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스웨덴에서 자신의 문학에 대한 강연을 했습니다. 그 강연들 중 <작별하지 않는다> 부분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소원책담에서 다섯번째 오늘의 한강으로 진행되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지난 주 읽었습니다. ㅇㄱ샘이 보내준 관련 논문도 함께 읽고 논제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읽는 동안 참 힘든 소설이었습니다. 1부에서는 인선 손가락의 고통이 현재형으로 다가와서 힘들었고, 2부에서는 인선과 경하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제주 학살의 시간이 생각나서 힘들었고, 3부에서는 학살에서 살아 남았지만 사랑하는 오빠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음 어머니 정심의 모습이 어른거려 힘들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이 소설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건 비단 논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 그들의 작별이 어떻게 이야기 되는 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1부에서 경하의 모습을 보면서 작가 한강이 오버랩 되었는 데 연설문을 듣다 보니 제 생각이 맞더군요. 쓰는 고통이 그토록 큰 데도 쓰게 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20대 중반 작가는 자신의 일기장 앞에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라고 적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던 중 보게 된 김용준의 일기를 통해 이 질문을 바꾸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것이 그녀가 글을 계속 쓰는 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 소설 속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녀가 자신의 소설로 저 아래 한 줌 흙으로 잊혀진 누군가를 기억하며 손을 내밀었듯이 말이에요.
한강 소설을 연이어 읽다보면서 느끼는 건 작가가 우리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삶에 대해서, 생로병사에 대해서, 희노애락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변에 한강 소설을 읽는 분들이 여럿인데 읽으면서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강 책을 처음 접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 어렵다는 말씀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은 꼭 함께 읽기를 권해 드립니다.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통해 해소를 하시면 책을 읽고 남겨져 있던 고통이나 슬픔을 떨쳐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