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18장 1~20절
묵상제목: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 기독교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 교회는 불가시적 교회(invisible church)와 가시적 교회(visible church)로 구분됩니다. 불가시적 교회에 관하여 다음의 설명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교회" 라는 용어를 쓰면서 실제로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불가시적 교회)에는 오직 ‘양자’됨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들인 자들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속할 수가 없다. 이렇게 볼 때, 이 교회에는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성도들만이 아니라 세상이 시작된 이래 모든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포함되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4권1장7절 |
이 불가시적 교회에는 구원간증이나 신앙 간증을 한 것만으로는 소속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성령에 의해 성화의 삶을 살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자들만이 소속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선택을 믿는 교회들은 위 불가시적 교회를 참된 교회로 봅니다. 이에 비해 천주교나 재세례파 및 이에서 파생된 교회들은 불가시적 교회 의 개념을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시적 교회를 중요시합니다. 가시적 교회에 대해서 다음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교회”라는 명칭이 땅 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예배한다고 고백하는 자들의 무리를 지칭하기도 한다(가시적 교회). 곧, 세례를 통하여 믿음에 속한 생활을 시작하고,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참된 교리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증거하며, 주의 말씀 안에서 일치하며 또한 말씀 전하는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사역을 보존하는 무리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교회(가시적 교회)에는, 그리스도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그저 이름과 외양(外樣)뿐인 많은 외식자들이 뒤섞여 있다. 야심을 가진 자들과, 탐욕스러운 자들, 쟁투를 일삼는 자들, 악담하는 자들, 그리고 생활이 매우 부정한 자들이 거기에 많이 섞여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일시적으로 용납되는데, 이는 유능한 재판 기관을 통해서도 이들의 죄상을 책벌할 수가 없기 때문이요, 혹은 철저한 권징이 언제나 합당하게 정상적으로 시행되지를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독교강요』, 4권1장7절 |
위의 가시적 교회에서는 예배∙신앙고백∙교인들 간의 교제에 주안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외적 행태와 교인의 언변에 기초한 신앙고백이 교회에 가입하는 조건이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오히려 나일론과 위선자가 존재하는 허점이 생깁니다. 칼빈은 선지자적 사명을 잘한 것 같습니다. 이 가시적 교회에 ‘그리스도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자들이 존재할 것을 예견했기 때문입니다. 설교나 신학∙교리를 무시하고… 성찬∙예배와 교인 간 교제를 강조하는 비주류 교회들을 보면, 의외로 기성 교파교회의 평범한 신자만도 못한 자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불가시적 교회’(거룩한 보편적 교회)의 존재를 모르거나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 신성모독의 발언을 하고 성경 속 여인들이 창녀들이고 전쟁 중에는 창녀촌 운영이 불가피하다! 는 등의 매우 사악하고 기괴한 발언을 한 이단적 목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을 지켜본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가 의외로 종교생활 초기에는 착하고 수줍음을 타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목사는 도대체 언제부터 타락하고 변질된 것일까요? 우리 인간은 사람의 속을 다는 모릅니다. 사람의 속에 마음의 중심을 온전히 아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다음 성경구절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편 51: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사무엘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
『기독교강요』에도 이와 관련한 좋은 표현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인간의 판단의 한계와 하나님의 배려 그리하여, 주께서는 특정한 표지들(marks)과 증표들(tokens)을 통해서 교회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바를 우리에게 지적해 주셨다. 이미 앞에서 인용한 말씀에서 바울이 선언하는 바와 같이, 과연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냐 하는 것을 아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소유하신 특권이다(딤후 2:19). 그리하여 사람들이 온당치 못하게 경솔히 행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다. 날마다 일어나는 사건들 자체가 하나님의 은밀한 판단들이 우리 인간의 지혜를 얼마나 뛰어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완전히 잃어버렸고 도저히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올바른 길로 부름을 받아 돌아오며, 다른 사람들보다 더 확고하게 믿음에 서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타락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듯이 - 하나님의 은밀한 예정에 따라서, “많은 양들이 바깥에 있고, 많은 늑대들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며 자기 자신의 신분을 알지도 못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자기 백성으로 찍어 놓으셨다.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표지를 공공연히 달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중에 과연 어떤 자들이 거짓이 없이 거룩하며 또한 끝까지(마 24:13) -구원의 최종점까지- 견디게 될 될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보고 계시는 것이다. 『기독교강요』, 4권1장8절 |
위 칼빈의 표현 중 제 무릎을 팍! 치게 만드는 표현이 있습니다 :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표지를 공공연히 달고 있는 자들’!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내적으로 고요히 간직하지 않고 공공연히 노출하면 몇 가지 위험이 다가옵니다. (1) 먼저는 주관적 확신을 떠벌임으로서 진실하지 못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고 (2) 대(對)사회적 신앙고백은 하지 않고 교회 내부적으로만 신앙고백을 하여 전도는 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경우가 있고 (3) 대(對)사회적 신앙고백을 하는 용기는 냈지만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악한 모습을 보이므로 말미암아 개독교 포교에 앞장서고 연약한 영혼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아편이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참된 진리로서의 기독교는 영생을 주고 영혼에 참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명목상의 기독교를 내세우고 세상 사람보다도 더 악하게 사는 개독교는 아편이나 마약 같은 영혼의 독약이 됩니다. 이단∙사이비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기성교단에 속한 개독교인들의 범죄와 비리를, ‘그것이 알고 싶다’나 ‘궁금한 이야기 Y’ 등에서 보면 가히 목불인견입니다. 성경은 이미 오래 전에 개독교가 등장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고린도전서에 많이 등장을 합니다.
고전1:11 고전3:3 고전5:1 고전6:7 고전15:12 등 - 직접 읽어 보세요! |
현대인들은 교회의 타락이나 개독교의 등장을 새삼스럽게 충격으로만 받아들이지만, 이것은 역사와 교회사에서, 심지어는 성경에조차도 등장을 경고한 것입니다. 개독교의 악행은 어쩌면 현대보다 과거에 더 심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교회 내부의 치리와 징계가 현실적으로 행사되었고 현대에는 그것이 잘 행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 문제가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의 경우에는 물리적∙사회적 힘을 동원해서라도 종교의 타락과 교회의 변질을 방지하고 개혁하려고 했습니다만. 현대사회에서는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위에 언급한 빤스 목사의 경우 청교도 혁명의 시기에 있었더라면 육체적 고통을 당하고 처형을 당했을 것입니다.
●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너무나 좋은 내용이 많고 개독교의 타락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위와 같은 얘기는 이쯤 하고요.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묵상자 본인의 묵상 나눔을 하겠습니다. 먼저 마18:11을 보면 개역개정판에는 ‘없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없음’이 KJV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인자는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다!’(For the Son of man is come to save that which was lost.)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모든’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일부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일부의 사람들’은 (1) 유대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유대인의 왕) (2) 하나님께 예정∙선택받은 자들로 볼 수도 있으며 (3) 불가시적 교회의 지체들로 볼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을 혈통상 유대인로만 따지지 않고 ‘이면적 유대인’으로 본다면 (1)의 해석은 큰 의미가 없어집니다.
롬2: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
세대주의에는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좇아서 이신칭의에 의해 이면적 유대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유대인 우월주의와 유대인 박해의 마인드는 모두 지양되어야 하며,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선진들의 그 믿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즉 교회의 지체들에게도 계승된다고 보는 것이 신약성경적이고 복음적으로도 합당합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은 예수님께서 친히 직접 말씀하신 교회론이기 때문에 특히 중요합니다. 이 귀하고 거룩한 말씀을 따라서 묵상자가 교회란 무엇인가? 소박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①~④). ① 교회는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지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인의 회’(會, society)를 이룬 곳입니다. 천국은 천로역정의 종착역이고 교회는 그곳으로 운행 중인 열차이며 그 안에 탄 여객들이 ‘그리스도인의 회’인 것입니다.
마18: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
천국에 들어갈 자들의 마음은 개독교인들처럼 타락하지 않았고 교회의 회원이라고 자처하지만 위선하는 나일론 교인들처럼 교활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순진한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인이 되고 복잡한 장사를 하며 먹고 살지라도 이면에 마음속에 심령 가운데에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함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내면을 잘 성찰해 봅시다! ② ‘그리스도인의 회’는 성도의 교제를 하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그리스도인을 영접하고 실족하지 않게 보호해 줍니다.
마18: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
어린 아이와 같은 다른 그리스도인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실족자는 물론이고 그 가해자에게 치명적인 해악이 된다고 위 본문 구절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체들은 죄를 안 지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투쟁하고 혹시 짓더라도 최대한 빨리 회개합니다. 다음 본문은 문자적 해석과 실행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교회의 지체는 죄와 치열하게 투쟁한다는 강조의 의미로 보면 좋겠고 그게 현실적입니다.
마18:7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
불가시적 교회와 유형교회는 구분되지만 서로 일치하는 부분과 경우도 있습니다. ③ 유형교회의 최소조직의 규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18: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최소한 2명 내지 3명 이상이 모임(會)을 이룬 것이 유형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여 기도하고 합심기도를 합니다. 그러므로 ④ 교회는 두세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합심 기도하는 곳입니다. 이 합심 기도의 능력이 있는 곳에는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 예수님이 함께 하는 모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시다!
첫댓글 좋은 내용 잘 보았는데, 더 세밀하게 읽을게요.
성경과 교리가 버무려진 묵상입니다. 감사합니다.
가시적교회에 하나님의 자녀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위선자, 구원 받지 못한 자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죠. 쭉정이는 가만 두었다가 추수 때에 불에 사르시겠다 하셨으므로 이 땅에서는 나일론 신자가 있어도 하나님께 맡겨두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네-
가시적교회와 불가시적교회에 대한 자세한 설명 감사드려요. 가시적교회와 불가시적교회가 결코 동일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정확한 현실 인식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 및 댓글에 감사합니다.
신학과 교리를 모르던 초신자 때는 잘 몰랐지만, 불가시적 교회의 의미를 모르면 천주교나 이상한 비주류 교회의 병든 모습으로 가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론이 성경적하면서도 현실적인 것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교회에 대해 잘 알려주는 귀한 글입니다. 잘 보았고, 감사합니다.
다행이네요. 조금 긴 편인데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카페를 통해 정말 고급(?)스러운 신앙 및 신학 교육을 받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 늘 이런 귀한 사역을 감당해 주셔서 그저 감사합니다. 오늘도 배우고 갑니다.
공감과 격려에 감사합니다^^
이 글에 고급스러운 것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완전고급'이고 기독교강요는 '고급'이고... 그러나 저의 묵상은 '보통' 정도입니다.
힘찬 한 주의 시작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