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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씨족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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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본)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원산 위정철 [본문내용- '간암공의 상소문' 마지막 편⑤]
야운처사 위이환 추천 0 조회 13 23.07.23 08:56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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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7.23 08:56

    첫댓글 (144-051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51일차에는 '간암공(위세옥)의 상소문(上疏文)' 마지막 부분이 밴드에 게재됩니다.

    ※ 주1) 읽는 이의 편의를 위하여 게재자가 일부 내용에 음을 달거나 단락을 나누었습니다.

    ※ 주2) 52일차에는 '임계탄의 저자는 누구인가?'가 계속 이어집니다./ 무곡

  • 작성자 23.07.23 08:57

    간암공은 상소문 마지막 여섯번째 주제로 호남인재의 수용을 강력하게 건의하는 등 인재의 배양에 대하여 그 중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임금에게 직접 상소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목숨을 내놓고 하지 않는 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 진가가 무한대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무곡

  • 작성자 23.07.23 08:58

    간암공의 상소문 등에 힘입어, "영조나 정조는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민생을 시찰하거나 직접 듣고 많은 개혁정책을 실시하였다. 암행어사의 대명사인 박문수도 이 시기에 활약하였다. 심지어 배고파서 잡혀온 도둑들을 불쌍하게 여겨 담금질등 가혹한 고문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런 정책 중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영조의 균역법(군포 2필에서 1필로 감)과 정조의 신해통공(금난전권을 폐지)이었다. 이들 제도는 조선 후기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에서 발췌, 표학렬)/ 무곡

  • 작성자 23.07.23 08:59

    ※위두량종친께서 47일차 밴드 댓글에 올려주신 내용과 함께 살펴보시면, 더욱 의미가 클것 같아 오늘도 첨부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간암공上疏文
    https://m.blog.naver.com/wdr462/222671650323암공上疏文
    https://m.blog.naver.com/wdr462/222671650323

  • 작성자 23.07.23 09:00

    인재의 양성과 등용에 대한 상소군요. 결국 과거문제와 결부가 되겠네요./ 벽천

  • 작성자 23.07.23 09:01

    인재등용 방법 중 천거제도도 잘만 운영이 되면 참으로 좋은 제도입니다. 과거제도만 고수하다보면 정말 인재를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경우도 많지요. 그런데 잘못되면 정실 인사가 되는 등 객관성이 부족하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ᆢ
    참으로 인재 발탁 제도는 어려운것 같기도 합니다.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세우고 뒤에 제의 제후가 된 강태공이나 삼국지의 제갈공명, 봉추 등도 사실 추천으로 등용된 케이스죠. 물론 삼고초려나 추천서 등의 변수도 있었습니다만 ᆢ/ 무곡

  • 작성자 23.07.23 09:02

    위윤기 님
    지금도 특허청의 특허심사관을 선발(사무관, 서기관등)하는 경우 등 일부 직렬은 관련분야 석사, 박사 논문 등 주요 경력과 실적을 심사하여 경채로 채용하는 제도를 공채와 병행하여 운영하기도 합니다./ 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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