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艮庵公(世鈺) 遺作
간암공 휘 세옥(世鈺·1689~1766)은 남해군수공 휘 동전(東峑)과 금성(錦城) 나씨(羅氏)의 아들로 1689년(己巳·肅宗15년) 서울 주자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백온(伯溫), 호는 도천(陶泉) 또는 간암(艮庵)이다. 그는 청학(靑鶴)이 어머니의 품으로 날아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태어난 주인공이다. 얼굴이 백옥처럼 빛나고 명석했으며, 중용(中庸)과 결단력까지 지닌 드문 인재였다. 문학·고금비적(秘籍)·복서(卜筮)·의학(醫學)·천문지리에도 정통했다.
공은 좋은 환경에서 수학했다. 친구 도암(陶庵·1678~1746)으로 보아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문하에서 수학한 것으로 보인다. 민대헌(閔大憲)과 민우수(閔遇洙) 등도 동문수학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부모를 여읜 후인 1721년(景宗 2·辛丑)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하향했다. 방촌에서 살다 초당으로 이사, 서재를「艮庵」이라 하고 경서를 읽으며 사약(社約)을 제정, 향촌교화에 힘쓰다 1766년(英祖 42년·丙戌) 77세로 타계했다.
공이 서울에서 살고 있을 때도 그랬지만 하향한 이듬해부터도 재해와 역병이 그치지 않았다. 거의 매년 가뭄이 들고, 해안지방에는 왜구(倭寇)까지 침입해 주민들의 재산을 수탈해 가고, 설상가상으로 도적까지 들끓어 백성들을 괴롭히는 등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여기다 이인좌(李麟左)의 난까지 겹쳐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굶어죽은 사람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렸고, 가족이 뿔뿔이 헤어지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사태가 계속됐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견문이 넓은 공은 무언가 현실을 극복해보고자 했다. 그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방관서에 요즘으로 보면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 재해의 피해가 너무 심하자 1734년 6조7실의 상소문을 왕에게 직접 올렸다. 영조는 승지에게 “근래 초야의 상소 가운데 위세봉(옥) 것이 나은 편이다”(영조실록 권37 1월 15일 壬辰條)며 관심을 나타내고, 비답을 내린바 있다.
상소문을 올린 이후에도 공은 당국에 일종의 정책건의서를 많이 올렸다. 그 중 平日·山日·金塘·折爾 등 사도설진(四島設鎭) 방략과 1752년(영조 28) 고금도관왕묘수호(古今島關王廟修護)를 위해 균역청에 상서문(上書文)을 제출했다. 그리고 1754년에는 대흥면방약성후상서(大興面坊約成後上書) 등 개인의 이익보다는 위국위민(爲國爲民)을 위해 남다른 활동을 했다. 공의 이런 활동은 국토의 극변인 장흥을 중앙에 인식하게 했다.
특히 공은 벽촌 장흥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 출세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유학을 주선한 점이다. 존재공(存齋公)을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의 문하로 주선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또 다른 친구 도암(陶庵) 이재(李縡)에게 위도원(魏道源)·위상언(魏相彦)·위영찬(魏榮纘)을 지도해 주도록 주선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공은 후손들을 중앙의 명망 있는 선비의 제자로 입문하게 해서 입신양명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지역주민이나 후손들은 공이 지역과 문중을 위해 헌신한 공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 묘소는 처연하고 해마다 한 번씩 치르는 시제는 초라하고 가엾기까지 하다. 생전에 공의 나라와 지역사회 그리고 후손의 영달을 위한 헌신적 봉사를 아예 대단찮은 것으로 치부한 결과리라. 공은 수성 최씨 사이에 1남 4녀, 밀양박씨와 사이에 2남을 두었다. 영조실록의 「위세봉(魏世鳳)」은 세옥(世鈺)의 오기(誤記)임이 분명하다.
■ 壬癸歎 (임계탄)
임계탄은 가사작품이다. 1732년과 1733년, 임자(壬子)와 계축(癸丑)년의 장흥 관산과 대흥(大德) 등 해안지방주민들의 참상을 쓴 가사(歌辭)이다. 이 가사를 발굴한 이는 성균관대 임형택(林熒澤)교수이다. 임교수는 문제의 임계탄 가사는 장흥군 관산의 선비가 쓴 작품임은 확실하나 저자를 알 수 없다며 영이재공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이 가사는 간암공의 작품임이 거의 확실하다. 아직 학계의 고증(考證)을 받지 못해 다소 성급한 면이 없지 않지만 간암공의 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상소문과 함께 여기서 소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임계탄의 내용으로 미루어 간암공이 1734년에 영조(英祖)에게 올린 상소문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다는 때문이다.
가사의 내용은 조정의 관료들을 질타하고 있다. 임계탄과 상소문에서 왕까지도 신랄하게 꾸짖고 있다. 이런 표현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최악의 경우 사약까지 받을 각오가 아니면 결행하기 어렵다. 죽음까지 각오하고 상소문을 올리는 용기와 배짱을 가질 수 있는 주인공은 유고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간암공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編輯者 註)
壬子癸丑 無前凶年 介介히 이로이라 / 임자계축① 무전흉년 개개히 이로이라②
듯고보는 이景色을 三尺童도 알건마는 / 듣고 보는 이 경색을 삼척동도 알건마는
刻骨한 이시졀을 銘心하야 닛지말자 / 각골한 이 시절을 명심하여 잊지말게
無識한 眞諺文을 才助업시 매와내니 / 무식한 진언문을 재조없이 매와내니
句法은 보쟌하고 時不見만 젹어다가 / 구법은 보잔하고 시불견③만 적어다가
슬프다 百姓드라 이내말 드러스라 / 長安 大道市예 붙이로다 백성(百姓)들아
가업는 이時節을 無興하나 보아스라 / 가 없는 이 시절을 무흥하나 보아스라
슬프다 古老人아 일언時節 보안느냐 / 슬프다 고노인아 이런 시절 보았느냐
이時節 만난百姓 네오내오 다를손냐 / 이 시절 만난 백성 네오 내오 다를 소냐
無罪한 이百姓이 無遺히 다죽거나 / 무죄한 이 백성이 무유(無遺)히 다 죽거나
이世上 나온듯은 三代興 만나거나 / 이 세상 나온 뜻은 삼대흥④ 만나거나
百歲를 살작시면 道不拾遺 보옵고저 / 백세를 살작시면 도불습유⑤ 보옵고저
太平乾坤 無事時를 긔뉘아니 원할넌고 / 태평건곤 무사시를 그 뉘 아니 원할런고
天地 삼긴후의 古今歷代 생각하니 / 천지 삼긴 후의 고금역대 생각하니
治亂興亡 다바라고 豊凶歲만 니르잔들 / 치란흥망 다 바리고 풍흉세만 이르잔들
古跡의 누니업서 記述할말 업거니와 / 고적의 눈이 없어 기술할 말 없거니와
兩岐麥穗 못바시니 一莖九穗 언제일고 / 양기맥수⑥ 못 봤으니 일경구수⑦ 언제일고
九年水(8) 支離하나 凶荒歲 되랴하면 / 구년수⑧ 지리하나 흉황세 되랴하면
塗山의 뫼혼諸侯 玉帛을 자바시며 / 도산의 뫼혼 제후 옥백을 잡아시며⑨
七年旱 異甚하나 殺年니 되랴하면 / 칠년한⑩ 이심하나 살년⑪이 되랴하면
桑林禱 六事責의 數千里 大雨할가 / 상림도 육사책⑫의 수천리 대우할가
녜날의 天災地變 史冊의 실녀시니 / 옛날의 천재지변 사책의 실렸으니
泛然히 지나보고 等閑히 혜엿더니 / 범연히 지나보고 등한히 혜였더니
人相食 이말씀은 오늘날 解惑하나 / 인상식 이 말씀은 오늘날 해혹하나⑬
아모리 혜어바도 이時節 비할넌가 / 아무리 혜어봐도 이 시절의 비할넌가
病아닌 病乙알코 杜門不出 안자시니 / 병 아닌 병을 앓고 두문불출 앉았으니
時序은 때올아나 春陽조차 길게한다 / 시서는 때를 알아 춘양조차 길게 한다
이리혜고 저리혜니 살라날길 전히업네 / 이리 혜고 저리 혜니 살아날 길 전혀 없네
실시한 이丈夫여 慷慨는 어디간고 / 실시한 이 장주여 강개는 어디 간고
塵埋한 三尺劍을 强忍하여 빼여잡고 / 진매한 삼척검을 강인하여 빼어 잡고⑭
泰山第一峯의 寸寸이 쉬여올라 / 태산 제일봉의 촌촌이 쉬어 올라
天下을 聘目하며 歎息하고 領略하니 / 천하를 빙목탄식하고 영략하니⑮
十二諸國 東一隅의 우리 朝鮮偏小하다 / 12제국⑯ 동 일우의 우리 조선 편소하다
우리나랏 八道中의 하삼남 더욱죠타 / 우리나라 팔도중의 하삼남⑰ 더욱 좋다
□□□ 죠커니와 □□□節 사치한다 / □□□ 좋거니와 □□□절 사치한다
五十三州 湖南道의 長興은 海邑이라 / 오십삼주 호남도의 장흥은 해읍이라
地出도 크거니와 山海珍味 갖졸시고 / 지출도 크거니와 산해진미 갖출시고
冠山 삼긴후의 樂土라 有名터니 / 관산⑱ 삼긴 후의 낙토라 유명터니
□□이 否塞하고 時運이 罔極하야 / □□이 비색하고 시운이 망극하야
連値 大殺年의 가지록 慘酷하다 / 연치 대살년의 갈수록 참혹하다
萬古에 이런詩節 듯기도 처암이요 / 만고에 이런 시절 듣기도 처음이요
生來에 이런詩節 보기도 처음이라 / 생래에 이런 시절 보기도 처음이라
슬프다 四海蒼生 自家의 罪惡인가 / 슬프다 사해창생 자가의 죄악인가
우흐로 父母同生 아래로 妻子息이 / 위로 부모동생 아래로 처자식이
一時의 둑게되니 이아니 罔極한가 / 일시에 죽게 되니 이 아니 망극한가
曾前의 지낸凶年 歷歷히 헤어보니 / 증전⑲의 지낸 흉년 역력히 헤어보니
乙亥 丙子 凶年 癸丑 甲午 凶年 / 을해⑳ 병자① 흉년 계사② 갑오③ 흉년
慘酷하다 하려니와 이대지 滋甚한가 / 참혹하다 하려니와 이다지 자심한가
그례도 머긴 따히 곳곳이 나마 잇고 / 그래도 머긴④ 땅이 곳곳에 남아 있고
조련한 □凶年은 陳谷도 있거니와 / 조련한⑤ □흉년은 진곡(陳穀)⑥도 있거니와
移粟이 넉넉하니 賑財들 업슬넌가 / 이속이 넉넉하니 진재⑦인들 없을런가
그 나문 許多 凶年 無數히 經歷하니 / 그 남은 허다 흉년 무수히 경력하니
千萬古 以來로 이時節 처엄이다 / 천만고 이래로 이 시절 처음이다.
乙亥水 丙辰旱은 새발의 피랏닷다 / 을해수 병진한⑧은 새발의 피랏닷다⑨
癸酉年 戊戌農形 免凶을 계유하니 / 계유년⑩ 무술⑪ 농형 면흉을 겨우 하니
그로사 豊年이라 別虛費 업슬넌가 / 그로사⑫ 풍년이라 별허비 없을런가
朝廷 大議하야 榻前의 定頉하고 / 조정 대의하야 탑전의 정탈⑬하고
各道의 行關하야 量田으로 作亂하니 / 각도의 행관하야 양전⑭으로 작난하니
己亥年 庚子年을 亂離로 지내여다 / 기해년⑮ 경자년⑯을 난리로 지내여다
그밧긔 남은 凶年 乙丙丁 지낸후의 / 그 밖의 남은 흉년 을․병․정 지낸 후의
疊疊한 公私債는 뫼같이 싸혀닛고 / 첩첩한 공사채는 뫼같이 쌓여 있고
汨汨한 憂患疾病 물같이 깁퍼도다 / 골골한 우환질병 물 같이 깊었도다
十生九死 이百姓이 그리져리 사라나서 / 십생구시 이 백성이 그리저리 살아나서
歎하느니 흉년이요 願하니 逸民이라 / 탄하느니 흉년이오 원하느니 일민이라
大旱 陽春 못보와셔 辛亥還甲 만나도다 / 대한양춘 못 보아서 신해환갑 만났도다
砂哨佹 險한時節 이辛亥 便할소냐 / 옛 신해 험한 시절 이 신해에 편할소냐
人言이 이러하니 疑慮들 업슬넌가 / 인언이 이러하니 의려인들 없을넌가
祝融이 南來하야 火龍을 채질하니 / 축룡이 남래하야 화룡⑰을 채질하니
旱魃이 肆惡하니 乾坤이 紅爐로다 / 한발이 사악하니 건곤이 홍로로다
山原이 불리나니 田野 다타거다 / 산원의 불이 나니 전야 다 타거다
赤地 千里하니 惶怯이 절로난다 / 적지 천리하니 황겁이 절로 난다
時雨를 못어드니 移秧을 어이하리 / 시우를 못 얻으니 이양 어이 하리
不違農時 이말씀 人力으로 못하리라 / 불위농시⑱ 이 말씀 인력으로 못하리라
六月望 오는비는 鳴呼晩兮 그러나마 / 유월망⑲ 오는 비는 오호만의 그러나마
제판의 패게된모 옴겨두고 試驗하세 / 제판의 패개된 모⑳ 옮겨 두고 시험하세
南村 北村 사람 時刻을 쟁선하다 / 남촌 북촌 사람 시각을 쟁선(爭先)한다
슬프다 農民드라 이畢役 못하야서 / 슬프다 농민들아 필역① 못 하야서
獰惡코 凶한風波 被害도 慘酷하다 / 영악코 흉한 풍파 피해도 참혹하다
곳곳지 남은田地 낫낫치 섯는禾穀 / 곳곳이 남은 전지 낱낱이 섯는 화곡②
이後나 무病하면 生道를 보라더니 / 이 후나 무병하면 생도를 보라더니
놀납다 滅吳虫이 四野의 니단말가 / 놀랍다 멸오충③이 사야이단 말가
엊그제 푸른들이 白地純色 되거고나 / 엊그제 푸른 들이 백지순색 되겠구나
江東의 安石旆을 다시조차 나라온가 / 강동의 안석패④을 다시 좇아 날아 온가
千載人無魯恭하니 뉘라서 消灾할고 / 천재인무노공⑤ 하니 뉘라서 소재할꼬
이朝夕 難繼하니 後生涯 보랄소냐 / 이 조석 난계하니 후생애에 보랄소냐
秋糴乙 펴여시들 져徭役 뉘當糖滃 / 추적을 펴여신들 저 요역⑥ 뉘 당하리
□□이 極嚴하니 □□道 어렵도다 / □□이 극엄하니 □□道 어렵도다
自然이 離散하니 村落이 가이업다 / 자연이 이산하니 촌락이 가이 없다
辛亥冬 남은百姓 壬子春 만나고야 / 신해동 남은 배성 임자 춘 만났구나
□□다 饑民드라 賑恤 奇別 들어슨다 / □□다 기민들아 진휼기별 들었는가
當初에 뫃흔谷石 精備하야 바다더니 / 당초에 뫼흔 곡석 정비하야 받았더니
賑恤廳 모든쥐가 各倉의 궁글뚫고 / 진휼청⑦ 모든 쥐가 각 창의 구멍 뚫고
晝夜로 나들면서 섬섬이 까먹언네 / 주야로 나들면서 섬섬이 까먹었네
이번의 타낸乞粮 空穀으로 의포하예 / 이번의 타낸 걸량 공곡으로 의포하네
糴糶맛튼 져斗升아 너조차 무슴일로 / 적조⑧ 맡은 저 두승아 너조차 무슨 일로
孔輸子 밍근信을 鐵木으로 삼겻거늘 / 공수자 만든 신⑨ 철목으로 삼겼거늘
無端이 換面하고 憑公營私 하나슨다 / 무단이 환면하고 빙공영사⑩ 하나슨다
엊그제 寬洪量이 奸貪코 狹隘하다 / 엊그제 관홍량⑪이 간탐코 협애하다
變世은 變世로다 사름이 거북되여 / 변세는 변세로다 사람이 거북 되어
賑倉의 들어안자 모든쥐을 사피더니 / 진창의 들어앉아 모든 쥐를 살피더니
本性이 鼠狀이라 못참내 어이되어 / 본성이 서상이라 마침내 어이 되어
倉中 賑穀米을 다주어 무러가라 / 창중 진곡미를 다 주어 물러가다
녁코닢풀 굴을삼고 暮夜의 藏置하니 / 녁코⑫ 잎을 굴을 삼고 모야의 장치하니
碩鼠歌 일러난들 狡穴餘腐 뉘이시리 / 석서가⑬ 일어난들 교혈여부 뉘 있으리
① 임자계(壬子癸丑): 1732(영조 8)~1733(영조 9)
② 이로이다: 이르리다(謂)의 뜻으로 보임.
③ 句法: ~시불견(時不見)만: 문맥으로 미루어 문장의 구성은 따지지 않고 시대상의 눈으로 차마 보지 못한 정경을 기록한다는 뜻으로 풀이됨.
④ 三代興: 하·은·주 3대의 일어남. 즉 태평시대를 만나고 싶었다는 뜻.
⑤ 道不拾遺: 길에 떨어진 물건이 있어도 줍지 않는다. 정치를 잘해 인심이 순후한 상태를 이른다.
⑥ 兩岐麥穗: 보리에 이삭이 둘씩 생겨나는 풍년을 지칭.
⑦ 一莖九穗: 한 줄기에 구홉 개의 이삭이 달린 벼. 상서로운 징조를 나타냄.
⑧ 九年數: 요임금 시대 9년 동안 홍수가 있었다는 전설이 있음. 이때 禹가 치수함.
⑨ 塗山의 ~잡이시며: 우왕시대 도산에 제후들이 모였는데 옥백 같은 조공물을 바치러 온 나라가 만국에 이르렀다 함. 도산은 중국 안휘성 회원현 동난 회하동 안에 있다.
⑩ 七年旱: 은나라 탕왕시대 7년 가뭄이 들자 왕이 몸소 기도하자 큰 비가 내렸다 함.
⑪ 殺年: 흉년이 심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
⑫ 桑林禱 六事責: 은나라 탕왕이 상림에서 비를 빌 적에 여섯 가지 일을 들어 스스로 책임을 물었다는 고사 즉 징세·노역·사치·시기·뇌물·참소 등.
⑬ 人相食~解惑: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는 글을 보고 그럴 수 있을까 의심했는데 그 의문이 이제 풀렸다는 뜻.
⑭ 진매한 빼어 잡고: 먼지 앉은 3척의 칼을 잡고 기어이 뽑아들고.
⑮ 聘目, 領略: 빙목은 눈을 돌려 봄. 영략은 대강을 헤아림.
⑯ 12제국: 동방에 있는 12개 나라. 중국 전국시대의 상황에서 유래함.
⑰ 하삼남: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총칭.
⑱ 冠山: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⑲ 曾前: 일찍이 지나간 적, 曾往.
⑳ 乙亥: 1695년(숙종 22) 숙종실록 4월 1일 이 해에 큰 가뭄이 들었다. 거센 바람이 연이어 불고 서리가 여러 번 내려 보리와 밀이 여물지 않았으며, 파종시기를 놓쳐 큰 흉년이 들었다고 기록 되어 있음.
① 丙子: 1696년(숙종 22) 숙종실록 7월 1일 ‘이 해 가을에 큰 흉년이 들었다. 재해는 빠진 것이 없었으며 또 해손(蟹損)으로 게가 전야(田野)에 편만(遍滿)하여 싹을 끊어버려 곡식이 자라지 못했다. 고금에 듣지 못한 재앙’이라는 기사가 보임.
② 계사(癸巳): 숙종 39년(1713), ‘숙종실록’ 10월 4일 ‘국가가 불행하여 팔도에 흉년이 들었는데 양호(兩湖)와 기전(畿甸)이 더욱 심해 아픔이 내 몸에 있는 것 같아 금의(錦衣)와 옥식(玉食)도 편안치 못하였다’며 백성들은 이산하지 말 것이요, 수령들은 백성의 진휼에 각별히 힘쓸 것을 하교하고 있음.
③ 갑오(甲午): 숙종 40년(1714), ‘숙종실록’ 7월 21일조에 전국 각지에 천재지변이 일어났으며 특히 ‘제주에는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모두 소와 말을 잡아먹었으며, 심한 가뭄으로 소와 말이 목이 타 죽었다’는 기사가 보임.
④ 머긴: 먹게 된, 즉 농사의 소출이 있었던 땅.
⑤ 조련: 만만한 정도로 헐하거나 쉬운.
⑥ 진곡(陳穀): 묵은 곡식.
⑦ 이속(移粟)·진재(賑財): 이속은 다른 지역의 양곡을 이관하는 것, 진재는 구휼에 쓰기 위한 재물.
⑧ 을해수(乙亥水)·병진한(丙辰旱): 을해년의 홍수와 병진년의 가뭄. 을해는 숙종 21년(1695), 병진은 숙종 2년(1676). ‘숙종실록’ 1676년 2월 3일조에 보면 왕은 ‘넓은 하늘 밑은 왕의 땅이 아님이 없고, 신하가 아님이 없다. 팔도가 흉년이 든 것은 예전 에 없던 바인데, 그 가운데 관서(關西)·해서(海西)·기전(畿甸)은 더욱 심하다’며 백성의 구제책을 당부한 기록이 보임.
⑨ 새발의 피랏닷다: 새발의 피라고 하더구나
⑩ 정유(丁酉): 숙종 43년(1717)
⑪ 무술(戊戌): 숙종 44년(1718)
⑫ 그로사: 그제야
⑬ 탑전의 정탈(定奪)학: 임금의 결재를 얻음.
⑭ 행관(行關)·양전(量田): 행관은 공문을 하달하는 것, 양전은 조정이 경작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토지를 측량하는 일. 양전의 과정에서 허다한 폐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여기서 ‘양전으로 전락하니’라고 표현한 것임.
⑮ 기해(己亥) 숙종 45년(1719)
⑯ 경자(庚子): 숙종 46년(1720)
⑰ 축융(祝融)·화룡(火龍): 축융은 불을 맡은 신, 화룡은 불을 등에 진 용을 가리킴.
⑱ 불위농시: 농사의 적기를 어기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 뜻. 맹자가 통치자에게 당부한 말이다.(孟子·梁惠王)
⑲ 유월망: 음력 유월 보름.
⑳ 제판의 패게 된 모: 모판에서 미쳐 이앙을 하지 못해 너무 자라 벼이삭이 나올 지경이 된 모. 이렇게 된 모는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이앙을 해보라고 한 것임.
① 필역(畢役): 어떤 일을 마치는 것.
② 화곡(禾穀): 벼 종류를 통틀어 일컫는 말.
③ 멸오충(滅吳虫): 별멸구, 매미목 등 멸구과에 속하는 곤충의 총칭.
④ 안석패(安石旆):
⑤ 천재인무노공: 천년에 노공 같은 사람이 없다. 노공은 후한시대 지방관으로 선정을 베푼 사실이 유명하다. 그가 중모(中牟) 지방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덕화로 다스렀던바 다른 고을에는 황충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중모는 황충이 들어오지 않았다.
⑥ 요역: 정남(丁男)에게 부과된 역의 하나로 1년 중 일정기간 각종 공사 동원됨.
⑦ 진휼청: 흉년에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을 맡은 관아. 현종 2년(1657) 비변사의 소관이다 숙존 12년(1686) 선혜청으로 이관됨.
⑧ 적조: 곡식의 매매와 출납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환곡을 뜻함.
⑨ 공수자의 신: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의 인물로 수교가 빼어나서 기계제작으로 유명하다. 공수(公輸)는 성이고 이름은 반(盤) 혹은 반(般)이며 신(信)은 부신(符信)을 가리킴.
⑩ 빙공영사(憑公營私): 공적인 일임을 빙자해서 사리를 도모하는 것.
⑪ 관홍량: 넓은 도량
⑫ 녁코: 여뀌. 물가에 자라는 풀의 일종.
⑬ 석서가(石鼠歌): ‘시경’ ‘魏風’에 있는 석서를 가리킴. 이는 큰 쥐가 창고의 곡식을 먹어치우는 정경을 그린 노래. 부세가 무거움을 풍자한 내용이라 함. 교혈여부는 간교한 짐승의 굴속에 남은 곡식을 뜻하는 말.
◊ 가뭄과 전염병의 참상을 적은 임계탄

첫댓글 글짜가 깨진 것이 있어 추후 보강 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