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건만
朴埰同 (2024.05.15.22:33)
20세기 개혁 신학의 거목 존 머레이 목사님께서는 그의 명저 ‘{구속} 장호준 역 (서울: 복있는 사람, 2011)’에서 “중생(거듭남)은 순간이다.” 하셨다. 그런데 찰스 스펄전 목사님 외손자 영국 피터 마스터스 목사는 그의 ‘#듣보잡’ 명저(?), 한국교회 연중론(연속적인 중생론) 목사들 중생론 교과서 ‘{영혼의 의사} 손성은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4)’에서 ‘중생은 순간이 아니라 참된 회심에 이르기까지 열 달 동안 연속된다.’며 존 머레이 목사님 중생론을 “개혁신학의 변종”으로 이단시했다.
존 머레이 목사님 중생론을 이단시한 연중론에 치명상을 입혔던 토론이 손성은 목사가 카페지기인 {Daum} 카페 {양무리 마을}에서 2012년 임진년 여름에 있었다. 그로부터 12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건만, 내가 “한국교회 연중론 수장”으로 부르는 예장 고신 손성은 목사 ‘닫힌 머리’는 여전하다. 개혁신학 ‘좁은 의미의 중생’과, ‘넓은 의미의 중생’ 개념은 ‘중생이 좁기도(순간이기도) 하고’, ‘중생이 넓기도(연속되기도) 하다.’는 개념이 아님에도, ‘연중론’이라는 ‘동굴 우상’ 안에 ‘갇힌 머리’다.
★ 존 칼빈 선생님의 넓은(포괄) 의미의 중생 개념: 하나님만의 절대 대권 사역으로서 하나님께서 예정된 자에게 믿음의 씨를 뿌려 살리시는 중생 + 중생의 발현으로서 중생자의 반응인 회심 + 점진 성화
★ 청교도 신학자들의 넓은(포괄) 의미의 중생 개념: 하나님만의 절대 대권 사역으로서 하나님께서 예정된 자에게 믿음의 씨를 뿌려 살리시는 중생 + 중생의 발현으로서 중생자의 반응인 회심
★ 현대 개혁신학의 좁은(엄밀한) 의미의 중생 개념: 하나님만의 절대 대권 사역으로서 하나님께서 예정된 자에게 믿음의 씨를 뿌려 살리시는 중생
논리상 ‘중생’이 ‘회심’에 앞서지만 ‘중생’과 ‘회심’의 ‘#동시성’을 아시고 ‘중생’이라는 말과 ‘회심’이라는 말을 교차해 쓰셨던 청교도 신학자들께서는 “중생은 순간이다.”, “회심은 순간이다.” 하셨다. 그러므로 ㅡ칼빈 선생님께서는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께서 예정된 자에게 믿음의 씨를 뿌려 살리시는 좁은 의미의 중생’도 말씀하시는데ㅡ 칼빈 선생님 중생론을 잇는 개혁신학 구원의 서정 도식은 <중생-회심-칭의>다. “-”은 시간 순서가 아닌 ‘논리 순서’를 뜻하는 기호다. 그러나 존 머레이 목사님 중생론을 이단시한 연중론 도식은 <좁은 중생: 수태 → 열 달 임신 기간: 되풀이하는 거짓 회심 → 넓은 중생: 참된 회심, 즉 출산 – 칭의>다. “→”는 논리 순서가 아닌 ‘시간’을 뜻하는 기호다.
‘영적 탄생’을 ‘육적 탄생’으로 빗대 생각했던 니고데모, ‘거듭나지 못한 니고데모의 중생론으로서 연중론’이 한국교회 연중론 목사들이 12 년 동안 버리지 못한 ‘진리로서 중생론’이었으면, 내가 “한국교회 연중론 수장, 좌장, 우장”으로 부르는 한국교회 연중론 목사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 정도는 12 년이라는 세월 동안 학계에 연중론 논문 하나 정도는 발표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