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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비추는 태양의 불법 - 제30회 인간혁명의 종교⑩
민중불법(하) - 우리에게 지용의 사명 있노라!
우리 지금 부처님의 뜻을 받아서
묘법유포의 대원(大願)을
드높이 받쳐 들고 혼자서 선다
내 동지는 적고 적은 많도다
우리의 스승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이 옥중에서 만드신 ‘동지의 노래’입니다. 언제나 내 가슴속에 울려 퍼지는 은사의 마음이 담긴 노래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옥사하신 선사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선생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패전의 참화에 괴로워하는 민중 속에서 정의로운 사자왕(師子王)답게 홀로 광선유포의 대원에 일어서셨습니다. 그 심정을 헤아리니 나도 또한 ‘홀로 서자!’는 용기의 생명이 불타오릅니다.
여기에 불멸의 학회정신이 있습니다.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이 사자왕의 혼이 계승되어야만 창가학회는 ‘광선유포하는 종교’로서 명맥을 영원한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홀로 서는’ 정신이 니치렌불법
니치렌불법(日蓮佛法)은 누구에게나 내재한 ‘불성(佛性)’이라는 존극한 생명을 보고 그 무수한 가능성을 끝까지 믿기에 어디까지나 ‘눈앞의 한 사람’과 인연을 맺고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종교입니다. 이것이 ‘민중불법’의 첫째 특징입니다.
지난번에는 이 의의를 ‘수지즉관심(受持卽觀心)’의 법리에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어떠한 비난이나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인간을 존경하는 행동을 끝까지 관철하는 ‘홀로 서는’ 종교입니다. 나는 이 점을 ‘민중불법’의 둘째 특징으로 들고 싶습니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은 그 한 사람이 ‘구제받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무한한 가치에 눈을 뜨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구제받는 존재’에서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존재’로 바뀝니다.
‘격려 받는 쪽’에서 ‘격려하는 쪽’이 됩니다. 스스로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주체가 되어 인간혁명합니다.
‘숙명에 괴로워하며 울던 사람’이 시련에 맞서 승리해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 ‘모든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보내는 사명 있는 사람’으로 강해집니다. ‘숙명’을 ‘사명’으로 바꿉니다.
자신이 존엄하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존엄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본디 내재한 존엄성을 빛내고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라고 일어서는 행동이 불법에서 설하는 보살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한 사람 한사람이 온갖 고난을 극복하면서 만인의 행복을 실현하는 묘법홍통(妙法弘通)의 주인공이 된다, 여기에 ‘지용보살’①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
①지용보살(地涌菩薩) - 법화경 종지용출품 제15에서 석존 멸후에 묘법홍통을 의탁할 사람들로 불러낸 보살들. 대지에서 용출했기에 지용보살이라 부른다. 여래신력품 제21에서 석존이 지용보살의 우두머리인 상행보살에게 멸후 악세의 홍통을 의탁했다.
◆
<본존문답초> (어서 373쪽 17행-374쪽 2행)
이 어본존은 세존이 설해 남기신 후 이천이백삼십여년 동안 일염부제(一閻浮提) 안에 아직 넓힌 사람이 없느니라.
한토(漢土)의 천태와 일본의 전교는 대충 아시고도 조금도 홍통하시지 않았으며 당시야말로 홍통되셔야할 시(時)에 해당하는 것이니라. 경에는 상행(上行), 무변행(無邊行) 등이 나와서 홍통하실 것이라고 설해져 있지만 아직 보이시지 않느니라.
니치렌은 그 사람은 아니지만 대략 알고 있으므로 지용의 보살이 나오실 때까지의 읊조림으로 대강 말하여 황멸도후(況滅度後)의 선구에 해당하는 것이니라.
<현대어역>
이 어본존은 석존이 설해 후세에 남기신 뒤 2230여 년 동안 일염부제(전 세계)에 아직 넓힌 사람이 없다.
중국의 천태대사와 일본의 전교대사는 대략 알고 계셨지만 조금도 넓히지 않으셨다. (말법에 들어선) 지금이 바로 홍통해야 할 때다. 법화경에는 상행보살, 무변행보살 등의 지용보살이 출현해서 넓힌다고 설하는데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니치렌은 그 적임자는 아니지만 대략 이해하고 있으므로 지용보살이 출현할 동안의 도입으로써 대략 설하고 “하물며 내(석존)가 멸도한 뒤에는 한층 더할 것이다”(법화경 법사품 제10)라고 하신 대난에 선봉으로 맞섰다.
‘어본존을 넓히는 사람’의 존재가 초점
<본존문답초>②에는 “법화경의 제목으로써 본존으로 삼을지어다.”(어서 365쪽) 또 “능생(能生)을 가지고 본존으로 삼느니라.”(어서 366쪽)고 일체 제불을 낳는 근원의 불종(佛種)인 어본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의의를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게다가 불멸 후 이 어본존을 넓힌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말법인 지금 누가 이 어본존을 넓히는지 강조하셨습니다.
성훈에는 ‘홍통한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홍교를 실천하는 주체가 없다면 현실적으로 사람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중국의 천태대사와 일본의 전교대사③도 모두 법학경을 선양하고 그 원의(元意)를 대략 알면서도 결국 남묘호렌게쿄의 어본존을 넓히지 않았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당신이 지용보살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하시면서 ‘황멸도후’④의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대난에 ‘선구’에 서서 홀로 맞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황멸도후’에 비추어 보면 대성인이 바로 말법의 법화경 행자고, 상행즉말법 (上行卽末法)의 어본불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대성인은 어본존을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어서 1243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디 ‘기치’는 전쟁터에서 쓰는 깃발입니다. 부처와 마(魔)의 공방전 속에서 ‘법화홍통’을 달성하는, 즉 광선유포라는 신념의 투쟁이라는 기치로 배독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민중 한 사람 한사람이 인생에서 승리하고 행복한 경애를 여는 것이 바로 광선유포의 근본목적입니다. 그 위대한 이상을 실현하는 기치입니다.
◇
②<본존문답초> - 1278년 9월, 아와 지방(지바현 남부) 세이쵸사의 조켄보에게 주신 어서 십대부(十大部) 중 하나. 조켄보가 어본존에 관해 질문한 데에 문답형식으로 답하셨다. 말법 홍통의 본존은 법화경의 제목임을 여러 종파의 본존을 파절하며 논하셨다.
③천태대사(天台大師), 전교대사(傳敎大師) - 천태대사는 중국의 진나라 수나라 시대에 법화경을 선양하고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관법(觀法)을 확립. 전교대사는 헤이안조 시대의 일본 천태종의 개조(開祖)로 <법화수구>, <현계론> 등을 저술했다. 두 사람 모두 법화경을 선양하고 넓혔다. 석존, 니치렌 대성인과 함께 ‘삼국사사(三國四師)’로 손꼽힌다.
④황멸도후(況滅度後) - 법화경 법사품 제10의 구절. “이 경은 여래가 지금 세상에 있을 때에도 원질이 많거늘 하물며 멸도한 후임에 있어서랴"(법화경 362쪽) 하고 씌어 있다. 석존이 재세할 때도 원질(적대하고 반발함)이 많은데 하물며 부처의 멸후에 법화경을 홍통하는 자는 당연히 더 많은 원질을 받고 대난을 만난다는 뜻.
◆
<제법실상초> (어서 1359쪽 13행-1 6행)
지용의 보살의 선구는 니치렌 일인(一人)이로다. 지용의 보살의 수에도 들어가리라. 만약 니치렌이 지용의 보살의 수에 든다면 어찌 니치렌의 제자단나, 지용의 유류(流類)가 아니리오.
경에 가로되 “능히 은밀하게 한 사람을 위하여 법화경의 내지 일구(一句)를설한다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요. 여래가 보낸 바로서 여래의 사(事)를 행함이니라”고, 어찌 다른 사람의 일을 설하셨겠느뇨.
<현대어역>
지용보살의 선구는 니치렌 한 사람이다. 지용보살 축에 틀림없이 들어가리라. 만약 니치렌이 지용보살 축에 들어간다면 니치렌의 제자단나는 같은 지용의 동지가 아니겠는가.
법화경에 “남몰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법화경을 그리고 또 법화경의 한 구절을 설하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의 사자로서 여래가 보내, 여래의 일을 행하였다.”(법사품 제10)고 설한 글은 다른 사람을 두고 설한 것이 아니다.
지용은 ‘홀로 서는' 용자의 이명(異名)
<제법실상초>⑤에는 “지용의 보살의 선구는 니치렌 일인이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이 직접 홀로 선 선구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법화경 용출품⑥에는 육만항하사 등의 무수한 보살이 땅을 가르고 용출했다고 설합니다.
어서에 “상행보살(上行菩薩)이 대지에서 나오실 때에는 춤추며 나오셨느니라.”(어서 1300쪽) 하고 표현하듯이 용약환희하며 출현했습니다.
상행보살을 비롯한 지용의 대행진에 어깨를 나란히 한 보살들은 부처에 필적할 만한 위용을 갖추어 “위위당당(巍巍堂堂)하고 존고(尊高)”(어서 211쪽)합니다. 지용의 누구라도 홀로 선 용자입니다.
창가학회의 영원한 원점은 도다(戶田) 선생님이 ‘나는 지용보살’이라고 깨달으신 옥중오달에 있습니다.
창가의 사제는 거기에서 출발해 전란의 비참함과 민중의 고뇌가 끊이지 않는 지구상에서 인간을 행복과 평화로 이끌고자 광선유포의 대원에 일어섰습니다.
그 사명을 자각하기에 어떠한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굴하지 않고 홀로 서는 진정한 용자로서 민중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한 사람’부터 저 변을 바꾸는 변혁이
올해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미국의 철학자 소로⑦도 ‘홀로 서는’ 인간의 위대한 힘을 확신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회개혁의 원점입니다. 소로는 외쳤습니다.
“천명이라도, 아니 백명이라도, 아니 내가 이름을 들 수 있는 성실한 사람이 단 열명만이라도, 아니 ‘성실한’ 사람이 한 사람만 일어서서 행동을 일으키면 노예제도도 폐지될 것이라 확신하는 바이다.” 하고 말입니다.
공민권운동의 지도자 킹 박사⑧는 이 말을 인용해 인종차별로 고통 받던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한창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힘쓸 때 ‘이미 이전보다 당당히 활보한다’ 그리고 ‘이 나라의 양심은 지표면 속에서 격렬하게 요통치고 있다’고 지적 했습니다.
민중 한 사람 한사람의 마음이 바뀌고 행동이 바뀔 때 마침내 세상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용은 자각한 민중의 저력
지용보살은 대지에서 기세 좋게 뛰어나옵니다.
어서에 “대지의 밑에 숨겨두었던 참된 제자”(어서 905쪽) 또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부터 지금까지 제자가 되시어서 일념도 부처를 잊어버리지 않고 계시는 대보살(大菩薩)”(어서 1306쪽)이라고도 씌어 있습니다. 구원부터 진실하고도 불이(不二)인 사제의 길을 관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을 단련하셨으리라.”(어서 1186쪽) 하고 상찬하신 ‘지념견고(志念堅固)’하고 ‘대인욕력(大忍辱力)’이 있는 보살들입니다.⑨
그 모습을 보고 미륵을 비롯해 적화, 타방의 보살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대지’는 어떠한 차별도 불식한 보편적인 생명을 상징합니다.
어서에는 “니치렌과 동의란다면 지용의 보살이 아니겠뇨.”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하는 자는 남녀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의 보살의 출현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이니라.”(어서 1360쪽) 하고 씌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대성인은 무한히 펼쳐진 ‘민중의 대지’에서 지용보살을 미래 영원히 불러내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도조(東條)의 고을, 가타우미(片海)의 어부의 아들이니라.”(어서 370쪽) 하고 자신을 평범한 민중의 한 사람이라고 드높이 선언하셨습니다.
‘지용보살의 출현’은 대지를 딛고 살아가는 민중이 생명 깊은 곳에 있는 힘을 발휘해 역사의 무대로 뛰어나와 정체된 사회를 근저부터 변혁하는 모습에도 통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SGl는 192개국·지역으로 넓혀져 이제껏 불법과 전혀 인연이 없던 나라들에서도 지용보살이 용현해 어본존을 수지하고 묘법을 부르며 ‘좋은 시민’으로서 생기 넘치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후생가외(後生可畏, 뒤에 태어난 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라는 말을 인용해 후계의 청년을 격려하셨습니다.
청년은 ‘미래'이자 ‘보배’이고 ‘희망’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본 각지에서 개최한 청년대회나 세계 각국에서 청년들의 활약을 지켜본 지식인들이 “이렇게 훌륭한 청년들이 있다니!” 하고 놀라며 찬탄합니다. 잇따라 출현하는 ‘새로운 지용청년’의 진열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창가의 동지가 바로 ‘지용의 용자’
초창기부터 우리 등지는 가난과 병, 가정불화 등의 고뇌를 안고서 절복과 홍교에 열심히 도전했습니다. ‘당신 병이나 낫고 와라’ ‘당신이 가난에서 벗어나면 신심하겠다’ 등 비웃음과 모멸 찬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기진 동지는 절대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담을 들을 때마다 ‘어서에 있는 대로다’ ‘이로써 숙명의 쇠사슬을 끊었구나’ 하고 더욱더 투혼을 불태우며 고개를 들고 가슴을 폈습니다.
가장 힘들고 가장 괴로울 때에 중생을 구제한 것이 지용보살이기에 창가의 동지는 그야말로 지용의 용자입니다.
자신의 고뇌나 어려움과 싸우면서 광선유포의 사명에 꿋꿋이 살아 인간혁명하고 고뇌에 지지 않는 당당한 자기자신을 구축해 사회에 공헌했습니다.
대성인이 “지용의 의(義)”(어서 1360쪽)라고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이 나라, 저 땅에도 ‘광선유포는 우리 손으로 해내겠다!’고 결의하는 동지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광포의 사명과 서원을 공유하는 벗이 전 세계에서 연대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가학회가 불의불칙(佛意佛勅)의 화합승(和合憎) 이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철저한 일대일 대화!
다음 법사품의 “한 사람을 위해서”(법화경 357쪽)라는 글월은 불법 인간주의의 규범 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눈앞의 한 사람을 격려하고자, 괴로워하는 한 사람을 구제하고자 움직이고 말하고 끈기 있게 일대일로 대화한다, 이 가장 착실한 대화가 바로 사실상 ‘부처의 일’(여래의 사<事>)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지막에 “어찌 다른 사람의 일을 설하셨겠느뇨.”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경문에 설한 ‘여래의 심부름꾼’은 다른 누군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대성인에게 직결해 광선유포를 위해 여설수행(如說修行)을 하는 우리를 말합니다.
인간혁명의 근본은 지용의 생명을 자각하는 데 있습니다. 그 본질은 사제불이(師弟不二)의 행동입니다. 그 자각하고 긍지를 느끼는 곳에 지용의 저력이 불끈 솟아납니다.
한 사람 한사람을 ‘사자(師子)’로 바꾸는 종교
대성인의 ‘민중불법’은 민중 한 사람 한사람이 ‘홀로 서는’ 사자(師子)로 바뀌는 강한 힘이 있는 종교입니다. 그 의의를 아쓰하라법난⑩을 통해 다시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법난에서는 전혀 무고한 죄로 법화경을 수지한 농민 문하 20명을 체포해 가마쿠라로 연행했습니다. 그리고 문하는 당시 가장 권력을 자랑하던 헤이노 사에몬노조에게 고문에 가까운 잔인한 취조를 당하고 ‘법화경을 버리라’고 협박당했습니다.
이때 문하들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1279년 10월 17일 닛코 상인 등에게 보내신 <성인등답서>에는 “그들이 감죄(勘罪)를 받을 때, 남묘호롄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였다라고 운운. 참으로 예삿일이 아니며”(어서 1455쪽)라고 씌어 있습니다.
오만한 권력자들은 민중을 위협하면 두려움에 떨며 납작 엎드릴 것이라 자만했습니다. 헤이노사에몬노조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쓰하라의 농민 문하들은 법화경을 버리기는커녕 소리 높여 제목을 계속 불렀습니다.
아마도 헤이노 사에몬노조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굴복을 거부하는 민중이 있으리라고는 이해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강하고 현명한 불굴의 민중이 탄생
스스로 홀로 서서 진실을 깨달은 민중은 권력의 마성이 가하는 박해에 한발 짝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비록 몸은 따르는 듯 보이더라도 마음은 절대로 굴복하지 않습니다. 강하고 현명하고 위대한 민중의 출현입니다.
저 사도유배의 대난에 맞닥뜨렸을 때에는 스승과 함께 끝까지 싸운 일부 문화를 제외하고 많은 제자가 퇴전하고 말았습니다. 그 속에는 대성인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제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쓰하라의 문하들은 대성인을 직접 뵌 적도 없습니다. 신심한 햇수도 짧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위협하는 대난에도 아쓰하라 문하들은 의연하게 굴하지 않았습니다. 대성인에게 직결했습니다.
이것이 궁극적인 사제불이입니다. 스승의 마음을 그대로 이어받은 제자는 시공을 초월해 탄생합니다.
스승과 똑같이 민중도 사자왕이다! 실로 그런 불이의 민중이 출현하기를 대성인은 바라고 애타게 기다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쓰하라법난이 한창일 때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를 이루셨다고 선언하신 것이 아닐까요.
◇
⑤<제법실상초> - 1273년 5월, 사이렌보에게 주신 어서. ‘제법실상’에 관한 질문에 대해 불법의 깊은 뜻을 설하셨다.
제자들에게 대성인과 동의라면 지용보살이라고 말하고 광선유포는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전하셨다.
⑥법화경 용출품 - 법화경 종지용출품 제15 석존 멸후의 말법에 법화경 홍통을 짊어질 지용보살이 출현한다. 이 품에서 지용보살의 특성을 여러 가지로 설했다. 육만항하사는 그 지용보살의 숫자가 무수함을 나타낸다. 일항하사는 항하(갠지스강)의 모래를 말함. 또 상행보살은 지용보살을 대표하는 사보살의 우두머리(필두) 격인 보살.
⑦소로 - 1817년~1862년. 미국의 사상가이자 수필가. 하버드대학교 졸업 에머슨 등과 함께 ‘미국 르네상스인’의 선구자로 꼽힌다. 저서 <시민불복종>은 간디와 킹박사의 불복종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저서 <월든 – 숲속의 생활>에서 환경운동의 선구자로도 일컫는다. 소로의 저서 <시민 불복종>에서 인용.
⑧킹 박사 - 마틴 루터 킹. 1929년~1968년 미국의 공민권운동의 지도자. 조지아주 애틀랜타 태생. ‘버스보이콧운동’을 비롯해 공민권운동에 앞장서서 활동. 열여덟번 이상 투옥당하고 세 차례의 폭탄테러를 당하면서도 간디의 사상에 공명해 비폭력주의를 관철했다. 196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 1968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암살당했다. 킹저서 <자유를 향한 대행진>에서 인용.
⑨지념견고(志念堅固) 대인욕력(大忍辱力) - 두 가지 모두 지용보살의 특징을 표현한 말. “그 뜻과 생각은 견고하고, 인욕의 큰 힘이 있어”(법화경 459쪽)라고 씌어 있다.
⑩아쓰하라법난(熱原法難) - 1275년경부터 1283년 무렵에 걸쳐 스루가 지방 후지가미가타(지금의 시즈오카현 후지시)의 아쓰하라 지역에서 니치렌 대성인 문하가 받은 법난(法難) 1279년에는 농민 문하 20명이 부당하게 체포되어 가마쿠라로 호송되었다. 헤이노 사에몬노조 요리쓰나는 혹독하게 취조하며 신앙을 버리라고 요구했지만 한사람도 퇴전하지 않았다. 진시로 등 세 명이 참수당해 순교했다.
◆
<관심본존초> (어서 253쪽 15행-254쪽 3행)
이제 말법의 초(初)에 소(小)로써 대(大)를 치고 권(權)으로써 실(實)을 파하고, 동서(東西)함께 이를 멸실하여 천지전도(天地顚倒)했느니라. 적화(迹化)의 사의(四依)는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제천은 그 나라를 버리고 이룰 수호하지 않느니라.
이때에 지용의 보살이 비로소 세상에 출현하여, 단 묘호렌게쿄의 오자를 가지고 유치(幼稚)에게 복용케 하니 (중략)
이와 같은 고귀한 대보살이 삼불(三佛)에게 약속하고 이를 수지하니 말법의 초에 나오시지 않겠느뇨.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보살(四菩薩)이 절복을 나타낼 때는 현왕(賢王)이 되어 우왕(愚王)을 계책하고, 섭수(攝受)를 행할 때는 승이 되어 정법을 홍지(弘持)함이라.
<현대어역>
지금 말법시대 초를 맞아 사람들은 소승교로 대승교를 공격하고. 권교로 실교를 부정한다. 마치 동인지 서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천지가 뒤바뀐 듯한 상태다. 적불의 제자인 사위의 보살은 모습을 감춰버렸다. 제천선신은 그와 같은 나라를 버리고 떠나 수호하지 않는다.
이때에 지용보살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출현해 어린아이처럼 정법에 무지한 중생에게 묘호렌게쿄의 오자라는 대양약만 먹인다. (중략)
이처럼 고귀한 대보살(지용보살)이 석존, 다보불. 시방의 부처들에게 (말법시대에 묘법을 홍통하겠다) 약속하고, 묘호렌게쿄의 오자를 수지했으니 어찌 말법시대 초에 출현하지 않을 것인가.
결론적으로 다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용보살의 지도자인 (상행, 무변행, 정행, 안립행의) 사보살은 절복을 실천할 때는 현왕이 되어 우왕을 질타한다. 섭수를 행할 때는 승이 되어 정법을 넓히고 수지한다.
말법 광포의 실현은 ‘현왕(賢王)의 절복’에서
<관심본존초>⑪에서는 지용보살이 출현하는 ‘때’가 ‘말법의 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독(三毒)이 강성한 오탁악세이고 투쟁언송(鬪諍言訟)의 난세입니다.⑫
사상과 종교에서는 ‘똑똑한 체’하는 아견이 횡행하고 소가 대를 부수는 등 계속 세상이 전도되어 근본적으로 존경해야 할 본존이 뒤섞여 어지럽습니다. 따라서 마땅히 있어야 할 사람과 사회의 가치관이 사라지고 정신의 토대가 무너집니다.
이 가장 혼미한 시대에 지용보살이 나타나 아직 진실에 무지한 말대(末代)의 유치한 중생에게 “묘호렌게쿄의 오자”라는 대양약을 주십니다.
그리고 성훈의 윗부분에 이 지용보살의 현실적인 행동을 ‘현왕’과 ‘승(憎)’의 비교로 밝히셨습니다.
특히 지용보살이 말법에 “절복을 나타낼” 때에는 ‘현왕’ 즉 ‘재가’의 현명한 지도자가 되어 거친 사회에 출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왕을 계책”함은 민중을 불행하게 만드는 권력자의 그릇됨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현대로 말하면 ‘현왕’은 민중 속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근원의 악과 싸우는 현자 한 사람 한사람입니다.
어디까지나 방법(謗法)이 충만한 약세 속에서 불법을 홍통하는 말대에 걸친 대절복행이 얼마나 위대한 성업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참으로 깊은 뜻이 담긴 성훈입니다.
말법의 광선유포는 현실사회를 살아가는 자각한 민중 자신이 민중의 바다 속에서 눈앞의 한 민중의 생명변혁을 위해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는 대선언이 라고 배독할 수 있습니다.
‘생명존엄의 사회’를 구축하는 보살
어쨌든 ‘자타 함께 하는 행복’을 구축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지용보살이 아닙니다. 인간의 괴로움과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그 사회적 사명을 완수해 야단 진정한 보살입니다.
현실사회를 비롯한 일상적인 인간생활에서 불법의 생명존엄 사상을 침투시키는 ‘현왕’이라는 인간주의의 행동은 구체적으로는 문화, 교육, 평화 차원으로 나타납니다.
‘문화의 대지’를 경작하고 ‘교육의 빛’을 넓히고 ‘평화의 길’을 열어갑니다. 그 속에서 인류의 조화와 공생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웁니다.
악세에 지혜와 자비라는 불법의 흐름을
도다 선생님은 홀로 서는 사자왕이었습니다. “75만 세대 절복은 나 혼자서라도 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뒤를 이어 창가의 사제는 철저히 인간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그리고 현실사회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민중불법’을 넓혔습니다.
사제불이의 실천에 불법의 지혜와 자비정신이 맥동하고 ‘광선유포’ 즉 ‘세계평화’라는 확고한 민중의 조류가 확대됨을 보여주었습니다.
지용의 서원을 관철해 ‘생명존엄의 세기’를 열었습니다.
‘창가학회불’의 위광세력을 확대
세계에서 ‘창가의 인간주의’에 대한 기대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지용보살을 자각한 늠름한 청년들의 눈동자와 지용보살의 사명을 띤 젊은 여성들의 태양 같은 웃음이 시대를 변혁하는 희망으로 빛을 발합니다.
그야말로 곳곳마다 지용보살의 사명을 자각한 청년 용자가 “동시에 솟아나와”(법화경 452쪽) 새로운 자절광선유포를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민중불법’을 실현하고 묘법유포의 대원을 완수할 ‘창가학회불(佛)’다운 위광세력을 더욱더 일염부제에 넓히고 발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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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관심본존초> - 1273년 4월. 사도유배 중 이치노사와에서 쓰신 어서. 말법의 사람들이 신앙해 성불하기 위한 근본법인 남묘호렌게쿄의 본존에 관해 설하셨다.
⑫‘삼독(三毒)’은 가장 기본적인 번뇌인 ‘탐(貪)’ ‘진(瞋)’ ‘치(癡)’를 말함. ‘오탁(五濁)’은 악세의 탁한 양상. 생명의 탁한 모습을 다섯 종류로 분류한 것. 법화경 방편품 제2에 있다.(법화경 124쪽) 겁탁(시대의 탁함), 번뇌탁(번뇌로 인한 탁함). 중생탁(사람들의 탁함). 견탁(사상의 탁함). 명탁(단명 등 수명에 관한 탁함). ‘투쟁언송(鬪諍言訟)’은 대집경에 석존 멸후 2000년이 지나면 “투쟁언송하여 백법은몰(白法隱沒)하리라.”고 설해져 말법에서는 불법 중에서 투쟁이 심해지고 정법이 유실되는 시대가 됨을 밝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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