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의 즐거움
인간과 짐승이 가려지는 시간이다. 딥시크를 깎아내리는 자는 짐승이고 긍정하는 자는 인간이다. 그것은 문명 단위의 거대한 방향전환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다. 구조론은 마이너스적 사고를 주장하고 플러스적 사고를 비판한다.
거짓 – 노력을 플러스 하라.
진실 – 뻘짓을 마이너스 하라.
원자든 양자든 그것은 단위다. 세상을 단위로 보면 플러스가 되고 구조로 보면 마이너스가 된다. 단위가 하드웨어라면 구조는 소프트웨어다. 세상을 하드웨어로 보는 불변지향의 정적사고냐, 세상을 소프트웨어로 보는 변화지향의 동적사고냐. 다른 세계가 있다.
정답은 없다. 우주 안에 원래 없다. 아닌 것은 제거했을 때 남는 것을 정답으로 간주할 뿐이다. 왜 그것을 정답으로 간주하는가? 다른 길이 모두 막혔기 때문이다. 인간은 저쪽이 막혀서 이쪽으로 방향전환 하는 존재다. 정답은 원래 없고 막힌 길과 뚫린 길이 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늘릴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줄여야 한다. 이는 근본적인 세계관의 차이다. 군자는 모든 것에 대해 일관되게 마이너스를 지향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정답이 아니다. 최악을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집단의 방향전환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뿐이다.
고시 9수는 엄청난 노력의 플러스다. 1수는 출제경향 파악, 재수는 실전감각 향상, 삼수는 실력대결, 사수는 패자부활전, 오수는 노인우대, 육수는 파렴치한, 칠수는 집안망신, 팔수는 고대전설, 구수는 내란죄다. 돌대가리가 구수 해서 판검사 되면 나라가 망한다.
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이것은 본능의 문제다. 본능을 극복해야 인간이 된다. 개가 짐승인 이유는 길에서 붙어먹기 때문이다. 개는 본능대로 한다. 인간이 길에서 붙어먹지 않는 이유는 짐승이 아니기 때문이다. 플러스 하려는 본능을 극복해야 인간이 된다.
일본의 혐한은 동물 특유의 개체수 조절본능이다.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기 때문에 흥분했다. 흥분한 짐승을 정상화 시키는 방법은 몽둥이 처방 뿐이다. 히틀러 시절에 독일인들은 흥분했다. 역시 소련의 몽둥이가 해결했다. 일본 때려잡은 원자탄은 거들었을 뿐.
세상을 플러스로 보는 귀납인과 마이너스로 보는 연역인이 있다. 귀납인과 연역인은 관점이 달라서 대화가 안 된다. 종교인과 대화 되냐? 내가 꿈에서 봤는데. 이런 소리 하는 사람과 대화가 되냐고? 음모론자와 대화가 되냐? 음모론이 전형적인 플러스 사고다.
하드웨어냐, 소프트웨어냐? 우주는 그 자체로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가 이긴다. 그런데 잡스가 왜곡한다.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끼워팔기 한다. 이런 자가 인류의 적이다. 인류가 창의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빌 게이츠도 똑같은 끼워팔기 도둑이다.
애플은 컴퓨터만 팔고, MS는 OS만 팔아야 한다. 애플이 만든 기기에 IOS를 돌리든 안드로이드를 돌리든 이용자의 권리다. 그것이 자유주의다. 지금 애플은 공산주의다. 인류의 적이다. 플러스를 행하고 있다. 디바이스에 OS를 끼워팔기 하는게 플러스 행동이다.
김용옥은 한때 인터넷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했다. 김훈은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써야 제맛이지 무슨 자판을 두들기느냐며 힐난했다. 이해는 된다. 화가 나서 흥분한 것이다. 인간들이 원래 약한 존재다. 그래서 소인배인 것이다. 흥분을 조절하지 못하니까.
딥시크가 좋냐, 속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인은 원래 서구인과 사고방식이 다르다. 서구인은 태생적으로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다. 나는 이런 사태를 진작에 예견했고 기다려왔다. 지능은 학습이 아니라 패턴복제다. 학습은 플러스고 복제는 마이너스다.
공룡은 몸집을 키워 살아남았고 포유류는 몸집을 줄여 살아남았다. 공룡이 이긴다고 생각되었다. AI시대에 스타트업이 위축되었다. 투자자들이 큰 것만 살아남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 60년대 헐리우드는 대작을 만들어 작은 것을 만드는 TV를 공격했다.
3시간짜리 대작영화를 줄줄이 개봉했지만 모조리 망했다. 그런 식이다. 미래는 의사결정의 속도, 방향전환의 속도가 결정한다. 작고 유연한 조직이 크고 느린 조직을 이긴다. 구조론은 말한다. 어떤 회의에 적당한 숫자는 다섯 명이고 그 이상은 옵저버일 뿐이다.
10명 이상이 모여서 회의하는 조직은 망한다. 아직 안망했다면 경쟁자가 더 멍청하기 때문이다. 줄여야 살아남는다. 다섯 명은 두 명으로 압축하기 위해 존재하고 두명은 한 명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다섯 명이 넘는다면 다섯 명에 들어갈 후보군의 양성이다.
의사결정은 방향전환이고 방향전환은 하나에 의해서 성립하며 둘은 하나를 붙잡아주는 장치고 다섯은 둘을 도출하는 장치다. 다섯으로 둘로 하나로 줄어들때까지 사유를 밀어붙여야 한다. 딥시크의 등장에 가슴이 설레이지 않는다면 영혼이 죽었다는 증거다.
인공지능의 한계와 가능성
현재까지 만들어진 인공지능은 확실히 지능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학습하지 않는 인공지능이라야 한다. 1+1은 학습되지만 2+2는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하나를 알려줬는데 열을 모르면 지능이 아니다. 아직까지는 아이큐 0이다.
비관할 이유는 없다. 지능과 지능이 아닌 것의 차이는 작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여러 분야의 인공지능을 각각 만들어 이들을 모두 합치면 일반인공지능이 된다. 서로 다른 인공지능들이 모순된 결과를 내놓을 때 어떻게 교통정리를 하느냐가 핵심이다.
1. 지능은 복제한다.
2. 지능은 모방한다.
3. 지능은 정답이 아닌 것을 배제하는 소거법을 쓴다.
4. 지능은 자신을 감시한다.
5. 지능은 내부에서 경쟁한다.
6. 지능은 내부에 의회 역할을 하는 평가구조가 있다.
7. 지능은 감각기관을 가진다.
8. 지능은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낸다.
9. 지능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10. 지능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11. 지능은 능동적으로 질문한다.
12. 지능은 에너지를 절약한다.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이 흥했지만 답답함이 있었다. 구조론은 마이너스인데 다들 더 많은 학습과 투자를 강조하는 플러스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이번에 딥시크가 좋은 교훈을 줬다. 마이너스가 정답이다. 비용을 줄이고 지름길을 찾아내는 것이 지능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답을 안다는 점이다. 꼼수를 쓰고, 편법을 쓰고, 요령을 부리면 된다는걸 몰라서 안 하냐? 나도 안다고. 알아. 그러나 그건 정직하지 않다구. 기술로 승부해야지 요령으로 승부하다니 말이 되냐? 딥시크는 미국의 것을 훔쳤어. 중국 도둑놈들!
이런 식의 비뚤어진 사고에 빠져 있다. 분명히 말한다. 훔치는게 지능이다. 마이너스가 답이다. 꼼수, 편법, 요령 그게 바로 지능이다. 단 사람이 꼼수를 쓰는게 아니라 인공지능이 꼼수를 써야지. 문제는 이런 꼼수적 사고방식이 동양인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차대전 때 합리주의 독일은 기술을 강조했다. 우리 신형 티거가 소련 전차를 압도한다고. 이건 기술의 승리야. 독일의 첨단기술을 미련 곰탱이 소련이 따라올 수 없지. 독일의 첨단 V2로켓 맛 좀 볼래? 그런데 왜 독일은 졌지? 독일은 심리적으로 쫓겼다.
독일이 소련의 물량을 이기는 방법은 초격차다. 그런데 초격차라고 정답을 딱 공개하는 순간 이미 패배해 있는게 아닐까? 자신의 기술을 적군에 알려주고 전쟁하는게 어딨어? 중국의 곤양대전, 비수대전, 살수대첩 등 무수히 많은 전투의 압사공식도 같다.
초조한 쪽은 필승법을 강조한다. 우리는 필승법이 있다. 그것은 쪽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카드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방법이 있는데도 오직 쪽수, 쪽수 외치다가 죽었다. 외통수로 가면 죽는다. 왜 다른 길을 찾아보지 않는가? 뭐가 무섭냐?
심리적으로 쫓기면 늑대에게 쫓기면서 직진만 계속하는 사슴이 된다. 소련군은 창의적이었다. 기술은 뒤지지만 물량이 있다. 물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창의다. 소총의 명중률이 떨어지면 연발로 놓고 갈기면 된다. 미군은 명중률에만 집착했다.
M16은 좋은 총이다. 잘 맞는다. 1킬로 밖의 적을 죽인다. 미국은 땅이 넓기 때문에 원거리에서 위력이 있는 총으로 단번에 사살해야 한다. 보어전쟁의 교훈이다. 보어인이 산꼭대기에서 1키로 밖의 영국군을 저격해서 몰살시켰다. 그러나 현대전은 다르다.
나뭇가지에 M16의 총신이 걸린다. 도시에서는 아랍인이 숨어 있는 작은 틈새에 들어가지 못한다. 현대전은 100미터 안에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위력은 필요 없고 명중률도 필요 없고 갈겨야 한다. 1킬로 밖의 적은 소총이 아닌 대포로 공격하는 것이 맞다.
소련군이 이 부분에서 강했다. 좋은 무기보다 좋은 운영이다. 망원경 배율이 높아도 초점이 맞지 않으면 소용없다. 미국과 독일의 기술집착은 망원경 배율만 높이려는 고지식한 생각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언제나 다섯 가지 편법이 있다. 지름길이 더 있다.
질로 한 번에 되는 것은 입자로 두 번, 힘으로 하면 네 번, 운동으로 하면 8번, 량으로 하면 16번에 된다. 항상 편법이 있기 때문에 기술주의 집착은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행동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나에 집착할까? 다른 길이 다섯 개나 있는데도 말이다.
투자유치용이다. 투자자를 겁줘야 한다. 초반에 대규모 투자를 해서 초격차를 만들어 경쟁 없이 날로 먹는다. 24년 전 디지털조선일보의 멸망공식. 서버는 빌리면 되는데 50억이나 들여서 직접 사들였다. 전형적인 투자자 꼬시기용 보여주기식 억지투자다.
서버 구입에만 50억이나 투자했다고 신문에 떠들기 위한 투자다. 필요해서 한 행동이 아니고 투자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언플용 투자다. 이런 식으로 영화가 망하는 공식이 있다. 처음 제작사는 시나리오를 본다. 시나리오가 좋지 않다. 감독이 매달린다.
제발 투자 좀요. 제작사가 말한다. 유명인을 캐스팅하면 투자자가 붙는데. 유명인 누구지? 가수 비가 유명하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폭망. 자전차왕 엄복동 폭망. 여기서 왜 송강호, 최민식, 이정재 다 놔두고 가수 비냐고? 시나리오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송강호, 최민식, 이정재는 시나리오 읽어보고 던져버린다. 빠꾸 맞은 거. 유명하지만 연기파 배우는 아니고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얼떨리우스를 섭외한다. 그렇다면 차인표네. 멸망은 결정되어 있다. 과거 필자는 포스터만 보고 3초에 흥행을 맞혔다.
구글, MS, 아마존의 과잉투자는 디지털조선일보나 중국의 허다한 백만대군이나, 자전차왕 엄복동 멸망법칙, 독일군의 패배공식과 같다. 외통수로 가면서 언플을 하고 자기 전술을 다 공개하고 필승법을 추구하며 플랜 B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점이다.
구조론은 성동격서다. 이유극강, 외유내강, 기정편, 음양론, 허허실실, 주역사상이다. 그것은 변화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현장에서의 임기응변이 중요하다. 무조건 학습만 하면 돼 하고 외통수로 가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동양인은 원래 변화중심적 사고다.
무조건 의대야. 안되면 한의대나 수의대를 노려. 전 국민이 의대를 가려는데 인공지능이 되냐? 의대 가는 방법은 정원을 20만 명으로 늘리기뿐. 윤석열 의대증원에 꽂혔다. 무조건 서울대. 무조건 영끌해서 집을 사. 무조건 강남입성이 답이야. 죽는 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