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선사가 1904년 이른 봄 천장암을 떠나 홀연히 삼수갑산으로 잠적하시니 세상은 온갖 추측이 난무하여 급기야는 망극하게도 선사의 은둔을 환속으로까지 몰고 가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나 경허 선사가 북쪽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123년이 지난 2017년 5월에 경허 선사의 탄생지를 찾는 과정에서 정말로 우연히 그 비밀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동학농민 녹두장군 전봉준 때문이었다. 그것은 매부인 전봉준 장군을 뒤에서 도와주며 동학농민운동을 독려하였던 바 경허 선사의 운명은 전봉준 장군과 함께 하였던 것이다.
1894년 전봉준장군의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경허 선사는 하루아침에 삼족을 멸하는 역적의 반열에서 일본 경찰에 쫒기는 신세가 되어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없어 은신하였음에도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급기야 경허 선사는 삼수갑산을 향해 떠나가고 말았다. 그 슬픈 비화는 바로 전봉준장군의 부인이 경허 선사의 여동생으로 1873년 그들은 서로 혼인을 맺으니 경허 선사와 전봉준 장군은 세속의 처남 매부의 인연관계를 이루게 되었고 경허 선사는 한국 선불교 중흥의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모든 걸 한 순간에 접고 북성으로 떠나셨다.
지난해 우연히 경허 선사와 전봉준 장군과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경허 선사가 삼수갑산으로 간 까닭을 알게 되니 그것은 바로 경허 선사가 남기신 265수 가운데에서도 이 사연을 찾을 수 있었고 특히 북녘에서 남기신 149수 가운데 거의 다가 경허 선사가 전봉준 장군과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알리고 있었지만 우리 후학들은 아무도 그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오해만 하였던 것이다. 이미 경허 선사와 북쪽을 오가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몇 몇 스님들조차도 모두 함구하여 모두 다 열반하시니 오늘날까지도 그 비밀은 풀 수 없었던 것이다.
출처 : 한국불교학회 학술발표논문집 2018권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