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2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언론에 소환됐다. 아시아나 항공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16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통합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추진했던 아시아나 인수합병(M&A)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항공 산업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산업은행 측의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오너리스크와 경영권 분쟁으로 '국민밉쌍'이 되었지만 정부는 국제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대한항공 중심의 항공독점화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1988년 12월 노태우 정부 때 '서울-부산' 국내선으로 첫 출항했던 제2민항 아시아나 항공은 문재인 정부에서 날개를 접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30여년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사실 노태우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공통점이 참 많다. 먼저 이들 두 대통령은 각각 11·12대 대통령 전두환과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친구이다. 스스로 강한 권력의지를 갖기보다는 친구의 후광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평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의 전면에서 주도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사 동기로 평생 운명을 같이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나이는 7살 어리지만 1982년 합동법률사무소를 함께 운영하면서 친구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친구로서 출발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훈남 얼굴에 선한 눈빛을 가졌다. 강한 카리스마 대신 부드러운 이미지다.
두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준비한 올림픽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면서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 갈등을 극복하고 세계인의 화합을 이뤄냈다. 미국과 소련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1984년 LA올림픽을 각각 보이콧 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에는 동서진영이 모두 참가하면서 최다 참가국(160개국)과 최대 참가 인원(8465명)을 만들었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특사로 방문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발판이 마련됐다. 두 정부는 모두 거대 여당의 지원 속에 국정운영을 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노태우 정부는 125석 민주정의당으로 출발했으나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216석의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19속에 치러진 4.15총선을 통해 177석의 거대 여당이 되었다. 여대야소의 정국은 정책추진과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그러나 견제세력의 없는 여당의 독주와 민생보다는 정쟁에 목을 매는 현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토지 및 아파트 가격이 역대 최고로 폭등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71% 오르는 등 폭등 양상을 보이면서 임기 5년 내내 부동산 문제와 씨름했다. 노 정부는 투기억제지역 확대, 종합토지세 부과 조기실시, 1가구 1주택 비과세요건 강화 등의 부동산종합대책을 서둘러 마련했다. 더불어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에 주택 214만 가구 건설에 나서면서 부동산 오름세를 겨우 진정시켰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분석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이미 58%나 올랐다. 24번의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의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역대 최고치도 갈아치울 양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앞날을 어쩌면 30년 전 노태우 정부의 말기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도 반복된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여권의 일방통행은 민심 이반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정치권은 차기 대선후보를 놓고 내부 경쟁만 일삼는 모습을 보였다. 노태우 대통령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물태우'라는 별명은 우유부단한 리더십의 상징이 되었다. 노태우 정부는 1991년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이란 측근비리사건과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면서 레임덕이 가속화했다. 문재인 정부의 운명 역시 비슷한 궤도로 움직이고 있다. 즉,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라임·옵티머스 사건의 결과와 내년 4월 치러질 서울 및 부산시장 선거 결과가 나오면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가 레임덕 없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6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홍성철 /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