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을 접하는 일이 있다.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나 마르셀 뒤샹의 "샘"과 같이.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당황한다. 다음에는 무언가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일컬을 정도면 분명히 뭔가 있을 거야" 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얘기와 비슷하다. 모두가 옷이 있다고 하니 왠지 무언가 있을 듯도 싶은 것이다. 결국 마른침을 삼키며 하는 거짓말인즉슨, "좀 어렵지만 괜찮네."
나는 교양 없는 인간이다. 현대 추상화의 7할은 물감으로 애들 장난질한 것으로 보이고, 나이키 로고같이 생긴 저기 저 돌덩이 제목이 왜 "평화"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평론가들이 좋다고, 예술적이라고 평하는 글이나 영상을 보면서 즐거웠던 적이 별로 없다. 언제나 언어 시험지를 푸는 듯한 칼날같은 눈으로 그것들을 뜯어보기 바빴다. 결국 메세지 비슷한 걸 발견하긴 한다. 그런데 다시 다른 사람 평을 읽으면 내가 느낀 것과는 좀 다른 듯도 싶다. 그럼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결국은 지칠 뿐인 작업이다.
한 예술영화 감독이 외국의 시상식에서 "한국의 대중들은 내 영화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다"는 악담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자기 영화를 별로 안 본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시인 이상은 자신의 시가 어렵다고 하는 기자에게 "이 무지몽매한 것들!"하고 한바탕 조소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는 수준낮은 대중이다.
톨스토이는 다른 주장을 폈다. 그는 저서 "예술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전략)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예사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자신을 창조하며 이해하고 있다. 만일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술이 대중들에게 이해되지 않더라도 훌륭한 예술일 수 있다는 확신은 지극히 옳지 않으며, 예술에 대해서도 해로운 주장이다. 그와 아울러 그것은 아주 널리 보급되어 우리의 생각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그 불합리성을 모두 충분히 해명할 수 없다. 어떤 예술 작품에 대해 “이것은 아주 훌륭하기는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작품은 좋은데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은 마치 어떤 종류의 음식이 “맛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먹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특별히 까다로운 미각을 지닌 식도락가들이 좋아하는 썩은 치즈와 쿡 하고 코를 찌르는 뇌조로 만든 음식 따위를 대중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빵과 과일은 일반 사람들의 구미에 당기는 것이기 때문에 맛이 좋다고들 한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그릇된 예술은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좋은 예술은 언제나 많은 사람에게 이해되는 것이다.
가장 뛰어난 예술 작품은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를 이해할 만큼 교양이 있는 몇몇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중이 현재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이해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고 작품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실은 그런 지식이란 있을 수 없고, 작품을 설명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좋은 예술 작품은 대중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이런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번씩 되풀이해서 읽거나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것은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길들이는 것이다. 길들여져서 익숙해지는 것은 나쁜 것에 대해서도 가능하다. 썩은 음식이나 술, 담배 아편과 같은 것에도 길들 수 있는 것처럼 나쁜 예술에도 길들 수 있다.(후략)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나는 대체로 이 대문학가의 주장에 동의하고, 이 포스팅의 주제를 위 인용문으로 갈음한다. 그리고 여기 내가 감히 몇 마디를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예술이 "사람에게 미적 만족을 안겨주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훌륭한 예술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큰 미적 만족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특별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소수의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 역시 예술이고, 작가 한 사람에게라도 아름답다면 그것은 예술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훌륭한" 예술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더욱 보편적인 미적 만족을 안겨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올바른 예술의 방향이라고 믿는다.
화가, 문학가, 작곡가, 감독 등- 예술가를 자처하는 사람 중 많은 부류는 대중과 괴리되고 있다. 그중 일부는 대중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은 것 때문에 뱉는 볼멘 소리이든,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든, 그들은 "나의 예술은 일부 교양있는 사람만 이해하면 그만이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뱉곤 한다. 스스로 점점 더 교만해지고 고고해진 몇몇 예술가들은 철통같은 지적 우월감으로 무장하여 저 밑 홍진의 세계에 사는 대중들과는 전연 다른 존재가 된 듯 하다. 그들끼리 돌려보고, 그들끼리 평론하고, 그들끼리 훌륭하다 하여 상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예술은 거기서 그친다.
소수만 향유하는 예술 역시 예술의 하나임은 당연하고, 다양한 예술은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어렵기 때문에" 일부만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은 절대 훌륭한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배워야만 익숙해지는 예술은 바람직하지도 못하고 만연해서도 안된다. 한 작품을 두고 내가 느끼지 못한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이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미적 취향의 차이다. 아름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이 교양없는 우매한 대중!"이라고 조롱하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일이다. 그것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두고 "임금님은 지금 옷을 입고 계신거야"라고 아이를 설득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윽박지르는 것이다. "만약 옷이 안 보이면, 너는 교양이 없다는 뜻이지!"
고고한 뭇 예술가들에게 나는, 더욱 훌륭한 예술을 위한 대중과의 소통을 주문하고 싶다. 스스로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매한 대중들"을 비난하기 전 예술가들이 먼저 대중에 다가와주었으면 한다. 대중에게 교양과 이해를 강요하기 전 그들이 먼저 대중을 이해하길 원한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예술이 거듭 어려워질 필요는 없다. 전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보다 쉽게 풀어낼 방법은 분명히 있다. 저 먼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부터 시작된 예술에 갑자기 그 전달력이 사라졌을 리는 없다. 보다 보편적인 방법, 보다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너무도 절실하다.
영화 아바타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의 뻔한 수작에 또 홀려버린 저 "우매한 대중들"을 비판하는 예술가와 평론가들의 비아냥거림이 종종 들려온다. 한국 대중의 수준에 절망했다느니, 헐리우드의 저질 문화가 범람한다느니. 그들의 고고한 트집과 대중을 계몽시키려는 시도에 나는 반대한다. 대중은 당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저 공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예술경영학 첫 시간에 다뤄질 주제 정도겠지요.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표현한 점(언어구사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이 촛점을 흐리게 할 수 있겠군요,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작가에게 있는지 관객에게 있는지 등등,,,'대중예술론' 정도의 비평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요? 아마 대중예술론은 이 정도 시각이면 ㅋㅋ 예전에는 트로트가 좋았는데 요즘은 락이 좋다는 사람들에게 이글을 읽게 해주고 싶네요... 눈에띄게 하기 위한 주옥같은 단어의 선택(?)이랄까....
첫댓글 몇 번 더 읽어야 댓글을 달 수 있을 듯 하네요...읽다가 "그건 아니지~"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어찌보면 더 논쟁을 하기에는 식상한 감이 있는 주제...왠지 글쓴이의 입장이 분명하지가 않은 느낌도 있네요..한번만 더 읽어 볼께요 ^^
예술경영학 첫 시간에 다뤄질 주제 정도겠지요.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표현한 점(언어구사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이 촛점을 흐리게 할 수 있겠군요,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작가에게 있는지 관객에게 있는지 등등,,,'대중예술론' 정도의 비평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요? 아마 대중예술론은 이 정도 시각이면 ㅋㅋ 예전에는 트로트가 좋았는데 요즘은 락이 좋다는 사람들에게 이글을 읽게 해주고 싶네요... 눈에띄게 하기 위한 주옥같은 단어의 선택(?)이랄까....
결정적인 것은 젊은 친구 글이라는 거. 27세의 그때는 아마 나도 그랬고 하림씨도 그랬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