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강구, 영덕까지 걸어가기(3) * 도보여행기
오도2리 마을 앞 시원하고 아름다운 해변... 투명한 물속에 푸른 해초들 싱그럽고...
평평하니 물속에 잠긴 바위의 모습은 마치 전설 속에 가라앉은 옛...도시를 상상케 한다.
우리는 여기서 상당 시간 물속에 발가락 꼼지락거리며, 전설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 해변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고 한다.
오래 전 한 짐승이 있어, 백일 동안 동해물을 다 퍼내면 인간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옥황상제의 약속을 믿고 양동이 하나 들고 동해바다 오도2리 해변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 짐승은 곧 깊은 시름에 빠진다. 물을 퍼내는 건 쉬울 것(?) 같은데...도대체 그걸 어디에 담아 놓는단 말인가?
그 짐승은 문득 달을 바라본다. 그러나 달은 초승달일 때만 물을 담아둘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한 달에 한 번씩만 물을 퍼서 초승달에 옮겨놓는데...그게...여의치 않아 아직도 동해물을 퍼서 초승달에 옮기는 중이라는 것이다.
곰은 벌써 마늘 세 쪽으로 100일을 버텨 인간이 된지 반만년이나 되었다는데.... 이 짐승은 고민 고민을 하면서...오도리 해변에 아직도 양동이 들고 계속 서 있느니....그래서 우리나라 애국가에 ‘동해물과.......마르고....’라는 가사가 등장하게 되었다나, 어쨌다나... 믿거나 말거나지만...
빈 양동이 들고 동해바다에 서 있는 사람 보면, 그건 그때의 짐승이려니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인간이 덜 된 짐승...그러고 보니 양동이 든 팔이 근지럽다. 짐승의 털이 돋으려나 보다. 으흐흐..
* 추기 : 참고로 이 전설은 2009년 5월 2일, 오도2리 해변에서 태어났음을 밝혀둠.
우리는 전설(?)의 바다에서 걸어나와
다시 가파른 세상길을 거슬러 오른다.
한 발 잘 못 디디면
까마득한 개울로 굴러 떨어지는 길...
그리고 어디쯤에선가부터...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져왔는데...
그때, 우산살 끄트머리,
방울지어 떨어지던 쇼팽의 저 ‘빗방울’ 건반...
때로는 ‘와호장룡’의 대숲 즈려밟는 장쯔이 같이...
혹은, 병든 애인이 부르는 작은 노래 같이...
저 지독한 고요의 숲으로 잠적해가던, ‘빗방울...’
...그렇게 적막한 걸음으로 청진2리 버스정류소에 다다르니...
어느새 빗방울은커녕 구름도 걷히는 듯...하늘이 부산하다.
보리밭 넘어 그늘진, 먼 산야에는 흐린 햇빛도 듬성듬성 얼굴을 내밀고...
낡은 소파와
쥐 뜯은 회전의자가 거칠게 버티고 있는
이가리 버스정류소를 지나니...
점 하나가 지워진 듯한 이가리 마을 표지석이 다소 과장된 크기로 입을 벌려 기다린다.
이가리...
옛날 기생 둘이 청진과 백암의 갈림길에 터를 잡고 늙도록 마을을 개척하면서 살았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라 전하기도 하며, 도씨와 김씨 두 가문이 길을 사이하여 각각 집성촌을 일구었는데 차츰 번성하면서 서로 합하여 한 마을이 되었다 하여 이가리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정월보름이면 김씨터주와 도씨골목 신위에 제사를 지내고 4년마다 용왕제 굿을 한다.
점 하나로 오해할 뻔 했던 이가리 마을 이름은 나중에 청하면 홈페이지에서 그 유래를 확인하였다.
이가리를 지나 용두리 가는 925번 해안 도로에는
나무들이 모두 무얼 믿고 그러는지,
버릇없이 비스듬히 눕거나, 다리 하나씩 뒤로 빼고 서서
우리의 사열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청하 하구 용산 머리 북쪽에 있다는 마을, 용두리는 어디 있는 걸까?
그리고 지도에 있는 청하천은 도대체 어디에 있지?
도로를 따라 걸어가자, 멀리 월포리 해수욕장이 보이고, 근처 한적한 해변도 나타난다.
여기가 용두리일까?
해변엔 풍광 좋은 조경태가 있고, 옛날 조선조에는 정자가 있어 이곳에서 백일장이 열리기도 했었으며,
인조 2년 유축이 이곳에서 놀고 있을 때, 마침 이 앞에서 고래를 잡는 장관을 구경하게 되자
이름을 바꿔 조경대라 불렀다는 곳.
새마을(1리), 새터 오두, 허후리(이상 2리)와 같은 자연부락과 화지동 일부를 합하여 1914년부터 용두리라 하였다는데...
도로를 벗어나 걸을 때 용두리 마을 표지석을 어디에선가 놓친 게 틀림없다.
해변 사이의 길을 따라 월포해수욕장 가는 넓은 길가가 갑자기 떠들썩하다.
그리고 곧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소리도 낭랑하게 나타나는데...
잠시 눈을 돌려 내륙 쪽을 바라보니,
전봇대와 전선이 길게 이어진 언덕 넘어 깊고 흐린 산맥이 보인다.
저 산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외로운 길 하나, 산모롱이를 돌아가네.
한적한 도로변, 월포해수욕장 들어가는 길 입구.
폐쇄된 우물가의 나이 드신 향나무는 누가 머리도 안 깎아 드리나보다.
돌보지 않아 머리 맘대로 뻗친, 치매 할머니처럼 슬퍼 보이기도 하고,
아직 핏줄 완강하고 생활력 강해, 종이박스 모으며 리어카 끄시는
인천 간석동, 70대 할아버지처럼 푸르러 보이기도 한다.
저녁나절에 도착한 월포는...
월포만을 끼고 있는 청하면 연안 최대의 마을이다. 근년에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 여름 한철 크게 붐빈다. 1리는 적은포, 2리는 개포, 3리는 월아구와 중휘리를 합친 마을인데, 1914년 월아구의 『월』자와 개포의 『포』자를 취하여 월포라 이름하였다.
이것이 청하면에서 월포를 소개한 글인데...
신라 때 수군만호진영기가 설치되었다던 마을, 개포의 위치는 어디쯤인지... 가늠이 안 된다.
우리는 해수욕장에 설치된 천막횟집에서 물회 한 사발씩을 시켜 놓고
모처럼 차가운 맥주잔을 기울였다.
그 사이에 대학생들처럼 보이는 아까의 젊은 남녀들이
교성嬌聲 가득히 흐린 해변을 물들인다.
MT를 온 것 같은데... 우리는 어느 쩍에 저렇게 푸른 세월을 보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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