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제42회 한국시조협회 한국시조문학상
대상
4월의 무지개꽃
- 4•19묘지에서
장성덕
피 묻은 하소연들 전설로 묻힌 여기
불의에 항거하듯 청엽(靑葉)이 몸을 떤다.
산새도 피를 토하며 숲속에서 숨어 울고.
쇠똥구리 말똥구리 편 가르기 못 멈추고
우르르 한데 모여 진실조차 외면한 채
다 삭은 분구(糞球) 하나를 차지하려 쌍불 켠다.
해마다 사월이면 영혼들은 꽃이 되어
새봄을 기다리는 민초들의 가슴마다
뜨겁게 젊음을 살라 무지개로 다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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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독거 노인의 밤
김 태 균
늦은 밤, 노인 혼자 구겨져서 화석될 때
친구나 가족들은 아득하게 가물댄다
추억만 곁을 맴돌며 어둠 속에 잠긴다
즐겁던 시절이나 옛정을 그리지만
기억이 식어간다, 온기 없는 대지처럼
시간이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탓일까
또 하루 견디면서 잠들기만 기다린다
어쩌다 꿈을 꾸면 고독도 따라 온다
노인은 적요한 밤을 희부옇게 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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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현대성을 반영한 창조적 은유
시조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시다. 시조는 장구한 세월을 지나오면서 우리의 호흡으로 정제된 고유 미학의 결정인 것이다.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제 시조는 우리 문학의 정수(精髓)로 거듭나서 당당히 국가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시조를 아끼는 마음으로 생활화하여, 대중화, 세계화가 되도록 보다 더 힘써 나가야만 할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2016년 제정되어 시행해 오던 문학진흥법이 2021년 5월 18일 개정되어, 문학의 갈래는 시, 시조, 소설, 희곡, 수필, 아동문학, 평론으로 한다고 정하였다. 이전엔 빠져 있던 ‘시조’와 ‘아동문학’이 문학의 독립된 장르로 정식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시조는 그 형태가 정형으로 시이지만 시는 시조가 아니다. 시조야말로 우리말의 토양에서 자생한 시의 형태로서, 작자의 개성과 기량에 따라 재창조될 수 있는 우리시의 정화(精華)다.
(사)한국시조협회가 시조 창작의 동기를 부여함과 동시에 작품 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작품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한국시조협회 한국시조문학상”을 제정하여 시행해 오고 있는데, 올해로 제42회를 맞는다. 심사 대상은 등단 5년 이상의 본 협회 회원이며, 2024년 『시조문학』 매호에 발표한 작품 중 고문과 부이사장의 추천을 받은 작품으로, 심사 방법은 문학상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을 위촉하게 되어 있다. 이번에 노재연 문학상위원회장의 심사 규정에 대한 강조의 말씀과 함께 심사위원에 넘어온 원고는 무기명으로 한 시조 25편이었으며, 심사위원이 각자 1차 예심으로 우수작 세 편씩을 뽑았고, 2차 본심에선 모아진 우수작품 중에서 심사 규정에 따라 대상 1편과 본상 1편을 뽑는데 심사위원 모두가 이의 없이 선정할 수 있었다. 수상작을 뽑아 놓고 보니, 대상은 연시조 「4월의 무지개꽃」으로 장성덕 시인, 본상에는 연시조 「독거 노인의 밤」으로 김태균 시인의 작품이 각각 수상의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두 편 모두 시대성을 반영한 작품으로 현대 시정신을 담아내는 그 기량이 가장 돋보였다. 다만,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최종심에서 탈락한 우수작 몇 편은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
먼저 대상으로 선정된 「4월의 무지개꽃」은 “4•19묘지에서”라는 부제를 붙이고 있으며, 이 작품은 4·19 혁명에 대한 기억과 그로 인해 희생된 영혼들을 기리는 역사적 아픔과 고귀한 희생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4·19 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상기시키고, 일부 이기적이고도 부정적인 세태를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해마다 사월이면 희생된 정의의 영혼들은 꽃이 되어, 새봄을 기다리는 민초들의 가슴에 희망의 무지개꽃으로 다시 핀다는 상징적 표현으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시조다.
특히 이 작품은 시대적 인식과 감성을 결합하여 빚어낸 산물로, 시조의 보법을 잘 지키면서 시상을 이끌어가는 저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평이성을 벗어난 새로운 발상의 묘미가 돋보이고 있다.
첫 연에서는 정의와 자유를 외치며 스러져간 젊은 영혼들의 억울함을 묘지의 풍경과 청엽이 떠는 이미지로 상징화하고 있다. 4·19 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
이어지는 중간 연에서는 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태의 부정적인 면을 풍자하고 있는데, 분구를 차지하려는 쇠똥구리와 말똥구리의 비유를 통해 부정과 탐욕을 비판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진실과 정의, 인간성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마지막 연은 4•19묘지라는 공간적 배경을 통해 불의에 맞서 싸운 젊은이들의 용기와 그들의 희생이 결국 민초들의 마음에 새봄의 무지개꽃으로 다시 피어남을 표현하고 있다. 즉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어, 미래지향의 희망을 감지하게 된다,
다음 본상 「독거 노인의 밤」은 홀로 늙어가는 노인의 외로움과 고독을 애잔하게 그린 작품이다. 잔잔한 어조 속에 깊은 슬픔을 담아, 노인의 고독과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묵직하게 전달함과 동시에, 발전하는 산업화 시대의 노인 문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감동을 더하고 있다. 시인은 이렇게 일상생활 주변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하여 감동을 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며 사회 정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 작품은 시조의 율격을 바르게 갖추면서 정해진 틀에, 삶에 대한 깊은 통찰로 현대의 시정신을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깊은 사념에 잠기게 하는 여운이 있는 시조다.
첫 연에서 구겨져 화석이 되어가는 노인의 모습은 고립된 현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친구와 가족이 멀어져 가는 상황을 통해 노인의 소외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 연은 잊혀 가는 기억을 온기 없는 대지에 비유하며, 종장에서는 시간이 주는 무게가 노인의 삶을 점점 짓누르고 있음을 설의법 표현으로 보여준다.
마지막 연은 고독 속에서 하루를 견디며, 꿈조차 외로움을 피할 수 없는 노인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면서, 독거 노인의 쓸쓸한 밤을 시각적으로도 느낄 수 있게 한다. 특히 이 마지막 연의 종장 “노인은 적요한 밤을 희부옇게 새운다”는 지친 노인의 하루를 상징적으로 마무리하면서, 고독 속에 흐려져가는 노인의 존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감동을 더해 주고 있다.
이상으로 제42회 한국시조협회 한국시조문학상 대상과 본상의 심사평으로 가름하고자 한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두 분께 진정으로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으로 우리나라 시조 문단의 빛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심사위원 : 노재연, 김흥열, 우성훈, 김석철(심사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