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신학자 터툴리안(155년~240년경)은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하면 한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당신은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라고 했습니다.
1. 찬송을 불러야 하는 이유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시 119:164절을 보면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인이 하루 일곱 번씩 찬양했다는 의미는 아침점심저녁에 찬양, 지치고 힘들때 찬양, 괴로울 때 찬양, 감사할 때 찬양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338장)라고 노래하듯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늘 찬송하며 주께 나아가기 바랍니다.
2. 찬송 부를 때의 자세와 결과
첫째, 마음을 다해 불러라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시 86:12).
“전심으로”란 “마음을 다해서”라는 뜻입니다. 시인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송한 이유는 13절 있습니다.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시인이 원수로 인해 죽음의 위험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크신 인자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일로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우리도 영원히 지옥에서 살아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구속하셔서 천국에서 살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주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노래 실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박자가 맞지 않아도, 목소리가 아름답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마음으로 부르는 찬송을 기뻐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노래 가사대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불러라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를 부른다면 주님의 기쁨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을 부른다면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부르는 찬송을 받으십니다.
셋째, 찬송 부를 때 문제가 해결된다
시편 71편은 표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지은 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용에서 다윗의 시로 보고 있습니다.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게 하소서”(4절)라는 기도에서 ‘악인’을 압살롬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절에 보면 “내 영혼을 엿보는 자들이 서로 꾀하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불의한 자들이 시인을 죽이기 위해 서로 단결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시 71:14)라고 했습니다. 6절에는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8절에는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22-23절에는 원수가 죽이겠다고 서로 꾀하는 와중에 시인은 기뻐 외치며 주를 찬송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열망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시 71:22-23).
시 98:4절을 보면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4)라고 했습니다. 시 149:3절에도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시 149:3)라고 했습니다. 5절에는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지음 받은 자는 “침상(병상)”에서도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불러야 합니다.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와 같은 비통하고 애통한 찬양을 부르는 이들이 있지만 좋지 않습니다. 슬픔과 어두움에 더욱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일수록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슬픈 마음 있는 사람” “난 예수가 좋다오”와 같은 소망 넘치는 찬송이 좋습니다. 찬송 중에 임하시는 주님께 손뼉치며 기쁘게 찬양할 때 어둠의 권세가 떠나기 때문입니다.
넷째, 영적 전쟁의 승리를 위해(대하 20장).
유다 땅에 모압암몬마온 연합군이 쳐들어왔습니다. 다급해진 유다 왕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그러자 하나님이 선지자 야하시엘을 보내 유다가 승리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에 여호사밧이 노래하는 자들을 택해 군대 앞에 세우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행진하게 했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대하 20:21). 그러자 하나님이 복병(伏兵)을 두어 적을 치게 해 연합군은 여호사밧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여호사밧이 적을 대적할 능력도, 어떻게 할 줄도 모르겠다고 했지만 대하 17:13절 이하를 보면 여호사밧에게는 강력한 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노래하는 자들을 택해 군대 앞에 세우고 하나님을 찬양하자 천사(복병)를 동원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목사장로권사집사를 찾아가 삼키려하고 있습니다. 가정직장학교에까지도 찾아가 사람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도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기도하지 못하도록 졸음잡념근심걱정을 사람 생각속에 넣어주는 것도 마귀의 술책입니다.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493장)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예수 피'에 원수 마귀를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혈 찬송의 능력으로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원수 마귀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하십니다. 특히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268장)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예수님의 보혈은 원수 마귀를 물리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가 만지지도 못하도록 보혈의 능력을 찬송해야 합니다.
삶에서 오는 문제, 가정과 직장에서 인간관계로 인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찬송 생활의 권능’의 저자 멀린. R. 캐로더스는 문제 해결의 권능이 찬송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라는 말씀처럼 문제 해결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찬송 가운데 임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시 71:14)라고 다짐한 것처럼 여러분도 더욱더욱 기도하고, 더욱더욱 주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주야로기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