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 불교문예 겨울호
기획특집■시인연구 송수권 론
토속적 세계관과 생명 존중의 시
오 세 영┃시인·서울대 교수
1.
1975년 제 1회 <문학사상文學思想>지의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산문에 기대어』(1980), 『꿈꾸는 섬』(1982), 『아도啞陶』(1984), 『새야 새야 파랑새야』(서사시집 1986), 『우리들의 땅』(1988),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별밤지기』(1992),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1994),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1998), 『파천무』(2001) 등 열 권의 시집을 간행한 송수권은 그의 30 여년의 시작 생애를 통해 시종 일관 두가지 성격을 보여주었다.
첫째 그 추구하는 대상이 일반적으로 자연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의 작품 가운데는 지리적 공간으로서 특정 장소나 생활하는 인간에 관한 것도 적지는 않다. 특정 장소에 관한 작품들은 하도 많아서 심지어는 ‘기행시’라는 장르의 분류가 가능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궁극적으로는 그 소재나 배경이나 발상 등에서 어떤 식이든 자연과 관련을 맺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자연은 정지용鄭芝溶이나 청록파靑鹿派들이 추구했던 것과 같은 순수 자연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인간화된 자연 혹은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의 시의 이와같은 특징은 그가 도시 문명이나 물질 혹은 사물과 같은 것엔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민속적 혹은 민중적 관점에서 대상 ― 그러니까 앞에서 제시한 자연, 장소,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민중’이란 물론 어떤 계급적, 이념적인 성격을 지향하는 사람들 즉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나 ‘인민(people)’이라기보다는 향토민(鄕土民: men of peasantry community) 혹은 문명으로부터 소외되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토속인 즉 ‘Volk’를 지칭한 말이다. 그의 시에 한편으로 회고적 정서, 전통 지향 의식, 에니미즘이나 샤머니즘적 사유가 팽배하고 다른 한편으로 민중 저항의식이 표출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모두는 민속적 삶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인 것이다.
물론 송수권이라 해서 그의 시 세계가 항상 고정 불변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시 역시 문단 등단에서 두 번째 시집 『꿈꾸는 섬』까지의 제 1기(1975-1982), 세 번째 시집『아도啞陶』에서 여섯번째 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까지의 제 2기(1982-1991), 일곱 번째시집 『별밤지기』 이후의 제 3기(1991-)에 걸쳐 나름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이는 대체로 그의 자연인식과 민속적 세계관의 굴절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앞서 지적했듯 송수권은 데뷔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시를 써왔다. 그러나 그의 그같은 관심이 시기적으로 항상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필자가 보기로 제 1기에 있어서 자연은 주로 에니미즘의 세계였고, 제 2기의 자연은 생활 공간, 제 3기의 자연은 생태 환경의 세계였다.
누이야
가을 산 그리매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문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山茶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 없이
건네이던 것을
- 「산문山門에 기대어」
아침에 나가 보면 호젓한 산길을
혼자서 가고 있었다.
오빠수떼들의 진한 울음처럼
발 아래 꽃잎들이 짓밟혀 있고
한 밤내 저민 향내 오답싹에 조금
묻혀가지고
차마 갈까 차마 갈까 애 타는 걸음
조금씩 뒤돌아보듯 가고 있었다.
산길을 벗어나면 아득한 벌판
언뜻언뜻 물미는 구름 속에
꽃 사당년같이 얼굴 한 번 가려 흐느끼고
벌판을 나서면 가로지른 강물이
소리 내어 따라오고 거기서 너는
비로소 독부毒婦같은 마음을 지었다.
검은 눈썹 밀어놓고 도끼 하나를
물 속에 벼리었다.
아침에 나가보면 암중같이
독한 암중같이 이제는 강을 건너
소매 자락까지 펼치며
훨훨 나는 듯이 가고 있었다.
- 「달」
제 1기에 쓰여진 자연시의 예들이다. 무엇보다 에니미즘의 반영이 눈에 띈다. 원래 에니미즘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살아 숨쉬는 실체로서 어떤 정령精靈에 의해 생명력이 불어넣어졌다’1)고 보는 세계관인데 위의 시들 역시 그와 같은 성격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라 할 인용시 「산문에 기대어」의 경우, 한낱 물질에 지나지 않은 강물이 마치 하나의 생명체인 것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우선 이 시의 제 2행에 제시된 ‘눈썹’이 그러하다. 계곡 물에 쏠려 가는 갈잎을 생명체만이 지닐 수 있는 ‘눈썹’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4행의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에서도 시인은 계곡의 흘러가는 물을 ‘눈물’로, 계곡의 돌 틈바귀에서 자지러지는 물소리를 ‘억제하는 울음 소리’로 환치하여 계곡 돌 틈의 적막하게 흐르는 물소리를 마치 ‘돌로 눌러 죽인 눈물의 울음소리’인 것처럼 형상화시키고 있다. 계곡의 적막한 물소리가 이렇듯 누이의 무엇인가 숨기고 억제된 울음소리로 해석될 수 있는 힌트는 계곡 물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가로 막고 서 있는 돌들의 저항(돌들과의 부딪힘)에 의하여 소리를 낸다는 점에 있다. 이와같은 전제 아래서 이 시는 전체적으로 산은 하나의 인간이며 ― 이 계곡 물이 합쳐 이루어낸 ― 강물은 그가 울고 있는 울음이 된다.
제 2시집에 실린 「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시에서 달은 단순한 천체의 한 위성이 아니라 혼령이 깃든 생명체이다. 시인은 ― 아직 지지 않은 채 ― 서녘 하늘에 기웃이 걸려 있는 아침 달에게서 하룻 밤을 같이 보낸 정인情人과 이제 막 이별한 뒤 먼 길을 재촉하는 나그네의 모습을 본다. 즉 달은 ‘호젓한 산길을 혼자 걷거나’ ‘독한 암중같이/ 이제는 강을 건너/ 소매자락까지 펼치며/ 훨훨 나는 듯이 가는’ 존재이다. 뿐만 아니다. 이 시의 달은 인간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하고( “발 아래 꽃잎들이 짓밟혀 있고/한 밤내 저민 향네 오답싹에 조금 묻혀 가지고”) 이별에 애태우기도(“차마 갈까 차마 갈까 애타는 걸음/ 조금씩 뒤돌아 보듯 가고 있었다”), 슬퍼하기도 하며(“꽃사당년같이 얼굴 한 번 가려 흐느끼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한다.(“벌판을 나서면 가로지른 강물이/ 소리내어 따라오고 거기서 너는/ 비로소 독부毒婦 같은 마음을 지었다”) 단순한 광물질에 불과한 달을 이처럼 사랑하고 미워하고 슬퍼하는 존재로 보는 시인의 상상력은 말할 것 없이 에니미즘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리하여 송수권의 시 제 1기에 보여준 자연은 이렇듯 에니미즘이 충만하다. 그것은 그 자체로 살아 있으면서 서로 생각과 감정이 영통靈通 하고 상호 삶을 공유하는 세계이다. 그런데 이와같은 원시적 사유는 인위에 오염되지 않은 어린이들의 천진무구한 상상 속에서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동화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그것은 모든 동화적 세계가 에니미즘에 기초하고, 또 모든 동시童詩의 보편적 수사법이 의인법 혹은 활유법에 의존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방울꽃」, 「술래야 나는 요즘 몸이 아프다.」, 「꿈꾸는 섬」, 「목련 설화」, 「풍경」, 「꿀벌」, 「봄」, 「달팽이 집들」, 「감꽃」 등이 이 경향에 속하나 임의로 그 중에서 한편 만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
달팽이 집 몇 개가 그림 속에 흩어진
초草집들 속에선 누가 숨어 사는지
착한 아기와 며느리라도 숨어 사는지
딸각딸각 베를 짜는 아침의 방직紡織의 즐거운
베틀 소리가 들린다.
가벼운 깃털들이 비단 수실 꽃주머니를 차고
날아다닌다.
또 그 초집들 속에선 누가 선약仙藥을 달이는지
벌레들의 똥이 화풍단花風丹 알약처럼 흩어져 있다.
간밤엔 무슨 잔치라도 있었느냐
조롱구슬 같은 별들이 떴다 자물린 흔적
한 밤내 울고 간 귀뚜라미의 흰 날개뼈와
부서져 쌓인 음부音符들
풀밭에 오면 전쟁도 미움도 시기도 없다.
이제 막 잠을 깨고 나온달팽이 한 마리
달디 단 이슬 한 모금에 환각의 뿔을 흔든다.
- 「아침 풀밭」
인용시는 어느 이른 아침, 풀밭을 기어 다니는 달팽이들에 대하여 쓴 작품이다. 우선 그 형태면에 있어서 풀밭의 동그란 달팽이 집을 푸른 들의 초가집으로 대체시킨 비유가 신선하다. 이렇게 일단 달팽이집을 농촌의 초가집으로 설정해두자 이제 시인의 상상력은 이차로 그 초가집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결과 시인은 그 집의 착한 며느리는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으며, 마당에는 누군가를 위해 닳이는 선약이 끓고 있고, 방안에선 이제 막 잠을 깬 주인이 기침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눈에 선하도록 그려 보여준 한 가정의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은 분명 동화적 환상세계이다. 그것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을 달팽이에게서 시인의 에니미즘적 상상력이 빚어낸 자연의 내밀한 모습들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제 2기에 들면서 그의 자연시들은 이제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전적으로 제 1기의 특징에서 자유스러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대체로 생활공간으로서의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송수권은 제 2기에 와 에니미즘적 자연보다는 생활 공간으로서의 자연에 보다 집착하고 있는 듯하다.
여름날 아침에 달디단 이슬 한 모금에
우엉잎 속에 숨어 춤추는 달팽이
………
가을 바람 찬 바람
야윈 뿔에 감겨서
우엉잎 밭에 서리 낄 때……
피여 피여 굳은 피여
내 혼령의 자지러진 피
이 가을엔 낙엽져서
너는 어느 도시의 변두리
목을 꺽고
뉘네 집 전세방을 얻어가누
- 「가을 바람 찬 바람」
같은 달팽이에 관한 작품들이면서도 위의 시는 그 앞 인용시 「아침 풀밭」에 비해 관심 두는 바가 전혀 다르다. 후자는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관념 세계의 이상을 그리고 있지만 전자는 바로 생활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후자는 에니미즘적 신화세계를 동경하지만 전자는 리얼리즘적 현실세계를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위의 시에서 달팽이는 더 이상 탈속한 자연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하여 현실과 맞서 싸우는 생활인이 된다. 그것은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의 다음과 같은 진술 즉 “이 가을엔 낙엽져서/ 너는 어느 도시의 변두리/ 목을 꺽고/ 뉘네 집 전세방을 얻어가누”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리고 있는 바, 추운 겨울에 도시의 변두리에서 전세방을 얻어 근근히 삶을 영위해 가는 달팽이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동화적 환상세계의 주인공이 아닌 것이다.
………
이렇게 자작나무숲과 삼나무 숲들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그 울창한 숲의 경계선을 걸어나가면서 이야기한다.
선거가 끝난 후의 지역 감정에 대하여 나는 정관수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따금 삼나무 숲 우듬지에서 힘겨운 눈뭉치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자궁 봉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설해목이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빨간 목댕기를 두른 산 꿩이 숲 위를
치 솟는 것이 보였다.
그 원시림의 굉음에 짓눌려 헐벗은 자작나무 숲들이 흔들리고
허리통이 굵은 삼나무들도 푸들거리는 것이 보인다.
저것들이 이 세상 가장 신성불가침의 집이 되고 안락의자가 되고……
그러고 보니 나는 경계선 바깥의 이쪽 자작나무숲에 대하여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셈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던 그 낯선 정직성에 대하여는
이야기 하지 않은 셈이다.
빼마른 자작나무숲들의 끌텅이와 옹이진 삶에 대하여
결국 낱낱의 하나이면서 전체가 이루어내는 그 비정한 삶에 대하여
이야기한 셈이다.
자작나무 숲과 산나무 숲의 경계선을 걸어 나가면서
- 「겨울 산」
길이가 긴 관계로 앞부분을 생략했지만 윗시의 첫 두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겨울에 우리는 기도할 것이 너무나 많음을 안다/ 추악함과 아름다움의 개념에 대하여 원천부정과 원천봉쇄에 대하여……”이와같은 모두 발언이 암시하듯 이 시에서 그리고 있는 자연 즉 ‘겨울 산’은 현실을 비판하는 거울의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양면兩面을 지니고 있는데 하나는 ‘삼나무 숲’으로 비유된 민중의 삶의 태도요, 다른 하나는 ‘자작나무 숲’으로 비유된 민중의 정신적 덕목이다. 그것은 각각 민중의 자기 헌신적 삶과 도덕적 건강성 또는 정직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진술이 있기 때문이다. 즉 “허리통이 굵은 삼나무들도 푸들거리는 것이 보인다./ 저것들이 이 세상 가장 신성불가침의 집이 되고 안락의자가 되고……/ 그러고 보니 나는 경계선 바깥의 이쪽 자작나무숲에 대하여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셈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던 그 낯선 정직성에 대하여는……” 여기서 ‘쓰러져 이 세상의 가장 신성불가침한 집이 되고 안락의자가 된’ 삼나무가 정직하고 선량한 민중의 자기 헌신적 삶의 비유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생활을 발견한 송수권은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것을 현실과 투쟁하는 민중의식으로 승화시킨다. 이는 물론 그가 일관되게 추구한 민속적 세계관과 결부시켜 이해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민속적 세계의 주체라 할 향토민(Volk)이 민중의 기층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과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부분이다.
…………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년 한 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꽹가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 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 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도 장타령도
타는 내음……
- 「대숲 바람소리」
시인은 자연 속에서 단지 현실이나 생활만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제 민중의 함성소리를 듣는다. 인용된 부분 모두가 마찬가지이겠으나 특히 제 2연의 경우가 그러하다.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꽹가리 소리들……” 이라는 시행이 바로 동학항쟁을 묘사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 1 기의 에니미즘적 자연시의 극단에 동화적 세계가 있었던 것처럼 이제 제 2기 생활 공간의 자연시의 극단에는 이처럼 민중의 저항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제 3기에 들어 송수권의 자연 인식은 다시 한차례 변모를 보여준다. 그것은 1기의 에니미즘적 자연, 2기의 생활공간으로서의 자연과는 또 다른 생명탐구의 자연이라 할 수 있다. 확실히 송수권이 제 3기에 와서 다루는 자연은 생명 탐구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다. 그러나 송수권의 이와같은 변화는 물론 전 시기의 그것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에니미즘은 이 세상 모든 것엔 생명이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세계관이며 민중의식은 생의 자연스러운 발현을 무엇보다 고귀한 가치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정신임으로 이 양자에겐 본래부터 생명 귀의 사상이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르다면 시에서 1, 2기의 생명 의식이 간접화 추상화되어 있는 반면 3기의 생명탐구는 직접적, 구체적으로 발설되고 있다는 것 정도일 뿐이다. 그리하여 송수권은 이제 그의 시에서 생명에 대한 문제를 보다 감각적, 실천적, 현실적으로 다루게 된다.
①
짙푸른
보리밭 사잇길로 5월은 온다.
하늘 뒤에서
생수生水를 퍼 내듯
들길에 날리는 종달새 울음
강 건너 과수원이
연한 녹색 초원이 되면서
탱자울 가시마다 꽃이 피어
눈 쌓인 겨울 골짜기 같다.
- 「5월」
②
온몸에 자잘한 흰 꽃을 달기로는
사오월 우리 들에 핀 욕심 많은
조팝나무 가지의 꽃들마나 한 것이 있을라고
조팝나무 가지 꽃들 속에 귀를 모아 본다.
조팝나무 가지 꽃들 속에는 네다섯 살짜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자치기를 하는지 사방치기를 하는지
온통 즐거움의 소리들이다.
그것도 볼따구니에 정신 없이 밥풀을 쥐어 발라서
머리에 송송 도장 버짐이 찍힌 놈들이다.
코를 훌쩍이는 녀석들도 있다.
금방 지붕 위의 까치에게 헌 이빨을 내어주고 왔는지
앞니 빠진 밥투정이도 보인다.
조팝나무 가지 꽃들 속엔 봄날 이런 아이들 웃음소리가
한 종일 떠날 줄 모른다.
- 「조팝나무가지의 꽃들」
③
경쾌한 봄밤이 오고 있다.
지네산 능선 위의 잡힌 달무리
아침에 문 열고 나서니
겨우내 아프게 살아 꿈틀거리던
산벼랑의 고드람발이
한순간에 거대한 낙차落差로 바뀌어 있다.
굳었다 풀어지는 가락
아아 이 놀라운 생의 기쁨
- 「낙차落差」
①은 제 3기의 시작이 된 시집 『별밤지기』 수록 첫 번째 작품으로―그런 까닭에 그 시사하는 바 크다.― 그 주제는 생명 예찬이다. 시인은 5월의 신록 속에서 생명의 무한한 약동을 느끼고 있다. ‘짙푸른 보리밭’ ‘5월’, ‘생수’, ‘종달새 울음’, ‘녹색 초원이 된 과수원’, ‘울타리의 꽃’ 등 이 시에서 제시된 이미지들이 이를 말해 준다. 보리밭은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새싹을 피워 올린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왔고 그 외에도 ‘계절의 여왕으로서의 5월’, ‘종달새의 비상’, ‘물오른 과목나무의 신록’, ‘활짝 핀 꽃 망울’ 등 역시 보편적 상상력에 있어서 모두 생명의 발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5월의 자연에 감응된 화자의 영혼이 생명의 충동과 교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내 영혼도 새로 풀물이 들기 시작한다”)
②에서 시인이 조팝나무 꽃에게서 보았던 것은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모습들이다. 그것은 이 시에서 ‘머리에 송송 도장버짐이 찍힌 놈’, ‘코를 훌쩍이는 놈’, ‘앞니 빠진 밥투정이’ 등으로 제시된바와 같이 인위적 구속에서부터 벗어나 생의 본능대로 뛰노는 자연 속의 아이들로 그려진다. 그 중에서도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네 다섯살 짜리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자치기나 사방치기를 하는 아이들의 즐거운 소리’로 표상된 그들의 웃음 소리이다. 아이들이 생명의 상징이라는 것2) 역시 원형 상상력의 일반적 통설임은 다 아는 바와 같지만 특히 인간에게 있어 ‘웃음소리’란 ― 웃음은 리비도가 충족되는데서 오는 희열인 까닭에 ― 생명력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인간은 생명의 쇠락이나 훼손에 대하여는 슬픔 혹은 울음을, 그와 반대로 생명력의 신장이나 충족에 대하여는 기쁨 혹은 웃음으로 반응한다.
③은 춥고 어두운 겨울이 막 가고 이제 봄이 시작되는 날의 어떤 경이감을 시로 쓴 작품인데 그 경이감이 ― 시의 결말에서 직접 토로되고 있듯 ― ‘놀라운 생의 기쁨’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시인은 어제 저녁까지도 꽁꽁 얼어붙어 있어 영영 물러갈 것 같지 않던 겨울의 추위가 이 아침 불현듯이 내습한 봄에 의해 한 순간 종적없이 사라지는 것을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의 해빙을 통해 바라보면서 문득 생명력에 대한 경탄의 감을 금치 못한다. 생명이란 그 아무리 미약한 것이라 할 지라도 잠재적으로 세계를 변혁시킬,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 3기에 들어 송수권이 자연을 통해서 탐구하고 있는 것은 에니미즘도, 생활 공간도 아니요, 생명이 주는 감동 그 자체였다. 따라서 이 시기 그가 궁극적으로 다다른 곳이 생명 옹호 혹은 생명 외경의 세계였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는 이를 형상화시킨 시를 일러 그의 생태환경시(ecological poetry)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제 3기에 와서 송수권은 생태시나 생태시에 준하는 작품을 다수 발표한다.
하단下端 갈대 숲에 와서 늘 가슴 울먹였다.
바다 쪽에서 밀리는 잔잔한 노을 속에 내 두 뺨은
복숭아처럼 익어 갔고
철새들의 날개짓이 가슴 가득 무너져 내렸다.
고등학교 시절 한 여류시인이 되겠다던 소녀와
첫사랑을 속삭였고
여름날 갈 숲을 헤쳐 물새알의 따뜻한 온기에 입맞췄다.
바다새의 파란 울음 소리와 모래밭의 모래 무덤 속에서
아나벨리의 죽음을 꿈꾸었다.
재첩 국물에 주막집 술이 밤새도록 익어갔던 곳
철근을 박은 거대한 한 왕국이 오래 전에 이곳에 들어섰다.
비오디 361 피피엠 갈밭의 긴 수로가 끊기고
사상 공단에서 흘러나온 찌꺼기에 갈매기 떼 몰려와
쓰레 무덤을 뒤졌다.
높이 나는 갈매기가 아니라 저 비정한 삶의 갈매기---
독극물에 치었는지 어제는 재갈매기 떼로 죽었다.
인부 둘이 나와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듯이
모래 무덤을 파고 시체들을 안장했다.
- 「뿔」
하단下端은 부산 근교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거대한 산업 공단의 하나이다. 시인에 의하면 아직 공단이 들어서기 이전의 그곳은 원래 하얀 모래밭과 아름다운 갈대 숲과 파아란 바닷물에 둘러 싸인 철새들의 도래지, 말하자면 생태 환경의 낙원이었고 꿈과 낭만의 요람이었다. 시인은 이를 시에서 “고등학교 시절 한 여류시인이 되겠다던 소녀와/ 첫사랑을 속삭였고/ 여름날 갈 숲을 헤쳐 물새알의 따뜻한 온기에 입맞추었으며”, “바다새의 파란 울음소리와 모래밭의 모래무덤 속에서/ 아나벨리의 죽음을 꿈꾼 “장소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평화스런 공간은 이 곳에 산업공단이 생기면서 큰 재앙 속에 빠진다. 더 이상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비오디 361 피피엠 갈밭의 긴 수로가 끊기고/ 사상공단에서 흘러나온 음식찌꺼기에 갈매기 떼 몰려와/ 쓰레 무덤을 뒤졌다./ 높이 나르는 갈매기가 아니라 저 비정한 삶의 갈매기 ― 독극물에 치었는지 어제는 갈매기 떼로 죽어가는” 세계가 된다. 생태환경의 파괴, 공해 그리고 무분별한 자연남용의 결과 때문이다. 시인은 이와같은 환경 묘사를 통해 생명을 억압하거나 죽이는 이 모든 불순 세력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모두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생명 외경 혹은 생명존중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송수권이 그의 문학에서 초지 일관 관심을 보인 자연은 시기별로 각각 다르게 표출되어 왔다. 제 1기의 에니미즘, 제 2기의 생활공간, 제 3기의 생명 그 자체 등이다. 이 세 시기의 극단에 각각 동화적 환상세계로서의 자연, 민중의식으로서의 자연, 생태 환경으로서의 자연이 있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은 그의 시가 일관되게 생명 존중사상을 추구하였다는 점이다.
3.
송수권의 시에서 주목할 것은 그가 등단 이래 지금까지 또한 전통적 세계를 노래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자연인식에서 보여준 시기별 변화와 관계 없이 시종여일하게 탐색한 그의 문학적 특성이기도 한데3) 여기서 필자가 편의상 ‘전통적 세계’라 했던 것은 보다 자세하게 대략 여섯가지 영역으로 나뉠 수 있다. 고전, 역사, 민속, 설화, 향토 생활 그리고 무속이나 불교적 세계관 등이다. 송수권은 자연과 더불어 대부분 이와같은 전통세계를 토대로 그 지닌 바 의미를 시로 형상화시켜 왔던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송수권은 당대 시단의 몇 안 되는 전통 지향적 시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①고전의 세계: 송수권은 우리 고전문학작품을 변용하거나, 고전 문학작품에서 이미지를 빌려오거나, 고전 그 자체를 소재로하여 시를 써 왔다. 언뜻 눈에 띄는 작품들을 골라보면 「춘향이 생각」, 「허생원」, 「향전매梅」, 「5월의 사랑」, 「남원운문」, 「통박」, 「정읍사」, 「뜨거운 감자」, 「돌 원숭이」 등을 들 수 있다. 「허생원」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을, 「향전매」는 고전 「배비장전」을, 「오월의 사랑」과 「남원운문」은 각각 「춘향전」을, 「통박」, 「돌원숭이」는 각각 「흥부전」을, 「뜨거운 감자」는 「쌍화점」을 소재로 해서 쓴 작품이다. 이중에서 첫 번째 시집 『산문에 기대어』에 수록된 「춘향이 생각」을 인용해 본다.
앞산 머리 자주빛 구름 옥색빛이 섞갈려 휘돌더니
그 빛 연한 솔잎마다 그늘지는 소리
산봉우리들도 수런수런 잔기침을 놓아
보기 좋은 달하나 해산하고
몸을 푼다.
선한 눈, 코, 입, 짙은 숱, 눈썹
처음 눈맞춘 죄로
옥사장 큰 칼을 쓰고 창틀을
넘어다 볼 줄이야!
진개내 앞 냇가에 게가 짖어 개가 짖어
은장도 날을 갈아
눈물에 띄운
달하
귀기鬼氣서린 앞산 그리매
밤부엉이 울어 쌓는데
구리 동전 녹슨 상평통보常平通寶
몇 바리쯤 동헌 마루에 져다 부려야
이 몸 하나 평안하겠느냐? 평안하겠느냐?
- 「춘향이 생각」
「춘향전」 가운데서 춘향이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죄로 감옥에 갖혀 밤을 지새는 장면을 시로 변용시킨 예이다. 제 3연에서 앞산 머리에 뜬 ‘달’을 ‘눈물에 띄운, 날이 간 은장도’로 비유시킨 은유가 탁월하다. 산문 같으면 수 십 쪽의 길이로 서술해야 겨우 전달 될 수 있을 춘향의 정절이 이 시에서는 불과 한줄의 시행으로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그의 시작詩作에서 송수권이 이처럼 고전의 한 에피소드를 묘사하는 방식을 취하면서도 그것을 시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것을 단지 하나의 상황 서술로 끝내지 않고 고전의 전체 내용을 집약적으로 암시할 수 있는, 날카로운 한 개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향전매」의 ‘동박새’와 ‘장승’, 「돌원숭이」의 ‘돌 원숭이’, 「뜨거운 감자」의 ‘뜨거운 감자’ 등의 이미지가 바로 그와 같은 기능을 가졌다고 할 것이다. 그는 비록 시에서 서술적 요소---이야기체의 요소를 즐겨 차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의 본질이 이미지나 은유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②역사의 세계: 송수권은 또한 우리의 역사에서 많은 시적 소재를 얻는다. 그 대표적인 시로서는 「석주관」, 「겨울 강화江華행」, 「회문리의 봄」, 「아버지」, 「등잔」, 「적분赤墳」, 「노돌나루」, 「옥비전玉婢傳」, 「토종범」, 「봉선화」, 「풀여치」, 「귀뚜라미」. 「개꿈」, 「하얀 목련」, 「식민지의 눈」, 「평사리 행行」, 「후가後歌」, 「한국통사초韓國痛史抄」 「달노래」,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 「마치산이여 이 종줄을」, 「허준」 등이 있다. 가령 「석주관」에서는 신라와 백제의 교통을, 「겨울 강화행」, 「등잔」은 병자호란을, 「회문리의 봄」은 동학농민혁명을,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의 삶을, 「적분」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노돌나루」는 사육신의 절의를 이야기한다. 이중에서 동학혁명을 시로 형상화시킨 「후가後歌」를 인용해 본다.
역사여 역사여 우리들의 갑오년
저 곰나루의 피 맺힌 함성이여
피로 얼룩지지 않은 성벽을
너는 어디서 보았는가
하늘에서 뜻을 얻어
땅에다 인내천人乃天을 쓰고 죽은 사나이
그는 마흔둘의 팔팔한 나이로 갔지만
그는 이 땅의 민중을 잘못 가르치고 간 것일까.
역사여 역사여 우리들의 갑오년
저 곰나루의 피맺힌 아우성이여
동학정신으로 잔뼈를 굵힌 안중근
할얼삔 역두에서 혈서를 쓰고
이등박문을 쏘아죽이고
팔봉산 접주 김창수(김구)가 상하이로 튀어
우리는 하나지 둘은 모른다.
하나로 죽을지언정 둘로는 살지 않는다.
…………
역사여 역사여
갑오년 저 곰나루의 피맺힌 함성이여
우리도 이제는 제 발로 서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일 때가 되지 않았는가?
- 「후가後歌」
송수권은 그의 시에서 「회문리의 봄」, 「평사리행」, 「달노래」 등 동학혁명을 노래한 작품들을 많이 썼다. 제 2기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동학혁명을 주제로 한 권의 서사시 「새야 새야 파랑새야」(1986)를 쓴 바도 있다. 그의 문학정신 속에 민속적 세계관과 아울러 민중의식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용시 역시 같은 맥락에 속하는 작품인데 이 시의 제목 「후가」는 아마도 동학혁명 이후의 이야기 즉 동학혁명이 후대 한국사韓國史에 끼친 영향을 노래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하여 인용시는 그 첫머리와 결론부분에서 먼저 동학 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의 죽음을 애도하고 본문에서는 그 이후 우리 현대사에 끼친 동학의 영향을 기술하는데 바친다. 예컨대 이또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지도자 김구선생, 기미독립 운동 33인의 하나인 손병희 선생과 만해 대선사 등이 모두 동학 교도였거나 한 때 이에 참혀했던 것을 지적한 것 등이다. 문학적 형상화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돋보일 것이 없지만 시인의 문학정신을 엿보기에는 합당한 작품이다.
③설화 세계: 송수권의 시는 대체로 설화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시 대부분이 서술(narrative) 즉 이야기나 준 이야기체로 되어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는 부분적으로 이야기적인 요소의 개입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재래 민담이나 신화를 원용해서 쓴 경우요 다른 하나는 시인 자신이 창작한 이야기를 쓴 경우이다. 전자로는 「꼬부랑 할미 옛 이야기」, 「전설」, 「칠불암에서 띄운 편지」, 「유화부인柳花夫人」, 「우리들의 땅」, 「매향비埋香碑」, 「 난·2」, 「부활의 노래」, 「아우라지 나루터에 와서」, 「땡볕」, 「낙초집落草集」, 「개양할미」 등이 있고 후자로는 「여승女僧」, 「연비燃譬」, 「창」, 「저승꽃」, 「장승의 노래·2」, 「쥐풍년 대꽃풍년」 등이 있다. 먼저 전래 민담을 시로 쓴 예를 하나 인용해본다.
삼한 적 하늘이었는가 고려 적 하늘이었는가
하여튼 그 자즈러지는 하늘 밑에서
‘확 콩꽃이 일어야 풍년이라는디
원체 가물어놔서 올해도 콩꽃일기는
다 글렀능갑다’
두런두런거리며 밭을 매는 두 아낙
늙은 아낙은 시어머니, 시집 온 아낙은 새댁,
그 새를 못 참아 엉금엉금 기어나가는 것은
샛푸른 샛푸른 새댁
내친 김에 밭둑 너머 그짓도 한 번
‘어무니, 나 거기서 콩잎 몇장만
따 줄라요?
(오실할 년, 콩꽃은 안 일어 죽겠는디 콩잎은 무슨 콩잎?)
옛다 받아라 밑씻개 콩잎
멋 모르고 닦다 보니 항문에서 불가시가 이는데
호박잎같이 까끌까끌한 게 영 아니라
‘이거이 무슨 밑씻개?’
맞받아치는 앙칼진 목소리,
‘며느리 밑씻개’
어찌나 우습던지요
그 바람에 까무러친 민들레 홀씨
하늘 가득 자욱하니 흩어져 날았어요
깔깔거리며 날았어요
대명천지, 그 웃음소리 또 멋도 모르고
덩달아 콩꽃은 확 일었어요
- 「땡볕」
‘며느리 밑씻개’라는 이름의 들꽃에 관련된 설화가 한편의 시를 구성하고 있다. 그 내용이 압축되고 진술이 행과 연의 분절을 통해 음악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이 독특할 뿐 원 설화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독창적이라 할 것은 마지막 연에서 시어머니에게 당한 새댁의 황당함이 우스워 민들레 홀씨가 하늘로 흩어지고 또 그를 본 콩꽃이 활짝 일었다는 통찰 정도인데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인간과 자연, 사물과 사물 사이에 일어난 에니미즘적 영통靈通이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음을 본다. 시야말로 과학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우주적 질서를 구현하는 힘인 것이다. 우리가 이를 일러 상상력이라 부르는 것은 다 아는 바와 같다. 이와같은 시인의 상상력은 다음과 같은 창작 민담시에서도 유감 없이 표현된다.
어느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종일 방 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장짓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女僧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 발치로 바릿대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 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小僧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 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 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 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 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 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 「여승」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히 설명할 것이 없다. 어느 봄날 방안에서 고뿔을 앓고 있던 화자는 탁발온 여승의 인기척을 듣고 홀린듯 그녀의 뒤를 밟게 된다. 그리하여 동구 밖까지 이끌려간 그는 갈림길에서 드디어 그녀와 눈을 마주치게 되고 그 순간 그녀에게서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화자가 받은 그 ‘감동’의 실체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대목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 80대의 단테가 어린 소녀 비아트리체와의 만남을 통해 그의 문학적 영감을 구할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된다. 왜냐하면 화자는 이로 인해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 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용시에서 ‘여승’으로 표현된 존재는 원형상상력에서 흔히 지적하고 있듯 소위 ‘영원한 여성(eternal female)’ 즉 지상의 모순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어떤 절대적 모성母性의 여성임을 알 수 있다.4) 이 시의 여성이 특별히 신성한 여인 즉 ‘여승’인 까닭에 더욱 그러하다. 송수권은 이 작품을 빌어 사실은 자신의 시작詩作과 창작 영감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④민속적 세계: 송수권은 또한 민속적인 세계에서 많은 시적 영감을 얻고 있다. 「젯날」, 「자수」, 「모시옷 한 벌」, 「떡살」 「보리 누름」, 「보름제」, 「그리움」, 「술래야 나는 요즘 자꾸 몸이 아프단다」, 「추석성묘」, 「오동꽃」, 「도깨비 굿」, 「추석 성묘」, 「죽부인」, 「탈판에 가서 탈춤을 추고 온 날 밤은」, 「독을 보며·2」, 「장승의 노래·9」, 「다시 읽는 토정비결」, 「빈집·2」, 「용인을 지나며」, 「그해의 토정비결」, 「유두절」, 「집장」, 「왕치」, 「쪽빛」, 「숨비기꽃의 사랑」, 「쪽을 뜨며」, 「징」 등을 들 수 있다. 모두 이미 사라져 갔거나 혹은 시골 생활에서만이 일부 남아 있는 우리의 전통 민속을 시화詩化한 것들이다. 이중에서 한편을 인용해 본다.
음陰 2월 영등달 바람 불면 집에 가리
초하루 삭망엔 오고
보름 사릿물엔 간다고 했지
부뚜껑마다 조왕신이 살고
영등할미 오신 날은
산에서 파온 붉은 흙
대가지에 삼색 헝겊을 달아 꽂았지
보름 동안은 숨막히도록 행동거지도
조신하였지
바람불면
장독대 위 정한수 얼었다 다시 터지고
영등할미딸을 데리고 온다 했지
비오면 착한 며눌아기 앞세워 비에 젖고
고부姑婦간의 갈등이 있긴 있어도
초라하게 오긴 온다 했지
음이월 영등달 바람 불면 집에 가리
초하루 삭망엔 오고
보름 사릿물에 간다고했지
집집이 수수엿 고아 치성들면
옥황상제께 올라가 이 세상 일 고해바치는데
영등할미 입이 오그라 붙어 고변할 수 없다 했지
음이월 영등달 바람 불면 집에 가리
아궁지마다 새로 불지피고
떠돌이 지은 죄 씻고
영등할미 두고 간 수수엿 단지 녹으리
- 「빈집·2」
영등靈登할미는 바람의 신神으로, 물의 신인 물할미, 산의 신인 산할미老姑와 함께 우리나라 삼대 신할미 가운데 하나이다. 이처럼 바람의 신이 우리 전통사회에서 신앙의 중요한 대상이 된 것은 바람이 오랫 동안 우리 민족의 주업인 농경에 큰 영향을 주어왔기 때문이다.5) 예컨대 바람은 흉작이나 풍작을 가져올 수 있고 또 어촌에서는 배의 항해와 조업을 결정짓는 절대적 변수로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바람을 생명력의 상징으로 보았다. 영등할미가 지상에 하강하여 잠시 머물다가 다시 승천한다는 음력 2월 1일부터 20일 사이에 각 지방에서 여러 형태의 민속제의民俗祭儀를 행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조왕신王神은 불의 신이다. 불은 으례 한 가정에서는 부뚜막에 살아 있음으로 부뚜막을 맡는 부뚜막 신이기도 한데 민간 신앙에 의하면 조왕신은 매년 그믐 밤 하늘의 옥황상제에게 그 집안에서 그 해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소상히 고해 바친다고 하였다.6) 그리하여 전통사회의 주부들은 조왕신을 정성껏 모시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다. 가령 매일 아침, 깨끗한 샘물 즉 정화수를 갖다 바침은 물론 명절 때 마다 제사상을 올린 것 등이다.인용시는 이와같은 영등할미 제사 풍속을 작품화한 것이다. 이 시 역시 내용상 독창적인 것은 없으나 시행과 연 구성에서 독특한 리듬을 살리고 그 서술이 이미지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⑤향토적인 세계: 송수권의 시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향토적인 세계를 묘사해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따라서 향토적 세계를 형상화한 작품들의 서지는 굳이 그것을 일일히 밝힐 필요가 없다. 임의로 두편을 인용해 본다.
기러기집 상여喪輿 나는 날은
복福도 많아……
살구꽃 복사 꽃이 환히 저승길까지 비추고
십리 안팎 실팍한 아낙들까지 몰려와
생보리밭 마구 무너뜨리고 웃음치레 꽃치레 눈물 범벅치레……
석류꽃 석류꽃같은 기러기집 넷째 딸이 나는 그냥 좋으면서
홍갑사 댕기머리가 좋으면서
그 가리마 아랫말로 가는 호숫물처럼
박짝거리면서……
- 「기러기 집」
시 한구절을 생각하다가
아니 인생을 생각하다가
종일 두 어깨로 벽을 지고
앉았다.
구들목에서 수수깡을 부수는 아이
삭막한 가을 벌판을
수숫대 서걱이는 소리가
흘러간다.
황소 눈보다 더 큰 안경테를
메우는 아이
그 짓을 바라보면 그럴 나이도 아닌데
나는 벌써 시력이
흐려온다.
울밑 누구솥 아내의 장 끓는 내가
코를 치는 날
장맛 같은 시를 생각한다.
장맛 같은 인생을 생각한다.
수수깡 놀음에 맛이 든 아이
다리에 털도 안 난 녀석이
다리 긴 수수깡 학을 만들어
식지食指 끝에 올려 안경너머로 학鶴을 날린다.
울밑 노구솥 아내의 장 끓는 내가
고를 치는 날
학鶴이어 날아라
학이어 날아라.
- 「장 닳이는 날」
‘기러기 집’이란 물론 한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여를 보관하는 집을 가리킨다. 시인은 이를 소재로 하여 소년시절의 어느 마을 장례날, 상여 나가는 정경을 매우 화사한 감각으로 묘사해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중심 테마는 물론 그 자신의 사춘기적 이성애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 배경으로 제시된 토속적 삶의 모습들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생과 사를 초월해서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자 하는 향토민의 소박한 인생관과 희로애락을 공유한 원시 공동체로서의 삶의 태도가 ― 이미지들로 극히 압축된 진술임에도 불구하고 ― 생생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한 인간의 죽음을 앞에 두고 “십리 안팎 실팍한 아낙들까지 몰려와/ 생보리밭 마구 무너뜨리고 웃음치레 꽃치레” 를 할 수는 없을 것이며 화자 자신 역시 “석류꽃 석류꽃같은 기러기집 넷째 딸이 나는 그냥 좋으면서/ 홍갑사 댕기머리가 좋으면서 “뒤따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죽음의 의식儀式이 바로 삶의 축제로 전환될 수 있는 이같은 인생태도야 말로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향토 공영체 이외에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성들이다.
「장 닳이는 날」 역시 토속적 삶의 한 장면을 여실히 그려 보여준 작품이다. 어느 늦가을 손 없는 날을 택하여 아내는 부엌에서 장을 닳인다. 별다른 장난감이나 놀이 기구가 없는 그의 산골아이는 ― 장을 닳이기 위해 부엌의 아궁이에서는 끊임 없이 장작불이 타오르므로 ― 안방의 뜨끈한 구들장에 앉아서 마른 수수깡으로 안경테나 학 같은 공작물을 만드는데 몰두하고 있다. 방밖에는 “삭막한 가을 벌판을/ 수숫대 서걱이는 소리가/ 흘러간다.” 필자 자신도 그러하지만 유년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어린 시절 우리 향토생활의 생생한 모습들이다. 물론 이 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과거적인 삶의 복원이 아니라 그 시절에 시인이 동경했던 꿈의 상실이다. 그것은 이 시의 아이가 그러한 것처럼 그 자신 어렸을 때 수수깡으로 만든 장난감 학이 하늘을 날을 수 없었다는 진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시의 말미에서 “학이어 날아라” 고 가만히 절규해 보는 것이다. 그 ‘학의 비상’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가 유년 시절의 향토적 삶에서 경험했던 어떤 인간적 혹은 자연 친근적인 삶이었을지 모른다.
⑥샤머니즘 및 불교적인 세계: 송수권의 시 세계가 대부분 전통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이상의 고찰에서 충분히 설명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와같은 전통적 삶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물론 샤머니즘과 불교적 세계관이다. 송수권 역시 그러하다. 대부분의 그의 시들이 부분적, 간접적으로 샤머니즘이나 불교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쉽게 지적되는 터이지만 다음과 같은 시들은 전체적, 직접적으로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젯날」, 「목련설화」, 「돌각담에 지는 자주 달개비꽃 한송이」, 「환촌·2」 「뜬소문」, 「예감」, 「아그라 마을에 가서」, 「멀미」, 「망월동 가는 길·4」, 「겨울 청량산」, 「한국통사초」, 「서귀포의 봄」, 「월인석보」, 「소낙비」, 「연비」, 「부도들」, 「외갓집」, 「꿈꾸는 섬」, 「수레바퀴 자국」, 「즐거운 선문답」, 「가을 운문사」, 「장승의 노래·8」, 「구룡문 연꽃밭」, 「빈집·2」, 「업장 내가 살던 마을」, 「괘등」, 「길」, 「산경山經」, 「홍역꽃」, 「산염불」, 「무량수전의 배 흘림 기둥에 대하여」, 「대 역사」, 「눈내리는 대숲 가에서」, 「운문사 운」, 「혼자 가는 선재善財」, 「낙초집落草集」, 「백담사 운」, 「구암리 고인돌 무덤」, 「물염정시」, 「괘등」 등이다. 이 중 불교적 세계관과 무속적 세계관으로 쓰여진 작품을 각각 하나씩 인용해 본다.
목어木魚가 울 때마다 물고기들의 싱싱한 비늘이 떨어지고
운판雲版이 자지러 질 때마다 날짐승들마저 숨죽이며 날았다.
어떤 침묵 하나가 이 세상을 여행 와서 더 큰 침묵 하나를
데리고 그림자처럼 지난다.
문득 희나리의 불꽃더미 속에서 조실祖室스님의 흰 팔뚝
하나가 불쑥 떠올라 왔다. 그 흰 팔뚝에서 아롱진
연비燃譬 몇 방울이 생살로 타면서
얼음에 갇힌 꽃잎처럼 나의 감각을 흔들었다.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가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칠칠한 숲을 기르는 물이 되고 햇빛되는 걸까.
그후, 나는 고개를 꺾으며 못된 습에 걸려
무심히 핀 들꽃, 날아가는 새에서도
조실의 흰 팔뚝을 떠 올리며 어린애처럼 자주 길을 잃고
헛기침 끝에 온 몸을 떨었다.
아니다. 아니다. 조실은 가지 않았다.
어떤 믿음의 확신 하나가 이 세상에 다시 와서
나는 참으로 몹쓸 병을 꿈에서도 앓았다.
눈보라치는 섣달 겨울 어느날, 그의 방문을 열다가
평상시와 다름 없이 웃목에 놓인 매화분의 둥그럭에서
빨간 꽃망울 몇 개가 벌고 있음을 보았다.
뜨거운 연비 몇방울이 바야흐로 겨울 하늘에서 녹아 흘러
꽃들은 피고 있었다.
- 「연비燃譬」
인용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선시禪詩라 일컬어 손색이 없을 듯하다. 하나는 시의 소재가 모두 선림禪林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가 불교의 윤회관을 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의 소재는 구체적으로 ‘연비’이다. 연비란 “불교에서 수행자들이 계를 받고 나서 팔뚝에 불을 놓아 문신처럼 떠내는 의식 또는 그 자국” 을 일컫는 것이니 이 시에서 직설적으로 언급된(예컨대 “그 흰 팔뚝에서 아롱진/ 연비 몇방울이 생살로 타서”) 시행이나 은유적으로 언급된(예컨대 “어떤 침묵 하나가 이 세상을 여행와서 더 큰 침묵 하나를/데리고 그림자처럼 지난다”) 시행이 모두 연비를 하는 행위와 그 상황의 묘사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직접적으로 불교 세계를 지시하는 ‘조실스님’, ‘목어’, ‘운판’, ‘연비’, ‘습’과 같은 용어들의 등장도 이 시의 불교적 필연성을 보다 확실히 해준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가 불교의 윤회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제 2연에서 간단히 열반한 조실스님이 매화꽃으로 환생했다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상징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아니다 아니다 조실은 가지 않았다. ― 눈보라치는 섣달 겨울 어느날 그의 방문을 열다가 ― 매화분 둥그럭에서 (조실의)뜨거운 연비 몇방울이 바야흐로 겨울 하늘에서 녹아 흘러 꽃들로 피고 있었다”는 진술이 그것이다. 이 시행의 ‘뜨거운 연비 몇 방울’이란 바로 조실의 전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귀포 오구 대왕님
저의 육신은 너무 때묻고
저의 혼은 너무 질겨서
대왕님 석쇠 위에 이 질긴 고기
잘 익을 수 있을까요
어젯밤 잠 속에서도
검은 상복차림 저승 차사 두놈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육환장을 내리찍으면서
에쿠야 이 살덤버지 에쿠야 이 살덤버지
킁킁 코를 맡더니
에취야 이 비린내 에취야 이 비린내
육환장은 고사하고 토악질까지 해대면서
문밖을 튀쳐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승바람 한으로 절인 핏기는
늘 이렇습니다요
그러나 오구대왕님
이승에서 저는 이 한을 다 풀고
길뜰 차비를 하는 날에는
서귀포 시인 광협이네 농장에 들려
저의 육신은 마지막 거름이 되고
저의 혼은 봄눈 속에서도
속죄양처럼 익어가는 귤이 되겠습니다.
서귀포 오구대왕님
그 때는 저승차사 두 놈 다시 보내주셔요
저녁 시간 당신의 식탁 위에서
저는 불고기 대신 노오란 귤이 되어
당신의 즐거운 디저트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 「서귀포의 봄」
‘오구굿’은 죽음, 특히 사고로 비명횡사非命橫死를 했다든지 사인死因 모르는 죽음을 당했을 경우 그 원을 풀어주어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으로 잘 인도되도록 오구대왕에게 비는 무속巫俗을 말한다. 따라서 ‘오구대왕’이란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굿 즉 오구굿에서 섬기는 무속신巫俗神이다.7) 송수권은 이 시에서 이같은 우리 전통 민간신앙을 빌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그것은 그 자신의 현재란 추악하고 죄 많은 삶이라는 것(“검은 상복차림의 저승 차사 두놈이/ ……/ 킁킁 코를 맡더니/ 에취야 이 비린내 에취야 이 비린내/육환장은 고사하고 토악질까지 해대면서/ 문밖을 튀쳐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대한 깨달음은 오구대왕이 보낸 저승 차사에 의하여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것(“그러나 오구대왕님/이승에서 저는 이 한을 다 풀고……”) , 따라서 자신의 미래는 보다 순결한 이타행利他行의 삶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육신은 마지막 거름이 되고/ 저의 혼은 봄눈 속에서도/ 속죄양처럼 익어가는 귤이 되겠습니다”) 등의 내용으로 설명된다. 즉 기독교 같으면 예수에 의해 도달할 수 있을 삶의 구원이 이 시에서는 오구대왕이라는 무속신巫俗神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송수권의 시는 전체적으로 샤머니즘이나 불교적 세계관에 토대하여 전통적인 삶 특히 향토적, 민속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다.
4.
다른 측면으로 볼 때 송수권의 시는 두가지 중요한 특성을 드러내 보여준다. 하나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가 당대의 시사적인 문제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였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대부분 ‘기행시紀行詩’와 ‘민담시民譚詩’라 부를 수 있는 유형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는 제 1장에서 살펴 본 것처럼 그가 비록 등단 무렵(제 1기)에 에니미즘적 자연을 탐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제 2기)에는 당대 한국문단의 일대 회오리 바람이었다고 할 소위 ‘민중시’ 운동에 가담했던 것, 그리고 90년대 이후(제 3기)에 들어 우리 문단에 ‘생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곧 이에 부응하여 다수의 소위 ‘생태시’를 썼던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가령 그의 동학을 소재로 한 시들은 전자를 대표하며 공해문제를 고발한 90년대의 시들을 후자를 대표한다. 이는 문단과 사회에 대한 그 나름의 고뇌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의 본령은 토속적 삶을 배경으로 한 자연 친근적 세계에 있으며 또 이와같은 내용을 형상화시킨 작품들이 문학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후자의 경우는 우선 시집의 목차만을 보아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시의 제목이 대부분 고유명사 즉 산과 강, 혹은 지명地名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수 없을 지경으로 송수권의 시가 거의 기행시의 형식으로 쓰여졌다는 단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한편 그의 시가 또한 대부분 이야기체 형식을 지향한 것도 사실이다. 앞장에서 예를 든 「여승」이나 「연비」, 「땡볕」 등이 모두 이야기로 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읽은 그대로이지만 설령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그의 시에는 부분적으로나 혹은 압축적으로 이야기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이와같은 시 형식은 우리 문학사에서 30년대의 백석白石이나 이용악李庸岳 ― 그리고 경향이 약간 다르기는 하나 식민지치하 프롤레타리아 시인들과 해방 이후 특히 김수영金洙瑛이나 서정주에 의해서 널리 보급된 바를 그가 나름대로 개성 있게 소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민담적인 내용이나 향토적인 삶을 소재로 한 그의 이야기체 시들은 따로 ‘민담시民譚詩’라는 장르를 설정할 만한 것으로 그 역시 기본 골격에 있어서는 서정주徐廷柱의 「질마재 신화」의 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외에도 송수권의 시에 끼친 서정주의 영향은 앞으로 보다 자세히 고찰되어야 할 과제이다.
물론 소재로서 ‘이야기’라는 것은 그 고유한 문학 양식으로 소설이나 콩트같은 별도의 장르가 있는 까닭에 시에서 꼭 다루어야 할 이유는 없다. 같은 이야기라면 시 양식보다는 소설이나 드라마 양식으로 표현해야 보다 문학적 성취에 다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송수권의 문학적 평가를 그가 이야기체 시를 썼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내용 혹은 세계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그의 자연 인식과 전통적 세계 ― 민속적 향토적 세계에서 논의되어야 할 성격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전차로 필자는 제 2장에서 그의 자연 인식을, 제 3장에서는 전통적 삶과 샤머니즘 및 불교 세계관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송수권의 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한마디로 생명사상이라 부를 만 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송수권의 자연은 제 1기의 에니미즘으로서의 자연이나, 제 2기의 생활공간으로서의 자연이나, 제 3기의 생태환경으로서의 자연이나 본질적으로 생명에 대한 인식과 생의 존엄성 확립에 귀결된다. 에니미즘은 자연을 생명현상으로 보는 세계관이며, 생활공간은 생명체 그 자체의 삶의 터전이며,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은 바로 생명 옹호의 실천적 운동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의 전통세계에 대한 탐구 역시 그 밑바탕에는 생명 존중 사상이 자리해 있다. 그의 시에서 전통적 세계 달리 말해 향토 공영체나 민속적 삶의 주체는 민중인데 민중이야 말로 민족 생존의 뿌리이자 종種 즉 집단 개념으로서의 생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모든 민속 신앙과 민중 운동은 잠재적으로 이 생명 현상의 종교적, 사회적 표현인 것이다. *
주석
1) The Encyclopedia of Philosophy, Ed. Paul Edward et al(N.Y.: 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1978).
2) 오세영, 『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서울: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8), 188쪽 참조.
3) 참고로 각 시기를 대표하는 시집 한권을 선택하여 거기 수록된 전통탐구의 시들의 목록을 조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이로 미루어 송수권은 그 문단 등단 당시나 현재 시점이나 그의 시 대부분이 전통세계를 지향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 1기: 『산문에 기대어』
고전:「춘향이 생각」, 「허생원」
역사: 「석주관」, 「겨울 강화행」, 「회문리의 봄」, 「아버지」, 「등잔」, 「적분」, 「노돌나루」
민담: 「꼬부랑 할미 옛 이야기」
민속: 「젯날」, 「자수」, 「모시옷 한 벌」, 「떡살」, 「보리 누름」, 「보름제」, 「그리움」
향토: 「줄포마을 사람들」, 「새보기」, 「빗접」, 「구례구」, 「강」, 「감꽃」, 「환촌」, 「방아실 앞」, 「점경」, 「큰 사랑 옆」
샤머니즘: 불교: 「젯날」, 「목련설화」, 「돌각담에 지는 자주 달개비꽃 한송이」→·제 2기: 『아도』
고전: 「통박」, 「정읍사」
역사: 「하얀 목련」, 「식민지의 눈」, 「평사리 행」, 「후가」, 「달노래」
민담: 「아도」
민속: 「오동꽃」, 「도깨비 굿」, 「추석 성묘」
향토: 「마포 갯나루」, 「대숲바람소리」, 「남도풍」, 「풀꽃제사」, 「풍수자연」, 「말노래」 「자목련이 지는 날은」, 「우리나라 풀이름 외우기」
샤머니즘 불교: 「아그라 마을에 가서」, 「멀미」, 「망월동 가는 길·4」, 「겨울 청량산」, 「한국통사초」
·제 3기: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
고전: 「뜨거운 감자」, 「돌 원숭이」
역사: 「허준」
민담: 「선운사 동백꽃」, 「부활의 노래」, 「아우라지 나루터에 와서」, 「쥐풍년 대꽃 풍년」
민속: 「다시 읽는 토정비결」, 「빈집·2」, 「용인을 지나며」, 「그해의 토정비결」, 「유두절」, 「집장」, 「왕치」
향토: 「가래나무 이야기」, 「바람부는 날」, 「내 사랑 가사어」, 「빈집·1」, 「진달래」, 「아침 강」,「열목어·1」, 「어초장 시」, 「백로마을」, 「여름강」, 「전어지를 읽으며·1」, 「전어지를 읽으며·2」, 「나의 서가(전통)」, 「 영산도」, 「황해」, 「황매기집」
샤머니즘 불교: 「구룡문 연꽃밭」, 「빈집·2」, 「업장 내가 살던 마을」, 「괘등」, 「길」, 「산경山經」, 「홍역꽃」, 「산염불」
4) N. Frye, Anatomy of Criticism(Princeton: Princeton Univ. Press, 1957), PP.292-3.
5) 장덕순 외, 『한국의 풍속지』(서울: 을유문화사, 1974), 47 쪽. 하늘에 사는 영등靈登할미(혹은 연등燃燈할미)는 음 2월 1일에 지상에 내려왔다가 20일에 승천한다고 한다. 2월 1일 아침에 새 바가지에 물을 담아 장독대, 광, 부엌 등에 올려 놓고 소원 을 빈다. 이 때에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마련하여 풍년들 것과 가내의 태평을 빌며 식구 수대로 소지燒紙를 올린다. 연등할미가 인간세상에 하강할 때에는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온다고 하는 바딸을 데리고 오면 일기가 평탄하지만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농가에서는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 친정어머니와→ 딸과는 의합宜合하나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불화와 갈등이 있는 것이니 그에 비유해서 일기의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 여겼다.
6) 장덕순 외, 『한국의 풍속지』(서울: 을유문화사, 1974), 76 쪽.
7) 장덕순 외, 『구비문학개설(口碑文學槪說)』(서울: 일조각, 1971), 124-7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