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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있는 자가 되자 단 12:1-4
자! 이런 우리의 주변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읽어보십시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하나님은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고,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왕래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지금 그 말씀 그대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졌고, 세계가 한 지구촌이라고 할 정도로 빨리 왕래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적중하였을 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가 바로 종말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 종말을 "그 때"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그 때"라는 말씀은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 때"는 우선 우리가 사는 지금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곧 많은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고 지식이 날로 더해 가는 때를 종말로 예견한 것입니다.
둘째,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북방 왕으로 상징되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는 시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남방 왕과 북방 왕이 계속해서 전쟁을 하는 과정을 말씀드리면서 북방 왕인 수리아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전쟁에 승리를 해도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패전을 해도 화풀이로 예루살렘을 침략해서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힌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통의 시간이 지나자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종말에 있을 적그리스도는 잘 되어도 믿는 성도를 핍박하고, 못되어도 성도들을 박해하는 세력입니다. 이런 종말적인 적그리스도의 유린과 유혹과 핍박이 있은 후, 예수님은 공중에 구름을 타고 재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라는 말씀은 이런 때에 초점을 맞춘 말씀입니다.
대환난의 예고
성도들에게 적그리스도의 핍박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최대의 핍박입니다. 그래서 이를 대환난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전무후무한 환난이라고 합니다.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라고 합니다.
이런 환난에 대하여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그리고 이런 환난을 끝까지 참고 견뎌야 복이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여러분! 지금은 다니엘이 "그 때"라고 지적한 바로 "그 때"입니다. 그러니 성도는 이런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믿음을 견고히 하여야 하고 경성해야 합니다. 형식적이 신앙생활을 버리고 깨어 살아 있는 믿음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미가엘의 등장
이런 때에 하나님은 천사장 미가엘을 등장시키십니다. 그래서 성도를 돕습니다. 극한적인 어려움에 처하여 있는 성도들을 도우시는 분은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계시록에도 이와 유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계 12:9).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계 12:13).
여기 남자를 낳은 여자란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고, 신약의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에도 피할 곳을 주시어 성도들이 환난을 피하여 광야로 가지만 마귀는 그 곳까지 따라와서 괴롭힙니다.
그러나 군장 미가엘이 나타나면 마귀의 세력은 꺾입니다. 군장 미가엘은 최후에 나타나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가 나타나면 모든 환난은 끝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재림하시면서 옛 뱀이라고도 하고, 용이라고도 하고,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악의 실체를 잡아 결박하여 일 천년 동안 무저갱에 던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앞잡이가 되어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하던 세력인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도 잡아
유황불이 있는 붙못에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궁극적 구원입니다. 그러니 성도는 환난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생명록에 기록된 사람 미가엘은 누구를 구원하고, 예수님이 오시면 누구를 구원을 하시는 것입니까? 힘이 있는 사람도,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직 책에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이 책을 생명 책이라고 합니다. 생명 책이란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청할 때 사용한 말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이 아론과 공모하여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하나님을 배신하였을 때, 하나님은 진노하시어 모세에게 "내가 이 백성을 모두 진멸해 버리고 가나안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이 때 모세는 기도하기를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33)라고 합니다.
이것이 생명 책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주시기로 예정된 사람들의 이름을 생명 책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미가엘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구원하는 사람은 이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뿐입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것은 만민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생명 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시어 역사하는 것도 이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의 마음에 오시어 감동하시고, 예수님를 주님으로 고백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책은 성도의 이름만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억조창생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행위가 모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 책이라"(계 20:12-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이 여러분 자신의 구주인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저는 의심없이 여러분의 이름이 그 생명록에 기록되어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를 입고 있는 여러분! 주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 책에 선택받은 사람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된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더욱 열심히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며,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구원하기 위하여 전도를 하여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더 은혜롭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6).
그는 우리의 이름 정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그의 손바닥에 새겼습니다.
즉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실 때 생긴 못 자국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만세 전에 그의 생명 책에 기록해 놓으셨을 뿐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면서 생긴 못 자국을 우리들 하나 하나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손의 못 자국을 누가 지울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확실하게 우리를 붙잡고 있으니 구원은 확실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믿습니까? 이런 축복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가지 부활
생명록에는 구원받을 성도의 이름과 심판 받을 불신자들의 행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은 양자 모두에게 부활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부활이 일어나는 데 본문에는 그것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단12:2).
부활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활하여 영광스런 영생에 들어가는 성도가 있는 반면 영원토록 부끄러움을 당하는 불신자의 부활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일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이것이 종말에 있을 사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렵지 않은 것은 생명 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모두 영생에 들어가며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생명의 부활이 있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되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말세의 일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때를 가르쳐 주셨고, 환난이 있을 것을 가르쳐 주셨고, 생명 책이 있는 것과 그 속에 어떤 사람의 이름이 있는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모두 가르쳐 주신 이유는 지혜로운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런 일들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 이런 일을 알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다.
첫째,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때를 아는 자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그때인 것을 알고 이 일에 대처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1-12).
둘째, 지혜 있는 자는 자기의 할 일을 아는 자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지혜 있는 사람은 빛의 갑옷을 입고 어두운 이 세상을 비추는 사람입니다. 밤하늘의 별과 같이 밤과 같이 어두운 이 시대를 비추는 사람입니다.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윤리가 땅에 버려진 이 세상을 의로움과 진실로 비추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해야 합니다. 종말적인 의미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돈을 많이 벌고, 잘 사는 것 보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밤하늘에 별과 같이 빛을 발하는 신자가 되십시다.
맺는 말
연합헌신예배를 통하여 일인 한 명의 제자를 삼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성실히 수행하여 여러분 모두 말세에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을 기다리라 단 12:6-13
도산 안창호의 기록을 보면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는 나그네와 주인의 차이점을 책임의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어떤 집에 불이 났을 때, 구경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걱정하는 사람, 원인을 규명하는 사람, 불을 끄기 위하여 물을 날라 오는 사람, 불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 등등 갖가지 사람이 있겠지만 그런 일은 이웃이나 나그네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불이 났을 때 뿐 아니라 불이 꺼진 후에도
주인은 그 집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인은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원인을 규명하는 사람도 아니고, 불을 끄고 흩어지는 사람도 아니라 다만 끝까지 책임을 지고 묵묵히 자기의 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은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사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 나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사회가 혼란한 것은 나라의 주인이 [나]라고 자청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나]를 다스리시는 주인 뿐 아니라 이 나라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그 분이 속히 임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만왕의 왕되신 주님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책임져 주십니다. 믿습니까?
종말에 대한 질문
이렇게 필요한 분이시기에 기다려야 하고 기다려도 오시지 않으니 매우 궁금할 뿐입니다. 그래서 언제 오시려는지 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궁금증은 상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종말에 대한 계시를 들은 다니엘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그는 이 악한 세상에 주인이 필요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모든 계시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가 더 궁금했습니다.
이 질문은 먼저 천사가 물위에 떠 있는 분에게 묻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단 12:6-7).
한 때 두 때 반 때가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져야 한다는 대답은 다니엘서를 지금까지 공부한 성도에게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만 다니엘에게는 오히려 궁금증을 더 해 주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니엘이 묻습니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단 12:8).
그러자 이번에는 더욱 이상한 말씀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단 12:11-12).
전 후 3년 반의 문제
이제 말씀을 통하여 주신 시간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인데, 이 말은 우리의 귀에 이미 익숙해져 있습니다.
즉 70이레 중 69이레는 이미 지나갔고 마지막 한 때가 남았는데, 이 한 주간을 둘로 나누면 3년 반이 됩니다(단 9:24). 이 3년 반의 앞부분을 전 3년 반이라 하고 다음을 후 3년 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 3년 반은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는 기간(계 11:1-6)이며, 이 기간이 끝나기 시작하면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는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 3년 반은 복음이 수난을 겪는 것으로 막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숫자입니다. 그것은 1290일이라는 숫자와 1335일이라는 숫자입니다.
첫째, 1290일이라는 숫자는 3년 반인 1260일보다 30일이 더한 숫자입니다.
둘째, 1335일은 1290일에 다시 45일을 더한 수입니다.
이 숫자에 대하여 종말론 학자들은 각기 다른 의견들을 개진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수리아 왕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 (Antiocho-Epiphanes) 의 핍박의 날 중에서 가장 극렬하였던 시절이라고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로마의 장군 세스티우스(Cestius)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A. D.66년)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를 폐지시킨 해(A.D. 70년)까지를 가리키는 숫자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회당을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 세운 것을 가리킨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보았듯이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하겠습니다.
이 숫자가 무엇을 가르치고, 얼마간의 기간이고, 언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것을 규명하는 것은 퍽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숫자인 한 때 두 때 반 때로 나타난 전 3년 반이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면서 끝이 나고 두 번째 3년 반인 1290일과 1335일이 시작되는 것은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이 나타나면서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성도의 수난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별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이상하고 불안한 것은 주님의 말씀과 배치되는 듯한 부분입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 24:22).
주님은 분명히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신다"고 아주 확실하게 말씀하셨는데, 그 날들이 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환난의 목적
그러나 그것도 그리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을 받는 성도들을 왜 이런 환난을 주시는지, 악인은 이런 때에 어떻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알면 쉽게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성경 본문을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단 12:10).
하나님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때로는 시험을 당하고 환난을 겪도록 방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성도를 연단하기 위해서 입니다.
둘째, 스스로 자신을 정결케 하여 깨끗한 신자가 되고 거룩하게 되기를 바래서 입니다.
여러분! 혹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성도의 환난은 영적으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재정적으로, 혹은 육신의 건강으로, 혹은 가정적인 일로 고통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어려운 고비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랑으로 연단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을 아시고 꼭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스스로 거룩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길이요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악인의 경우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들은 환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마음이 더욱 강퍅해 집니다. 그래서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믿는 사람들을 더욱 핍박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단 12:10).
성도가 당하는 재난과 똑 같은 재난이요 어려움이지만 악인은 결코 회개할 줄 모릅니다. 여기서 선택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종말이 되면서 많은 재앙들이 이 땅에 쏟아지는데 그것을 대접으로 물을 붙는 것 같이 묘사했습니다. 이것을 대접 재앙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 마음이 강퍅한 자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코 회개하지 아니합니다.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계 16:8-9).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계 16:10-11).
그러니 이런 환난의 시기는 알곡과 가라지를 가리는 시기입니다. 그러니 후 3년 반으로 말씀되는 1260일이 1290일로 연장되고 1335일로 다시 연장된다고 하여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잠시 재앙이 연장되었어도 신실한 성도는 불안할 것도,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더욱 성결해 질뿐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더욱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꼭 신앙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다만 우리는 이런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십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구절이 있습니다.
"기다려서 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단 12:12).
하나님이 이 땅에 내리시는 마지막 재난과 환난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약간 길어진다고 하여도 동심하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과도 잘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그러면 끝까지 견디고 참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기다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단 12:13).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것은 오직 믿음이 있는 자만이 가능합니다. 기다리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하라"(단 12:9).
왜 마지막 때까지 봉함하라고 하였을까요? 그 때 가서야 이루어질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없으면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다리는 것은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단 12:13).
주님은 평안과 기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는 사람은 소망 중에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전적으로 신뢰하십시다. 그리고 마지막을 다리십시다. 말씀에 약속하신 것들은 모두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마지막을 기다리십시다. 믿음을 가지고 마지막을 기다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주님은 영광 중에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영광스런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런 은혜와 축복이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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