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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람'이 젊은 시절,
친구의 집안 사람들이 모두 역병에 걸렸는데,
전염이 되는 병이어서 장차 구제할 수 없으리란 말을 들었다.
권람이 가서 살펴 보고자 하니 모두들 말리며 말했다.
자기 한 몸을 돌보지 않고 뜨거운
불길 속에 화약을 지고 들어가서 사람을 살리고저 함이니,
그 재앙이 온 집안에 미친다면 어찌하려고 대책없이 나부대고 지랄떠느냐?
권람이 아버지께 들이대어 박았다
(오타 입니다^^) '들이대며 맞받았다'로 바로 잡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린 것입니다.
오랜 벗이 죽을 지경에 있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고
구하지 않음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약을 가지고 가서 구하겠습니다.
고집도 드럽게 세지,..
권람이 뿌리치고 친구의 집 안으로 들어가니,
어린 하인들의 시체들이 줄지어 있었다.
친구가 그의 손을 잡고 흐느끼기에 권람은 그와함께 잠을 잤는데,
잠에서 깨어 보니 친구는 이미 몸을 빼어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없었다.
권람은 돌아 가고자 했으나
아직 날이 밝지 않아 여러 시체들을 지나 옆으로 비켜 앉아 잠깐 눈을 붙였다.
때는 가랑비가 막 그치고 달빛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홀연히 두 귀신이 도롱이를 쓰고 담을 넘어 곧장 집 안으로 달려들어 오더니,
그 중 한 놈이 말했다.
그 사람이 도망갔군.
바깥채로 나가 찾더니 다시 들어와 권람을 가리키며 한 놈이 소리 질렀다.
야,
이 새끼 봐라,
여기 구석에 슬쩍 숨어 있었네.
빨리 칵 쥑여서 호로병에 담아 갑세다요.
다른 귀신이 황급히 저지하며 말했다.
이 시끼야 쟨 안돼.
개는 권정승이라,
그를 범할 수 없네.
두 귀신이 다시 담장을 달려나가자,
권람은 옷을 걷어올리고 그들을 뒤쫓았다.
한 외딴 마을에 이르러 귀신이 말했다.
그 사람이 여기 있다.
드디어 문을 뛰어넘어 들어가자,
잠시 뒤에 곡성이 들렸다.
누가 말했다.
권람은 하늘을 믿어 미혹되지 않고 능히 자신을 던져 남을 구했다.
그 복록이 멀리 미쳐 마침내
정승의 지위까지 올랐으니 또한 마땅하지 아니한가!
그의 친구는 권람이 자신을 구해주려
한 은혜를 돌아보지 않고
친구를 팔아 자신을 대신하고자 몸을 감추어 피했으니,
그의 마음씀이 비할 데 없이 사악했으니,
신이든 잡귀이든 그를 죽임이 또한 마땅하도다.
*
옛날 사람들은 무슨 전염병도 귀신이 옮긴다고 생각한 데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는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