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복 받을 자들'로 오역한 '율로게메노이'는 아버지에 의해 복을 받아 지니고 있는 자다.
나. 목사 선교사 장로 집사의 직분은 애굽의 직분이므로 버려야 할 것들이다.
다.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의 길은 세상 이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오직 한 길뿐이다.
2. 본론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완료 수동태)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가. '복 받을 자들'로 오역한 '율로게메노이'는 아버지에 의해 복을 받아 지니고 있는 자다.
‘복 받을 자들’로 오역하고 있는 ‘율로게메노이’는 완료 수동태로 아버지에 의해 이미 복을 받아 지니고 있는 자들이다. 번역이 잘못되었다. 미래형이 아니다. ‘율로게메노이’의 원형 ‘율로게오’는 ‘좋음’과 ‘로고스(말씀)’의 합성어다. 이것은 세상 복, 육체적으로 얻어지는 복이 아니다. 감각적 욕망을 채우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로고스’는 하나님 자신이다.
여기 나오는 ‘너희’들은 하나님 자신을 이미 완료 태로서 소유하고 있다. 이미 로고스(말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너와 나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살과 뼈가 내 안에 이미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 안에 사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믿음은 가짜다. 내면에서 하나 된 하나님을 발견한다면 몸 밖으로 향해 있는 모든 종교 행위는 끝난다.
나. 목사 선교사 장로 집사의 직분은 애굽의 직분이므로 버려야 할 것들이다.
목사 선교사 장로 집사의 직분들은 모두 애굽에서 일어나고 있는 열매로, 이를 버리고 떠나야 할 무가치한 것들이다. 아버지로부터 이미 복 받은 자들인 너희를 위하여 너희 안에 예비한 나라(천국)보다 마음 세상(코스모스)이 먼저 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씨)을 받아들일 기초(옥토)의 과정으로서 먼저 있어야 한다.
먼저 고난의 훈련을 받는 그 마음이 필요하다. 애굽을 떠나, 갈대 바다(홍해로 오역)를 건너 광야 사십 년 생활이 필요하며, 세상 사람들이 살지 않는 산에서 백여 년에 걸쳐 방주를 짓는 기간이 필요하다. 옥토밭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마음 밭(게)이 그만큼 애굽 생활(감각적 욕망)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거슬러 가야 하는 길이다. 그래야 애굽을 떠나 광야 안으로 들어가서도 말씀(진리)을 따라 계속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다.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의 길은 세상 이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오직 한 길뿐이다.
인생들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욕망을 채워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것이 없으면 고통으로 생각한다. 성경에서 제시한 길은 이 세상 이치와 완전히 거꾸로 가는 개념이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며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목사 선교사 장로 집사의 직분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성경에 대한 학문이 많은 것과는 무관하다. 내면으로 향하는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은 각자 안에 있다. 기분이 좋다고 해서 천국이 내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몸과 마음 곧 휘장을 찢어야 천국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천국은 몸과 마음을 초월한 그 너머에 있다. 행복해야 하는 마음, 슬퍼하는 마음 그 너머에 있다. 그러므로 기쁘고 행복해하는 그 마음을 통해서는 절대로 천국을 알 수 없다. 소원 성취가 이루어진 자는 천국을 볼 수기 없다.
오히려 고난의 과정을 통해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세상에서 고통 받는 자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좁디좁은 길이다. 예수도 신비한 일을 행하지 않으므로 한낮 종교인들의 조롱거리에 불과할 만큼 어려운 여정을 가셨다.
생명의 그 빛과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