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방어군으로 동원되었다.
거란·홍건적·왜구 같은 외적이 침입했을 때 승려들이 군사로 동원되었습니다.
정규군을 보조하는 군사력이었다.
관군과 함께 출정하거나, 방어사·원수의 지휘 아래 움직였습니다.
실제 전투에 참가했다.
무기를 들고 성을 지키거나 적을 막고, 때로는 성문을 돌파할 만큼 전투력을 가졌습니다.
사찰 단위로 조직되었다.
흥왕사·홍원사·경복사·왕륜사·안양사·수리사 등 여러 사찰의 승려들이 집단으로 움직였습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징발하였다.
최영처럼 국가 권력자가 승병을 징발하여 군사력으로 활용하려 한 사례가 있습니다.
후방 군사 지원에도 참여했다.
왜구 방어를 위해 전함을 만드는 일에도 승려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곧 직접 전투만이 아니라 군수 지원도 맡았습니다.
정치적 영향력도 있었다.
조위총의 난, 최충헌 제거 시도, 출정 거부 사례를 보면 승군은 독자적 판단과 정치적 행동력을 가진 집단이었습니다.
반란군이나 지방 세력에 활용되기도 했다.
조위총 측이 사찰의 승병 1만여 명을 동원하겠다고 주장한 기록은 승병이 국가뿐 아니라 반란 세력의 군사력으로도 여겨졌음을 보여 줍니다.
평상시에는 승려, 비상시에는 군사였다.
평소에는 사찰에서 수행하던 승려였지만, 전쟁이나 국가 위기 때는 군사로 편성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의승군의 전통적 기반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사명대사의 의승군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 승군·승병 전통 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