보니 ‘만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은 ‘이미 만난 것’이기도 하고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기도 하네요. 마치 신비로운 공간, 갯벌처럼.
L. 그 아이가 저를 가르쳤어요. 중요한 것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만나고 싶은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는 것’이라는 것을요. 이만 총총
무안에 가면? 동양 최대 백련자생지 들렀다 무안 일미 ‘세발낙지’ 맛볼까입력
회산백련지 함께 즐길 만한 볼거리 & 먹거리 전남 무안은 ‘한국의 차성(茶聖)’이라 불리는 초의선사가 태어난 곳이다. 초의선사는 열다섯살에 전남 나주시 다도면 운흥사로 찾아가 출가했고, <일지암시고> 등 수십권의 저서를 남겼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과 깊은 교분을 나눴으며 조선후기 한국 문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승이다. 삼향읍에 있는 탄생지에는 차문화 체험관을 비롯해 초의 생가, 일지암, 초의선사 유물전시관, 추사와 교분을 나누던 용호백로정 등이 재현돼 있다.
회산백련지는 31만3313㎡(9만4700여평) 규모의 동양 최대 백련 자생지다. 2001년에는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1997년부턴 연꽃축제가 열리고, 무안백련·가시연·어리연·개연·물질경이 등 희귀 물풀이 자라고 있다. 법정스님은 이곳을 찾아 “어째서 이런 세계 제일의 연지가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마치 정든 사람을 만나고 온 듯한 두근거림과 감회를 느꼈다”라는 글을 수필집에 남겼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분청사기 명장전시관도 둘러볼 만하다. 분청사기의 제작과정과 아름다움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명장 제459호로 지정된 포운 김옥수 선생의 작품과 무안의 분청사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밀리터리테마파크도 가보자. 야외전시장에는 실제 비행 훈련기와 전투기·북한기·헬기 등이 전시돼 있고, 체험장에서는 탱크와 비행기를 시뮬레이션으로 조정해볼 수 있다. 세발낙지·육회 탕탕이 무안 5미(味) 중 1미는 단연 세발낙지다. 무안에 왔다면 세발낙지 골목에 가보자. 봄가을이면 싱싱한 세발낙지를 맛볼 수 있다. 6월20일부터 7월20일까지는 금어기로, 남아 있는 낙지만 팔거나 문을 닫는 곳도 있다.
무안은 돼지짚불구이도 유명하다. 몽탄면 사창리의 ‘두암식당’과 ‘사창짚불구이’가 유명하다. 암퇘지의 삼겹살을 석쇠에 가지런히 놓고 볏짚을 지펴 고기를 뒤집어가며 굽는 것으로, 입안을 감도는 짚불 향이 일품이다.
무안=글·사진 김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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