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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7:29~38:30 유다의 암흑기
하나님은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백성들이 하소연을 할 때,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라고 하셨는데,
민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인간의 죄를 볼 때, 지렁이 뱀이 연상되는데, 죄를 다스리지 않으면 지랑이가 아나콘다가 된다. 아나콘다는 악어도 잡아먹는데, 아무튼 그런데 놋은 살균작용이 있어,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이렇게 설명하셨는데,
요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그런데 사실 인간이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모든 사람이 그 안에서 죄인이 되었고 죽음이 왕이 되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역전되었다.
롬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토마스 보스턴은 인간 속에 사자보다 잔인하고, 뱀보다 교활하고, 너구리보다 더러운 것이 있다고 하였다. 이원영 목사님은 인간 속에 하수구가 있다고 하여, 아무리 깨끗한 것처럼 보여도 한 번 작대기로 치면, 온갖 오물이 올라온다고 하였고, 어떤 목사님은 죄짱아치라고 하였고, 예레미야는 인간의 마음이 만물보다 악하다고 하였다. 예수께서도 인간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말씀하셨는데,
막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유다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데, 다윗도 그랬거니와 유다의 삶을 볼 때,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지 않으셨더라면 그의 삶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의로운 요셉과 대조되는 유다는 완전히 죄로 뒹구는 죄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셨고 그에게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나게 하셨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어떠함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음은 율법과 양심을 초월한다.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그런데 죄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내 속을 보면 지렁이 말미잘 사자 늑대 여우 표범 하이에나 동물의 왕국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그렇다고해서 그것이 죄를 합리화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드의 가문과 한 도둑의 가문을 조사하였는데, 조나단 에드워드의 가문에서는 석박사 의사 판사 목사 등이 배출되었는데, 반면 어떤 도둑의 가문에서는 살인자 간음자 마약 중독자 등이 있었는데, 엄청난 차이가 났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이같은 죄인일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희망이 있음을 말해준다.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 르우벤은 요셉을 구덩이에 넣고 나중에 몰래 아버지에게 보낼려고 하였는데, 유다가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버렸으므로,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말하였다.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 이들은 완전범죄를 구성하였다. 요셉의 옷에 피를 묻혀 야곱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야곱은 대경실색하여, 야곱은 스스로 무덤으로 들어가길 원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가장 사랑한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 요셉은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렸다. 그리고 이때 유다는 아버지 야곱의 큰 슬픔을 목도하고, 요셉을 판 장본인으로서 형제들로부터 떠나 친구에게로 내려갔다.
38: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 유다는 양심상 도저히 아버지와 같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둘람 사람 히라는 한 마디로 유다의 불알친구 곧 막역지우이다. ‘히라’는 ‘고상하다’는 뜻이고, ‘아둘람’은 다윗이 도망하면서 머물던 굴이 있던 곳인데, 뜻은 ‘하나님의 공의’라는 뜻이라고 한다. ‘수아’라는 뜻은 부요하다는 뜻이 있는데, 분명한 뜻은 모른다. 아무튼 유다는 요셉을 팔아버린 죄를 짓고 한 번 버린 몸 에라이 막 나가자고 막 나가는데, 이스라엘 가문이 멀리하는 가나안 여인과 바로 관계를 맺어버리고 말았다.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 ‘엘’은 ‘원수’, ‘감시’하는 이라는 뜻으로, 당시 유다의 상태를 대변하는 이름이다. 대개 고대에는 아들의 이름은 아버지의 상태를 대변할 때가 많았다. 모세도 미디안에서 나그네 되었을 때 자식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던 것을 보면, 자식을 낳았을 때 유다의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뜻으로 보인다. 죄를 지으면 누군가 자신을 쏴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 오난이란 이름은 ‘강한’이란 뜻으로 유다의 심정을 반영한다. 유다는 둘째를 낳고 자신이 강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 히스기야라는 이름도 있는데, 강함이 어떤 강함이냐가 중요하다.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 셀라의 이름은 ‘안전’, ‘보증’이라는 뜻으로, 아들만 셋이나 낳았으므로 비로소 유다의 마음이 안전하다고 보증이 되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거십이란 뜻은 거짓이라는 뜻으로, 결과를 놓고 볼 때, 가나안 여인으로부터 낳은 아들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구약에서는 경건 때문에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터부시하였다.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 다말은 ‘대추야자’, ‘종려나무’라는 뜻이 있다. 다말도 가나안 여인인 것 같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인간은 사실 모두 죄인 곧 가나안 여인이다.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 무슨 죄인지 알 수 없으나, 오난으로 볼 때, 대를 잇는 문제로 보인다.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 계대혼인법의 시초가 되는 일이 여기서 생겼다. 유다는 생명을 잇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의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 성경은 침실까지 적나라게 보여준다. 오난이 이기적인 목적에 고의적으로 자식의 유전을 하지 않자 오난도 하나님께서 죽이셨다.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 유다는 두 아들을 잃고 겁이 나서 셋째 아들은 계대혼인을 시키지 않았고, 며느리 다말은 친정아버지에게 돌려보냈다.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 원문을 보면 여기서 ‘얼마 후에’가 아니라, 많은 날이 지났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셀라가 장성하여 다말과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유다는 여전히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유다의 아내가 죽고 말았다. 유다가 다말이 과부가 되게 놔두었더니, 자신의 아내도 죽은 것인가. 아무튼 유다는 슬픔에 빠지니 또 그는 그의 불알친구 히라를 찾아갔다. 그와 함께 딤나의 양털 깎는 자에게 갔다.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 양털 깎는 날은 잔치 날인데, 이 때 음식도 먹고, 장날같은 날인데, 딤나에서 사람이 붐비는 이때를 두고 다말은 먹이를 포착한 독수리처럼 시아버지를 만날 기회를 붙잡는다.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 다말의 의도는 결혼이다. 다말은 과부로 살 바에야, 시아버지에게 시집을 가자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셀라에게 보일 새 여인으로 보일려고 한 의도였을까. 아무튼 고대에는 과부의 삶이 고되었다고 하는데, 다말은 시아버지가 있는 곳을 찾아가되, 분명한 것은 결혼을 위해서 간 것이다.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 그런데 유다는 그를 보자마자 그를 창녀로 여겼는데, 당시 창녀들은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가나안 농경 사회에서 신전창기라는 것이 있었는데, 하여간 창녀들은 길가에서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렘3:2, 겔16:25 아마도 사람이 많은 날, 길가에서 호객행위를 하였을 것이다. 유다의 평소 행동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도 가나안 문화에 잠식되었던 사람이었다.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 유다는 며느리인 줄 모르고 그에게 같이 자자고 말한다. 그러자 다말은 시아버지임을 앎에도 자신을 밝히지 않고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막장드라마이다.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 유다가 자는 조건으로 나중에 염소새끼를 주겠다고 하자, 다말은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담보물을 달라고 한다. 다말의 의도는 시아버지를 통해서, 시아버지와 결혼을 하던지 아니면 셋째 아들 셀라와 결혼하기 위함인 것 같다. 아무튼 다말은 당시 과부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 다말은 담보물로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잉태하였다.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 다말은 목적을 달성하자, 다시 본래의 의복을 입었다.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 다말은 시아버지의 담보물만 챙기고 염소도 받지 않고 도망갔다. 지능적인 먹튀인 것이다.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 유다의 불알친구 히라는 유다의 심부름을 해주었는데,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고 유다에게 얘기하자, 유다는 더 이상 찾기를 포기하였다.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 유다는 다말의 소식을 들었는데, 모르는 여인과 잠을 잔 유다는 다말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다말이 유다에게 받았던 담보물인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인다. 다말은 이것을 두고 비로소 때가 되매 시아버지 혹은 셋째 아들과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드러낸 것이다. 다말은 모험적이고 대범하고 치밀한 여자였다.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 유다는 담보물을 보고, 자신의 죄악상을 깨닫고, 며느리에게 항복하였다. 이후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면 다말은 셀라와 결혼하였을까. 아무튼 유다의 자식을 얻은 다말은 유다 가문에서 왕실의 손을 얻은 태후같이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이다.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 성경은 태어나는 장면도 적나라게 묘사한다.
성경은 인간의 실상을 까발리는데, 민만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성경을 보면, 인간 실상의 죄악상과 연약함이 다 드러난다. 그러므로 성경 속에는 내 모습도 있다. 유다는 요셉을 팔았고, 이제는 며느리와 잤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유다를 주권자로 세우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의로운 요셉과 정반대의 악한 유다를 구원하시는 것이 복음의 역설이다. 대표적으로 바울이 그렇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육신으로 볼 때, 얼굴을 들지 못한다. 경건이 중요하지만, 사람이 거듭나는 것 밖에는 사람에게는 답이 없다. 왜냐하면 사람 안에 말미잘 지렁이 뱀같은 죄들이 드글드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