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조금 깁니다. 베르그송처럼 1. 2로 나누려다.
우리 회원님께서 이 정도 길이는 너끈히 소화하시리라 믿습니다.
최고 인기 스타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지식인임을 뽐내려면 들뢰즈의 '차이론'은 알아야 -----
질 들뢰즈(1925년 ~ 1995년)
20세기 후반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 작가이다.
1968년에 (차이와 반복). 1969년에는 (의미의 논리)를 썼다.
파리에서 태어나 삶의 대부분을 그 곳에서 보냈다. 파리 8대학의 교수를 맡기도 했다. 1995년 11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였다.
전통적으로, 동일성이 우선이고 차이성은 부수적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모든 동일성이란 차이성의 결과라고 했다. ( 이해가 어렵지요. 우리가 ‘없다; 라고 말을 하려면 ’있다‘ 가 전제되어야 한다. 아예 없었다면 ’없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차이‘가 난다. 라면 머릿속으로 ’같다‘라는 것이 들어 있어야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떤 개체를 이야기할 때는 다른 것과 차이가 있음을 전제하고 말한다. 이동민이라고 할 때는 다른 수많은 사람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동민이라는 개체로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동민)을 긍정적으로 보려면 사물(이동민이라는 존재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해야 한다. 철학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면 사물이 아닌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차이로서 파악해야 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도덕, 법률, 관습, 제도 등등은 사람을 동일하게 한다(한국에 사는 사람이 이런 조항을 모두 따르면 차이가 없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본질로 파악해야 한다, 다른 말로는 '내적 차이'로서 파악해야 한다. 모임의 사람이 모두 회칙을 지키고, 회비를 같이 내고 하면 차이가 없다. 동일하다. 그러나 회비를 내면서도 마음 속으로 비싸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내적 차이이다.
들뢰즈의 글을 죽 읽다보니 내 나름대로 서양의 전통 철학이 동일성(하나의 가치를 정해 놓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옳다고 믿게 하는)을 강조하였다면, 들뢰즈는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동일성에 반대되는 차이성)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차이성의 반복에 의하여 사회는 변화하고, 바뀌어 간다고 하였습니다.***
들뢰즈의 주요 저서 『차이와 반복』은, 들뢰즈 철학의 핵심사상이 담긴 책이라 할 수 있다.
* 긍정, 생성으로서의 차이
들뢰즈는 차이 나는 것만이 반복되어 돌아온다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모네의 그림만큼 적합한 것은 없다. 모네는 같은 모티프를 계절, 시간, 기후, 빛 변화에 따라 묘사한 연작들을 그렸다.
위의 사진은 모네의 루앵 성당 연작들이다. 그는 아침, 점심, 저녁의 성당을 그렸고, 맑은 날과 흐린 날의 성당을 그렸다. 빛을 포함한 여러 조건들에 의해 루앵 성당은 시시각각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차이’가 있었다.(*사진도 올리세요.)
들뢰즈는 이 점에 주목한다. A가 A′로 변화했을 때 그 둘의 공통인 A는 반복된다. A가 A′로 반복되어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는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만일 A와 A′가 완벽하게 동일했다면, 즉 차이가 없었더라면 A는 더 이상 반복될 이유가 없다. 모네의 경우로 말하자면, 더 이상 루앵 성당을 그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차이는 두 반복 사이에 있다. 그러나 역으로 반복이 또한 두 차이 사이에 있으며」
- 헐벗은 반복과 내적이며 풍요로운 반복으로 두 가지 반복이 있다. 그 둘은 차이가 있나, 없나로 나눈다. -내적 반복과 외적 반복의 구분은 차이를 낳느냐 낳지 못 하느냐에 있다.
- 7강 강의노트 中 차이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천덕꾸러기처럼 생각되어왔다. 모두가 ‘예’라고 대답할 때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다수의 논리로 정해진 일관된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차이는 사회 통합보다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나쁜 것’으로 생각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들뢰즈 철학의 핵심은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이 소수자들이 만들어내는 ‘차이’에 있다. 차이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생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현대 사회 속의 무수한 ‘차이’에 대한 삶의 지침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다양한 차이를 마주하게 된다. 나와 다르다는 ‘차이’를 대면했을 때, 그것은 공포로 혹은 혐오로 드러나기도 한다. 한 예로, 몇 해 전 트랜스젠더 가수 하리수가 데뷔했을 때 연예계가 들썩였던 것을 기억해보자. 다수가 이성애자인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낯선 자(차이)이다. 낯선 자를 처음 대하면 두려움을 준다.. 그러나 대중들이 초기에 보였던 경악은 곧 동성애자 ·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담론으로 이어졌다. (담론이란 논쟁이라는 뜻으로 읽으면 무난하다. 허용하자, 말자 등등의 논쟁이 일어났다.)
들뢰즈 철학은 우리 삶 곳곳에 적용될 수 있다. 차이를 긍정한다는 것은 관용이나 너와 나의 다름을 ‘구분’하는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하리수가 일반 다수와 갖는 변별점, 즉 차이를 계기로 사회가 조금은 변화되었고,(성 전환자를 수용함으로 혐오감을 없앤다.) 그것이 질적으로 더 나은 생성이었다면 우리는 차이 나는 것들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들뢰즈 철학의 묘미다.
‘의미의 논리’도 결론만 요약하면 논리학에서 배운 방법대로 논리를 전개하지 않고, 차이를 그 쟈체로 인정하자는 이론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복잡한 인자를 모두 긍정하고 수용하자는 이론이 된다.
첫댓글 들뢰즈의 차이론... 차이가 생성의 원동력인 된다... 동의합니다...
어쩜 다르다는 차이가 새로운 생성의 원동력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공부였습니다... ^^*...
들뢰즈의 차이론은 차이를 긍정하라는 것이군요.
저는 부끄럽게도 제 생각과 많이 차이 나는 사람을 만나면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에너지를 엉뚱한데 사용하기 싫었거든요.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