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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7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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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장
이 꿈 안에서 깨어나라, 친구들이여
생명의 한 종족으로서 그대는 신념의 도약을 해야할 순간에서 도약할 자세를 취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그대에게 그대가 진화해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그대들이 결정하는 거죠. 그러나, 그대가 그 이야기를 믿는다면, 기꺼이 그 이야기를 놓아버리고 그 이야기가 더 이상 그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음을 알아차리세요. 시간의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목적 전체는, 그대를 혼동시켜서 명확함에 이르게 하고, 그대 존재의 세포를 차지하고 있는 생각의 패턴들 내에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창출하는 거지요. 우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봄으로써 그대는 변합니다. 그대 앞에 놓여진 날들에는, 그대의 물질계가 한때 그대가 탐구할 원초적 아름다움을 주었듯이, 장엄한 광휘로 가득 차 있을 거예요. 그대는 3차원적인 현실을 넘어서, 세계들과 현실들이 보다 다양하고 유연한 시간의 복도들로 들어가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는 겁니다. 그대가 할 일은 시간의 복도를 지나면서 보석을 찾아내는 와중에서 그대자신을 치료하는 거지요. 우리는 그대와 많은 열쇠를 함께 나누었고, 또 그만큼 많은 열쇠를 언급하지 않은 채로 놔두었어요. 늘 확장되고 있는 지금의 자신의 순간에 균형을 잡고 있는, 실존의 힘의 총체인 자기자신을 그대는 변형시켜야 하지요.
우리는 진화하고 있는 사람인 - 빛의 대사(大使)인 - 그대에게 말을 하고 있어요. 이 순간 그대는 유례없는 발견의 순간에 있지요. 그대는 자신의 드러냄과 자신의 추구를 통해 결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해 있어요. 그대의 현실로 여행할 때 우리는 그대가 저항하고 배우고 생명을 창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배우는 거여요. 그대는 시간의 이 시점에서, 즉 인생 여정의 절정에서, 자신을 고찰할 수 있지요. 그대가 우리 말에 끌리는 바로 이 순간에 올 때마다가, 한 결말을 의미하는 거여요.
우리가 이전 열 한 장(章)을 통해 그대와 나눈 모든 것은, 그대를 자신에게로 보다 깊이 들어가도록 설계한 겁니다. 그대는 신념들과 아이디어들을 보아 왔는데, 그것들 주위에 자아가 - 선택에 의해서, 그리고 지구 위와 하늘에서 오는 공공연하고 암묵적인 영향에 의하여 - 축조되는 거지요.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현실을 피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대는 지금 일종의 기회를 만든 거지요. 그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자신이 여행해온 것에 고마움을 보내는 이 결말 지점에 있는 거여요. 그대는 열 두 이야기에서 그대가 누구인가를 보다 더 배워온 거예요.
12라는 아이디어는 그대의 육체에 깊이 각인 되어 있고 묻혀있는 거지요. 12는 그대의 현실로 들어오는 수많은 감각 있는 존재들이 활용해온 신호입니다. 그대는 현실에 관한 어떤 수학적 합의 속에서 오늘의 그대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거여요. 수많은 수학적 기초들은 수와 해석을 추구해낼 수 있는 거지요. 그대들 중 대부분은 가장 흔히 교육받고 써온 기초에 동의하고 있을 뿐이고, 그것이 유일한 기초라고 믿고 있는 거죠. 12라는 아이디어는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수학적 가정과 관점에 우연히 일치해요. 12의 이야기는 그 기초보다 더 광대한 거지만, 그 기초 안에도 잘 맞아 들어가죠. 이런 구조를 통해 그대는 영향을 받을 수 있고, 그대가 현실로 가는 길을 안내 받을 수 있는 통로가 하나 확립되는 거여요.
그대는 삶과 실존의 모든 것을 겪어내면서, 어디로 여행하든 길이 있다는 걸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지구 위에서 고속도로를 내려가고 있는 자동차에 있고, 포장도로 밖으로는 결코 감히 나가지 않는다고 합시다. 그대는 길 옆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볼 수는 있지만, 그대의 차량은 길 위에서만 움직이는 거니까, 그대는 길이 있는 곳만 갈 수 있고, 결코 차를 세우고 걸어서 길 밖으로 가보지 않는 거지요. 12의 각인은 길과 같은 거라고 이해하세요 - 그 각인이 황도대의 12 표시들이 되었건, 시계의 12시간이 되었든, 이 책의 12장이 되었건, DNA의 가닥이나 차크라의 에너지 센터들로서 그대 자아[identity]의 12 각인이 되었든지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대가 지성적인 존재로서 여행하는 우주에 있는 길들이지요.
우리의 의도는, 그대가 자신이 12 에너지 모습들의 고속도로에 있음을 보다 완전히 알아차리게 하는 거여요. 그대가 진실로 이 12의 거대한 배치를 마음에 품을 수 있다면, 아마도 우주의 길들이 그대를 어디로 데려갈 지에 대해 좀 이해가 될 거예요. 그대는 우주적 생각의 모델인 12 길에 맞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이것이 이 책을 통틀어 신호로 입력된 가르침의 일부이지요. 그대를 통합시키는 실존 속의 분리된 장소로 그대를 데려갈 에너지의 열 두 길들을 이해하는 데에서 아주 깊은 창조가 일어납니다. 그대가 지금 집단 의식으로 겪으면서 축적하고 있는 의식 안의 거대한 변이로 이 길들이 그대를 데려갈 것임을 이해할 때, 그대가 현재 알고 있는 현실은 끝나버릴 겁니다. 그러나 끝은 그대가 새롭고 보이지 않는 시작 앞에서 허공에 떠 있는 채 통합을 하는 완성된 순간인 거지요. 생명의 한 종족으로서 그대는 신념의 도약을 해야할 순간에서 도약할 자세를 취하고 있읍니다.
그대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르죠. 내가 알고 있는 것의 요점은 뭔가? 내가 빛의 가족의 식구라는 걸 아는 게 내게 무슨 쓸모가 있나? 아마 내가 플레이아데스 사람일 거라는 거가 무슨 쓸모가? 지구가 귀중한 것이고,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과, 내가 지구를 걷고 지구를 찾는다면 내가 지구의 무한한 장엄함과 지구의 거룩한 사이트들 그리고 지구의 침묵으로 말하는 원들의 교향악 속에 있는 비밀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쓸모가...? 내가 그 도마뱀 종족들과 여신(Goddess)과 내 몸에 대해 알 필요가 뭔가? 그리고, 내 몸에 공간이 있어서 그 공간으로 다른 존재들이 나와 융합해서 내 눈으로 엿볼 수 있다는 게 어쨌단 말인가? 그리고 만약 다른 존재가 내 속에 융합되면 그들은 내가 보는 것과 같은 세계를 보는 걸까? 아니면 그들이 내 존재와 융합됨으로써 다른 세계들이 나타나고, 나는 그 다른 세계들 속에 나타나게 되는 걸까? 소유란 무엇인가? 20세기 후반의 지구에서 융합과 나타남이란 무엇인가? 이것과 내 몸에 대해서 나의 호르몬 샘들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성(sex)은 이 모든 걸 통해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자, 그대가 이런 점들을 곰곰이 생각할 때, 우리는 그대에게 이렇게 되묻지요. 그대가 그대 의식의 고리에 있는 비밀들로 가는 그대의 개인적인 거룩한 사이트들을 여는 것을 배울 때, 그대는 얼마나 위대하고 심오한 경이를 발견하고 있는 건 가요? 그대가 벽돌 벽을 만나서 그대 자신의 기장 깊은 신비들을 알게 될 때, 무엇을 발견하시나요?
그대가 에너지를 전환하는 것을 배워서 판단을 넘어서 움직일 수 있다면, 그대는 순간을 넘어서 시간의 거대한 얼굴로 - 그대의 형식과는 다른 형식으로 건축된 시간으로 - 데려다 줄 고양된 지점에 이르게 될 거예요. 그대에게 시간은 숫자들에 의해 규칙화되어 있지요. 그대가 한 원 안에서 누구인지를 결정해주며 시간 속에서 요약되어 있는 12의 이야기를, 거기서 다시 그대는 발견합니다. 그러니 그대가 이 책의 12의 사이클을 마치면서, 시간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바로 시간이란 구조체를 통해 다른 존재 형태들이 기하학을 표현하는 언어인 수학적 유산을 활용함을 깨달으십시오.
그대가 자신의 밖에 있다고 믿는 사이클들을 - 행성들과 달의 회전들을 - 연결하는 시간의 기하학을 고찰해보세요. 달은 컴퓨터인가요? 하늘에 있는 눈일까요? 어머니 여신인가요? 비밀 기지 본부? 연료 공급 기지? 아니면 고대 지식의 창고인 우주 도서관일까요? 달은 마술사이고, 사이클을 돌리는 자, 즉 그대 자신의 내적 조류와 위대한 어머니 물의 신(Great Mother water deity)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자이지요. 태양과의 관계에서 달은 누구일까요? 그대는 자아를 발견하는 그대의 여행에서 이걸 탐구해야 합니다.
태양은 위대한 통달자인 지배자, 즉 그대 태양계의 통치자죠 - 빛이 없이는 그대가 뭐가 되겠습니까? 누가 빛을 지니고 있나요? 그리고 실제로 누가 빛인가요? 그리고 둘러싸고 있는 에너지 형태들, 즉 우주 공간을 통해 진주들처럼 - 지구 자체만큼 똑같이 아름다운 보석들처럼 - 펼쳐져 그대 태양계에 있다고 그대가 믿는 당당한 행성들은 누구인가요? 공간에서 반짝이는 이 형태들마다에 지성이 있다는 생각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지요. 한편, 공간에 있는 이 반짝이는 바위 위에 많은 횟수로 존재하는 우리는, 이 시점에서 그대 행성을 폭격하고 있는 웅장한 아이디어들에서 자신을 닫고 있는 사람들을 놀라 바라봅니다. 그대를 제한시키기를 바라는 권위자들에게 속지 마세요. 고양되십시오. 그대는 보다 확장된 현실 판을 택하기로 결단함으로써 고양된 상태에 이르고 있는 거예요. 그대는 그대 사람의 모든 것에 보다 위대한 역할을 부여해주고 있고, 그대 자신의 권위의 내적 핵심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겁니다.
그대가 이 모든 것을 알면서 그대 존재의 총체인 이 지점으로 여행하면서, 자기 지식을 가족들과 사회, 문화와 나눌 순간에 이르려고 있지요. 그대들 중 많은 사람은 이런 순간에 처해 있어요. 그대는 자신이 아는 것을 나눌 - 설교하거나 두려움의 씨를 뿌리거나 다른 사람의 들판에 심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대 온 존재로 울림을 일으킬 - 의무가 있어요. 그대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 - 삶과 죽음과 탄생과 어린애들, 그대가 생산적인 사람이라 여기는 자들 뿐 아니라 남녀 노소의 모든 사회 구성원들 - 을 이해하고 포용할 필요가 있지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그대가 배운 작업을 하면서 자비심을 지니세요.
집단 의식으로서 그대는, 이 물고기 자리 시대가 최종적인 행동과 목적점을 완수하는 때에, 집단적인 전체 까르마(karma)를 직면하고 있는 겁니다. 까르마는 인과라는 우주적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대로 상연되고 있지요. 너그러운 거대한 몸짓을 통해 까르마는 실존의 창조가 창조자에게로 되돌아가게 하고 있어요. 바로 그대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대는 그대가 창조한 것을 개인적으로 돌려 받는 일을 겪고 있는 거지요. 이는 지금 그대가 배워야할 중요한 거여요. 우리는 이 글의 시작에서 우리가 우리의 까르마 때문에 지구를 체험하면서 여기에 있다고 말했지요. 그대 나름의 방식으로 그대도 이것을 깨닫는 시점에 있어요. 그러니, 그대의 삶을 쳐다볼 필요가, 즉 그대 자신의 밖으로 걸어나와서 12를 통한 그대의 여행의 위대한 관찰자인 주시자가 될 필요가 있어요. 도대체 그대는 누구이며, 그대가 이 의식의 판 - 이 삶의 12 사이클 내지, 돌고 돌아서 다시 또 다시 완성된 원이 되는 12 영향력의 게임 - 을 여행하면서 어떻게 그대 자신을 채택하게 되었을까요? 그대는 그 원 밖을 나갈 수 있나요?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대가 알고 있는 걸 가지고 무얼 할 건가요?
그대가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곳을 넘어선 시간대의 장소에 우리가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있는 그 장소는 그대가 차지하는 순간과 같은 순간을 차지하고 있지요. 그대는 그대 시간의 순간들 속에 보다 깊이 들어가는 법과 그대를 앞으로 가도록 유혹하는 끊임없는 매혹적인 멜로디가 있음을 발견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겁니다. 그대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찾고 있는 것이 늘 그대 바로 앞에 있음을 그대가 이해하길 바랍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부담을 느끼진 마세요. 추구를 통해서 그대가 자신을 점화시키고 자신의 상상력으로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음을 깨달으십시오. 우리의 의도는 그대에게 더욱 영감을 불어넣어 그대가 살아갈 목적 관념을 주는 거지요. 우리는 그대가 살도록 만들 수는 없어요. 그건 오직 그대, 그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거죠.
그대의 쿤달리니의 힘을 활용해서 그 힘을 늘 확장되는 파라다이스[樂園]의 비젼과 무아경의 울림에로 이끎으로써, 그대는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움직이며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가는 거죠. 파라다이스는 실존합니다. 파라다이스는 실제로 있어요. 그대들 모두는 파라다이스를 찾고 있고, 더욱이 파라다이스를 찾아낼 겁니다. 그대는 파라다이스가 지복(bliss)의 순간임을 알아차리게 될 거예요. 파라다이스는 그대가 영원히 거주하면서 싫증이 나게 될 지속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파라다이스는 지복의 순간이지요. 종종 그대는 파라다이스를 자기 바로 앞에 두고서 추구하면서 언제 그게 올까 하고 궁금해할 겁니다. 그대는 완전히 순간 속에 있을 때 자신이 지복의 순간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어요. 아니면, 그대는 뒤돌아보며 많은 지복의 순간들을 돌이켜볼 수 있지요. 그대는 몇 번이고 자신이 그 늘 확장되고 자발적이며 동시적인 순간을 만들어 왔음과 그 순간이 늘 그대를 손짓해 불러 더 나아가게 하고 있음을 알면서, 지복의 주파수에 거할 수 있어요.
그대가 12번째 부분에서 종결과 완결 지점에 이를 때 그 곳은 실제로 까르마의 자리이지요. 그 때는 학습 내용을 갈무리하는 때이고, 그대가 추진한 것의 총합이 그 사이클의 완결점인 그대에게 되돌아 올 때인 거죠. 이런 실현지점을 다루는 데는 극소수의 방법이 있어요. 그대는 그 실현지점에 걸려 갇혀 있다고 느끼고, 고통을 느낄 수도 있는데, 그 고통은 이런 희생양적인 관념이지요. 나는 무력하다. 나는 이것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순환 고리에 붙잡혀 있다. 나는 이것이 어떻게 일어났는 지 도통 모르겠다. 그게 그대의 입장이라면 그대는 그런 곤경을 또 유발하게 될 거란 걸 믿어도 좋아요. 아니면, 그대는 12의 여행의 총체적으로 활용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요. 이 12의 여행에서 내가 배운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내 삶 속에 있는 모든 것에 책임을 진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설계하고 창조한 거니까. 나는 이 여행에서 왜 내가, 무의식적이었을 망정, 특정의 것들을 골랐는 지를 알게 되었다. 내 생각이 나 자신의 현실을 창조함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고른 것들이 나를 도왔다. 그래서 이제 나는 12의 여행이 어떻게 나에게 도움을 주었는지를 이해한다. 나는 내가 발견한 걸로 해서 슬퍼지거나 속박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다.
그대들 모두가 이런 특정 양상들을 통해 공중곡예를 하면서, 우주 달력에 한 사건으로 상연되는 물고기 자리 시대의 끝을 체험하고 있는 겁니다. 가까운 미래에 물고기 자리 시대는 밑바닥까지 사라질 겁니다. 그대는 존재의 모든 측면들을 연결시키는 패턴들과 아이디어들로서 그대가 여행해온 고리들을 끝내고 처리하고 깨닫는 시점에 있는 거지요. 외부적 시스템의 순환 고리를 처리해온 그대들 중 일부 사람들은, 이제 그대 몸의 깊은 곳에서 그대 자신의 시스템의 순환고리를 이해하고 있어요. 그대들 중 일부는 그대가 그대 자신의 에펠 탑에 갇힌 죄수와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고요. 그대의 제한을 풀어버리세요. 그대가 오늘밤 자러 갈 때 그대가 살고 있는 탑의 벽 위에 열쇠가 있다고 시각화시키셔요. 만약 그대가 자신을 죄수라고 상상한다면, 그대가 현실의 어떤 고립된 측면을 더 좋아하든 간에, 밖으로 나가게 할 열쇠뿐만 아니라 새 옷도 한 벌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는 거지요. 고양되어서, 그대가 까르마 적(的) 부담으로 보이는 것을 해소할 수 있음을 알고 있으세요.
지금 이 시점에서 까르마가 그대를 쥐어짜서 괴롭히고 있다면, 그것은, 그대가 처벌할 필요나 부끄러움이나 자책을 느낄 필요 때문에 스스로 창조한 감옥에서 자신을 풀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들 모두는 놓아버림이라는 거대한 순간에 자세를 취하고 있어요. 그대가 자신 속에서 공간과 울림을 느끼며, 그대의 생각이 그대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설계했음을 알고 있으면서 자신이 빛의 대사(大使)라고 상상하세요. 그대가 그걸 시각화하고 상상하면, 세계의 새로운 개척지대와 전망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대는 그 지복의 순간을 시각화해야 합니다. 그대가 없이는 그 순간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입문은 그대가 신뢰하고 놓아버리고 변화하는 걸 배우는 시험이지요. 그대가 아주 어리고 다리가 짧을 때, 그대는 세 발 자전거를 타는 걸 배웁니다. 그대가 남의 도움 없이 세 발 자전거 위에 앉을 수 있을 때, 그대는 자부심을 느끼죠. 그리고 그대가 그 짧은 다리를 움직여 자전거가 나아갈 수 있게 하고 자전거 위에 계속 앉아 있는 법을 배울 때, 그대는 만 3살이나 4,5살 나이치고는 아주 훌륭한 성취를 한 거지요. 그리고 나서 입문이 있게 되죠. 그대의 다리는 더 길어지고, 더 이상 세 발 자전거에 맞지 않게 됩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세 발 자전거 위의 권위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죠. 그들은 결코 자기들이 경험한 지식의 순간들 너머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들은 그들의 긴 다리와 현실을 그 한 순간에만 맞추도록 강요하지요. 입문은 그대가 늘 확장되는 순간으로 들어가도록 - 보다 큰 자전거에 타서 그대 몸이 보다 성장한 상황적 필요에 맞게 움직이도록 - 하는 거여요. 그대의 몸이 물질적으로만 자라지 않음을 깨달으세요. 그대 몸은 정신적으로와 영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성장하여 다차원적인 실존이 되는 겁니다. 성장의 열쇠가 되는 것은, 모든 차원의 현실에서 모든 판의 그대로써, 성장과 변화의 과정을 신뢰하는 거지요. 그대가 직면하는 위기는 세계 지도자들과 권위 있는 인물들이 세 발 자전거를 타고 한 구역 주위를 돌면서 무질서한 신념의 순환 고리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는 데서 나온 겁니다.
입문은 광대하고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과 원만하게 지내면서 그것에 통달하는 거지요. 그대가 12 지점을 통해 배우는 모든 것의 집적은 종종 그대를 위기로 몰아갑니다. 왜 위기에 이를까요? 그대가 완고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그대가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나는 확장되어 있다. 나는 고양되어 있다. 나는 열려 있다. 나는 내 몸 속에 공간을 만든다. 나는 변화할 태세가 되어 있다. 그러면 이렇게 제동이 걸리지요. 이런 여기는 아닌데. 오, 아냐. 여긴 아니라구. 나는 바뀌지 못하고 있군. 나는 여전히 똑 같은 자리에 있어. 그대는 에너지가 그대를 통과해 지날 공간을 만들지 않는 것이고, 자신의 체(sieve)의 구멍을 막고 있는 거죠. 그럼 엄청나게 거꾸로 가게 되는 겁니다.
그대가 댐이 무너지는 걸 본적이 있다면, 처리할 거대한 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대는 그걸 곧 보게 될 겁니다. 그대의 댐들 중 일부는 그대의 세계 속에서 무너질 거여요. 왜냐하면 그대는 자신의 세 발 자전거에 계속 머물러 있으니까요. 그대는 보다 큰 자전거를 타다가 떨어질 걸 두려워하는 거죠. 놓아 버리세요. 그대의 있는 그대로를 위한 큰 사랑이 있음을 깨달으십시오. 현실은 그대가 설계한 것이고, 그대는 현실을 자신에게 유익하도록 설계한 거여요. 실존의 힘은 그대가 불러들이는 대로 그대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그러니 그대가 그 세계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지에 관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교향악을 만드세요. 그대는 제한되지 않았으며, 바로 그 점을 입문을 통해 그대가 배우는 거지요. 그대는 세 발 자전거에서 내려 보다 큰 자전거를 타서 그걸로 보다 빨리 몰고 가서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어요. 그대들은 성장하여 이제 집단으로서 보다 큰 무언가를, 즉 그대가 막 상상하기 시작한 차량을 타기에 이르렀습니다. 삶의 세 발 자전거에서 내리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자비심을 지니세요. 자비심을 지녀서 그대 가슴을 열고 그들을 초대해요. 빛의 대사가 될 용기를 지닌 그대들의 사람인 그들에게 길을 보여주셔요. 왜냐하면 그대는 보이지 않는 차량을 타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그대에게 나눠준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우리 얘기를 가지고 새로운 성경을 공표하진 마십시오. 우리는 그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여기 있고, 우리가 말했다시피 그대가 발판을 딛고 발판 밖에 있는 것으로 갈 수 있게 새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는 거 거든요. 아주 거대한 우주이니, 그대 자신을 제한해서, 파이를 굽는 한 요리법에 모든 것을 맞추진 마셔요. 삶을 보는 방식은 아주 많답니다.
12의 구현이 그대에게 그대 자신의 총체를 주게 될 겁니다. 그걸 취해서 12의 완성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여행이 시작됨을 깨달으세요. 바로 그런 순간에 그대가 처해 있으니까요. 모든 순간을 지복의 순간으로서 누리십시오. 여신들(goddesses)과 남신들과 모든 판의 그대 자신이 그대의 길로 수렴되어 흐르게 되는, 늘 확장되는 기회 속에 그대 자신이 계속 있도록 하세요. 그대 자신이 창조한 외투를 받아들이셔요.
12의 총합은 12 도서관의 아이디어에도 관계하지요. 그건 아직 그대가 시간의 이 시점에선 상상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대에게 비젼과 아이디어를 주었듯이, 그대들 중 일부는 그대 자신의 예술적 형상 속에서, 처음에는 상상 속에서 만들고 나서는 그 다음에는 그대 행성에 있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 도서관들을 창조하기 시작할 거예요. 어떻게 이 이미지들을 형상으로 만들지는 그대 선택의 자유이지요. 우리는 그대가 지구를 포함한 열 두 독특한 센터들이 살아나고 있다는 생각을 견지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방향으로 움직여가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그대가 그대의 현재를 향상시키고 탐구하고 대담하게 새로운 체험의 정점으로 올라갈 용기를 지니게 될 때, - 더 이상의 것이 있다고 주장할 때, - 이 순간은 12의 모든 측면에로도 울려 퍼집니다.
이 지식의 열 두 센터들이 빛의 에너지적(的) 레이저 그리드 망으로서 일단 다시 연결될 때, 새로운 만달라(mandala. 만달라는 진리가 현상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통 중심에 진리 내지 신성(神性)이나 불성(佛性)의 형상을 놓고 그 주위를 빙 돌아가며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더 현상적인 모습들을 배열해놓은 그림이다. 티벳 불교의 만다라가 유명하다.)가 - 그대가 자신이 우주 속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그런 우주 속에 있는 에너지 고속도로가 - 존재할 겁니다. 12의 이야기는 한 원에 들어맞고, 현실이 확장되어 더 이상의 순간들을 성취하게 될 때 그 이야기는 나선에도 맞게 되지요. 그대가 12의 사이클을 완수할 때, 그 사이클은 그대가 진화해 나가는 지향점이 되는 의식의 보다 큰 원 내지 구체를 만들어 냅니다. 그대는 제한되지 않은 것을 상상하기 어려우니, 자신을 한 원 안에 결합시키도록 하세요. 그대는 그 원을, 황도대라고 부르는 것이 됐든 달력이나 시계가 됐든, 12로 나눕니다. 그대는 자신이 기하학의 그런 측면에 있음을 알아차리죠. 왜냐하면 그대는 그 안에 있는 게 편하니까요. 그대는 그것 없이는 움직일 수 없어요. 그러나 그대 발전의 이 단계에서 그것이 그대가 자신의 사이클들을 배우는 지점이므로, 우리는 그 활동 무대 안에서 그대를 가르치는 거죠. 모든 기하학은 그 원 안에 포함되어 있고, 나선에로 가는 열쇠이지요. 나선이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자신을 이해하는 걸 그 원은 도웁니다.
우리는 그대가 두 세계 속에 있음을 그대에게 일깨워주려 합니다. 그대가 자신의 차를 몰고 목욕탕으로 가고 자고 먹고 모든 인간이 하는 것을 다 하지만, 그대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게 아니지요. 그대는 지식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고, 이 세계들 양 쪽을 잇는 규칙들에 접근하는 통로를 얻게 된 거여요.
또한 안전한 세계의 아이디어에 에너지를 불어넣어 줄 것을 그대에게 일깨워주려 합니다. 많은 것이 일어날 것이고, 일어나리라고 예언되어 온 일들인 떠들썩하고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건들을 통해 변화가 있을 겁니다. 그대들 모두가 연장자들의 즉, 모든 문화에 있는 토착인의 슬기를 추구하고, 그들이 나누어주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할 거예요. 그들은 이 시기에 대해 얘기했고, 그들의 스승들은 우리의 스승들이었어요. 그들은 지구가 말하는 대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실존의 아주 많은 창조물에서 온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게임의 달인들이, 멀찍이 떨어져 창조해서 창조한 현실 속에 거하며, 현실들을 서로 얽히게 하고 교향악이 되도록 하면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그대에게 일깨워 주려 합니다. 친구들이여, 이 꿈 속에서 깨어나서 그대가 지금 아는 것에 근거하여 안전한 세계를 상상하고 시각화하는 것이 인간존재로서 그대의 의무이자 책임임을 깨달으세요. 그대가 명하는 대로 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대 자신의 체험이 그 명을 비추어 줄 겁니다.
우리는 그대가 그대 존재의 핵심 속에서 생명의 불꽃인 믿음의 불길을 점화시키고, 의미와 목적이 충만한 축복에 찬 삶을 개척하는 용기를 지닌 데 경의를 표합니다. 그 불길이 자라나는 걸 보며, 그 불길이 체험의 거대한 활동 무대로 가는 안전하고 독특한 모험의 연료가 되도록 허용하세요.
에너지 운동
그대자신이 활짝 열린 하늘 아래에 있다고 상상하세요. 공기는 상큼하고 살아 있으며, 그대 발 밑의 땅은 확고하고 탄탄하게 느껴집니다. 깊은 숨을 들이쉬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는 살아 있다! 그대의 활력에 초점을 맞추고서 그대의 내적 비젼을 그리는 화가인 그대 상상력의 순간들로 들어가 여행하셔요.
그대 앞에 고대의 돌로 된 원을 그려보시고, 거석들이 시간의 천개(天蓋) 아래에 꼿꼿이 위엄 있게 서 있을 때, 잠시 자신을 12개의 장엄한 거석들의 울림에로 열어두세요. 그 돌들이 의식(意識)으로서 자신이 맡고 있는 경험을 전달하면서 말을 하고 있는 걸 느껴보셔요. 그 돌은 지구의 뼈로서 봉인된 채 엄청난 실존의 시간대 동안 살아 왔고 깨어있었어요. 돌 하나에로 걸어가서 그대의 손을 시원한 표면 위에 놓고, 황금의 나선이 그 돌을 통해 춤을 추어 나아가면서 그대의 현재에로 올 때, 그대의 세포로 귀기울여 들어보세요. 거석에서 거석으로 걸어다니며, 12를 체험하고 돌마다 보관하고 있는 기념비적인 에너지와 임무를 감지하세요. 그 에너지를 포착해서, 그대 존재의 뼈가 황금의 나선으로 가득 차도록, 자신에게로 전달하셔요.
이제 돌의 원 중심으로 걸어가서, 사람들의 지구를 존중하고 지구의 대관식을 해주는, 찬란하고 영광스런 해석판의 지구를 지탱하고 있는 씨를 심으세요. 빛과 염원에 관한 그대 지식을 써서, 이 씨를 활성화시킬 생명의 불꽃을 창조하셔요. 황금 나선이 모든 방향으로 돌면서 떨어져나가 12의 길을 걸어서 새로운 지구의 씨앗을 뿌릴 때, 원의 중심이 확장되고 씨앗이 자라나는 것을 보세요.
이제, 한 목소리가 토운과 형태 면에서 아주 낯익은 말로 이렇게 말하죠. 우리는, 시간의 황금 나선 위에서, 실존의 시대들을 순환시키면서 우리 자신에게로 불러들이고 있는, 바로 그대입니다. 고양되십시오. 그대의 여행이 새롭게 시작되기를 빕니다. 그대 자신이 되세요.
글을 마치며
사랑하는 빛의 사도들이시여.
심지어 그대들이 포착한 새로운 관념들 속에도 구조와 한계가 있음을 깨달으십시오. 그러나 그대들이 추구한 각각의 새로운 용맹 으로 해서 그대들은 새로운 풍경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 곳에서 그대들은, 거룩한 가르침이 오늘 바로 그대들 자신 판(版)의 삶(your very own version of life). 여러분 각자의 몸과 마음으로 해석되어 나타나는 삶을 그대들 자신들 판(版)의 삶 이라 한 것이다.
으로 공연되는 만큼, 실존의 정점을 가늠하게 됩니다. 그대들이 그대를 삶의 이 부분, 즉 늘 확장되고 있는 지금의 이 순간을 보면서, 어떤 장(chapter)이 닫히고 있는 지 그대들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낡은 발견들은 내버려두고 이 순간 속으로 더 나아가도록 그대들 자신을 고양시키십시오. 그리고 그대들 존재의 핵심에게 배움의 새 사이클이 기다리고 있음을 희망하십시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친구들이여, 그리고 고양되십시오. 늘 확장되고 자발적이며 동시 발생적인 순간을 통해 과거로 들어가는 그대들 자신의 길에서 배우십시오. 실존의 새 사이클이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대들을 새로운 의식의 초고속도로 상에서 안내하는 데에다 생각의 도구들을 쓰십시오. 어떤 기술도 그대들 자신의 생물학적이고 정신적인 존재의 장엄함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내맡켜버린다는 것이 점점 더 맞붙어 해볼만한 일이 될 때, 그대들 중 많은 사람에게는 이런 나날들이 슬픔으로 가득 찰 수도 있습니다. 지구에서 이 시끄러운 시간들을 통과해서 살아가기 위한 의식의 열쇠가, 우리들과 그대들이 할 수 있는 한 한껏, 그대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대들이 슬기 속에서 자라나서 번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알려지지 않은 곳에 있는 보이지 않는 그대들 친구이자 동료들인
플레이아데스 사람들
글쓴이에 관해서
플레이아데스 사람들은 플레이아데스 성단 출신 외계인들 집단이다. 그들은 1988년 5월 18일부터 바바라 마시니액을 통해서 말해오고 있다.
플레이아데스의 가르침은 물질계와 영계를 중개하는 역할을 하며 사람들을 역설과 패러다임의 변화와 영성(靈性)의 세계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도록 이끌었던 고대의 의식 단체인 샤머니즘[巫俗]의 가르침과 비슷하다.
바바라 마시니액은 노쓰 캐롤라이나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트랜스 채널(trance channel. 채널링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를 거치는 3주의 여행의 귀결점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1988년 5월 채널링(channeling)을 시작했다. 이 여행에서 바바라는 충동이 일어나, 이 생애에서의 특정 사원들과 파워 사이트(power site, 파워 연결지점)인, 기자의 대 피라미드와 나일강을 따라 있는 신전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델피를 다시 체험하게 된다.
그 뒤로 바바라는 미국 전역에서 집회와 연수회를 이끌어 왔고 영국과 페루, 볼리비아, 멕시코, 이집트, 그리스, 발리, 오스트렐리아에 있는 거룩한 파워 사이트들 여행을 도와왔다. 그 사이트들 자체가, 고차원적인 마음의 지식 즉, 지구가 지금 다시 창조되려고 하고 있다 는 고차원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에너지 소용돌이와의 연결통로임을, 그녀는 느끼고 있다.
바바라는 그녀가 플레이아데스 사람들과 체험한 것이 값을 따질 수 없는 선물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녀가 하는 일은 자신에게 개인적이고 전(全)지구 차원으로, 그리고 우주적 차원으로 탈바꿈할 기회를 주었고, 이 점에 대해 그녀는 엄청난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