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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욱환여행매니아
 
 
 
카페 게시글
국내여행3 (소요유산답사회)안동 권태사 신도비.권태사 능동재사.장흥효고택.학봉 김성일생가4
여행매니아 추천 0 조회 335 18.02.02 09:59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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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2.02 15:45

    첫댓글 안동권씨, 장씨의 고택들을 소요유적 답사 때 둘러 보았구나. 난 이곳에 가보질 못해 구경 잘 하였네. ' 말법집이 특이하도다.

  • 작성자 18.02.02 17:09

    안동은 역시 학봉 김성일선생의 문화재가 상당히 많았다네~특히
    파락호로 이름이 높던 김용환은
    전답과 집을 팔아 독립자금을 대기위해 위장을 했다고 한다.학봉의 후손들이 독립을 위해 많은 힘을 써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대단했음을 알았다네~

  • 18.02.02 22:20

    TV에서도 이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네. 훌륭한 분들이지

  • 작성자 18.02.03 08:24

    학봉은 후손들에 의해 더욱 빛이 난 듯하네~물론 퇴계의 최고 수제자는 분명하지만 임란보고로
    우리에게는 좀 다소 거부감이 있었지~~

  • 18.02.03 23:03

    그 당시 정세 판단을 잘 못한 건 다른 쪽과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겠군

  • 작성자 18.02.04 22:22

    해설사 왈 황윤길은 직접 다니면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김성일은 정세파악을 못하도록
    출입의 제한을 두었다는 말을
    들었다네~학봉후손의 변명인지는 좀 의심스럽지만 그러나 학봉의 후손들은 청사에 남을 독립운동으로 이 나라를 빛낸분들이 아니신가~높이 평가
    해도 남음이 없다는 생각이든다.

  • 18.02.04 17:04

    학본 종택은 8-9년 정에 오천마을 갔을 때 함께 갔었는데 그 때 종택 사람들이 차와 떡을 대접하는 예절이 남다르더구나.
    김성일의 오판이 흠이 있지만 그 후 임란에 임한 자세는 그 흠을 덮을 정도로 최선을 다 한 것 같구나.
    "제2차 진주성 전투가 임박하자 김성일은 김해 부사 출신의 서예원을 진주 목사로 임명하고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의 의병들을 불러 모으는 등 일전에 대비했다. 그러던 4월 29일, 그가 진중에서 전염병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유성룡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분이 싸우다가 죽었더라면 더 멋진 삶이었을텐데...

  • 작성자 18.02.04 17:59

    송암 이로의 용사일기를 보면 1차 진주성전투에는 지략이 있는 김시민이 활약을 해서 승리를 거두었지만,2차전투에는 전략도 없는 서예원을 임명한 탓으로 몰살하다시피 했지...진주성혈전이 되어버렸지...지도자의 무지함이 여실이 나타났던 전투였다네...물론 의견이 하나로 투합되지 못했던 것도 패전의 원인이겠지만...

  • 18.02.11 13:24

    아픈 역사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미래를 대비하는 마음을 가저야 되겠어요⚘

  • 18.02.11 13:28

    @박광길 안동 권씨가 경주 김씨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네요 ㅋㅋ

  • 작성자 18.02.13 19:37

    @박광길 학봉과 임진왜란을 보면서 항상 대비하는 자세로 나라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댓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 18.02.13 19:42

    원래 김행이였지요~55대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견훤의 습격으로 죽음을 당했으니 고창(옛안동)전투에서 왕건편을 들었겠지요~왕건을 도운 3명
    (삼태사)은 정말 충절로
    고려를 도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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