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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왕의 혼인 잔치의 비유(마태복음 22:1~14)
* 본문요약
천국은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습니다.
그 왕이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청하였으나 오기를 싫어하고,
다시 보냈으나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종들을 잡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임금이 노하여 그 동네를 불사르고,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청하여 혼인 잔치를 채우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왕은 그를 결박하여 내쫓으라 명합니다.
이와 같이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습니다.
찬 양 : 315장(새 525)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318장(새 52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 본문해설
1. 왕의 혼인잔치의 비유(1~10절)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임금이 자기 종들을 보내어 초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임금이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초청한 사람들에게 가서
잔칫상도 차려 놓고, 소와 살진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어서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초청을 받은 자들이 돌아보지도 않고(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장사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나머지 사람들은) 그 왕의 종들을 붙잡아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모욕하고 죽이니
7) 이에 임금이 노하여(격분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내가 전에 초청한 사람들은 이 혼인 잔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으니)
9) 너희는 사거리 길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10) 이에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 혼인 잔치에 초청함(3절) :
당시 부자들은 혼인잔치의 날짜를 정하고 손님을 청해 두었다가,
당일에 준비가 마쳐지는 대로 종들을 보내 손님들을 모셔오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 오찬과 함께 소와 살진 짐승과 모든 것을 갖추었다(4절) :
음식의 풍부함과 연회석의 준비가 다 갖추어졌다는 것으로,
천국은 모든 사람이 참 만족할 만한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는 뜻입니다.
- 돌아보지도 않고(5절) : 아멜레산테스
‘돌아보지 않다’에 해당하는 ‘아멜레산테스’는
‘무시하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는 뜻으로
왕이 초청했음에도 이를 무시했고, 뻔뻔스러울 정도로 무례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 자기 밭으로, 자기 상업차로 가고(5절) :
자기 개인의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 군대를 보내어 … 그 동네를 불사르고(7절) :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리킵니다.
그때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불태우고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혹은 히틀러가 유태인 600만 명을 학살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9절) :
사거리 길은 성읍 경계에서 지방으로 통하는 길이 시작되는 넓은 광장을 가리킵니다.
그곳에서 누구든 닥치는 대로 불러오라고 한 것은 세리와 창기들과 같은 죄인들과,
모든 이방 나라와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을 뜻합니다.
- 악한 자나 선한 자나(10절) :
이전에 그가 무슨 일을 했든 간에 복음을 전하라는 것과
누구든 천국의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2. 예복을 입지 않은 손님의 비유(11~14절)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려고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 있는 것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유구무언이어늘(아무 말도 하지 못하거늘)
13) 이에 임금이 종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움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이와 같이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예복(11절) :
헌 옷을 벗고 예복(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회개’를 의미합니다.
천국에 초청된 사람은 죄의 옷을 벗고(회개하고)
하나님의 의의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 묵상 point
1. 하나님 나라로의 초청을 거부한 유대인들
1) 세리 바르 마얀의 장례식을 비유로 활용하신 예수님(1~10절)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부유한 세리 바르 마얀이란 사람이 죽었는데
그의 장례식이 마치 왕의 장례식처럼 화려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그 도시가 일손을 쉴 정도였습니다.
바르 마얀의 장례식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한 것은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자기의 장래를 위해 공회원들을 위한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초청된 공회원들이 한 명도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차려 놓은 음식이 썩지 않도록 길에 나가서
가난한 자들을 불러서 그들이 대신 이 잔치 음식을 먹도록 했습니다.
그 후에 그가 죽었고, 그가 한 이 마지막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그의 장례식이 이렇게 화려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바르 마얀의 장례식을 왕의 혼인 잔치로 바꾸어서
천국이 이와 같다며 말씀하셨습니다.
2) 왕의 혼인잔치의 비유
만일 세리 바르 마얀이 생전에 베풀었던 그 잔치가
왕의 혼인 잔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르 마얀이 단지 부자 세리였으므로 그 당시 최고 권력을 가진 공의회 회원들이
그 잔치에 참여하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만,
만일 바르 마얀이 왕이었다면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죽고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 예수님은 천국이 바로 이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이 바로 왕의 혼인 잔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그리스도라 믿으며 그 말씀을 따라 살면
왕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과 같고,
그렇지 않은 자는 왕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않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 자부했던 유대인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그 말씀 듣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바로 왕의 혼인 잔치의 참여를 거부한 무뢰배들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3년이나 유대의 온 지역을 돌아다니며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특권과 책임에 대하여 말씀하셨으나
그의 백성들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이제는 그들이 오히려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2. 혼인 잔치를 거절한 자들에 대한 왕의 진노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된 이유를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행하는 자들은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 영원한 저주의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비유에서 제시하는 왕의 혼인 잔치를 거절한 자들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소극적인 악 : 초청된 잔치에 무관심하고 자기의 일에만 몰두하는 자(5절)
첫째로 거절한 자들은 왕의 혼인 잔치에 관심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밭과 사업의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개인의 일에만 열정을 가지고 있을 뿐,
하나님의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진짜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자기의 개인의 일입니다.
기도를 해도 자기 개인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 여기고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2) 적극적인 악 : 왕이 보낸 종들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한 핍박자들(6절)
둘째로 거절한 자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인 자들입니다.
유대인의 대부분이 예수님의 말씀에 무관심하였으나,
일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보내신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을
잡아 가두고 때리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까지 죽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복음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에 지나서
그 복음을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는 악을 행하였습니다.
● 묵상 :
나는 단지 저 사람이 꼴 보기 싫어서 그가 하는 일을 반대했는데
내가 반대한 그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었다면,
나는 그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대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싫어하며 거부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나 역시 이런 악을 범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거부한 것, 짜증 낸 것, 불평하고 원망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혹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그렇게 하였다면
그 일로 당신은 하나님과 적대자가 됩니다.
3. 다른 사람으로 혼인 잔치를 채우라
1) 이 비유의 핵심➀ : 처음 초청되었던 자는 다시는 참여할 수 없다(8절)
이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천국 잔치를 마련하시고 사람들을 초청하였는데,
사람들이 이런저런 다른 일에 분주하여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왕(하나님)은 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다른 사람을 불러
이 찬치 자리를 채우라고 명합니다.
이것은 본래 초청되었던 자들은
이제 다시 오겠다고 해도 이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거절했으나 이제는 왕(하나님)이 그들을 거절하리라는 것입니다.
2) 이 비유의 핵심➁ : 그 대신 다른 사람을 채우라(9~10절)
그리고 그들을 대신하여 참여한 자들은
그동안 하나님 나라 백성에서 제외되었던 세리와 창기들 같은 죄인들,
그리고 구약에서 개나 돼지로 여김 받던 이방인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자들은
누구든지 다 참여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원하되
내 생명처럼 가장 간절하고도 절실하게 원하고 사모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원하고 사모하는 자들에게 지금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 묵상 : 천국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사모하는 자
당신이 하나님 나라를 그 무엇보다도 가장 절실하게 원하고 사모하고 있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 마음에 절실하게 원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자라야 합니다.
그런 간절함이 있는 사람은
그 왕의 초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원하는 사람이었는데
왕이 원하는 복장을 갖추지 않고 갈 수는 더더욱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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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중심에는 다른 것이 있고,
적당히 신앙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면
그 나라 입구에서 거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 나라를 가장 절실하게 원하고 사모하고 있는지
내 마음을 날마다 점검하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4. 예복을 입지 않은 손님 : 너무 늦지 않게 회개하라
혼인 잔치 자리에 손님이 채워지자 왕은 손님들을 돌아봅니다.
여기에서 왕이 손님들을 돌아보는 것은
마지막 때에 온 세상 만민을 심판하시는 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왕은 그 때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왕이 그에게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는지를 물으나 그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가 대답하지 못한 것은 예복을 입을 기회가 있었으나
그가 고의로 입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 당시 혼인 예복을 입는 관습(11절)
당시에는 일반인의 결혼예식에 가더라도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차림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왕의 잔치에 참여하면서 평소와 같은 허름한 옷차림을 했습니다.
이것은 왕을 비웃는 처사입니다.
2)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회개를 하여 새롭게 된 것을 뜻합니다(11~12절)
옛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은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천국을 간절히 원하고 사모하는 자는
반드시 회개하고 주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늦지 않게 회개해야 합니다.
1세기의 유명한 랍비이며 신학자였던 엘리에체르는
죽기 전에 하루 동안 회개하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죽기 전에 하루 동안 회개할 수만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죽기 하루 전이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3) 예복이 없다는 것은 : 마음에 다른 것을 채운 거짓된 신앙이라는 것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으로 번역된 ‘엔데 뒤메논’의 시제는 ‘완료 분사 중간태’로
‘스스로 의복을 집지 않고 있는 지속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 상태로 계속해서 혼인 잔치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예배는 물론 신앙의 모든 활동에 부지런히 참여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회개도 없고, 참된 믿음의 고백도 없이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자로 계속해서 참여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믿음 없는 세상 사람으로, 이방인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➀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의로 신앙생활을 한 자
예수님을 참되게 믿는 자는 예수께로부터 그 이름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주께서 이름을 빌려주시니 우리가 심판을 받을 때 주님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아,
주님처럼 죄가 하나도 없는 자로 여겨져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도 하지 않고, 예수님과 교제하는 일도 없이
그저 신앙의 프로그램에만 참여할 뿐입니다.
그래서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은 받았으나 여전히 이방인일 뿐입니다.
이런 자는 신앙의 모든 일을 자기의 이름으로 참여하고 있으니
장차 자기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을 받는 자가 됩니다.
➁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한 자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의가 아무것도 없으니,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주님의 의를 선물로 받아
영생을 누리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주께서 선물로 주신 주님의 의로 심판을 받으니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자기의 의를 쌓기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자기가 무엇을 했노라고
성도들에게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자는 주께서 주신 예복이 아니라 자기의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자입니다.
➂ 자기 즐거움, 자기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의 위험
신앙이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즐거움을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오늘 내가 드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을까?”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예배를 찾습니다.
오늘 설교가 마음에 들었다든지,
오늘 성가대가 좋았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기 즐거움,
자기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자기 마음의 평안에 있다고 한다면
이렇게 예배드린다고 할지라도 그에게 더 해 줄 말이 없습니다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자기 자신의 감동과 기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예배이어야 합니다.
➃ 종교적인 감정놀음에 빠지지 마십시오.
이렇게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성도들의 감정만 자극하는 것들을 가리켜 ‘종교적인 감정놀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께서 주신 예복을 입지 않고 자기 옷만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교회 성장에만 몰두하다 보니
성도들의 회개를 별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회개를 강조하려면 허물과 죄에 대한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이런 것을 성도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느끼게 할 만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성도들에게 종교적인 위안을 느끼게 합니다.
● 회개를 한 후에 주께 용서받은 자가 얻는 기쁨이라야 합니다.
회개를 한 후에 주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에게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주셨을 때 느끼는 기쁨과 평안이라야
참된 기쁨과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그보다 먼저 자기의 죄와 싸우는 갈등의 기간을 지나야 합니다.
회개할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죄를 또 반복해서 범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주님 앞에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합니다.
그 동안에 마음의 아픔과 갈등을 느낍니다.
이 깊은 아픔과 통증을 느낀 후에
드디어 내가 주께로부터 용서를 받은 경험을 하게 될 때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마음의 아픔과 통증을 느끼기를 싫어하니
적당히 회개 없는 기쁨과 평강을 느끼게 하려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대중가요를 들으며 즐거워하듯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부르며 즐거워합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은혜로 착각하는 동안
자기가 예복을 입지 않은 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5. 주께서 주시는 예복을 입는 자가 되십시오.
1) 주께서 주시는 예복을 입는 자가 되십시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분주함 때문에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 삶을 마감합니다.
인생의 앞날은 준비하였으나
죽음 후의 삶에 대하여는 준비를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믿음의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역설한 것입니다.
➠ 언젠가는 우리도 이 땅에서 마지막 날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날이 나의 마지막 날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날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항상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며 살아가십시오.
무엇보다도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동행하는 일을 멈추지 마십시오.
천국에 갈 믿음을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주께서 오시는 날까지 주님의 신실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간구하십시오.
2)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만민을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 초청하였으니
청함을 받은 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자신의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으로 여기고
사모하는 자는 참으로 적습니다.
또 하나님 나라를 원하기는 하지만, 회개하고 늘 하나님과 신실한 교제를 나누면서
그날을 준비하며 사는 자들은 참으로 적습니다.
그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신 것입니다.
● 묵상 :
삶이 분주하고, 교회에서의 활동도 분주하여
무엇인가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 기도제목
1. 항상 천국을 사모하고
주님의 오시는 날을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2. 회개하여 죄의 용서함을 받고
항상 주와 동행하며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신앙의 활동만 분주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