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T_NxPINqI0?si=MFhLaOervOV9U3UH
고따미는 죽은 아이를 안은 채 부처님을 찾아갔다.
"부처님,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치료하고 살릴 수 있을까요?"
"아이 어머니여, 마을에 들어가 죽은 자가 없는 집에서 겨자씨 하나라도 얻어오면 아이 살리는 약을 주지요."
고따미는 마을로 돌아와 한 집, 한 집 돌아다니며 겨자씨를 구하려 했지만..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없었다.
만일 부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면 아이를 잃고 낙망에 빠진 아이 엄마에게 죽음 기사가 없는 신문이 하나라도 있으면 가져오라 했을지도 모른다.
매일 수 많은 사람들이 숨을 거둔다. 한편에서는 많이 아이들이 태어나고..
고따미 여인은 죽은 자기 아이를 살려 내는 게 아닌.. 죽음으로 인한 그 고통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 치유해야 하는지가 급선무였고,
그 지점을 부처님이 콕 찍어 지적한 것이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고로 내 아이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고 분명히 아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게
죽은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참담하고 아득한 심정이다.
아이 죽음으로 생긴 고통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공부 안하며 뺀질거리며 게으름 피우는 나에게 아버지가 들려준 얘기다.
좋은 옷을 입고 잘생긴 중년 남자가 행길 복판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슬퍼 보이더란다.
마침 지나던 승려가 잘생긴 남자를 위로하듯 옆으로 다가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중얼중얼 염불을 외우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본 아낙 역시 옆으로 다가와 눈물을 흘리며 동참하더란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학교 선생님이 궁금해 다가와 보니 잘생긴 중년 남자가 편지같은 종이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기에,
왜 울고 있냐고 물으니..
멀끔하게 생긴 남자가 젊어서 부모님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하다 결혼하고 아이가 공부를 한답시고 서울에 올라가서 편지를 보냈는데..
글을 몰라 무슨 내용인지 알 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 울고 있다고 한다.
해서 편지 내용을 보니 부모님 덕분에 공부 잘해 좋은 회사에 취직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남자와 승려와 아낙은 좋아서 허허허 웃으며 갈 길을 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는 뜻으로 한 이야기인데..
난 왜 스님은 울고 있는 자에게 이유도 묻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까.. 였다.
스님은 한글은 물론 한문도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선생님 행동 보다 스님 행동에 마음이 기울었다.().
부처님이나 선생님처럼 현실을 바르게 판단하는 게 아주 중요하지만..
순간순간에는 함께 화를 내고.. 함께 슬퍼하는 게[동체대비] 바른 행동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든 것이다.
선생님이 편지 내용을 일러 주었다 하여 중년 남자 스스로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가 글을 모른다는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 지점이 스님을 눈물을 흘리도록 하는 게 아닌지..
지인의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으면.. 극락왕생 하셨을 겁니다. 하는 위로의 말과 좋은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 때는 스님처럼 진심으로 그와 같은 마음이 되어 함께 아파하며 슬퍼하는 게 더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스승님..
나도 아프고 슬프구나, 제자야..
아파하면서 함께 나아가자구나..
정륜월 보살 아버님 부음 소식을 들으며..
하얀 세상이 되어 아이처럼 슬픔에 동참합니다..()()..
첫댓글 아파하면서 함께 나아가자…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