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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붉은 모래란 뜻의 키질쿰(Kizilkum) 사막에 있는 흙의 성(城)이란 뜻을 가진 기원전 2세기에 건설된 토프락 칼라(Topraq-Kala), 기원전 3~4세기에 건설된 호라즘 지역에 남아있는 옛 성터 중 가장 큰 규모의 유적지인 아야즈 성(Ayaz-Kala), 빨간 성이라는 뜻의 키질칼라(Kyzyl-kala)를 보러 간다.
모든 일행들이 다 가는 것은 아니고 가고 길잡이에게 미리 신청한 사람만 가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가이드나 길잡이가 추천하는 곳은 반드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추천하는 곳은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으로 참가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해외로 여행을 올 필요가 없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오후 2시 경 출발한다. 버스가 출발하자 스키타이족이라고 소개하는 한국어를 꽤 유창하게 하는 가이드가 버스 안에서 호라즘이라는 지역과 호라즘 왕국 그리고 히바 왕국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다.
호라즘은 호울루즘(Kholizm)에서 유래되었는데, 그리스어로 호울리는 태양, 젬은 땅이란 뜻으로 호라즘은 태양의 땅이란 뜻이다. 1년 중 300일이 구름 한 점 없는 청청백일이니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아랄해로 흘러들어가는 아무다리야 강의 비옥한 삼각지대에 자리한 호라즘은 고대문명의 발상지와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었으나, 오랫동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가 1940년대에 이르러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되면서 그 역사와 문화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약 200만년 전 구석기시대의 유물에서 사람의 흔적이 나타났으며, 수백 ㎢의 호라즘 전역에서 1천여 개의 고대도시가 명멸했다고 알려졌다. 원래 이곳에는 이란계 인종이 살고 있었고 기원전 2000년경에 이미 관개농업과 가축사육을 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8~9세기에는 흙벽돌로 집을 지어 정착했으며,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고 독특한 역법과 도량형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호라즘은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와 동유럽 사이의 완충지일 뿐만 아니라, 북방민족들의 남진로 상에 위치하고 있어 일찍부터 동서남북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던 지역이다. 기원전 1세기경 분열돼 있던 부족들이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되기 시작해 3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토프락 카라(Toprak kara)를 수도로 한 호라즘제국이 출범했다. 712년 아랍 동정군에 의해 호라즘전역이 점령되자 수도를 구르간즈(쿤야 우르겐치)로 옮겼는데, 이때부터 구르간즈가 호라즘의 정치와 교역,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11~12세기엔 당대 굴지의 이슬람학자들이 모여들어 이슬람학문 세계의 한 축을 이루었다. 이슬람화가 진전되면서 호라즘제국은 부단히 확대돼 11~12세기에는 동서로 인도에서 이란까지, 남북으로는 인도양부터 아랄해까지 광활한 지역을 포괄하게 되었다. 그러나 1221년 칭기스칸이 이끄는 몽골군에 의해 호라즘제국은 양분되어 남부는 차카타이칸국에, 북부는 킵차크칸국의 치하에 들어갔고 14세기에 티무르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호라즘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힌두쿠시산맥에서 발원해 아랄해로 흘러들어가는 아무다리아강은 호라즘의 젖줄기로 그 역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17세기 전반 카스피해로 흘러들어가던 아무다리아강이 갑자기 물길을 바꾸어 아랄 해로 유입되자 쿤야 우르겐치를 중심으로 한 강 서안은 점차 황폐화 되어가고, 대신 히바를 비롯한 동안 지역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래서 수도를 쿤야 우르겐치에서 히바로 옮김으로써 히바왕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히바왕국은 티무르 제국이 쇠퇴하자 함께 남하한 튀르크계열 우즈벡족이 세운 1511~1920년까지 아랄해 동안과 트란스옥시아나 서부, 즉 현재 우즈베키스탄 서부를 다스린 국가로 우즈벡 동부의 코칸드 칸국, 부하라칸국과 함께 우즈베키스탄 3대칸국들을 이루었던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를 두고 영국과 러시아간 그레이트 게임(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지키려는 영국과 인도 쪽으로 내려가려는 러시아가 벌인 전쟁과 협상)의 결과로 러시아와 인접한 중앙아시아가 침공을 받게 되었고, 러시아는 1868년 부하라칸국, 1873년에는 히바칸국을 점령했다. 1886년에는 페르가나 분지의 코칸트칸국을 점령하면서 코칸드칸국은 합병해 한 주로 만들었지만 부하라 칸국과 히바 칸국은 조약을 맺어 보호국으로 만들어 유지시켰다. 1873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의 보호국이였던 히바 칸국은 1917년 러시아 11월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고, 전근대적(前近代的) 칸국이었던 히바 칸국은 공산주의자에겐 적폐청산 대상이라 어쩔 수 없이 러시아 백군에 힘을 보태 러시아 내전에 참가했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히바에서도 혁명이 일어나 1920년, 화레즘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개편되면서 히바왕국은 멸망하고 1924년 공식적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고 1991년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이 독립해 현재는 이들 국가의 영역이 되었다. 현재는 옛 히바 칸국의 수도로 옛 중앙아시아의 도시가 잘 보존되어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히바(Xiva)와, 호라즘왕조의 수도였던 투르크메니스탄의 쾨네우르겐치(Köneürgenç, 우르겐치) 등은 199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우르겐치를 지나고 아무다리야 강을 건너자 검문소 같은 것이 있는데 이 지역은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자치공화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검문은 하지 않는다. 수도는 누쿠스(Nukus)이고 인구는 170만 정도며, 카라 칼팍은 카라칼팍어로 검은 모자란 의미라고 한다. 카라칼팍의 언어는 우즈벡어보다는 카자흐어와 노가이어에 더욱 유사하고 인종, 문화적으로도 카자흐인과 키르기스인에 가깝고, 투르크계의 카라칼파크인이 공화국 주민의 32%를 차지하기 때문에 독립을 원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허락을 해 주지 않았고, 아랄 해가 지금은 1960년대의 1/10 수준으로 줄어 먹을 물조차 부족할 정도로 말라 버리면서 어업이나 농업 등이 타격을 받고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독립국을 유지할 수가 없어서 독립에 대한 열망은 없다고 한다.
먼저 키질칼라Kyzyl-Kala로 향한다. 히바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도로사정이 안좋아 2시간 가까이 걸린다. 가는 중에 아무다리야(다리야가 강이라는 뜻)가 보인다. 폭이 생각보다 넓고 수량도 많다. 이 강을 따라 주변에 비옥한 농토가 펼쳐지고 그 농토끝에 키질 칼라가 나타난다.
이곳 키질 칼라는 토프락 칼라의 위성 요새로 외침이 발생하면 두 성체가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방어선을 구축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탐사대가 발견을 하지 못했지만 전하는 말에 의하면 키질 칼라는 토프락 칼라와 지하로 연결되는 터널이 있었고 지하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했었다고 한다. 즉 주변 평원에서 포도, 과일, 밀농사를 지으면서 살다가 외침이 발생하면 주민들은 토프락 칼라로 대피하고 군사들은 키질 칼라에 집결했다가 어느 한쪽이 포위를 당하면 지하로 병력을 이동시키든지 성문을 열고 나가 포위망을 펼친 적의 뒤를 치든지 했다고 한다.
엘리크 칼라의 많은 성채는 쿠샨-사산왕조 이후 겨우 4-6세기에 걸쳐 완전히 방기(放棄)되어지만, 토프락 칼라와 함께 이곳 키질칼라는 사만왕조-호라즘왕조를 거쳐 13세기 몽골의 호라즘원정으로 완전 몰락할 때까지 방대한 오아시스지역을 지키는 최전방 요새로 기능을 했다고 한다. 키질칼라에서 내려다보면 아무다리야 강쪽으로 농토와 마을이 풍요로워 보인다.
키질칼라를 둘러보고 키질칼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토프락칼라로 간다. 토프락칼라(Topraq-Kala 토성이란 뜻)는 엘리크칼라(50개 성이란 뜻)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성채라고 한다. 1930년 러시아 탐험대가 토프락 칼라에서 다양한 시대의 도자기, 비단, 양모직물, 금제 장신구, 유리구슬, 호박, 산호 등의 사치품, 다양한 국가의 동전을 발견하였고, 성채의 북쪽에서 주변의 성을 다스렸던 호레즘 통치자의 궁전을 발굴하면서, 이 성이 4세기에 이르러 외침으로 엘리크 칼라 지역이 무너지기 전까지 엘레크 칼라의 50개 성채를 다스렸던 곳으로 추측되고 있다고 한다.
이곳 동쪽 창고지역에서 목판과 양피지로 된 기록문서가 116개나 무더기로 발견되었는데 이중 세 개의 문서는 기록 일을 분간할 수 있었는데 207년, 231년, 232년의 궁전 내탕비(內湯費) 지출입 기록문서로 발굴된 것들은 러시아 에르미따쥐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흔적만 남아 분간하기 쉽지 않지만 이곳도 동,서,남,북으로 나뉜 구역에 따라 기능이 달라 통치자의 궁전이 위치한 북쪽, 창고가 위치한 동쪽, 거주지역인 서쪽, 남쪽엔 조로아스터교의 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토프락칼라에선 다행히도 성의 뼈대가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광활하다. 옛사람들이 살았던 터전이 뼈대만 남은 모습으로 마주할 땐 만감이 교차한다. 지구에서 찰나에 불과한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며 시대를 앞서간다고 느낀 것들이, 후세에 옛 것으로 불리게 되는 날이 머지않아 오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 탁 트인 성 위에 올라서니 관개 수로와 밭도 보이고 제법 푸릇푸릇하다. 먼 옛날엔 이보다 비옥했을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두 개의 사막이 있는데, 하나는 키질쿰(붉은 모래 사막)과 카라쿰(검은 모래 사막)으로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사막은 대부분 키질쿰이다. 히바라는 도시가 키질쿰에서 카라쿰(투르크메니스탄의 대부분) 건너기전에 대상 무역단이 들리던 오아시스같은 도시(이 일대를 호라산 혹은 화레즘지역이라고 한다)여서 부를 축적한 곳이다. 사막이라고 해서 바짝 마른 모래보다는 덤불이 계속 해서 있는 그런 사막이다.
키질쿰사막이 나오고 작은 산 위에 흙으로 만든 성이 두 개가 보이는데 근처에 있는 50여개 성 중 우리가 보려고 하는 성 중 하나인 아야즈 칼라로 옛 호라즘왕국의 히바지역 외성으로 '차가운 성'이랑 뜻이라고 한다. 7~8세기 초 북방이민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흙으로 쌓아 올린 성으로 사막 한가운데 토성들이지만 키질쿰 사막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고, 긴 세월 풍화되고 침식되고 파괴되었지만 보기보다 성벽 규모가 매우 크며, 내부 지면도 그냥 땅이 아니고 아래가 모두 아치구조로 이루어져 옛날 번성했던 시절을 상상하게 돼 생소하면서도 감동이 있다. 우린 먼저 Kyrk Kyz Kala Malaya란 성으로 올라갔는데 성 내부와 성벽은 비바람에 거의 무너져 볼게 거의 없다.
아야즈칼라(Ayaz-Kala)는 바람의 요새라는 뜻으로, 3개의 성으로 되어 있었는데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토성(土城)과 그 아래 직사각형으로 보이는 토성 그리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토성 아래 있는 성으로 직사각형으로 작게 보이는 토성이 기원후 2세기경 쿠샨왕조 때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진짜 아야즈 칼라라고 한다. 이 성은 쿠샨왕조 중흥기에 건축된 아주 중요한 도시 요새였을 것으로 쿠샨왕조가 무너지고 사산왕조가 지역을 점령한 뒤에도, 이곳의 요새 도시들은 그 이후에도 여전히 동쪽의 침입으로부터 서쪽의 오아시스를 방어하는 최전방 국경방어선으로 중요하게 쓰였다고 한다. 아야즈칼라란 성의 이름은 맞은편에 떨어져 있는 작은 요새에 거주하던 공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설적인 노예 아야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아야즈칼라를 비롯한 모든 호라즘 성채는 주변에 강을 끼고 있는데, 사막에서는 강을 따라 진군할 수밖에 없는 외침을 고정된 위치에서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위해 외부에서의 공급 없이도 식량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아야즈 칼라 1,2,3을 찾을 수 있는데 아야즈칼라 1은 왕족들을 위한 성, 아야즈칼라 2는 일반 거주민을 위한 거주 구역,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아야즈 칼라 2에서 키질쿰 평원 쪽을 보면 토대만 남아 있는 구역이 아야즈 칼라 3이다. 아야즈 칼라 3은 포도원, 밀밭, 목장 등이 위해해 있던 곳으로 1,2,3의 기능을 합하면 하나의 온전한 작은 도시가 된다고 한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도시 구획까지 모두 확인 가능하다고 한다.
아야즈 칼라를 끝으로 성채 투어는 끝이 났다.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구경했음에도 세 곳의 칼라를 구경하고 나니 오후 일곱시가 넘었다. 버스에서 미리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고 히바로 출발한다. 히바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히바로 돌아오는 길이 공사로 막혀 오후 11시가 다 돼서야 호텔로 돌아 온다. 참으로 힘들고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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