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다시 '에스라넷 나무 강단' 성경 어휘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어휘와 단어의 연구입니다. 단어 없이는 아무런 사상도 우리가 추천하거나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어휘를 올바르게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성경적인 신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 연구의 목적입니다.
오늘은 56번째 시간으로 '서로 나누어져야 할 짐'과 '각자 스스로 져야 할 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짐'이 나옵니다. 그 짐의 의미를 오늘 함께 구별하는 연습을 해보고자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부터 5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제가 읽을 때 눈으로 따라 읽으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여기 이 문단에는 두 개의 '짐'이 언급됩니다. 2절에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했고, 5절에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지라"고 했습니다. 짐을 서로 나누어서 지라고 했다가, 다시 각자 스스로 자기 짐을 지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짐이길래 서로 지라고 했다가 각자 지라고 하는지 그 차이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방금 본 대로 바울이 말하는 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서로 나누어 져야 할 짐이 있고, 각자 책임지고 자기가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를 보면 그 차이가 명확해집니다. 2절에 나오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할 때의 짐은 '바레(Bare)'입니다. 이는 '바루스(Baros)'라는 단어의 복수 형태입니다. 영어로는 대개 'Burdens'로 번역되며, 우리말로는 '짐들'입니다. 반면에 5절에 나오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할 때의 짐은 '포르티온(Phortion)'입니다. 영어로는 주로 'Load'로 번역됩니다.
대부분의 한글 성경은 이 두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짐'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왕역(King James Version)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어 성경은 2절의 짐을 'Burdens'로, 5절의 짐을 'Load'로 엄격하게 다르게 번역했습니다. 원어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번역을 다르게 하는 것이 사실상 합리적입니다. 그렇다면 영어의 'Burden'과 'Load'의 차이는 무엇이며, 성경이 말하는 두 가지 짐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영어 'Burden'과 'Load'의 의미적 차이를 일상에서 엄격하게 구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성경과 역사 속 용례를 보면 뚜렷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단체로 산악 훈련을 하는 경우를 한번 가상해 봅시다. 군대나 교회, 혹은 사회적 단체 활동 등 우리 삶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단체 활동이 많이 있습니다. 10명, 20명 혹은 군대처럼 대규모 인원이 산악 훈련을 간다고 할 때, 행군을 위해서는 무수한 준비물이 필요할 것입니다. 먼저 대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공용 장비와 도구'들이 있을 것이고, 다음으로는 각 대원이 스스로 지참해야 하는 '개인용품이 든 배낭'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행군할 때 메는 각자의 배낭은 스스로 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이 남의 배낭까지 두 개를 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신체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각자 등에 메고 가는 개인 배낭이 바로 5절의 '포르티온(Load)'입니다. 반면에 단체 텐트, 취사도구, 구호용 장비 등 단체 활동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한 사람이 다 짊어질 수 없는 무거운 공용 장비들은 대원들이 불가불 서로 나누어서 짊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2절의 '바레(Burdens)'입니다.
군 생활을 하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군대 훈련이나 산악 행군을 할 때 야전용 다인용 텐트, 작전용 테이블, 단체 급식 도구, 혹은 조난 상황에 대비한 무거운 공용 구호 장비 등은 구성원들이 철저히 분담해서 나누어 져야 합니다. 혼자서는 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장을 비롯해 개인 세면도구와 피복이 들어있는 개인 배낭은 반드시 자기 등에 메고 각자 스스로 가야 합니다. 이처럼 개인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책임의 짐이 있고, 공동체가 연합하여 나누어 져야 하는 공동의 짐이 있습니다.
이 원리는 우리의 교회 생활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성도들이 서로 손을 잡고 나누어 져야 할 공동의 짐이 상당히 많습니다. 가령 어린이들을 위한 안식일학교(주일학교) 사역이나 대예배를 온전히 드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도들이 분담해야 할 예배 사역의 몫들이 있습니다. 정기적인 성경 통독회,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회나 기도회 등도 단체가 짐을 나누어 져야만 가능합니다.
특히 대규모 재난이나 지진이 발생했을 때 행하는 구호 봉사 사역이 그렇습니다. 얼마 전 큰 지진이 났던 지역에 제가 성지순례의 일환으로 현장 근처까지 가본 적이 있습니다. 온 세계에서 도와주고 특별히 교회 기관들을 통해 성도들이 힘을 모아준 덕분에 많이 복구되어 수습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재난 구호나 이웃을 돕는 봉사라는 짐은 우리가 서로 나누어 지지 않으면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서로 짐을 나누어 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이 외에도 교회의 지역 사회 해외 봉사, 손님 초청 행사, 성도 심방, 야외 예배, 교회당 대청소, 예배당 신축이나 리모델링 등에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분담해야 할 공동의 짐(바레)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큰 건물의 대청소를 한다고 합시다. 거대한 창문들을 닦아야 하는데 한 사람이 그 수많은 유리창을 돌아가면서 다 닦을 수는 없습니다. 성도들이 파트를 나누어 짐을 져야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도 청소 기계를 잡거나 빗자루를 들지 않고 손을 놓고 있다면 공동체에 화목이 깨어질 것입니다. 그림만 봐도 우리가 무엇을 분담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회의 가장 기초 공동체인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 안에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짊어져야 할 가장의 짐이 있고,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져야 할 내조와 양육의 짐이 있습니다. 또한 아들과 딸, 혹은 형과 언니, 동생으로서 분담해야 할 자기 몫의 책임들이 있습니다. 언니나 형들은 어린 동생을 잘 돌봄으로써 부모님의 양육의 짐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 분담입니다.
주택을 마련하고 양식을 책임지는 일은 주로 남편과 아버지가 담당합니다. 물론 부인이 함께 벌어 도우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상적인 생활 도구를 관리하고 문화 시설을 청소하는 집안일 등은 온 가족이 공평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자녀가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집안 청소는 함께 돕는 것이 맞습니다. 요즘은 어머니 혼자서만 가사 노동을 전담하게 해서는 안 되며, 자녀도 돕고 남편도 팔을 걷어붙여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학업(공부)'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습니까? 이것은 각자 스스로 해야 하는 개인의 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아무리 사랑하고 안타까워해도 자녀를 대신해 밤새 공부를 해줄 수는 없고, 학교 시험장에서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 줄 수도 없습니다. 자녀들의 소소한 심부름, 그리고 개인의 신앙 활동이나 사회 활동 등은 철저히 개별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자기 몫의 짐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다시 갈라디아서 말씀으로 돌아와 두 종류의 짐의 차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너희가 짐들을 서로 지라: 헬라어 '바레(Bare)'이며,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고난과 슬픔, 공동체의 과업 등 '공동으로 나누어 져야 할 무거운 짐들'을 뜻합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헬라어 '포르티온(Phortion)'이며, 배낭이나 개인의 학업처럼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개인적인 책임과 의무의 짐'을 뜻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인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30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여기에 사용된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할 때의 짐이 바로 '포르티온(Phortion)'입니다. 또한 앞 절의 "무거운 짐 진 자들아"라고 번역된 헬라어 문법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포르티온'이라는 명사의 동사형인 '포르티조(Phortizo, 짐을 지우다)'의 완료형 수동태 분사로 쓰였습니다. 즉 정확한 의미는 '세상의 무거운 짐이 지워진 자들아', 혹은 '죄의 무거운 배낭을 걸치고 고통스럽게 끙깽거리는 자들아'라는 뜻입니다.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인생의 무거운 개인적 배낭(포르티온)을 지고 가느라 지치고 곤고한 죄인들을 향해 주님께서 자비롭게 초청하시는 대목입니다.
때로 우리가 각자 져야 하는 인생의 개인 배낭은 너무나 무겁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 힘겨운 학생이 있고, 몸이 연약하여 자기 인생의 작은 배낭 하나조차 지기 너무 힘겨운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면 주님은 우리 인생의 배낭(포르티온)을 아예 없애(면제해) 주시지는 않지만, 주님이 곁에서 함께 짊어지어 주시기 때문에 그 짐이 아주 가볍게 느껴지도록 역사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글인 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도 함께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여기에 '폐를 끼치다'라고 번역된 표현은 원어상 '누(짐)를 지우다', 즉 헬라어 '에피바레오(Epibareo)'라는 동사입니다. 이는 '공동으로 나누어 져야 할 짐'을 뜻하는 '바루스(바레)'에서 파생된 동사입니다. 바울은 마땅히 복음 사역자로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 져야 할 공동의 사역적·경제적 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생 교우들에게 조금도 영적·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천막 짓는 일을 하며 자급자족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도들에게 무거운 공동의 짐을 지우지 않으려 헌신한 것입니다. 쉬운 성경으로는 이를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동안 여러분 어느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라고 잘 표현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8절에서도 바울은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반복하여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철저히 자급 사역을 고수하며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복음의 순수성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복음 사역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영적 자세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에피바레오 하지 않으려는) 철저한 자기 비움이었습니다. 성도들이 기쁨으로 베푸는 대접과 환대는 감사히 받을 수 있겠지만, 복음을 전한다는 핑계로 밤낮으로 성도들에게 당연하듯 무거운 짐을 지우는 태도는 단호히 배격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처럼 두 가지 종류의 짐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각자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인생의 개인 배낭(포르티온)을 신실하게 지고 가야 합니다. 만약 그 개인의 배낭이 내 힘으로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울 때는, 절망하지 말고 기도로 주님 앞으로 그 배낭을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그 배낭을 가볍게 조절해 주십니다.
동시에 우리는 신앙 공동체와 사회 속에서 함께 연합하여 지기로 약속된 공동의 짐(바레)을 결코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사회 공동체가 올바르게 유지됩니다. 그것이 공적인 세금 의무이든, 공동체의 부역이든, 혹은 몸으로 헌신하는 육체적인 봉사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도와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활력 있게 살아나고, 그 공동체의 일원인 나 자신도 당연하고 안전하게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 나누어 져야 할 공동의 짐인 '바레(Burdens)'와, 각자 스스로 짊어져야 할 개인의 짐인 '포르티온(Load)'의 명확한 차이를 공부했습니다. "나는 내 배낭만 챙기면 그만이다, 교회의 다른 일이나 영적 과업은 나와 상관없다" 하고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신앙 태도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서로 아름답게 협력하여 공동의 짐을 나누어 지고, 나보다 더 무거운 고난의 짐을 지고 끙끙거리는 연약한 형제들의 짐을 내 일처럼 함께 나누어 짊어질 때, 성경은 우리가 비로소 '그리스도의 법'을 온전히 성취하게 된다고 선언합니다. 이처럼 서로 사랑으로 짐을 나누어 지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의 신실한 구성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56번째 성경 어휘 연구를 마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 정리
갈라디아서 6장에 나타난 두 가지 '짐'의 어원적 구별
바레 (Bare, 6:2): '바루스(Baros)'의 복수형으로, 혼자서는 들 수 없어 공동체가 서로 나누어 져야 하는 '무거운 공동의 짐들(Burdens)'을 뜻합니다. (예: 교회의 선교·구호 사역, 대청소, 형제의 슬픔과 고난 분담)
포르티온 (Phortion, 6:5):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고 개인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개인적인 책임과 의무의 짐(Load)'을 뜻합니다. (예: 개인의 배낭, 자녀의 학업, 개인의 신앙적 책무)
예수님의 초청과 사도 바울의 자급 사역적 용례
예수님의 초청 (마 11:28~30): "무거운 짐 진 자들아" 할 때의 짐은 '포르티온'의 동사형 완료 수동태 분사로, 인생의 무거운 개인 배낭을 지고 곤고해하는 죄인들을 뜻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개인 배낭(포르티온)을 곁에서 함께 멍에를 메어 주심으로 가볍게 조절해 주십니다.
바울의 자급 사역 (단전 2:9, 단후 3:8): 바울이 성도들에게 "폐(누)를 끼치지 않으려 밤낮 일했다"고 할 때의 폐는 '바레'에서 파생된 동사 '에피바레오(짐을 지우다)'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공동의 사역적·재정적 짐을 지우지 않으려 스스로 천막을 지으며 신실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바른 신앙적 의무와 자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마땅히 져야 할 개인의 짐(포르티온)을 성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동시에 교회의 일원으로서 예배, 심방, 대청소, 재난 구호 등 공동체의 짐(바레)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누어 져야 합니다. 나보다 무거운 고난을 겪는 연약한 형제들의 짐을 사랑으로 함께 나누어 짊어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법(사랑의 성취)'을 온전히 가문을 이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