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정리: 2001. 5. 1
09:00내령리-09:40팔랑마을-11:10바래봉-11:50팔랑치-12:00점심-12:45헬기장-12:50부운치-13:40세동치-14:00세걸산-14:40오얏골갈림길-15:30오얏골-15:50덕동마을
계절의 여왕 5월 첫날이다. 운좋게도 4월 들어 지리산행을 3번이나 했고, 오늘도 남원O적과 산행이 며칠 전에 약속되었다. 남원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산내를 지나 내령리 앞 공터에 주차하고 느긋한 걸음으로 팔랑마을로 향한다. 팔랑마을로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오른편으로 오래전에 폐교되어 방치된 학교가 흉측한 몰골로 있는데 지금까지 리모델링이 되거나 철거가 되지 않아 자연경관을 해치고 있어 안타깝다. 길 언저리에는 엊그제 내린 비에 싱그러운 봄꽃이 곱고 화사하다. 내령리를 출발하여 사십여 분 만에 팔랑마을에 도착했다. 팔랑마을에서 바라본 바래봉이 까마득하다. 바래봉이 저렇게 높게 보인 적도 있었던가. 운봉에서 바라보는 것과 크게 다르다. 그동안 전형적인 지리산 산골 마을임을 자부해 왔던 팔랑마을은 멀리서 보아도 현대식으로 예쁘게 새로 단장을 하였다. 마을 입구 앞 계곡에서 물통에 물을 채운다.
계곡 좌측의 길을 오르면 팔랑치에 이르고, 오른쪽 계곡으로 치고 올라가면 바래봉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마을 첫 초가집을 돌아 능선길을 직접 타고 바래봉을 오르기로 한다.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희미하게 나 있는 마을 사람들이 가끔 다니는 길이다. 초입부터 힘든 된비알. 팔랑마을을 출발한 지 삼십여 분이 지나 능선의 중간쯤에 올랐다. 삼정산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저 멀리 명선봉과 토끼봉이 남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나뭇가지를 헤치며 10시 30여 분 1,025m의 봉우리에 올라 조망에 열중한다.
서편 정면을 바라보니 푸른 초지의 바래봉이 품에 안길 듯 앞 마중한다. 중북부 능선 뒤로 천왕봉을 중심으로 주능이 조망된다. 조금 더 오르니 잠시 자신의 모습을 숨겼던 거대한 반야봉이 우뚝 솟았다. 산죽 길이 시작된다. 최근들어 내 키보다 웃자란 산죽과 육박전을 자주 치른 탓에 키 큰 산죽 길은 나에게 부담의 대상이 되었다. 바래봉 정상에는 많은 산님의 모습이 보인다. 푹신푹신하게 서서히 변하는 초지를 딛고 바래봉에 다시 올랐다. 산정엔 시원한 바람이 분다. 지난번 바래봉을 올랐을 때는 강한 바람과 황사에 봉우리들이 희뿌옇게 보였는데 엊그제 내린 비에 정화되어 오늘은 선명하다. 아래의 운봉길에서는 산님이 계속해서 바래봉을 향해 오르고 있다. 올해의 바래봉 철쭉제는 일주일 후인 5월 6일. 그런데 바래봉의 철쭉은 아직도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았다.
양 방목 감시소에서 물을 보충한다. 남쪽으로는 서북부 능선길이 노고단을 향하여 확실하고 만복대도 저 멀리 까마득하다. 바래봉에서 능선 길은 많은 산님이 오간 탓에 길이 유실되고 넓어져서 조망하며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지리산 그 어디에도 이렇게 양순한 길은 없을 것이다. 곧 있을 바래봉 축제를 대비하여 데크 전망대를 새로 만들고 있다. 며칠 후 바래봉 일대는 온통 철쭉으로 가득할 것이다. 팔랑치를 향하여 걷는다. 우측으로는 드넓은 운봉 평원의 집들과 논과 밭, 아파트, 비닐하우스가 가깝고 좌측의 삼정산과 뱀사골계곡, 반야봉을 보면서 걸어 나간다. 팔랑치를 지나 운봉 벌판을 보면서 점심상을 차린다. 점심을 먹은 후 능선 산행을 계속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하산하면 된다.
돌아온 길 뒤를 바라보니 바래봉이 한참 물러나 있다. 헬기장을 지나 도착한 곳은 부운치. 계속 북쪽의 능선길을 오르고 내리고 나아간다. 정면을 바라보니 노고단이 까마득하다. 아래로는 멀리 부운 마을과 삼정산, 반선 마을, 그리고 와운골로 오르는 포장길이 뚜렷하다. 풍광에 취해 손쉬운 산행은 계속된다. 전북청소년수련원에서 오르는 길과 능선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세동치. 이정표를 바라보니 아직도 정령치가 4.3㎞가 남았고 청소년 수련원은 2.1㎞이다. 곧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야영과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상부운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직진하면 세걸산이다.
14시 정각이 되어서 세걸산에 올랐다. 1,220m의 세걸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달궁마을이 가깝다. 삼정산과 영원령이 보이며, 반야봉의 심마니 능선 그리고 중북부 능선 너머로 천왕봉과 중봉 제석봉의 모습도 보인다. 만복대는 허리가 잘려 보기 흉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니 토끼봉이 멋지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멋진 풍광에 넋이나가 또 세걸산에서 삼십여 분을 머문다. 아까 바래봉에서 잠시 스쳤던 산님 2명도 세걸산에 뒤늦게 도착하여 조망을 즐기고 있다. 시간상으로 지금쯤 하산하면 넉넉하다. 십여 분 뒤 좌측으로 희미한 갈림길이 나오는데 아마도 덕동마을과 오얏골로 내려가는 길로 예상된다. 덕동마을과 운봉마을을 넘나드는 길이다. 최근 들어서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없다. 오늘은 미련 없이 여기서 하산이다.
앞서가던 남원O적 앞에서 매 한 마리가 놀라 쏜살같이 푸드덕 날아간다. 날아간 자리를 살펴보니 여러 개의 알이 있는데 매는 끝까지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알을 지키다가 이탈한 것 같다. 모성애는 인간이나 짐승이나 같은 모양이다. 가파르고 급한 산죽 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멧돼지가 숨었던 움터도 나온다.
오후 3시 30분. 세걸산을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되어 오얏골 마을에 도착했다. 덕동마을까지는 좁은 포장길이 이어진다. 곧 달궁마을로 오르는 성삼재 길과 합류를 하고 마을 표지판을 살피니 이화동이라 한다. 이름하여 배꽃마을이다. 달궁 계곡물에 고단한 발을 담그며 피로를 푼다.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지나가는 승용차를 향해 손을 흔드니 뒷좌석을 비워 준다.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 팔랑마을까지 편안히 나간다. 남원에 도착하여 술자리에 합류한 정읍의 L선생을 만나 맛난 두부 버섯전골 찌개에 하산주를 마시며 지리산 여정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