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현, 『사찰의 비밀』, (서울: 담앤북스, 2014)
대부분의 종파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존으로 모셨다. 이런 경우 본존불은 당연히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고, 중심전각은 대웅전이 된다. 그러나 불교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외에도 아미타불이나 비로자나불 또는 미륵불과 같은 다양한 부처님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서 중심 전각에 모시는 본존불이 다르고 이와 함께 중심전각의 명칭도 변한다.
예컨대 경북 안동 부석사의 주불전은 무량수전이며 본존불은 아미타불이다. 또 경남 합천 해인사처럼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사찰의 주불전은 대적광전이며 본존불은 비로자나불이다. 이외에도 충북 보은 법주사나 전북 김제 금산사처럼 과거에 유가법상종에 속했던 사찰은 주불전이 미륵전이며 본존으로는 미륵불을 모셨다.
하지만 이런 특색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급격히 변한다. 왕실과 조정에 의해 불교 종파들이 강제로 선교 양종으로 통폐합되면서 종파의 색깔을 잃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대웅전 중심의 사찰 구조가 보편화된다. 104,5
삼성각에는 일반적으로 북극성을 불교적으로 표현한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독성과 산신이 모셔진다. 치성광여래를 그린 <치성광여래도>에는 북극성만이 아니라 북두칠성과 일월 그리고 남극노인성과 청룡, 주작, 백호, 현무의 사신 28수 등이 모셔진다. 즉 그 자체가 고대 별숭배의 종합판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삼성각은 전통적인 숭배대상을 모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신각이나 성황각처럼 외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각의 영역에 버젓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삼성각은 산신각이나 가람각처럼 작은 전각이 아니라 제법 규모가 큰 번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하늘을 찌를 듯한 이들의 인기를 결국 불교가 수용했기 때문이다. ..... 이로 인하여 삼성각은 대다수의 큰 사찰에는 모두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도 당당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민중의 지지를 잃어버리지 않은 신은 상황이 변해도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종교의 운명에 대해서 우리의 관점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14,5
주련柱聯은 영련楹聯이라고도 부른다. 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를 이르는 말이다. ... 그런데 사찰에서 흔히 만나는 이런 주련이 사실 불교문화는 아니다. 성리학자들은 스스로를 경계하는 글을 써서 거처의 한쪽에 붙여 두고 자신을 바루었는데, 이것을 잠箴이라고 한다. 156
이런 문화가 건물의 기둥으로까지 확대된 것이 바로 주련이다. .... 애초에 사찰은 주련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유교 건축이 네모기둥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사찰은 둥근기둥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무판 같은 것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 사찰 기둥에는 벽사와 신성한 의미를 내포하는 붉은색이 칠해져 있다. 그러므로 그 위에 나무판과 같은 것을 덧대는 것은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사찰의 위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붉은 칠이 되어 있는 경복궁을 봐도 주련과 같은 것은 살펴지지 않는다.
사찰에 유교의 주련 문화가 언제 들어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현존하는 사찰 주령늘 살펴볼 때 가장 연대기가 올라가는 것이 대원군의 글씨 정도라는 점에서 그리 오래된 문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 촬영된 <조선고적보도> 권12의 <조선시대 불사건축>에 수록되어 있는 사진을 보면, 사찰에 주련이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다시 말하면 최근까지도 사찰에는 주련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