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신의 관(冠)을 쓴 자는,
비록 서리일지라도 씨를 남기지 말게 하라.
"(凡戴文冠者,雖至胥吏,俾無遺種)
고려 무인정권의 첫 머리는 이렇게 기록되고, 시작되었다.
김부식(金富軾)의 아들 김돈중(金敦中)이
장군 정중부(鄭仲夫)의 수염을 촛불로 태웠다.
문신 한뢰(韓賴)는 이소응(李紹膺)의 뺨을 때려
무부(武夫)의 자존심을 깡그리 뭉게 버리므로써
100여 년 무인정권의 시발이 되었다.
1170년 8월(의종 24) 문존무비(文尊武婢)의 정책에
참을 길 없었던 무인들은 이를 빌미로 정중부를 비롯
이의방, 이고 등이 정변을 일으키고 문신들을 대량 살육했다.
이 정변으로 무인들은 원종 11년인 1270년 까지
약 100여 년 간 고려를 지배했고, 문인들을 철저히 배격했다.
무인들은 도방(都房), 서방(書房)과 같은 기구들을 통하여
사병 조직이나 가신 집단을 조직화하고 정권을 지탱하는
물리적, 인적 기반을 확충하여 더욱 공고히 했다.
정중부는 첫 거사에서 의종을 거제현(巨濟縣)으로 추방하고,
태자는 진도현(珍島縣)으로 추방하였으며, 태손(太孫)은 죽였다.
정중부는 수염을 태웠던 원한으로 현상(懸賞)을 걸고
감악산(紺嶽山)으로 도망한 김돈중을 추적하여 잡아다가
냇가 모래사장에서 죽였다.
현상금이 탐났던 하인의 밀고로 그의 거처가 탄로 났던 것이다.
아버지 김부식의 권세를 믿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탐했던
김돈중은 이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김부식의 가계는 손자 김군수(金君綏)가 장군 김취려의 막하에서
독단 행동을 보임으로써 유배를 당하고,
이후 계보를 잇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한문수 2009. 2. 20. 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