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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행(四川行) 47
대청의 분위기는 아주 흥겨웠다. 사천의 모든 문파들이 모여 있었다.
점창은 이미 돌아갔다. 뜨겁다 못해 무서운 시선을 일대제자들에게 퍼붓 듯이 날리는 가자성의 노안을 받으며........
나머지 문파는 벌써 반시진 이상 무정의 승리를 축하 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가려는가?”
“피곤합니다. 신니. 그만 주여루로 돌아가렵니다.”
나직한 무정의 말에 신니는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그 누구의 칭찬보다도 더욱 무정을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였다.
“헛헛. 그러시게나. 무대협. 오늘 정말 안계를 넓혔네..”
“그렇습니다. 저도 수련을 다시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당현과 청음검성 경세진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새록새록 무공에 대한 욕심이 일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 정도의 인물들이라면 얼마든지 새로운 무공을 창시할 실력이 있었다.
“하하하 정아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대청의 전면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마은명이었다. 얼굴 그득 사람 좋은 미소를 지니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희명공주가 고개를 숙이며 무정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주는구나. 헛 왕부의 인물이라...흠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다가오는 마은명이었다. 허나 그는 곧 얼굴을 굳혔다. 무정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거기 서! 더 이상 다가오지도 마라!”
무정의 입에서 무거운 음성이 터졌다. 진득한 살기가 묻어나는 음성이었다.
“ ! ..... 아니 왜 그러느냐 정아, 나다 마은명이다. 모르겠느냐?”
인자한 목소리로 반문하는 그였다. 허나 무정의 대답은 차가웠다.
“네가 누군지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나를 정아라고 부르지도 마라.
꼭 내가 내입으로 말해야만 알겠느냐?”
중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말인지, 마은명은 이젠 사천의 태수였다. 이렇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좋다 한 가지만 묻자, 영친왕은 지금 어디 있나? 감옥에서 썩고 있
나? 아니면 귀향이라도 갔나? 아니면 효수되어 자금성에 걸려있나?”
“ ! ”
마은명의 신색이 눈에 띄게 하얗게 변했다. 유야무야 된 일이었다. 옥새와 공주가 모두 돌아온 직후 모든 것이 좋게 좋게 해결되었다.
중인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대명의 군대, 그것도 십만의 어림군이 그깟 서장의 오천병력이 두려워서 출병을 안 해? 화포부대 오백 명만 있으면 지리멸렬할 병력이다. 희명공주가 잡혀있다고? 언제부터 대명의 법제가 바뀌었나? 인질이 있다고 공격을 못하다니 그렇다면 지금 감숙성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속수무책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라는 것이냐!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식들이 모두 그들에게 끌려갔다. 그것도 수시로, 지금도 끌려가고 있다. 헌데 그들이 인질이라고 군대가 공격을 안 하던가? 그렇던가!”
무정의 나직한 외침이 들렸다. 아미의 소신니 간명은 무언가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설마.....
“무시주, 생각하는 바를 모두 말씀해 주시오. 진심이오이다.!”
그녀의 외침이 대청을 울렸다. 무정은 그녀를 보았다. 누구보다도 많은 인명을 잃은 아미였다. 최대의 피해자였다. 무정은 고개를 돌렸다.
“옥새가 실종돼? 실종되도록 놔두었겠지. 소뢰음사에 정보를 흘린 아는 당신이었겠지. 그들이 와서 아미산 쪽을 향하도록 병력을 몰았고 그래서 아미산 부근의 을와산에서 내가 싸웠지 그리곤 옥새는 되찾았으니 되었고 나머지는 공주의 신변이 문제였지. 그래서 당신은 영친왕에게 연통을 넣었겠지 배신을 해 아유타를 자극하라고 자극된 아유타가 침공할 수 있게, 공주를 앞세우고 오면 될 것이라고 군부는 출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은근히 흘리면서, 나머지는.......... 관부가 아닌 무림인으로 해결을 하고, 내 말이 틀렸나?”
나직한 목소리가 대청을 뒤흔들었다. 그 파장은 너무나 컸다.
“마태수,,,,,,,,, 부황께서도 아시는 일입니까?”
뒤쪽에서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희명공주였다. 그녀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허나 대답은 그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예음검 유정봉이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상대를 속이려면 자신부터 속인다. 이건가, 드럽구만....... 어쩐지 옥새가 이곳까지 쉽게 온다 했다. 권력에 맛 들린 자가 그 상징을 감히 내보내? 참 나도 한심하군. 조금만 생각하면 뻔히 알 수 있는 것을 ...제길....”
술잔을 내던지며 그가 말했다.
희명공주는 신형을 휘청였다. 그의 뒤에서 몇 명의 군졸이 그녀를 뒷받침했다. 그때였다. 진득한 살기를 실은 엄청난 일갈이 터져 나왔다.
“자금성은...... 사천의 무림인들을 오랑캐로 보는 것인가!”
당현의 목소리였다. 그의 신형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노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것이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 오랑캐를 막는다는 대명의 정책이었다. 비단 명뿐만이 아니었다. 한나라시대에도 그 윗시대에도 그 정책은 있었다.
허나 자국의 백성을 오랑캐로 인식하는 왕조는 없었다. 그런 미친 정책은 없었다.
“아니오, 오해요 오해, 모든 것은 사실이요!”
“그렇다면 영친왕이 어디 있는지 말해봐라! 그럼 가서 물어보면 될 것이다. 진실인지 아닌지를!”
무정의 일갈이 다시 터졌다. 허나 마은명은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자금성에 있었다. 모든 것은 자신이 계획했었다. 그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었다. 황제와 둘이 아마 축배라도 마시고 있을 것이었다.
“..............”
마은명은 말을 못했다. 무정은 그런 마은명을 보면서 품속에 손을 넣었다.
“빠각”
무정의 손아귀에서 무언인가 부서졌다. 철패였다. 그가 천호임을 증명하는 철패였다. 그 주조로 된 철패가 반으로 부서졌다. 무정의 손이 그중 하나를 마은명의 앞에 던졌다. ‘쩔그렁’소리와 함께 철패가 마은명의 발 앞에서 멈추었다.
“마대인께 전해라!, 당신의 마음만은 고맙게 받겠다고.......너는 좋은 아버님을 두었기에 지금 이 순간 숨 쉬며 살아 있는 것이다. 명심해라!”
무정은 신형을 돌렸다. 더 이상 이런 자와 같이 있고 싶지도 않았다. 차마마대인 때문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관계가 없었다면 벌써 그의 초우가 날아갔을 것이었다.
마은명은 멍하니 철패를 보며 서 있었다. 살기어린 시선만이 주위를 감돌았다.
그들은 마은명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관부의 인물을 그것도 태수의 직책을 제수 받은 사람에게 함부로 손댈 수는 없을 것이었다. 아마도 축객령이 다일 것이었다.
“카아아악... 툇....니기미 개자식! 대장이 용서하니까 나도 한번은 용서한다. 너 잘 기억해 이씁새야! 호위병 없이 함부로 성도거리 나다니지 마라, 이 창으로 확 질러버릴 테니........... 쓰벌”
“아마도 그 창 밑에 이창도 같이 갈 꺼다. 이 쓰벌 방쉐이야! 명심해라....응!”
“쯧쯧, 마대인의 반만 닮았어도 저렇지는 않을 텐데....... 권력이 그렇게도 좋은가? 쯧쯧”
상귀와 하귀, 고죽노인이 혀를 차며 뒤로 돌아섰다. 그들의 뒤를 홍관주가 서서히 따르고 있었다. 눈가에 화난 기색이 역력한 채로....
“헛헛 너희들은 안 가 볼꺼냐?”
“!....”
명각과 명경은 눈을 크게 떴다. 장문인께서 지금 무정을 따라가라 하심은?
“좀 더 큰 세상을 볼 사람이구나. 그 곁에서 그의 세상을 같이 바라보아라. 소림을 위해서, 무림을 위해서 그게 더 좋을 것 같구나 헛헛, 네 녀석에게 장문인 자리나 물려주고 조용히 살까 했더니 좀 더 해야 되겠구나...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그렇지 않아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그들이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달려 나갔다.
“헛헛, 녀석들.....”
작은 소리가 사대금강의 귀에 들렸다. 그들도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가시오, 당장!”
당현의 울림이 커졌다. 차마 죽일 수는 없었다. 상대는 태수였다.
마은명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철패를 집어 들고는 서서히 나갔다.
“뒷문으로 나가시오!”
또다시 당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은명의 전면에 암영이 둘러섰다. 엄청
난 살기였다. 그는 목울대를 크게 젖히며 멈칫거리다. 뒤로 돌았다. 그리
고는 황급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공주를 보고 잠깐 멈칫한 그는 아미의
사람들이 공주를 막아서자 그냥 두고 나갔다. 공주역시 피해자였던 것이었다.
“못난 놈! 저자가 너에게 그동안 말했던 것이겠지!”
당현의 말에 당세극이 벙어리가 되었다. 일문의 지존이 세치 혀에 놀아난 꼴이었다. 그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아무 말도 못했다.
당현은 물끄러미 멀어져가는 무정의 뒷등을 보았다. 사척의 참마도를 맨 그는 정말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헛헛 무림의 홍복이외다. 거룡이 나타났소이다...”
소림의 정천혜불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그는 거룡이었다.
“그의 귀신같은 신형과 희뿌연 안개 같은 묵기는 정말 두려울 정도
요....”
청음검성 경세진인의 말이 들렸다. 그도 무정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미타불.......... 피의 길을 걸어가야 될 숙명을 짊어진 가련한 분입니다...저 등 뒤의 참마도하나만이 그의 유일한 친구이지요....세존이시여...”
아미의 소신니 간명이 말했다. 강호는 저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이 그간의 전례였다. 무공이 높을수록 피의 길은 더욱 크게 열려진 것이었다. 무정이라면....... 말할 것 도 없었다.
“귀신같은 신형과 묵기를 지니고 피의 길을 도한자루에 의지해서 강호를 헤친다.......좋군요. 귀무혈도(鬼武血刀)라......”
“헛헛, 정말 그렇군요 귀무혈도, 적절한 표현 이십니다. 그의 도에 피가 마를 날이 거의 없겠지요...”
당현의 말에 경세진인이 말문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귀무혈도라........ 정말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대장 이제 어떻게 할 건데.....쓰벌”
“..........”
걸어가면서 상귀는 무정에게 물어왔다. 무정은 아무 말도 없었다.
“대장 그냥 우리랑 사쇼. 좋찮수...”
하귀가 입을 열었다. 무정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당분간은...”
무정의 말에 상귀와 하귀는 입이 귀에 걸렸다. 그래도 보고 싶은 사람은 같이 있는 게 좋았다. 그리고 고죽노인과 홍노야, 명경과 명각도 같이 있게 될 것이었다. 무정만 있으면...
뒤쪽에서 나직이 무정을 따라가는 홍관주와 명각, 명경이었다.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렇게 조용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과연 그럴까?”
명각의 말에 홍관주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명각은 눈을 침울하게 떴다.
그렇게 조용하고 정의롭다면 그건, 강호가 아닐 것이었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바램 일 뿐이었다.
“난 그런 강호가 싫었다. 그래서 한동안 강호에서 떠났지 그러다 다시 들어왔다. 저놈 때문에...”
홍관주의 턱이 무정을 향해 주억거렸다. 명경은 무정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왠지 저놈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강호가 될 것도 같은 생각이 들어....... 저놈이라면....”
홍관주의 말에 명경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묘하게 믿음이 갔다. 보이는 모습, 하는 행동, 말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도......
“어이쒸 빨리들 와! 홍노야 빨리 오쇼! 이러다 저녁 늦겠어. 쓰벌”
“글게요, 어서들 와요, 얼렁요!”
“야이 자식들아 좀 조용히 해라. 니들은 입 안 아프냐?”
“쓰벌, 내입가지고 내가 나불댄다는데 .... 어이 노인네 여기 주여루 아냐. 밖이야 밖! 쓰벌”
“글게요....영감탱이 오늘 좀 심하네..”
“.........”
고죽노인은 부들부들 떨며 신형을 옮겼다. 돌아가면 소희에게 또 이를 작정이었다.
“홋홋. 고놈들 참, 하는 짓거리마다 다 회춘이야 홋홋”
“하하하하하”
“허허”
홍관주와 명각 명경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느즈막한 저녁이 시작되고 있었다.
무정은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어느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해가 지고 있은 반대편에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미려군이 있을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 작은 그늘이 씌워졌다.
‘반드시 찾아 갈 것이오....’
조용히 다짐하는 무정이었다.
무정지로 사천행 完
첫댓글 너무 재밋어요
즐독 ㄳ
감사합니다
사천행은 마무리되고 해남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혹 왜놈들과 전투?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