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1 왜 창조된 세계를 소개하면서 구태여 아직 없는 것들을 나열할까?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56)
이 구절은 참 특이하다. 창조 직후의 세상을 설명하려면 새로 있게 된 것'을 소개하면 되는데 구태여 '없는 것들'을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 가지이다. (1) 비, (2) 땅을 갈 사람, (3) 들의 초목, (4) 그리고 밭의 채소이다. 그리고 있었던 한 가지를 말한다. '안개'이다. 이런 묘사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분명히 셋째 날에 뭍이 드러나고 그곳에 식물이 창조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밭과 들은 있는데 초목과 채소가 없다면 셋째 날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 즉 뭍은 드러나고 식물은 아직 창조되지 않은 그 순간을 묘사하는 것인가? 그런데 사람이 없었기에 초목과 채소가 없었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사람은 마지막에 창조되지 않았는가? 또한 현대의 독자들이 5절과 절을 이어서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창조 직후에 있던 세상의 관개 구조를 설명하려는 것 같다. 즉 비 대신에 안개로 온 지면에 수분을 공급했다고 설명하는 듯하다. 과연 그런가? 하나씩 생각해보자.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이런 설명은 비를 경험한 저자가 비를 경험한 독자들에게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창조 이후 비가 처음으로 내린 것은 노아 홍수 때였다(창 7:4). 그래서 성경은 노아가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히 11:7)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때는 홍수 전이었지...”라는 뜻이다.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이 구절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냥 '사람'이 없었다가 아니라 '땅을 갈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언제 땅을 갈기 시작하였는가? 범죄 이후 에덴에서 추방될 때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창 3:21) 하셨다. 범죄 전 인간은 땅을 경작하며 "종신토록수고"(창 3:17) 하지 않아도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모든 열매 맺는 모든 나무"(창 1:29)를 먹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 구절은 “그 때는 아직 에덴에서 추방되기 전이었지..."라는 의미이다.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 '초목이 창세기 1장 12절에 언급된 풀과 채소와 과목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목'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시아흐는 그것들과 전혀 다르다. 그 단어는 구약에서 네 번 사용되었는데, 욥기 30장 4절과 7절에서는 모두 '떨기나무'로 번역되었다. 특히, 7절에서는 '가시나무'와 같은 의미로 나란히 병행을 이루고 있다. 창세기 3장 18절에 의하면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범죄 이후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이 구절 역시 "그때는 죄의 결과로 나타난 가시식물이 있기 전이었지."라는 의미이다.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않았으며 여기 '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바로 앞에서 ‘들’로 번역된 단어와 같은 싸데이다. 문자적으로 ‘밭의 식물’을 가리키는 에세브 핫사데라는 구절은 똑같은 표현으로 창세기 3장 18절에 나타난다.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이란 표현에서 '밭의 채소가 바로 에세브 핫사데이다, 똑같은 단어로 이 두 구절에 사용된 것이다. 그러니 이 말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그 때는 죄의 결과로 주어진 음식인 에세브 핫사데가 아직 없던 때에”라는 의미이다.
결국,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내용과 충돌되는 기사를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구절은 죄의 결과를 목도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런 여러 죄의 결과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창조 직후의 세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창세기 2장 5~6절은 창세기 1장을 다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3장 이후를 미리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니'지금 있는 것들'이 아니라 '아직 없는 것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타락 전 세상과 타락 후 세상을 비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신 '안개'는 무엇인가? 여기 '안개'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드는 구약 성경에서 오직 두 번, 여기 창세기 2장 6절과 욥기 36장 27절에만 나온다. 한글개역과 개역개정을 비롯한 대부분의 역본들은 '안개'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과 새번역성경은 '물'이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이 단어를 보통 '샘'을 뜻하는 헬라어 페게로 번역한 칠십인역(LXX)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외에도 학자들에 따라 수증기', '우물', '지하의 물줄기, 심지어 '거대한 물 덩어리' 등으로 설명한다.
무엇이 더 적당한 번역인지를 판단하려면 이 에드에 대해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땅에서 올라오는 것이며 둘째는 특정 지역이 아니라 온 지면을 적신다는 사실이다. 만약 '안개'라고 번역한다면 그것은 땅에서 나온 후 이슬처럼 되어 온 땅을 적시는 것이어야 한다. 또 '물'이라고 한다면 그건 특정한 지역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 걸쳐 여러 곳에서 솟아올라 땅을 적시는 곳곳의 샘물'을 가리킬 것이다.
'샘물' 견해는 창조 주간의 셋째 날에 있었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뭍이 드러난”(창 1:8) 사건을 설명하는 시편 104 9~10절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그 구절은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9절)고 말한 다음 곧바로 이어서 "여호와께서 샘을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셨다고 말한다. 안개나 이슬은 전통적인 번역이며, 물이나 샘은 좀 더 현대적인 번역이다. 여하튼 이 구절은 창조 직후 세상의 관개구조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구조가 아니라 반대로 '땅에서 올라오는' 구조였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범죄 이후 세상과 범죄 이전 세상을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