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 누구나 쓸 수 있다>
오봉옥 (시인)
제1강 말의 이해
※ 학습목표
창작의 실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공부한다.
▲ 시 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① 좋은 시를 많이 읽어라.
좋아하는 시인을 보면,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떤 시를 쓸 수 있는지가 보인다. 때문에 대대로 검증된 고전을 통해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
② 많이 외워라.
③ 많이 지어라
④ 많이 고쳐라
취약하고 힘든 부분이지만, 한 시인은 백번을 고쳐야 좋은 시가 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일임.
⑤ 많이 생각하라
백석의 시 가운데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이라는 시가 있다. 절창으로 꼽히는 시로 알려져 있다. 방바닥에 누워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인의 존재를 인식케 해 주는 시
백석 [1912~1995]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중략)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⑥ 많이 경험하라
▲ 시와 시인의 특징
①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인간의 정서나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어서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 곧 문학.
시는 정확하고 세련되고 함축적인 언어를 요구함. 산문은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으로서의 ‘말’을 사용하나 시는 ‘말’ 자체의 울림을 중시함.
② 시는 다른 장르와 달리 그릇이 작다.
깊은 뜻과 함께 정서적 울림과 빛깔이 강한 것이 시 언어의 특징이다. 시의 언어는 밀도가 높은 언어라고 할 수 있음.
④ 뛰어난 시인은 말공부를 많이 한다.
예> 고 은, 신경림, 박용수 시인 등
⑤ 우리말의 풍요로움을 만끽해야 함
우리말의 아저씨, 삼촌, 백부, 숙부, 고모부, 이모부, 당숙, 재당숙 등은 영어로 번역하면 uncle이 된다.
예> 저 대밭머리 돌아가면 늙은 당숙이 곰방대를 물고 나올 것 같다
→이것을 아저씨로 바꾸면 시의 맛은 사라진다.
늙은 당숙‘이 주는 울림과 ’아저씨‘가 주는 울림은 천지차이임을 알 수 있다.
‘눈’ 주위 관련된 명칭 수 십 개
예> 눈썹머리, 눈썹허리, 눈두덩, 눈시울, 아랫눈시울, 눈구석, 눈꼬리, 눈초리, 눈모서리, 눈조리개, 검은자위, 흰자위 등등, 대략 80개 남짓 될 것이다.
★ 퀴즈1 > 눈동자의 순 우리말은?
시어 하나하나가 주는 울림이 다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단어와 명칭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
예> 눈썹머리가 갈퀴를 세우고 있다
처진 눈꼬리가 서럽게도 웃는다
무서운 그 눈초리가 너를 항시 따르고 있다
문득 고향하늘이 눈썹에서 살살거린다 →속눈썹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하, 가도가도 무건 눈두덩(이찬-북방의 길)
먼 암자의 인경소리는 겨울 한 증의 선 하품과 눈시울의 여운을 늘어뜨려오건만
(유치환-깨우침)
입을 잠거 마실 물 푸른 샘은 없어도 네 맑은 눈망울에 어려나는 이슬과
(박두진-너를 만나면 )
⑥ 말이 갖는 힘
예> 사랑해, 보고 싶어 등의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문득 밀물처럼 다가오는 네가 있어 난 참 행복해”
⑦ 뛰어난 시인은 말의 구사에 능한 사람이다.
ㆍ 김소월 -모국어의 가장 기초적인 어휘 500개 정도로만 시를 쓴 시인. 그럼에도 대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정서적 충전력이 강한 말 위주로 시작을 하였기 때문
예>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봄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봄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 전문
‘갈봄여름 없이’ 에서는 계절의 순서를 바꾸어 약간의 낯설게 하기를 통한 변화를 주었다.
ㆍ정지용 -언어의 구사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시인이다. 언어의 마술사이면서도, 치밀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이다. 촉각의 시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비가 떨어지는 장면을 ‘굼실굼실’ 떨어진다고 표현함.
ㆍ백석 -일제시대에 우리말을 썼다. 많은 방언을 사용하였다. 어린 시절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짙기 때문에 후각적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방언은 주로 용언보다 체언에서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몰입의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는 단점도 유의해야 한다.
⑧ 방언의 사용 중요하다
‘샘’과 ‘시암’의 차이는 무엇일까. ‘샘’의 사전적 의미는 ‘물이 땅에서 솟아나오는 곳’일 뿐이지만 어린 시절의 단어인 ‘시암’ 이라는 단어는 정서의 울림이 다르다. 정서적 의미는 물을 긷는 곳, 여름철에 등목을 하는 곳, 겨울에 물 길러 갔다가 바닥이 얼어 넘어진 곳 등의 풍요로운 감성을 가지고 있다. 방언을 들음으로써 우리는 고향의 살냄새, 풀냄새, 이슬냄새, 황토흙이 지글지글 타는 냄새를 맡게 된다.
방언의 특징은 순우리말이 많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표준어는 대체로 한자어와 외래어가 많다.
우리 사전은 한자가 70퍼센트, 20퍼센트가 외래어, 8프로 남짓만이 순우리말임. 이는 시대적인 아픔으로 인한 것.
※ 우리 표준어에 한자어와 외래어가 많은 이유
일제시대에 나온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주도한 인사들은 동경제국대학 출신들.
그들은 일본 표준말의 예를 그대로 우리 환경에 적용시켰다. 일본은 동경을 둘러싼 각 부락의 곁말들이 워낙 거칠었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동경 부락의 말을 지킬 필요가 있어서 표준어를 ‘동경의 중류사회가 쓰는 말’로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 달리 각 고장의 말이 그 고유의 문화를 담고 있어 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말이었다. 그런데도 사대부 문화권의 서울말이 표준어가 되다보니 지금도 많이 배웠다 하는 사람은 한자어, 외래어를 남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순수한 우리말, 방언 등이 중요하며, 특히 시에서는 구어체를 잘 사용하는 것이 필요함.
⑨ 한자어 또는 외래어보다는 순우리말을 쓰자
한자어는 시에서 형상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주로 개념으로 다가온다.
★ 퀴즈2 > “남대문 열렸다.” 할 때의 남대문을 가리키는 순 우리말은?
⑩ 조어 또는 창조어 사전용어로는 개인어의 중요성
조어 하나가 시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예> 컴컴한 하늘에서/ 쑥쑥 빠지는 사비약눈// 종일 드러누워/ 소설이나 읽으련다// 오늘은 메주 삶은 덕으로/ 방이 뜻뜻 하거니
<조운-x월 x일 전문>
여기서 ‘사비약눈’은 사락눈 정도 되는데(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조운 시인이 영광사람임에도 그 지역 시인들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마치 여기서는 컴컴한 하늘에서 눈이 쑥쑥 빠지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사락눈으로는 그것을 도저히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위의 조어는 매우 기가 막힌 표현이 되는 것이다.
⑪ 우리말은 통사적 연계에 의해 말이 힘을 갖는다.
관계어가 대단히 중요하다.
예> 꽃의 관계어- 곱다, 그윽하다, 귀족적이다, 귀티나다, 눈부시다, 단아하다, 만발하다, 매력적이다, 매혹적이다, 붉디붉다, 수려하다, 수수하다, 시들다, 잔잔하다, 청순하다, 청빈하다, 청초하다, 탐스럽다, 파릿하다, 현란하다, 향긋하다, 흐드러지다, 화려하다, 화사하다, 활짝 피다, 환하다, 떨어지다, 산화하다, 아름답다, 어여쁘다, 야들야들하다, 오만하다, 울긋불긋하다, 요염하다, 우아하다, 은은하다, 이쁘다.
관련된 명사- 교태, 낙화, 백화만발, 섬섬옥수, 꽃가루, 꽃길, 꽃나무, 꽃내음, 꽃망울, 꽃무더기, 꽃보라, 꽃바다, 꽃밭, 꽃봉오리, 꽃송이, 꽃향기, 꽃떨기, 꽃씨, 꽃잎 등
관계어 사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형상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예> ‘산꽃이 많이 피었다’와 ‘화사한 산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느낌이 다름.
⑫ 창조적 오용이 중요
살아있는 말, 구어체를 즐겨 쓰다 보면 비문이 나오기 마련이다.
창조적 오용을 즐기는 대표적 시인은 고은과 정현종
예> 별 하나 우러러보며 젊자/ 어둠 속에서 내 자식들의 초롱초롱한 가슴이자(젊어지자, 가슴이 되자)
-고은 <조국의 별 첫 행>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김수영 <봄밤>
김수영의 시 에서의 ‘과연’이란 부사는 뜻 풀이를 두 가지로 할 수 있다
1. ‘정말’ 정도로 해석- 이 경우로 썼다해도 ‘과연’과 ‘정말로’는 맛이 다르다.
2. ‘사실상’ 또는 ‘도대체’ 정도로 해석을 하는데 이 경우 뒤의 말은 의문부호로 끝난다.(~ㄴ가, ㄹ까)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시에선 뜻풀이 1로 썼지만 ‘정말로’라고 할 것을 ‘과연’이라고 함으로써 낮설게 하기의 효과를 낸다.
⑬ 모든 시인은 말을 가지고 놀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예> 산너머 저쪽엔
별똥별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개 씩
떨어졌으니
산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이문구 <산너머 저쪽> 전문
▲ 강의 마무리
사전을 끼고 살면 좋은 시인이 된다. 국어사전, 방언사전, 어원사전, 동식물사전 등. 게다가 요즘에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많은 자료를 손쉽게 체득한다. 뿐만 아니라 오감을 통해, 생활 속에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습득해야 할 것이다.
▲ 오늘의 과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써 보세요.
퀴즈1> 답: 눈망울, 퀴즈2> 답: 쪼로로기! (북한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