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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전인 1943년 가수 한복남이 부른 〈빈대떡 신사〉라는 노래에는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가사가 있지만 요즘 빈대떡은 그 값이 절대로 만만치 않다. 식당에서 사 먹으려고 해도 싼값이 아니고, 노랫말처럼 집에 가서 부쳐 먹으려고 해도 수고로움은 고사하고 재료인 녹두 값부터 장난이 아니다.
지금 수산시장에 가 보면 갈치가 그렇다. 큼직하고 통통해서 먹음직스러운 갈치는 값이 만만치 않아서, 서민들은 선뜻 지갑 열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웬만한 값이라면 눈 질끈 감고 큼지막한 놈으로 한 마리 사서 가족들을 맛있게 먹이고 싶지만 요즘 갈치 값은 그 선을 넘었다. 하는 수 없이 입맛만 쩍쩍 다시면서 값이 헐한 작은 갈치를 담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갈치가 고등어에게 ‘국민 생선’ 자리를 내줬다. 어획량이 줄면서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서민들이 갈치조림, 갈치구이 먹기가 부담스러워질 것 같다.
갈치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생선이다. 게다가 해방 전후의 빈대떡만큼이나 값싸고 맛있어 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특히 조선 후기인 정조 무렵에는 갈치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는지 당시의 실학자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 “엽전 꾸러미를 함부로 쓰고 싶지 않으면 소금에 절인 갈치를 사 먹으라”는 말이 있다고 적었다. 맛도 좋지만 값도 싸서 당시 한양 사람들은 갈치를 많이 먹은 모양이다.
지금도 전국에서 잡힌 물고기들이 서울의 노량진이나 가락동 수산시장에 집결되지만 옛날에도 바닷가 어촌에서 생선을 잡으면 사람 많고 돈 많은 한양으로 올려 보냈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이덕무가 당시 한양의 수산시장 풍경을 시로 읊었는데 아마 종로 육의전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시장에 잔뜩 쌓아놓은 갈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거리 좌우에 늘어선 수많은 상점/ 온갖 물건이 산처럼 쌓여 헤아리기 어렵다/ 비단가게에 울긋불긋 널려 있는 건/ 모두 능라와 금수고/ 어물가게에 싱싱한 생선이 두텁게 살쪘으니/ 갈치 농어 준치 쏘가리 숭어 붕어 잉어라네 (후략)
어물전에 온갖 물고기가 잔뜩 쌓여 있는데 18세기 무렵만 해도 먼 바닷가에서 싱싱한 생선을 운송하기가 쉽지 않았는지 민물생선이 주로 보이고 바닷물고기는 드물게 눈에 띄는데, 그중 갈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갈치는 고등어처럼 소금에 절여 운반하니까 장기 보관이 가능했다. 그래서 돈 되는 좋은 갈치는 잡아서 한양으로 올려 보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산 정약용은 강촌에 유배 가 있던 시절, 어촌에서는 오히려 갈치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불평했다. “싱싱한 갈치와 물 좋은 준치는 모두 한양으로 올려 보내고 촌마을에서는 가끔씩 새우젓 파는 소리만 들린다”고 말이다.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경제의 기본 이치다. 전국의 어촌에서 잡히는 갈치가 모두 한양의 어물전으로 모였으니 자연스레 가격이 떨어졌다. 구한말 관청에 물품을 납품하던 지규식은 《하재일기》에 일꾼의 술값으로 1냥 5전을 지급했는데 1냥은 갈치 값이라고 적었다. 아마 일꾼들이 갈치구이나 조림을 안주 삼아 술을 한잔씩 마신 것 같은데 한 냥의 값어치가 지금 가치로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한밤중에 참외 1냥어치를 사 먹었다고 한 것을 보면 당시 갈치 값은 그다지 비싸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게다가 예전 우리나라 바다에서는 일 년 열두 달 내내 갈치가 잡혔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계절에 따라 많이 잡히는 지역이 다를 뿐, 갈치는 동해와 남해, 서해에서 모두 잡힌다고 했다. 이랬던 갈치가 지금은 어획량이 줄어 가격이 오르는 바람에 국민 생선의 지위를 고등어에게 내주고 만 것이다.
참고로 갈치는 문헌마다 그 어원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일부 문헌에서는 생선의 생김새가 칼처럼 기다래 도어(刀魚), 칼치라 불렀다고 하고 또 허리띠처럼 길어서 대어(帶魚)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그리고 가늘고 긴 모습이 마치 칡넝쿨처럼 생겼기에 어부들이 갈치(葛侈)라고 부른다고 한 문헌도 있다. 작고한 수산학자 정문기는 경기 이남 서해안에서는 갈치, 경북 이북과 북한에서는 칼치라고 부른다고 했다.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
첫댓글 비싸서 큰 놈은 못먹는 귀한 생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