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기밥솥도 있고 가스 불도 있어서 밥을 하려면
정말 편하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 국민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가마솥에 밥을 하던 생각이 난다. 그 시절엔
산에 가서 직접 나무를 해왔다. 가끔 누룽지가 먹고
싶어서 냄비 밥을 해 먹어봐도 그때 먹던 누룽지 맛은
느껴 볼래야 느낄 수가 없다.
만약 지금 불을 지펴서 밥을 하라고 한다면 불편해서
그걸 어떻게 하냐고 차라리 안 먹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불편한 것 자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당연히 산에 가서 나무를 해야 했고 밥을
먹기 위해서는 당연히 불을 지펴야 했다.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모을 때가 생각이 난다. 떨어진
솔잎들은 까꾸리로 모아서 가마솥 옆에 쌓아두면
어느새 닭들이 한 마리씩 들어와 거기에 알을 낳았다.
참으로 신기한 녀석들이었다. 가끔은 산에 올라가서
움푹 패인 자리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달걀이 있었다.
어떻게 산에 올라가서 알 낳을 생각을 했을지, 집안에
낳으면 자신들이 낳은 알들이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게 아쉬웠던 것일까, 알을 품고서 새끼를
까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닭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사람의 눈에 발견된 이상 그냥 두면 다른 짐승에게 먹힐 것이 분명했다. 족제비가 닭을 물어가는
일도 있었고 낳은 알을 그냥 둘리 만무했다.산에는
뱀도 많았고 산짐승이 있으니 닭이 병아리를 볼 일은
없었다.
아직도 내가 어린 시절 살던 고향에 가면 여전히
부모님이 사신다. 예전에 살았던 작은 집은 구들장만
남아 작은 텃밭이 되어서 엄마가 깻잎이랑, 가지, 고추,
상추, 호박, 박 등을 조금씩 심어 가꾸신 채소들이
밥상에 오르곤 했는데 세월이 더 흐른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도로가 되어 차들이 지나간다.
산 바로 아래 있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한번 나갈려면
지금도 한 시간에 한 번 있는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고 학교에 갈려면 또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다녔는데 불편한 게 너무 싫어서 늘 떠나고 싶었었다.
집에 가려고 시내버스에서 내려 마을버스 시간이
맞지 않으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해서 번거로워도
다른 버스를 타고 내려 집까지 걸어서 가기도 했었는데
집까지 가는 논길에서 제일 무서웠던 건 종종 뱀을
만날 때였다. 그때는 산이며 들, 때로는 집 마당까지
뱀이 기어 다녀서 무서움에 치를 떨었다.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시골에 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자랄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좋은 것도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논둑 길을 걸으며 들꽃도 꺾고,
풀잎 따다 풀피리도 불고, 토끼풀 사이에 숨어 있는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늘 먹는 건
밭에서 나는 채소들이었지만, 지금도 그때 먹었던
것들이 더 좋다고 생각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시골을 떠나 살면서는 모든 걸 다 사 먹어야 하고
혹시나 몸에 좋지 않을까 때로는 걱정도 된다.
가끔은 사람들이 왜 생선을 안 좋아하냐고 묻곤한다.
그 이유는 어릴 때부터 밭에서 나는 채소들만 먹고
자라서인 것 같다. 음식도 먹어봐야 맛을 알듯이 못
먹어본 것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많아서 가끔 누군가를
만나 밖에서 밥을 먹을 때가 제일 고민이 되곤 한다.
먹어본 음식들이 많이 없으니 뭘 먹어야 맛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메뉴 고르는 게 힘들다. 난
채소들만 많은 밥상이라도 밥 한 그릇 뚝딱 잘 비울
수 있다. 그래서 뭘 먹을지 선택을 하라는 사람보다
뭘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알아서 추천해 주는
사람이 더 좋다. 맛있는 음식이 특별한 게 있겠는가.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더 중요할 테니까...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나이가 더 들면 도시를 떠나서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싶다. 작은 텃밭에 갖가지 먹을
수 있는 채소들을 심어서 가꾸며 찾아오는 지인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인심도 좋지 않을까. 이렇듯 누구나
꿈꾸는 것이 있을 것이다. 안전한 먹거리, 때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들을 생각하며 늘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비꽃(이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