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31] 광성보 - 인천/강화
동행: 바른생활/우상/해오름
해수탕에서 목욕재계 후 생선구이로 아점하고 눈 내리는 광성보를 산책했다.
강화도는 섬 자체가 역사박물관이란 느낌이 드는곳, 역사 속에 머물며 산책하기 감사한 섬이다.
★ 광성보
사적 제 227호.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여 흙과 돌을 쌓아 강화외성을 쌓았다. 광해군 때 이를 고쳐 쌓았고 효종 9년(1658)에 여기에 광성보를 만들었다. 숙종 때는 광성보 안에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의 소속 돈대가 완성되었다. 신미양요(1871)때 광성보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해병 450명으로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한 미군은 극동함대의 함포 지원사격을 받으며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조선군은 화력의 열세에도 끝까지 싸워 중군장 어재연과 그의 아우 어재순, 군관을 비롯한 49인의 장사와 200여명의 군사가 전사하였다. 이때 파괴된 누각과 성곽 등은 1976년 복원되었다. 현재 광성보에는 어재연 등 장수들의 용맹을 기린 쌍충비각과 무명 병사들의 무훈을 기린 무명용사비가 세워져 있다.
입장료: 1,500원/대인
까꿍~
빗질 잘해놨다
1679년에 축조된 돈대에 대포, 소포, 불랑기가 전시되어 있고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6년 강화 전적지 보수정화사업 때 복원되었다한다.
키가 큰 소나무숲길
1871년 신미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어재연 외 59명의 쌍충비. 신미양요(1871년 )때 미군이 10여 명의 사상자를 냈던 것에 비해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과 군졸이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우다 순국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무명용사비이다.
손돌목돈대
1866년의 병인양요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외국 함대들과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손돌목돈대
원형 손돌목돈대에서 초지대교와 김포의 덕포진까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용머리처럼 돌출한 용두돈대
강화 전적지 보수를 기념하기 위하여 1977년에 설치한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멈춘 듯한 장면이 펼쳐진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이토록 멋진 풍경이 숨겨져있는 가슴 아픈 격전지라 더 아름답다
★ 광성보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