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의 완성은 웰다잉(well dying)
우리 인생은 이 세상에서 다 잘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잘 죽기를 바란다.
노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역시 건강하게 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편안히 잘 죽는 것이다.
통계청이 올해 3월 100세 이상인 961명 중 796명을 직접 만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편안히 빨리 죽는 것'(23.8%)이었다. 자손 잘되기(21.8%)와 건강회복(16.8%)은 그 뒤를 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도 자기가 죽으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자살로 인해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를 모른다.
고령화 사회에선 노년기가 길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연장되지만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편안히 잘 죽는 법인 '웰다잉(well dying)'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웰다잉'이란 인생의 마무리를 밝고 아름다우며 품위 있게 한다는 의미다.
권력자나 평민이나 모든 사람은 죽음에 대하여 죽음이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다.
좋은 죽음을 맞으려고 준비한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시황은 제나라 사람 서시(徐市·서복[徐福]이라고도 한다) 등의 상서(上書)에 따라 바다 가운데 신선(神仙)을 찾으러 수천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보냈다.
원래의 목적은 불로초(不老草)를 찾기 위한 것인데 우리나라까지 왔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는 현세의 권력으로 불사(不死)하려는 몸부림이다.
공자는 '논어(論語)' 이인(里仁) 편에 "아침에 도를 듣고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고 했다.
가장 현실적인 유학이 가장 현실 초월적인 사생관을 갖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일본의 의사인 야마자키 후미오씨는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현실에서 병원은 죽음을 맞이하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라고 한다.
그는 16년 동안 1만명 넘는 환자를 진료하고 300명 가까운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고 "내가 만약 불치병에 걸려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면 마지막 순간을 절대 병원에서 보내지 않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튜브로 호흡을 하고 수액과 진정제를 투여 받으며 자신의 의사표시도 못한 채 극심한 고통 속에 연명하다가 눈을 감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례다.
내가 아는 40대 말기 암 환자가 있다.
이 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자 각종 약물과 치료에서 벗어나 마지막 몇 주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한다.
그는 인생을 차분히 정리하면서 담담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엔 그는 함께한 가족들에게 진지하게 말을 한다.
"지난 1주일이 지금까지 살아온 40여년보다 훨씬 소중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웰빙만큼이나 웰다잉이 중요하다.
일본의 대표적 장수 지역인 나가노현에는 '핑핑 코로리'라는 말이 있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팽팽하게 살다가 덜컥 죽음을 맞이하는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을 요약하는 말이다. 장수가 의미 있으려면 단순히 수명만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활기차게 살고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모든 인간은 잘 살고 싶어한다.
동시에 좋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진정 웰 다잉(well dying)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편안하게 잘 지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참된 웰 다잉(well dying)은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를 확신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