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53
어둠의 그림자
마약이 심상치 않다. 대검찰청의‘마약류 범죄백서’를 보면 2017년에 비해 2022년에는 30%나 마약사범이 증가했다. 특히 젊은이들의 마약류 사범이 4배 넘게 폭증했다고 한다. 여기에 마약사범 재범률이 36%에 달할 정도로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안을 더한다.
사실 이 같은 통계 수치는 허수다. 마약 관련 범죄는 대표적인 암수범죄(暗數犯罪)로서 인지된 범죄 수보다 훨씬 많이 발생한다. 박성수 세명대 교수는 마약류 범죄 암수율을 28배로 하여 작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마약을 접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52만 명 정도로 추정했다. 마약사범의 20~30배 정도의 숨은 마약 상습범이 존재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분석이다. 그만큼 음지에 가려진 마약 유통이 많다.
허상의 거울은 깨졌다. 한국은 이미 마약 소비국이다. 유엔에서 5,000만 명당 마약사범이 1만 명 이하일 때 ‘마약청정국가’라고 정의하고 있다면 이를 인정해야 한다. 이런 사회 문제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정부가 마약 관련 전담조직을 정비하고 수사 인력을 늘리기로 한 것에 정치권은 물론 사회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마약 퇴치에 함께 나서야 할 때다.
마약은 말 그대로 약이다. 의사들에게 가장 훌륭한 인류의 발명품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마약을 고를지 모른다.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고 생살을 째서 수술한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몸이 오그라든다. 이처럼 위대한 발명품이 인간을 병들게 하는 약물로 전락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마약은 불타는 사랑놀이만큼이나 인화성이 높다. 살을 비집는 칼날의 고통을 망각할 정도면 마약이 갖는 유혹의 휘발성은 억누르기 어렵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나방처럼 자신의 영혼을 검댕으로 태우는 중독자들의 심리를 설명할 수 없다.
유명연예인이 마약사범으로 조사를 받고 있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TV에 나와 사회 문제에 참견하여 주가를 높이던 자라 꼴값 떨었다는 비난이 인다. 얼마 전에는 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 강남구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마약이 든 음료를 나눠주고 부모를 협박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면 마약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야 한다.
마약이 번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 산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익성 때문이다. 코카인의 경우 남미 원산지에서 구매하여 북미지역에 판매하면 6,000%가 넘는 이익을 남긴다고 한다. 공급자들이 마약을 다이어트를 위한 ‘식욕억제제’나 ‘피로회복제’라고 속여 중독자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유도 엄청난 마진율 때문이다.
마약사범 증가는 사회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비대면구매’라는 유통 방식의 변화다. 인터넷 공간과 텔레그램과 같은 SNS나 가상화폐는 마약 구매 정보를 쉽게 취득하고 은밀하게 거래할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정보통신기술의 그림자다.
경영학에서는 주주에 대한 배당을 위험부담에 대한 보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만약 회사가 망하기라도 하면 투자금을 고스란히 날려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경영자의 역할은 주주가치의 극대화라는 명제로 수렴된다. 이 같은 주주의 위험부담이 효율적인 자원 배분과 합리적인 경영활동을 강제하고 결국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사회적 부를 축적한다.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거래는 공급자잉여와 소비자잉여를 창출한다. 이것들이 사회적잉여로 귀결되고 거래가 활발할수록 잉여의 정도는 늘어난다. 그렇다고 모든 수요공급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마약의 경우 거래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
마약 공급자들도 엄청난 위험을 부담한다. 하지만 그들은 기업들이 일군 부가가치를 비용으로 상각한다. 마약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더 바보 같은 짓을 한다. 배당금은커녕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저당 잡히고 파멸의 독약을 사서 마신다. 마약은 중독의 특성상 가격에 대한 수요의 비탄력성이 높아 단속할수록 공급자는 이익이 확대되고 소비자는 더 궁핍해지는 역설이 성립한다. 여러 가지로 고민할 물건이다.
치안정책연구소의 ‘마약류 및 유해 약물의 사회적 손실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마약류에 의한 사회적 비용이 한해 2조 2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마약을 비용으로만 접근할 수도 없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인간이 피폐한 영혼과 육체를 쓰레기 더미 위에 스스로 내려놓는 모습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라 살림이 어렵더라도 중독자 치료에 인색할 수는 없다.
유명인들이 저지르는 마약범죄가 연일 보도된다. 이런 뉴스는 가치관이 미성숙한 청소년들로서는 호기심일 수도 있다. 마약범죄가 어느 수준을 벗어나면 사회적 경각심이 해체되고 마약 중독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미국이 그 본보기다. 그렇다고 양형기준을 높이는 방법으로 마약범죄를 줄이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일명 필라델피아의 ‘좀비랜드’는 충격 그 자체다. 남의 일이 아니다. 닭 병에 걸린 듯, 동공이 풀린 채 해마 같은 모습으로 비틀거리다가 인도에 주저앉아 졸고 있는 영상이 강남이나 이태원에서 촬영될까 두렵다.
미국에서는 주요 도시마다 마약 해독제 자판기 설치를 두고 시끄럽다. 이 문제는 다음 대선의 중요 이슈 중에 하나로 다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국가의 붕괴는 전란이나 경제력 상실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치안 불안 측면에서도 시민 모두가 마약 퇴치에 관심을 둬야 한다. 마침 정부가 나서 검찰에서부터 지방자치단체까지 참여하는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출범시켰다. 제일을 제대로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