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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 - 뿌리가 동이족인 토족(土族), 여족(黎族), 쭈앙쭈(壯族
zhuang zu)
아득히 먼 옛날, 육지가 없었고 주위는 광활한 한 부분이었다. 한 천신이 있어 항상 수면 위에
육지를 만들고 싶어했지만, 발을 디딜 곳이 없었고 육지에 버틸 수 있는 물건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천신은 문득 금두꺼비 한 마리가 수면 위에 떠다니는 것을 보고 공중에서 한줌의 흙을
가져와 금두꺼비의 등위에 놓았다. 그러나 금두꺼비가 바로 물아래로 가라앉아 등위에 놓은 그
흙이 물로 인해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천신은 화가 나서 활과 화살을 가져와 금두꺼비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때를 기다려 그것을 향해 쐈고 금두꺼비가 정통으로 맞았다.
이때 천신은 다시 한줌의 흙을 가져와 금두꺼비의 등위에 놓았다. 금두꺼비는 몸을 뒤집어 이 흙을
감싸 안고 다시는 아래로 가라앉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훗날의 육지다.
(청해(靑海)에서 전해짐. 1981년 제4기 “청해민족학원학보(靑海民族學院學報)”에서 뽑음)
아득히 먼 옛날, 천지(天地)는 몇 장(丈)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하늘에는 7개의 태양과
7개의 달이 있어 대지를 뜨거운 가마솥처럼 달구었다. 낮에는 백성들 모두 깊은 동굴 속으로 가
숨어 있다가 밤이 되어도 사람들은 감히 나오지 못하고 단지 태양과 달이 교차하는 여명과 황혼에만
비로소 앞을 다투어 동굴에서 빠져나와 먹을거리를 찾아갔다. 모두들 괴로움이 연속인 날들이라
했다.
한 대력신(大力神)이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힘든 날을 인간들이 어떻게 생활해나가는지 그래서
그는 하룻밤 새에 있는 힘을 다해 몸을 1만 장(丈) 높이로 펴 하늘을 1만 장(丈) 높이로 들어 올렸다.
하늘이 높이 들려졌지만, 하늘에는 아직 7개의 태양과 7개의 달이 있어 후끈후끈해 여전히 인간
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그래서 대력신은 매우 큰 단단한 활과 수많은 예리한 화살을 만들었다.
낮에 그는 맹렬한 햇빛을 무릅쓰고 태양을 쏘아서 한 발에 한 개씩 여섯 개의 태양이 떨어졌고 그가
일곱 번째의 태양을 쏘려는 순간 인간들이 하나 둘 말했다. “이 마지막 하나는 남겨둡시다.
세상의 만물이 생장하는데 태양이 없어서는 안되잖소!” 대력신은 인간들의 요구를 들어 1개의 태양이
남게 되었다. 밤에 대력신은 또 눈부신 강한 빛을 무릅쓰고 달을 향해 쐈고 그가 활에서 화살을 뽑는
대로 6개의 달이 맞아 떨어졌다.
일곱 번째의 달을 쏠 때 약간 빗나가서 일부분이 모자르게 되었다. 그가 다시 쏠 준비를 할 때 인간
들이 또 여기저기서 말했다. “그건 놔둡시다. 그것으로 하여금 어두운 밤에 빛을 비추게 합시다!”
대력신은 또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달이 후에 어떨 때는 둥글고 어떨 때는
모자르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지도의 장족 자치구(지도 아래 광동성 왼쪽) 서북쪽 홍하 연안 도안 부근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장족은 양자강 중하류의 월족이 개명된 것이며 지금도 민속이나 풍속이 우리와 아주 유사하고
(상고 향토사료를 들추면 우는 조제, 착치라 하여 동이족인 월나라와 동이 묘족의 습속인 이마에 타투(Tatoo) 곧
검은 문신을 새겨넣고 이빨을 검게 만들면서 까지 동이족과 혼연일체가 되어 급기야 동이족의 치수영웅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음주가무의 풍속이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에서도 조선족을 능가할 정도로 아주 유사하다. 월족과 장족에 대한
담론은 뒤에 이어질 것이다.
백제 부흥운동의 기수 흑치상지 장군과 이 장족(월족) 자치구와 관련된 일화를 다음의 소진철 교수의 글을 통해
장족이 양자강 유역의 월족이었음과 동시에 우리 동이족 혈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음을 이해해 보고 계속 진행
하기로 한다. * 나의 廣西 “百濟鄕” 방문記 「이 먼곳에는 어이 오셨나요?」소진철(蘇鎭轍)(원광대 교수, 정치 외교사)
전국 시기에는 동이족 백월(百越)의 주요 근거지였는데 지금도 같은 동이족 갈래 소수민족인 묘족, 동이 토가족,
백월의 후예 쭈앙(장)족이 광서 장족자치구의 중심동아리 민족을 이루고 있다.
다이족(傣族):동이족의 한 갈래인 태족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 중 하나로
(당장 출신의 백제부흥운동의 기수이자 흑치상지의 출신종족으로 월족에서 좀 더 분화된 것이 태족이다)
기원전 1세기 중국의 역사서에 이미 그들에 관� 기록이 남아있다. 漢晉時期에는 "전월", "탄" 등으로 불리어졌고,
唐宋 문헌에는 "金齒(금치)", "黑齒(흑치)", "銀齒(은치)", "繡脚(수각)", "繡面(수면)", "茫蠻(망만)", "白衣(백의)" 등
으로 불리어졌다. 元明時期에도 여전히 "金齒(금치)", "白衣(백의)" 등으로 불리어졌으며, "白衣(백의)"는 "百夷(백이)",
"白夷(백이)", "伯夷(백이)"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淸代이래로 줄곧 "擺夷(파이)"라고 칭해지다가 해방 후 태족
인민들의 염원을 담아 정식으로 지금의 "태족"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동이족에 대해 부언한다면-월나라가 바로 동이족 국가라 한 임혜상의 말을 굳이 상기하지 않는다 해도, 서시와
서로 연인관계였던 범려(范黎)는 구천을 보필해 서시의 미인계를 통해 부차를 죽이고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
산동성 제나라(왜? 전통적 동이 래이족 국가니까)로 함께 도망가 이름을 치이자피( 夷子皮)로 바꾸었다.
서시의 본래 이름이 동이족을 상징하는 이광(夷光)이었던 것 처럼 범려 역시 양자강 유역의 동이족 후손 처럼
동이족의 상징으로 이름자 안에 이(夷) 자를 사용했다. 본래 범려(范黎)의 려(黎)도 9려(九黎)족을 상징한 것이다.
동이족 출신 여불위의 혈통 진시황이 멸한 진초연제한위조가 모두 동이족 국가였지만 한신(韓信) 역시 동이
한(韓)족의 "한(韓)"나라 출신이었다. 잔소리같지만 공자의 정명 (正名)사상처럼 이름자 만큼 소속을 확실히 해주는
것도 없다. 한(漢)은 지나 한(漢)족의 한(漢)에서 나온 것이지만 접미사로 괴한, 치한 등 "놈"이란 비속어 글자로
쓰인다. 이 말은 한자(漢字)가 결코 지나족의 문자가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자(漢字)가 지나족의 문자라면
한(漢)이라는 글자가 괴한, 치한 등의 비속어로 쓰일리 없기때문이다.
아득히 먼 옛날, 하늘과 땅은 한 덩어리로 바짝 붙어 있어 분리할 수 없었다. 후에 갑자기 벼락소리가 나더니 두
개로 분리되었다. 위의 조각은 위로 올라가 뇌신(雷神: 천둥신)이 사는 하늘이 되었고, 아래의 조각은 아래로 내려가
사람이 사는 땅이 되었다. 이로부터 하늘 위에는 바람과 구름이 있게 되었고, 땅 위에는 만물이 생겼다.
그러나 그 때의 하늘은 매우 낮아 산 정상으로 올라가 손을 뻗으면 별을 딸 수 있고 구름도 잡을 수 있었다.
하늘과 땅이 가까워 사람들이 생활하기 매우 힘들었다. 태양이 비추면 델 정도로 뜨거웠다. 뇌신이 가볍게 코를
골면 사람들은 잠을 못 잤고 만약에 뇌신이 큰 소리를 지르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 같아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고 귀찮아 하늘과 땅이 멀리 떨어져야 했다. 후에 사람들이 듣자니 락타산(洛陀山)에 포락타(布洛陀)
라는 한 노인이 있는데 그는 지혜가 출중하고 신력(神力: 초인간적인 힘)이 무한하다고 하여, 그를 찾아가 천지를
다스리는 방법을 의논했다.
락타산(洛陀山)은 기복이 심하고 나무가 높고 숲이 우거졌다. 산기슭 아래 정교한 바위 동굴이 하나 있는데
수염이 흰 늙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가 바로 장족 삼왕(三王: 뇌왕(雷王), 용왕(龍王), 포락타(布洛陀). 포락타는
삼왕 중의 하나다.) 중의 하나인 포락타(布洛陀)다. 사람들은 고생도 불사하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이곳까지
찾아 왔다.
찾아온 사람이 동굴 밖에서 외쳤다.: "포락타(布洛陀) 계십니까?"
"네, 지금 갑니다." 포락타(布洛陀)는 매우 친절히 손님을 맞이하며 소리가 나자마자 싱글벙글하며 동굴 입구에
나타났다.
포락타(布洛陀)는 체구가 크고 위엄이 있으며 체력이 건장했다. 그는 비록 늙고 머리와 수염이 백발이었지만
여전히 얼굴에 붉은 빛이 돌고 원기가 왕성했다. 그는 얼굴에 항상 웃음을 머금고 두 눈은 지혜로 빛났다. 사람들이
하늘과 땅의 상황을 포락타(布洛陀)에게 말하자 그가 말했다.: "그럼 우리 하늘을 머리로 들어 올립시다!"
"하늘을 들어올려요? 하늘이 저렇게 크고 무거운데 어떻게 들어 올린단 말입니까?“
“가능해요! 사람의 힘이 얼마나 센데요!” 포락타(布洛陀)가 말했다. “여러분은 숲으로 가서 가장 높고 가장 큰
오래된 두레밤나무를 가져다 하늘을 받칠 버팀목으로 하고, 나와 여러분이 함께 하늘을 들어 올립시다!”
사람들은 999개의 산봉우리를 올라서야 비로소 열 사람이 껴안아도 못 안을만한 오래된 두레밤나무를 찾았다.
그러나 이 두레밤나무는 생긴 것이 매우 이상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베지 못했다. 이쪽을 베면 저쪽이 이미 자라나서
합쳐지고, 저쪽을 베면 이쪽이 이미 자라나 있는 것이다. 모두들 99일 밤낮을 계속해서 베었지만 베지 못했다.
사람들은 가서 포락타(布洛陀)에게 알렸다.
포락타(布洛陀)는 높고 큰 오래된 두레밤나무를 찾았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 그는 두말하지 않고 크고 날이
넓은 도끼를 메고 왔다. 그가 손바닥에 침을 뱉고 힘을 모아 날이 넓은 도끼를 휘두르자 광풍이 한바탕 몰아치며
천지가 진동할 듯 ‘휘~익’ 소리가 나더니 두레밤나무에 깊숙이 찍혔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쳐다봤다. 포락타(布洛陀)가 연이어 두 번 베니 두레밤나무가 바로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사람들은 몹시 기뻐하며 포락타(布洛陀)의 신력을 칭송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원래 그의 도끼는 인류를 위해
복을 만드는 신령한 도끼였다.
하늘을 받칠 버팀목이 생겼지만 너무 무거워 사람들이 메지 못했다. 포락타(布洛陀)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모두들 뜻을 합하고 힘을 모아 나를 따라 오시오!” 말하며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허리를 낮춘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받칠 기둥을 어깨 위로 메었다. 모두들 한 쪽은 머리를 지탱하고 한쪽은 꼬리를 들어 올려 버팀목을
락타산(洛陀山) 정상 위까지 들었다.
포락타(布洛陀)는 락타산(洛陀山)을 기둥의 발로하여 하늘을 받치고 힘껏 들어올려 무거운 하늘을 들어 올렸고
묵직한 대지를 밑으로 가라앉게 받쳤다. 포락타(布洛陀)가 다시 한번 들어 올려 뇌신(雷神)을 높은 하늘 위로 튕겨
버렸고 버팀목은 용왕(龍王)을 지하로 도망가도록 눌렀다. 포락타(布洛陀)는 또 한번 들어 올려 묵직한 하늘을
가벼운 12덩이의 구름으로 바꾸었고, 용왕을 땅의 저 아래로 뚫고 가도록 내리 눌렀다. 새로운 하늘과 땅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먼저 하늘을 만들고 후에 땅을 만들었기 때문에 하늘의 모양은 우산처럼 생겼고 땅을 덮을 수 없게 되었다.
하늘이 작고 땅이 넓으면 어떻게 하지? 포락타(布洛陀)는 기묘한 방법을 생각했다. 그가 손가락을 이용해서
지표를 잡아 당겨 매우 많은 산비탈이 생겼다. 이렇게 해서 지면이 축소가 되었고 하늘이 덮을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좋은 하늘과 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로부터 바람과 비는 순환하고 음양이 교체하며 사계절이 분명하고
만물이 흥성했다.
2. 만물을 정하다.
천지를 다 만들었으나 천지간에 꽃과 풀과 나무, 새와 짐승과 물고기와 곤충, 사람들과 가축, 모두 성(姓)과
이름이 없어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고 어떻게 생장하고 대를 이을지도 몰랐다. 만물의 생사의 대권을 주관하는
포락타(布洛陀)는 하나하나 그들에게 이름을 주고 성(姓)을 정해주고 규정하였다. 볏모의 잎은 너무 번성하게 자랄
수 없게 하고 잎만 자라고 이삭이 패지 않을 수 없도록 했으며, 잎끼리 소곤소곤 귓속말로 속삭일 수 없게 하고,
돼지는 한 마리만 낳을 수 없게 했으며, 개는 6, 7마리의 새끼를 낳지 못하고, 여자는 어머니 집에서 자식을 낳을
수 없게 했으며, 뱀은 대로 위에 가로로 있을 수 없고 사람이 사는 곳에 기어가지 못하게 했다.
닭과 오리는 한번에 두 개의 알을 낳을 수 없고, 암탉은 밤에 울지 못하게 했으며 또한 다른 닭의 둥지에 가서 알을
부화시키지 못하게 했다. 거위는 고양이털이 나지 않게 했고, 용은 돼지 구유에 섞이지 않게 했으며, 호랑이는 논에
가서 볏모를 마구 밟을 수 없게 했다. 소는 주인을 밀칠 수 없게 했고, 개는 판대기 의자에 앉을 수 없으며 닭은
오리와 서로 어울릴 수 없고, 황소는 말과 서로 교배하지 못하고 또한 물소와도 서로 교배하지 못하게 했다.
암소는 일년에 한번만 발정하게 하고 토끼는 40일에 한 번 새끼를 낳을 수 있게 했다.
당시 사람이 포락타(布洛陀)에게 가서 물었다. “사람의 교배는 어떤 규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포락타(布洛陀)는
마침 어떤 숫자를 검사하느라 바빠서 대답하지 못했다. 사람이 계속 다그쳐 묻자, 포락타(布洛陀)는 귀찮아 제멋대로
말했다. “여러분이 좋을대로 해요!” 포락타(布洛陀)의 한순간의 소홀함으로 인해서 인류의 교배는 시간의 규정이
없게 되었다. 포락타(布洛陀)의 이런 규정을 위반하게 되면 바로 징벌을 받아야 했다.
호랑이는 한 번에 몇 마리의 새끼를 낳아야 할지 몰라서 포락타(布洛陀)에게 가서 물었다. 포락타(布洛陀)가
말했다. “한번에 10마리 낳지 뭐.” 호랑이는 매우 기뻐서 돌아오는 길에 걸으면서 숫자를 세었다. “한번에 10마리,
10번에 100마리, 100번에 ……” 다시 세는데 잘 이해가 안돼서 다시 처음부터 세기 시작했다. “한번에 10마리,
10번에 100마리, ……” 계속 세고 가는데 갑자기 한 마리의 아기사슴이 절벽 위에서 뛰어 내려와 깜짝 놀라는
바람에 한번에 몇 마리를 낳는지 까먹었다.
호랑이는 다시 돌아가서 포락타(布洛陀)에게 물었다. “포락타(布洛陀), 아기사슴 때문에 놀라서 내가 맘속에
기억하던 숫자를 잊어 버렸어요. 도대체 한번에 몇 마리를 낳아야 하는 거요?” 포락타(布洛陀)는 듣고 화가 나서
말했다. “이렇게 간단한 숫자도 기억을 못하다니, 그럼 한번에 한 마리만 낳는 게 좋겠소.” 호랑이는 뭐라 말을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꼬리를 내리고 돌아갔다. 그때 이후로 호랑이는 한번에 한 마리밖에 낳지 못했다.
그래서 호랑이는 아기 사슴에 대해 특별히 원한이 있어 항상 아기사슴을 먹고싶어 한다.
3. 불을 취하다.
고대에 아직 불이 없었을 때, 사람들은 까마귀처럼 날고기를 먹었고 수달처럼 날생선을 먹었다. 추운 겨울 음력
섣달이 되면, 사람들은 목을 움츠리고 떨었고 어떤 사람은 들판에서 얼어죽었다. 어느 날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지고
커다란 용나무 위에 빛이 번쩍 하더니 이내 “퍽”하는 소리와 함께 용나무가 아래로 쓰러져 활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전하는 말로 이것은 하느님이 뇌신(雷神)을 보내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 때 사람들은 아직 불이 어떤 것인지를 몰라 혼비백산 놀라서 멀리 숨었다. 포락타(布洛陀)만이 두려워
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았다. 그는 용감하게 용나무 근처로 가서 이 이상한 물건을 보았다. 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고 포락타(布洛陀)는 불 옆에 서서 태양보다 더 뜨겁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에게 이것이 있으면 겨울에 추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는 불씨를 가지고 돌아와 한 더미의 마른 장작 위에 붙이고 손을 쬐었더니 매우 따뜻했다. 사람들은 포락타(布洛陀)가 불 옆에서 불을 쬐는 것을 보고 점점 불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후에 모두 포락타(布洛陀)에게 불씨를 구하러 와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불이 있고 난 후부터 겨울에 사람들은 불 옆에 둘러 싸여 불을 붙여 따뜻하게 했다.
낮에는 산에 올라가 야수를 잡고 강에 가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 불에 가지고 와서 구워 먹으니 다시는 까마귀와
수달처럼 날것을 먹지 않게 됐다.
산나물, 야채 모두 불에 가져와 구워 먹으니 향기롭고 맛있고 입에 맞았다. 배가 부르면 밤에는 불 옆에 둘러싸여
잠을 잤다. 호랑이, 표범, 들소가 불을 보고 무서워서 그들에게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불은 정말 유용하여
사람들은 이미 불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날 깊은 밤, 갑자기 큰비가 내리기 시작해 불을 전부 적셔 꺼버렸다. 사람들은 불이 없어 지내기가 매우
힘들었고 모두들 위험을 무릅쓰고 사방으로 가 불을 찾았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물어봤지만 어디에서도 불똥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포락타(布洛陀)에게 가서 알리자 포락타(布洛陀)는 도끼를 메고 직접 불을 찾아 나섰다.
그는 위쪽 아래쪽 샅샅이 가보고 온 천하를 다 가보았지만 조금의 불똥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하늘가의 한 용나무(榕樹) 아래에 와서 문득 저번의 불이 뇌신(雷神)이 용나무(榕樹)를 쪼개서 놓은 것이라는
게 생각났다. ‘뇌신(雷神)이 용나무에 불을 놓을 수 있는데 나 포락타(布洛陀)가 불을 놓지 못한단 말인가?
내 손에 신부(神斧:신통한 능력이 있는 도끼)도 있지 않은가! 그는 힘을 모아 신부를 들어 힘껏 용나무(榕樹)를 내리
찍었고 과연 반딧불 만한 불똥이 튀었다. 포락타(布洛陀)가 또 한번 찍으니 튀는 불꽃이 오공초(蜈蚣草: 지네모양의
풀)만큼 커졌다.
포락타(布洛陀)는 즉시 불똥을 채취해 마른 풀을 더하고 마른 장작 위에 지피니 얼마 되지 않아 불은 바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다시 불이 생겼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다시는 들판에서 불을 피우지 않았다.
그들은 불을 동굴 안으로 가져가 보호해, 바람과 비가 심해도 불씨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후에 집이 생기고
나서는 집 안으로 가져와 불을 피웠다.
고대의 사람은 영리하긴 했지만 바보 같은 때도 있었다. 그들은 어떨 때 불을 잘 관리하지 못해 나비가 날개로 불을
마구 부채질하게 했고, 반딧불이 불씨를 가지고 도처로 가 장난하게 하고, 아이들이 마을 입구로 가져가 불을 피우고
처마 밑에 가져가 태우게 내버려두었다. 결국 불이 나서 집을 태우고 마을을 태웠다. 집도 불타버리고 가재도구도
불타버리고 점치는 점괘판도 불타 없어지고 모두다 불타버렸다.
사람들은 불이 사람에게 이렇게 큰 재난을 가져올지는 생각도 못했다. 사람들은 가서 포락타(布洛陀)에게 가르침을
구하자 포락타(布洛陀)가 와서 모두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는 나무를 베어 조각으로 쪼개서 집의 중간에 네모나게
부엌을 만들어 안에 진흙을 발라 그 부뚜막 안에서만 불을 피울 수 있고 마음대로 불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규정
했더니 화재가 감소했다. 반딧불도 산 위로 쫓겨났다. 그가 쫓겨날 때 엉덩이 끝에 몰래 불을 붙여 가져가서 지금
반딧불의 엉덩이 뒤에 불빛이 있는 것이다.
복희 여와의 여와보천과 공공의 홍수신화와 불가분 연관된 대륙 동이 제 족의 신화들. 사진은 구멍난 하늘을 보석
으로 기워서 메꾸었다는 여와보천의 그림. 아주 먼 옛날 하늘을 지탱한 네 기둥 중의 하나가 부주산(不周山)을
절단해 하늘이 서북으로 기울고 땅이 동남으로 함몰했다. 서북천공에 큰 구멍이 생기고 천하(天河)가 그 구멍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대지위에 쏟아지니, 지진이 일어나 산이 요동쳐 홍수가 일어나고 맹렬한 불이 일어나 맹수들이
사납기가 극에 달했다. 여와는 오호사해(五湖四海)로 두루 달려가 채석(彩石)을 수집해 불을 이용해 돌을 야련하고,
하늘의 구멍을 메우고, 맹수를 참살하고 홍수를 다스렸으며, 인류생활의 평온한 세상을 다시 회복시켰다.
4. 홍하(紅河)를 열다.
어느 해, 끊임없이 큰비가 내려 대 홍수가 났다. 모든 대지가 홍수로 잠겼다. 어떤 사람들은 물에 잠기고 어떤
사람들은 대나무 뗏목에 앉아 물위에 떠다녔으며 어떤 사람들은 높은 산 위로 도망가 살길을 찾았다. 물은 9일 낮
밤을 잠겨있었고 더 지속해 나간다면 인류가 멸종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포락타(布洛陀)는 매우 다급하여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을 이끌고 수로를 열어 물을 소통하게 하여 바다로 들어가게 할 것을 결정했다.
포락타(布洛陀)는 산을 몰 채찍(赶山鞭) 하나와 산을 지레질 할 몽둥이(撬山棍) 하나를 만들었다. 포락타(布洛陀)는
산을 몰 채찍을 이용해 무리를 이룬 작은 산들을 내리쳐 그들을 양쪽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어떤 곳은 작은 산이
마치 무리의 산양 떼들이 양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 같다. 포락타(布洛陀)는 또 산을 지레질할 몽둥이를 이용해 큰
산봉우리를 지레질했다. 그래서 어떤 곳은 큰산이 남쪽 혹은 북쪽으로 경사져 있다.
어느 날, 포락타(布洛陀)가 한 큰산 앞에 와서 채찍으로 큰산을 반으로 쪼갠 후 양쪽으로 지레질했다. 마침 이때
어떤 포락타(布洛陀)를 따라 수로를 만들던 부녀가 강속에 떨어져 죽어서 사람들이 물로 가 시체를 건지려했으나
계속 건지지 못했다. 죽은 사람의 딸이 매우 상심하여 포락타(布洛陀)에게 말하기를 이 곳은 수로가 너무 크게
열려서 그녀 어머니의 시체가 만일 물에 쓸려 내려간다면 다시는 건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포락타(布洛陀)는 그녀를 매우 불쌍히 여겨 그 양쪽의 산을 다시 지레질해 좁은 길 하나만 남겨 물을 통하게 하고
그녀에게 산 입구를 막고 기다려 시체를 건지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이 좁은 길의 물 나가는 입구에 도낭탄(堵娘灘:
지금 도안(都安)현과 파마(巴馬)현 사이의 지점으로 지금은 토량탄(土良灘)이라 한다.)이 되었는데 이곳에서
어머니의 시체를 막았다는 의미다. 지금은 도낭탄의 물살이 매우 빨라서 위험한 지역이다.
포락타(布洛陀)는 매우 깊은 못까지 강을 열었다. 이 못(潭) 앞은 산으로 막혀 있어 물이 흘러나갈 수가 없어
하늘의 뇌신(雷神)이 자주 이곳에 와서 목욕을 한다고 해서 뇌공담(雷公潭)이라고 불렀다. 포락타(布洛陀)는 뇌신
(雷神)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산을 밀어 물을 흘러나가도록 했다. 뇌신(雷神)이 진노하여 큰 소리를 질러 이 곳은
뇌공탄(雷公灘: 지금의 동란(東蘭)현에 있다.)으로 변했다. 지금은 물이 뇌공탄으로 내려갈 때 꽈르릉꽈르릉
소리를 내어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아 사람을 놀라게 한다.
포락타(布洛陀)는 사람들을 인솔하여 물길을 열어 물난리를 다스려 천제(天帝)를 감동시켰다. 천제는 그들이 너무
고생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신령한 소 한 마리와 신령한 쟁기를 보내 그들에게 쟁기질 한번만 하면서 지나가면 바로
물길이 생기도록 해줬다. 신령한 소와 쟁기가 있은 후 물길을 여는 것이 매우 빨라졌다. 포락타(布洛陀)는 신령한
쟁기를 몰고 백마(白馬: 지금의 도안(都安)현에 있다.)라는 곳까지 쟁기질 해갔다.
신령한 소가 너무 빨리 가서 한번 고함을 지르면 반리(半里)를 가서 쟁기 머리가 끊어졌다. 쟁기머리가 끊어진
곳에서 길이가 반리(半里)정도 되는 돌 여울이 나타나 이름을 단리탄(斷犁灘)이라 하였고 물은 곧 단리탄 양 측면
에서부터 동쪽으로 흘러갔다.
포락타(布洛陀)는 응산구암(鷹山狗岩: 현재의 응마산(鷹馬山)현)이라는 곳까지 쟁기질했는데 의외의 어려움에
닥쳤다. 그 산 위에는 한 마리 늙고 큰 못된 매가 있었고 바위 동굴 속에는 한 마리 거칠고 못된 들개가 있었다.
그 못된 매는 평소에 눈을 감고 도를 닦았고 개는 사람을 보면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는데, 매는 개가 짖는 것을
들으면 눈을 크게 뜨고 날아와 사람을 먹었다.
포락타(布洛陀)와 사람들이 이곳에 오자 동굴 속의 못된 개는 그치지 않고 짖어댔고 못된 매가 날아와 적지 않은
사람을 먹어버렸다. 정말 야단났다. 포락타(布洛陀)는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는데 사람들에게 수많은 대나무 뗏목을
엮어 뗏목 위에 그물 덮개를 설치하도록 해 사람들이 대나무 뗏목 위에 앉아 있게 했다. 이렇게 한 후 못된 매가 몇
번 날아왔는데도 사람들을 먹지 못하자 포락타(布洛陀)의 뗏목 덮개 위에 내려와 날카로운 발톱을 그물 덮개의
구멍으로부터 아래로 뻗어 사람을 잡았다.
이 때, 포락타(布洛陀)가 못된 매의 발톱을 잡아 예리하고 날카로운 대나무 꼬챙이를 이용해 그것의 가슴에 찔러
죽였다. 못된 매를 찔러 죽이고 또 못된 개도 때려죽이고 나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물길을 열었다.
후에 이 곳에 험한 여울이 나타났는데 이름을 응산구암(鷹山狗岩)이라 했다.
못된 매와 싸울 때 포락타(布洛陀)는 신령한 소를 풀어 줘 쉬게 했다. 신령한 소는 응산구암(鷹山狗岩)을 한바퀴
돌아보고 앞에서 누워 쉬다가 뜻밖에도 죽었다. 그래서 이곳에 또 하나의 험한 여울이 나타나 이름을 와우탄
(臥牛灘: 지금의 마산(馬山)현과 도안(都安)현 사이의 지역이다.)이라 했다. 물이 와우탄을 내려오면 마치 소가 우는
것처럼 “음메-”하고 소리를 낸다.
신령한 소가 죽고 난 후 할 수 없이 인력에 의지해 강을 열어야했다. 포락타(布洛陀)는 건장한 남자를 골라 신령한
쟁기를 밀게 했다. 사람이 많고 시작할 때 경험도 없고 힘 쓰는게 불규칙해서 느렸다 빨랐다 깊었다가 얕았다가 했다.
얕은 곳은 여울이 되어 모두 15개의 여울이 되었고 그 십오탄(十五灘: 지금의 마산(馬山)현과 도안(都安)현이 교차
하는 지점이다.)은 길이가 10여리 정도 되었는데 “배가 십오탄을 건너면 십에 아홉은 뒤집어진다.”라고 할 정도로
매우 험하다.
물길이 열린 후 물은 물길을 따라 바다로 흘러 들어갔는데 이 강이 바로 지금의 홍하(紅河)다. 수재는 없어졌고
사람들은 편안히 거하고 즐거이 일하게 되어 모두 포락타(布洛陀)에게 감사해 그의 공적을 찬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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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나 대륙의 신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지나대륙의 상고사에는 오늘날
지나 한족의 역사는 없다. 바로 한겨레 동이 묘요족, 예맥, 구려, 백월, 형오, 훈죽, 읍루, 강방, 귀방,묘(苗), 동호
(東胡), 산융(山戎), 동이(東夷), 융이(戎夷) 및 숙신(肅愼), 고구려, 백제, (통일)신라 등등의 대륙에 존재했던
수많은 동이 한겨레의 역사였기때문이다.
즉 오늘날 지나한족이 자기들의 신화라고 말하고 있는 모든 자료는 정작 단군의 건국신화마저 허구로 돌리는
무정신의 역사 주인공 한민족의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필자는 지나대륙에 전해지는 사료를 중국에서 현지채취해 따끈따끈하게 번역소개함과 동시에 이들 신화전설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사관 정립의 소스를 버무려 설명해 놓았다.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방대하고 웅장화끈한
것인지 감상해 보기 바란다. (안원전)
이 지도는 대륙의 노른자위를 차지한 동이계와 영양가 없는 서부내륙 황토고원의 화하계, 남방의 양자강 유역의
동이계열인 초나라 월나라를 포함한 동이 9려족 중심의 묘만계를 그리고 있다. 뒤의 지도는 지나족이 앞 지도에서
보는 것 처럼 섬서성으로 비정하는 황제를 불변의 같은 섬서성으로 비정되는 동이족 신농과 청구(산동성)의
치우와 병치했을 경우 그 출자를 하북성으로 변조해 놓은 지도이다. 지나사가의 대세론은 앞 지도에 준하고 있다.
서욱생(徐旭生)은 화하(華夏)·동이(東夷)·묘만(苗蠻) 3집단으로 나누고, 여러 신화를 이 3집단에 귀속시키려 하였다.
고고학적으로 화하는 채도문화(彩陶文化), 동이는 룽산문화〔龍山文化〕·다원커우문화〔大汶口文化〕,
묘만은 굴가령(屈家嶺)과 강남의 여러 문화가 해당되는데,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었다.
(본인의 글을 지금까지 잘 읽어본 독자는 화하계 뿌리가 동이 제족이고, 묘만이 동이계임은 이제 잘 알테고;베트남
묘만이 신농씨 후예)
이는 현재 지나 대륙사의 일반적 견해지만 그나마 국내 강단사학계는 반도사관에 매몰되어 이조차 철저히 외면하여
노코멘트로 일관한다.(최근의 지나 대륙사학자들은 화하족의 조상으로 삼아온 기존의 황제헌원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서인지 대륙을 동이, 묘만,화하로나누고 이들의 조상을 각기 신농(동이), 치우(묘만), 황제(화하)로 분류해
지나족의 공동조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화하의 뿌리는 환인천제 환국시대, 환웅천왕 배달국 시대를 그만두고라도 우리의 단군조선 시기(하우 시기)
이상을 못넘어가며, 요,순은 물론 하우 조차 동이혈족이고, 지나 한족의 뿌리로 삼는 진,한의 시조 역시 모두 동이
혈통이다. 진시황은 진 황실의 성씨(영)로 보나 친부 여불위의 여(원래 동이족 염제 신농의 강씨에서 유래)씨로보나
동이족의 바운더리를 넘을 수 없고, 또 한고조 유방마저 혈통적 뿌리가 동이족으로 그는 동이족 국가 초나라 후예로
(굴원은 초나라 왕실 성씨와 동일하고 동이족 전욱고양의 후예임은 <초사>에서 밝히고 단군성조 동황태일을 모신
다고 밝힌 바 있다)
동이족의 주 웅거지 제나라 산동성에 뿌리를 내렸다. 중요한 점은 이 지도 이전의 상고 대륙시대는 현재 다양한 상고
소수민족 이름으로 전해져 지나 한족의 조상으로 오인할 소지가 다분히 있는 동이 제 족이 전 대륙을 석권하고 있었
다는 사실이며, 그 주인되는 이들 동이 제족의 신화 내용이 상당히 유사한 구조로 되어있고 서로 중첩되어있으며
태호복희를 비롯한 각종 동이족 조상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 산해경을 번역 소개한한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는 중국신화의 구분 및 종류를 다음과 같이 서욱생
(徐旭生)과 동일하게 화하(華夏)·동이(東夷)·묘만(苗蠻) 3집단으로 나눈다.
중국신화는 크게 지역 및 거주종족 그리고 신화내용에 따른 두가지 방식에 의해 구분해 볼 수 있다.
① 동방 동이계(東夷系) 신화: 황하하류 및 산동반도, 요동반도 등 발해만 일대와 동부 해안지대에 거주하던 동이계
종족 계통의 동부 해안지대에 거주하던 동이계 종족 계통의 신화이다. 북방신화도 이에 포괄된다. 제준(帝俊), 예( )
신화 등이 대표이다.
② 서방 화하계(華夏系) 신화: 황하 중상류 지역으로 후대의 이른바 중원 지역. 이곳에 거주했던 한족의 선조인 화하계
종족계통의 신화이다. 황제(黃帝) 신화가 대표이다.
③ 남방 묘만계(苗蠻系) 신화: 장강 이남에 거주했던 묘만계 종족계통의 신화이다. 신농(神農), 치우(蚩尤), 축융(祝融)
신화 등이 대표이다(이들을 동이계 신화로 보는 견해도 있음). 동방 동이계 신화가 내용적으로 가장 풍부하며 남방
묘만계 신화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아주 넓게는 중국신화를 동이계 신화와 화하계 신화의 대립구조로 파악해
볼 수도 있다.
지나족이 화샤(화하)의 시작을 동이혈통의 진,한(진시황, 유방)으로 잡는것과는 별도로(화하(華夏)·동이(東夷)·묘만
(苗蠻) 3집단으로 대륙을 3분해 보는 상기 서욱생, 정재서의 구분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방촌 임균택은
"상고대륙을 뒤덮고 있었던 그 근본은 모두 동이족 묘민이었다"고 필자와의 대담에서 말한다)
방촌 임균택은 현실적인 지나 화샤의 시작을 남방계 객가인 출신의 손문의 민국정부로 보고 있으며
(북방 동이족 주류 왕조를 꺾고 남방 비주류 동이족 국가의 현대사적 최초출현)
그 정통을 이은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마저도 모택동으로부터 대만으로 쫓겨들어가 그 정통을 공산당 모택동 정부에게
빼앗기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즉 한(지나) 중심의 손문은 소위 청,명,원,고려,금,요,발해,통일신라,당,송,고구려,溶�,
기자조선 등 혈통상 동이 중심의 왕조 멸망이후, 민국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방촌은 지나 중국을 한족이라 규정하는 것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 지적한다. 즉 지나 한족(漢族) 이외의 여타
민족을 소수민족으로 분류해 55개 소수민족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상고 대륙사를 크게 양분하면 대륙 전체는 동이 제족이 석권하고 있다가 하우 (夏禹)의 아들 계(啓)에 이르러 주류와
비주류로 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중원대륙은 조이족인 동이 주류계이며 동이 남방 지류 지나계란 진나라 말기
에서 유방의 한나라에 이르러 구강(九江)이 도읍지로 정착하게 된 후,
그곳을 중심한 남방계 삼국인 촉(蜀),오(吳),위(魏) 그리고 진(晋)-수(隋)-당(唐)-오대(五代)-송(宋)-명(明)이 인도
지나계로 연결됨으로써 남방 지나계의 시조가 동이족인 하우 (夏禹)의 아들 계(啓)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말한다.
"중국사료에 나타난 동이조선의 실체 중화민족은 모두 허구의 족명이다. (대만 심건덕)
相傳盤古開天闢地,女媧摶人補天,天地人從此出現於世
三大勢力─華夏、東夷和苗蠻為爭奪中華大地,不斷互相討伐
지나족이 이들 세 집단을 분류하는 중화사관적 관점:當時居民聚族而居,他們之間以血緣為紐帶,規模較大的便形成
一些氏族、部落。當時中華大地遍佈很多這類部落,這些部落融合後就形成一些集團,其中最大的可主要分為華夏集團、
東夷集團和苗蠻集團。 華夏集團以炎帝族和黃帝族為首,東夷集團則以蚩尤的九黎族為首,炎帝族和黃帝族最初居住在
陝西,後來各自逐漸東遷。黃帝族順北洛水南下,又東渡黃河,沿中條山、太行山向東北發展,炎帝族也有一部分順渭
水東下,沿黃河南岸向東發展,他們吊進過程中,不斷擴大自已的勢力,並與西進的東夷集團、北上的苗蠻集團發生過
多次戰爭,其中黃帝族和炎帝族與蚩尤為首的東夷集團之間的戰爭最為激烈,傳說的神魔之戰亦從此而起..........
*고사변古史辯(현대 중국의 사학자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사서)에도 이르기를 "동이東夷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제준, 제곡(제곡고신), 순, 소호금천, 그리고 은 시조 은설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라고 하였다.
현재 해방이후의 반도 사학자들은 조(새) 도등(토템)의 연나라(북경의 옛이름이 연경으로 북경은 동이족의 권역
이었음은 말할나위없다)가 번한왕 기준(箕準)을 내쫓고 왕이 된 정치사적인 이유로 이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북벌파
최영을 친 이성계 부자 왕실이 지나왕실 명을 천자로 모시고 동족인 만주족 청나라를 개,돼지로 보아 이적시하는
거와 다를 바 없이 아주 잘못된 역사인식을 제공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역사는 마땅히 정치사 뿐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혈통과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역사적 실루엣을 조명해 그 뿌리의
실루엣을 벗겨내야 한다. 참고로 노관은 한(漢)의 풍(豊) 땅사람으로서 한 고조 유방과 한 마을에 살고 같은 날 낳았
다고 하여 매우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뒤에는 흉노로 항복해 들어가 동호로왕(東胡盧王)에 봉해졌다. 한편 유방이
죽자 노관은 실권을 쥔 여황후(呂皇后)의 전횡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흉노에 망명하였다. 이때 노관의 부하인
위만이 번한으로 망명하였고(위만은 원래 동이족이라 연이 망한 후에도 계속 그곳에 머물면서 망국의 슬픔을 주민
들과 함께 하였다), 번한왕은 위만에게 연나라와의 경계에 살면서 상하 운장(上下 雲章; 閭陽+黃泥崖)을 수비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위만은 한나라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번한왕 기준(箕準)을 속여서 번한성에 입성하였고 번한왕을
내몰았으며 스스로 번한왕이 되었다. 연이 같은 혈족임에 대해 정일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은 진시황이래 중국 영토로 편입되었으나 아직 그 주민은 동이족이며 변조선과 국경하고 공지를 두어 주민간의
교통을 분리하고 있으나 동족간의 제휴가 쉬운 것인즉 대 인물이 아니면 대임을 맡길 수 없는지라. 내심 노관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여러 의견을 듣고자 백관을 소집하였다.
한왕이 이르되, "제장 열후 중에서 누가 연왕에 적임인가?" 하니 여기서 자격으로 보아서 장자방,한신,노관 삼인으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장량자방은 이미 벼슬에 뜻이 없음을 밝혔고 한신은 한왕의 신임이 노관만 못하니 중의(衆議)는
노관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모두 입을 모아 "태위장안후노관이 적임이옵니다." 하였다. 그때 벼슬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다. 이때 왕후에 봉작을 받은 자는 많았으나 한족식 명예직일 뿐 실권을 행사하는 왕후는 유씨 였다 따라서 유씨 외의 타성지인은 팔명에 불과 하였다.
한고조가 노관을 연왕으로 봉하니 왕후들 중 행운이 연왕 만한 사람이 없었다. (上乃入团爲燕王諸候得莫如燕王者)
라고 역사가 반사고가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연나라는 동이열국의 서쪽에 위치하여 산물이 풍부하고 영토가 광활하여 동방군자국으로서 문화가 발달하여 중원의
각 민족으로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중원의 한족에게는 문명을 수출하는 대단군 조선 제국의 번한에 속한 열후
였는데 자칭 왕이 되어 이탈함으로서 번한과 오랜 전쟁을 한족 열국과도 분쟁이 있었다. 그런데 진나라에 패망 당하고
진이 한나라에게 망하니 한나라 영토가 된 것이다. 연인은 동이족의 용맹과 의리와 강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진시 왕이 중원을 통일할 적에도 마지막까지 항거하였으나 본국과 결별되었으므로 본국의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
하였다. 이러한 연나라는 옳은 주인을 만나면 크게 발전하여 중원에서 한과 겨룰 만한 강국이 될 소지가 있었다.
그러므로 다른 열국과는 비교가 안되는 그 연왕의 자리를 노관에게 맡긴 한고조는 내심 아무리 심복이라고 하나
불안하였다.
(정일영 고대사 동방제국)
참고:中國의 文字學者 李敬齋는 "(前略) 在武功方面, 諸夏雖獲勝利, 而在文化方面則同化於東夷矣. (中略) 夫東夷果何等人耶. 乃愷悌慈祥, 薄武力而崇藝術之人也. 其代表人物如舜(孟子曰舜, 東夷之人也). 至仁至孝, 能使人讓以天下, 而以復以天下讓人, 眞古今中外無比至聖也. (中略) 可見我國文字東夷人亦多所創造, 而爲契所推廣因以造字之功歸之契. 如將東土西土古文略一比較, 卽東夷對於文字之智慧優於西夏, 東夷人旣握有敎育權, 故諸夏盡受東夷之文化."(武功 방면에 있어서는 諸夏가 비록 승리를 획득하였으나, 문화방면에 있어서는 東夷에 동화되었다. (中略) 대저 東夷는 과연 어떠한 사람들인가. 곧 화목 자상하고, 武力보다는 藝術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대표적 인물을 들면 舜임금이다.(孟子는 舜임금을 東夷人이라고 말하였다) 至仁, 至孝하여, 남에게 天下를 양위하고, 또한 천하를 다시 남에게 양위함은 참으로 古今中外에 다시 없는 지극히 聖스러움인 것이다. (中略)
우리 나라(中國) 文字는 東夷人이 다 創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契(설)이 널리 보급하였기 때문에 造字의 功이
契에게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東土와 西土의 古文을 대략 비교하여 보면, 곧 東夷가 文字의 지혜에 대해서는 西夏
보다 우수하고, 東夷人이 먼저 敎育權을 장악하였으므로 諸夏가 모두 東夷의 文化를 받아들였다.)(整理文化中途自述)
라고 論及한 바와 같이 中國文化는 곧 東夷文化를 받아들여 이룩되었으며, 이른바 漢字(契)는 모두 東夷族이 創造한
바라고 강조하였다.(陳泰夏:東夷文化特輯 중)
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는 복희, 염제, 신농씨, 黃帝, 소호금천씨, 전욱고양씨, 제곡고신씨, 요, 순, 하, 은, 주, 진(秦),
한(漢), 서한(西漢), 동한(東漢), 후한(後漢), 삼국(三國), 위(魏), 촉(蜀), 오(吳), 진(晋), 서진(西晋), 동진(東晋), 남조
(南趙)는 송(宋), 제(齊), 양(梁), 진(秦), 후양(後粱), 북조(北趙)는 북위(北魏), 동위(東魏),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 그리고 수(隋), 당(唐), 무주(武周), 오대시(五代時), 북송(北宋), 남송(南宋), 거란(契丹), 요(遼), 서요
(西遼), 금(金), 몽고(蒙古), 원(元), 명(明), 후금(後金), 청(淸) 등은 모두 고조선(古朝鮮)이 뿌리라고 밝히고 있다.
신화와 역사(강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